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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 상실이라는 묘혈

정밀6시간 전조회 수 691추천수 12댓글 9

 

人を呪わば穴二つ.

 

저주를 할 때는 묘혈을 두 개 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을 해치려는 마음은 자신에게도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4. Lost]

모두 그를 따먹네

그는 농담이기에

그의 칼 끝이 흔들리네

어느 목을 향해도 자살이기에

 

 

저스디스가 이 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농담과 같습니다.

그가 어느 목을 향해 칼을 휘둘러도 자살입니다.

 

타인을 저주(디스)해도 그것은 자신을 겨냥할 뿐입니다.

 

저주는 타인을 저주함으로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

 

릿은 이중적 라인으로 타인을 향한 디스 속에 자신에 대한 디스를 숨겨 놓은 형식이고,

원형적인 저주의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4. Lost]

그의 칼 끝이 흔들리네

어느 목을 향해도 자살이기에

그는 휘둘러 그는 휘둘러 그는 휘둘러

그는 시발 휘둘러 to the

 

 

칼을 휘두른다는 선언을 회수하듯이,

직후의 5, 6번 트랙에서 Don't Cross와 Curse가 이어집니다.

 

 

[5. Don’t Cross]

다 들었어 니가 그 때 걔랑 만날 때

걔가 16살이었다매

다 들었어 니가 그 때 걔랑 만날 때

안에 있는 애 싹 긁어냈다매

 

[6. Curse]

Idol featuring 작사로 떵떵

같이 취할 땐 문화가 힙합이 어쩌고

지랄 떨 맛 떨어져

 

 

타인에 대한 디스를 표층에 놓고,

 

 

[5. Don’t Cross]

내 고해성사실이 이 가사장 위

다들 가족도 모르는 비밀 하나씩은 있잖아

근데 이 rap shit is godlike to me

힙합이 종교 Q U I E double T

I never quit

지금 가면 우린 다 지옥 확정이지

 

 

이 가사장이 고해성사실이며 ‘우리’는 지옥 확정이라고 표현하는 부분.

 

 

[6. Curse]

Yeah, 진지하자며 시발 넌 어디로

진짜 의미를 잃어버린 뒤로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진실로

 

 

과거 저스디스의 행보가 엿보이는 가사들.

이후 이어지는 ‘나는 허승 아냐’와 같은 자신을 부정하는 부분까지 보면 더욱 확실해지죠.

단순히 타인을 향한 디스라면 없어도 될 만한 부분들이니까요.

 

타인과 자신을 동시에 공격하는 저주 형식의 요소는 저스디스가 릿에서 보여준 가장 극화된 지점 중 하나입니다.

 

저주가 있다면 그 반대 축은 무엇일까요?

이번에는 릿의 구성적인 측면을 도식화하여 보겠습니다.

 

우선 트랙리스트를 보겠습니다.

 

  1. 1. LIT

  2. 2. 내가 뭐라고 (feat. BUMKEY)

  3. 3. 내놔

  4. 4. Lost

  5. 5. Don't Cross

  6. 6. Curse

  7. 7. Interrude

  8. 8. 유년 - 유년

  9. 9. VIVID (feat. 인순이)

  10. 10. Dusty Mauve Intermission

  11. 11. 돌고 돌고 돌고 (feat. Ra.D)

  12. 12. THISpatch

  13. 13. Wrap It Up

  14. 14. Can't Quit This Shit (feat. ILLINIT)

  15. 15. THISISJUSTHIS Pt. III

  16. 16. 친구 (feat. DEAN)

  17. 17. 내 얘기

  18. 18. XXX

  19. 19. Lost Love (feat. DUT2, Street baby, GongGongGoo009)

  20. 20. HOME HOME

트랙리스트를 구분한 기준이 보이시나요?

 

 

[1. LIT]

I’m lost in translation

걍 할 뿐이야 display를

뭐야 무신론자 앞에 예수

So lie or 해 경배를 It’s LIT

 

[19. Lost love]

I’m lost in translation

걍 할 뿐야 display를

뭐 무신론자 앞에 예수

So lie or 해 경배를 it’s LIT

 

 

전체 곡 중 두 트랙에서만 반복되는 중복된 가사입니다.

이는 의도된 배치로 보이며, Dusty Mauve Intermission을 기점으로 나누어진 형식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전반부 9곡과 후반부 9곡으로 정확히 나뉩니다.

 

곡의 가장 입구 부분에서 display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해당 가사는 이 앨범의 속성을 규정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디스플레이하는 것일까요?

 

이음새를 보기 위해 10번 트랙의 전후를 보겠습니다.

 

 

[9. VIVID]

기억나 초등학교 5학년 때 still vivid

학교에서 가르쳤던 건 외모지상주의지

난 내 옆자리 (?)가 이뻐 보이니

좋아했었는데 그런 나한테 느꼈어 guilty

 

[11. 돌고 돌고 돌고]

아빠는 항상 트렁크 팬티에 난닝구를 입으셨지

트라이 쌍방울 아니면은 BYC

같이 목욕탕에 가면 있는

조그만 목욕 의자에 혼자 쪼그려 앉아

투명한 베란다 미닫이 문을 닫아

 

 

과거 시기, 유년을 다루는 곡이 전후에 배치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이 앨범은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과정인 것입니다.

 

 

[1. L.I.T]

This that JUSTHIS back

마치 다듀, 해체 후 CB Mass

혹은 누명을 쓴 김진태 back again

아님 슈프림팀 믹스테잎

아님 등장 재지팩트

아님 혼자 다 이긴 16년의 씹새끼

 

 

현재 시점, 자신의 복귀를 다루는 첫번째 트랙의 저스디스는,

 

 

[8. 유년]

여름 밤이면

온 가족이 폭죽 사서 나가

온곡초 운동장

검은 하늘을 가르던 다홍빛 불꽃과

모래 바람 냄새와 습기

 

 

유년의 표층부를 다루는 곡을 통과해,

 

 

[9. VIVID]

매순간 나는 삶을 질투하는 것들과 싸워

이 숨쉬기의 끝이 어딘지는 only God knows

그저 follow 내 마음속 느껴지는 열을 따라서

쓴맛을 보며 닫힌 마음을 애써 감추려 해, 당신과 춤추려 해

내 삶의 중심에서

이젠 너에게로

 

 

사랑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허승이라는 존재의 가장 원초의 모습.

유년을 통해 메시지를 증류해낸 것입니다.

 

Dusty Mauve Intermission는 8분 가량의 긴 인터미션입니다.

Dusty Mauve는 탁한 톤의 무채색화된 컬러.

무의식을 상징하는 영역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유년의 다른 측면이 부상합니다.

 

 

[11. 돌고 돌고 돌고]

누나는 쥐고 있던 리모콘을 내 얼굴에 던져

리모콘과 이빨사이 내 입술이 잘렸어

아마 죽을 때까지 못 잊겠지 세면대 위

수도꼭질 튼 듯 잘린 입이 쏟아내던 피

.

.

어린 나는 내 안에 있던 아빠와 만나

벽을 부수고 물건을 깨면서 소리 질렀지

엄마는 눈이 뒤집히셔

테니스 채를 거꾸로 드시고

내게 휘두르셨고 그걸 잡은 내 손

그 때 내 눈과 엄마 눈이 마주칠 때 서로

알았지, 이제 다시는 죽을 때까지

엄마가 날 때릴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

 

 

유년기의 트라우마.

그리고 자신에게 잠재된 폭력성과 결핍입니다.

 

THISpatch와 같은 공격적인 곡으로 급변한 것도 그런 흐름의 맥락으로 보입니다.

유년기의 결핍과 상실을 자각하면서 공격성이 발화한 것이죠.

그게 절정에 도달하는 트랙이 Lost Love입니다.

 

[19.Lost Love]

걍 다 꺼져 이해는 무슨 걸레새끼들이 ah

잔고는 찼어 니가 듣기 싫음 꺼 왜 내 입을 막아

난 할 거니까 no filter 내가 하고 싶은 말

내 아버지 틴토 브라스 넌 모르지 구글에 치고 와 you lil bitch

 

19번 트랙에서 증류된 저스디스는 사랑을 상실한 자아.

육체와 본능을 좇는 자기파괴적인 상태로 보입니다.

 

9번 트랙의 VIVID가 사랑을 믿기로 하는 정제된 허승의 자아라면,

19번 트랙의 Lost Love는 극화된 저스디스의 자아입니다.

 

VIVID와 돌고 돌고 돌고는 대척점에 있는 곡인 셈이죠.

두 곡이 장치가 되어 유년에서 사랑과 트라우마의 축을 분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인터미션을 기점으로 양분하여 허승과 저스디스의 자아를 display하는 구조입니다.

 

과거라는 회전력과 앨범이라는 원심분리기를 통해 두 자아를 극화하여 분리하는 것이죠.

 

9번 트랙에서 당신들에게 다가가겠다며 사랑을 노래하던 허승이,

막바지에 와서 섹스와 육체를 쫓는 듯한 스탠스를 비추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유년으로 회귀하여 사랑을 깨닫는 자아와

타인과 자신을 저주하면서 파괴적으로 극화된 자아를

 

말 그대로 디스플레이했기 때문에 보이는 착시인 거죠.

 

1~9 / 11~19

 

결국 이 미로는 CD1과 CD2 두 개의 묘혈로 구성된 것입니다.

 

릿은 타인(자신)을 파괴하는 과정입니다.

디스라는 것의 본질은 상대의 서사를 이해하는 것, 과거를 파헤치는 것입니다.

 

과거를 무한히 거스르면 어떻게 될까요?

릿은 디스로서 과거를 되짚는 과정이며, 태초(유년)의 순수성과 트라우마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저스디스가 저주 끝에 가장 원초적 지점인 유년으로 가면서 두 자아를 분리해내는 과정.

자아의 증류 과정인 것입니다.

 

트랙리스트를 조감도로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1. 1. LIT

  2. 2. 내가 뭐라고 (feat. BUMKEY)

  3. 3. 내놔

  4. 4. Lost

  5. 5. Don't Cross

  6. 6. Curse

  7. 7. Interrude

  8. 8. 유년 - 유년

  9. 9. VIVID (feat. 인순이)

  10. 10. Dusty Mauve Intermission

  11. 11. 돌고 돌고 돌고 (feat. Ra.D)

  12. 12. THISpatch

  13. 13. Wrap It Up

  14. 14. Can't Quit This Shit (feat. ILLINIT)

  15. 15. THISISJUSTHIS Pt. III

  16. 16. 친구 (feat. DEAN)

  17. 17. 내 얘기

  18. 18. XXX

  19. 19. Lost Love (feat. DUT2, Street baby, GongGongGoo009)

  20. 20. HOME HOME

이런 두 자아의 극화 과정에서 벗어나 있는 건 20번째 트랙 Home Home입니다.

두 자아의 완벽한 분리 후 저스디스는 집으로 나옵니다.

 

Home은 현실입니다. 세계입니다.

편집된 파편들.

 

자극적인 신호로 가득한, 도파민과 자기착취로 가득한 감시적인 사회.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좇는 사람들.

도덕적으로 타당한 순혈을 가려내어, 걸러진 이들의 입을 막는 Home.

 

이는 매트릭스의 네오와 같은 영화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스디스가 사용한 예수라는 표현을 생각하면 Dusty Mauve Intermission은 죽음을 상징한다 볼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자아의 통합 속에서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거죠.

 

---

 

저번에 남긴 글을 초안으로 다시 썼습니다.

중복된 부분이 많아서 찔리네요..

 

첫 감상 후로 관점이 조금 변해서 충돌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된 글로 남겨보고 싶어서 쓰고 갑니다...!

 

신고
댓글 9
  • 1 6시간 전

    어느 정도 비슷한 생각이 있었는데 덕분에 부족했던 감상이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좋은 해석 감사합니다.

  • 정밀글쓴이
    5시간 전
    @Equipimind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5시간 전

    좋은글 개추

  • 4시간 전

    저도 비슷한 감상이었는데 정리된 글로 보니까 좀 더 확신이 느껴지네요. 이 앨범의 본질은 결국 자기파괴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의 순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한편으로는 빈지노 김심야를 스닉디스하고 lost라는 트랙으로 한번 더 스닉해서 이중스닉구조(난 너네를 디스했지만 사실 앨범의 서사를 위한 장치였어)를 가져가는게 정말 저스디스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ㅋㅋ 상대 입장에서 존나 짜증날거같음.

  • Mir
    1 4시간 전
    @인간병기호날두

    스닉디스 먼저 당해서 그런지 칼을 갈았나봄ㅋㅋㅋ

  • 2시간 전
  • 2시간 전

    재밌는 글이당

  • 1시간 전

    겁나 재밌네요

    그나저나 제가 저스디스 앨범들을 안 들어봐서 그러는데, 2MH41K 수록곡들 중에도 HOME이라는 곡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HOME HOME도 그 곡이랑 연관이 있을까요?

  • 정밀글쓴이
    13분 전
    @KangHosam

    아티스트는 기본적으로 개인화된 상징을 씁니다.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스디스에게 Home은 로컬라이징된 상징 체계입니다. 2mh41k에서 자신의 가족이라는 집, 친구라는 집, 힙합이라는, 예술이라는 집들이 나옵니다. 앨범에 수록된 Home이란 제목의 스킷들은 이 집들을 인식시키기 위한 극 형식의 장치들입니다.

     

    2mh41k가 수록곡 아뜰리에에서 분열된 자아가 대화하듯 이야기하는 형식을 ‘곡 하나에 할애된 장치’로서 작게 취했다면, L.I.T은 앨범 전면에 두 인격을 정제하여 나누어내는 과정을 세웁니다. 그리고 두 자아가 통합되면서 ‘HOME HOME’이란 큰 집(?)으로 나오게 됩니다.

     

    분열된 자아에겐 여러 집이 필요하지만, 유기적으로 통일된 자아를 가진 아티스트에겐 ‘세계’라는, 바깥만이 자신을 맞이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의미에서 차별화를 두기 위해 HOME HOME이라고 두 번 강조하여 표기한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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