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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통 정규 3집-흙

title: Late RegistrationAlonso20004시간 전조회 수 372추천수 1댓글 2

https://blog.naver.com/alonso2000/224071898874

 

 

 

아마 한국 힙합 씬에서 제이통만큼 '종잡을 수 없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첫 EP에서는 부산이라는 지역적 정체성과 레이블 하나에 대한 거침없는 도발로 관심을 모았으며, 첫 정규에서는 인디 밴드부터 자신의 크루를 거친 동료들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감각을 녹여냈다. "개량한복"에서 여러 메인스트림 아티스트와 방송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퍼붓는 등 주류를 공격하기도 했으나, 자신의 크루의 아이돌 출신 동료인 지코와 협업하기도 하는 등 그들을 완전히 거부하지도 않았다. 커리어 초창기 직접 감독한 여러 파격적인 뮤직비디오로 인해 외설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고, 때로는 통기타를 들고 추억을 노래하기도 했으며, 채식과 해안가 청소, 농경 등 자연주의적인 행동을 몸소 실천하고 전파하기도 했다. 랩 록(Rap Rock)부터 재즈 랩, 트랩, 심지어는 얼터너티브 알앤비와 포크 송을 두루 오갔던 그의 시도는 상반된 성질을 지닌 것들이 충돌하여 생기는 변화와 모순을 끌어안으려는 성찰과 노력이 배어있었다.

10년 만의 정규인 [흙]도 예외일 수는 없다. 힙합 경연 <랩:퍼블릭>을 거치며 형성된 새로운 아티스트들과의 인간적 커넥션을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정통적인 힙합 사운드와 편안한 멜로디를 넘나드는 특유의 '대비감' 속에 융화시킨 것은 물론, 그 사이에 자신의 생각과 개성을 영리하게 풀어낸 이 작품은 세간의 평가를 넘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가치가 충분한 결과물이다. 이미 여러 채널을 통해 공개된 곡이나 벌스가 많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긴 가치관과 주관, 지향이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제이통이 지닌 자유분방한 페르소나는 그가 [흙]을 빚어내는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승합차에 녹음 부스와 간이 숙소를 설치한 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휴양과 작업을 반복했으며, 이렇게 완성된 앨범은 그의 커리어에서도 대중친화적인 구간과 최신 유행을 장착한 그의 야수성이 기이하게 공존하게 되었다.

 

 

 

 

앨범의 중반부의 멜로딕한 흐름, 특히 제이통 본인도 앨범의 핵심 트랙이라 강조했던 "도레미"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NONG]을 통해 리스너들의 지지를 얻은 얼터너티브 알앤비 아티스트 신지항의 칠(chill)하고 몽환적인 프로덕션 위에, 투박한 톤의 싱잉 랩으로 전하는 가족과 스스로를 향한 진심 어린 메시지는 그 자체로 "미안", "취해 부르는 노래" 등에서 보여준 그의 인간적인 표현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여기에 원슈타인이라는, 기존의 제이통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존재가 고운 톤으로 그리움을 함께 쌓아올리는 부분에 이르면 러프함과 실키함이 공존하며 앨범이 지닌 병치의 미학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다.

닥스후드와 시모의 손길로 가스펠과 트랩이 절묘하게 섞인 지점에 위치하게 된 "Goat"의 자아성찰적인 가사와 견고한 삶의 철학 역시 동일한 결을 공유하는데, 이는 "우리들은 불확실한 삶을 살다가 끝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어린 양이지만, 현재에 충실한 삶을 용기 있게 산다면 결국 행복은 오게 되어 있다"는 메시지다. 물론 그 사이에 힘든 일도, 상실도, 관계에서 오는 아픔도 있을 순 있겠지만, 자신을 위해 용기 있게 준비하다 보면 결국 끝까지 날아오를 수 있게 된다. '지난날은 그립지만 어쩔 수 없기에, 내일은 오지 않아서 손이 닿지 않기에' 그의 말에는 깊은 통찰력이 배어있다.

앨범의 최후미에 배치된 "자연재해"는 더욱 극적이다. 에잇볼타운에서 차출된 싱어송라이터 재규어 중사와 오랫동안 연이 있는 강욱의 도움을 받은 어쿠스틱한 반주 위로 제이통은 새로운 사랑을 마주한 두려움을 솔직히 토로한다. 이는 일종의 연애담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다가올 나날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도 다가온다. 물론, 기술적으로 훌륭하거나, 세련된 보컬은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창법, 그리고 이로써 전해지는 진솔한 감정과 자신만의 화법은 그 자체로도 제이통이라는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무엇보다도 성공적으로 대변하는 대목이다.

 

 

 

 

물론, [흙]은 유순하기만 한 앨범은 결코 아니다. 흙은 뭇 생명을 살찌우기도 하지만, 그 위에는 약육강식의 흉포함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야수성이야말로 제이통이 지닌 러프함이 진가를 발휘하는 부분이다. 제이통과는 "푸른 잎 파리"에서 이미 협업한 바 있는 이안 캐쉬가 초반부의 야수성을 상당 부분 책임진다. 멤피스와 플로리다의 야성을 깊게 흡수한 이안 캐쉬의 트랩 비트(Beat)는 이내 제이통의 동물적이고 맹렬한 랩이 누비기에 딱 좋은 터전이 된다. "갱신"과 "Woof"에서 드러나는 노골적인 공격성이나 "통"의 일관된 태도 역시 그렇지만, 지극히 도회적인 이 사운드 위에 자연주의적인 가사와 레퍼런스, 짐승에 가까운 맹렬함을 은근히 가미하며 생기는 기묘한 마리아주는 그가 그간 보여준 강렬한 캐릭터와 매력의 힘으로 설득력을 확보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번 앨범이 제이통 커리어에서 가장 '젊은' 작품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트랩이 큰 줄기를 이루는 앨범의 사운드적인 관점에서 봐도 그렇지만, 객원 아티스트들과 일부 프로듀서들까지 그가 <랩:퍼블릭>을 통해 확보한 인맥들로 채워졌다. 애초에 그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부산에 고여 있어 사회성이 결여된 자신이 이런 사회 안으로 던져진다면 어찌될까'하는 호기심의 발로였다는 점에서, 이를 해소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 커넥션이 이후의 결과물에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앨범의 후반부를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로 채워내는 JP가 대표적이다. UK 리듬을 적극 차용한 "Young Climber (YC)", 보이스 샘플과 베이스가 이끌어 나가는 "ZaZa" 등 짧고 미니멀하게 앨범의 후반부를 채운 전자적인 사운드 위로 제이통이 클라이밍에 빗대어 자신의 스탠스를 말하거나, 하루의 순환 가운데에서 깨달음을 얻는 자연주의적 가사가 뒤섞이는, 언뜻 보면 모순적이기까지 한 이 순간이야말로 제이통이 지닌 최신 사운드에 대한 이해와 그의 음악적 구상을 상당히 훌륭하게 대표한다.

앨범의 선공개곡이기도 한 "Woof" 연작은 제이통의 인적교류가 어디까지 확장되었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시이다. 자신과 평소 교분이 깊었던 노스페이스갓은 물론 한국 트랩의 프레시맨으로 자리매김한 랍온어비트(lobonabeat!)의 본능적인 움직임이 원곡에 새겨졌으며, <랩:퍼블릭>을 거쳐 알게된 영 건들을 중심으로 스트릿 베이비까지 가세한 젊은 피의 야생성이 리믹스에서 이를 훌륭하게 받아친다. 이러한 야생성은 생각치도 못한 방향으로 뻗어가기도 한다. "LaLaLa"에서 닥스후드의 디트로이트 트랩 프로덕션 위로 제이통의 유머러스한 야성과 지빈의 기이한 귀기가 교차하는 순간은 앨범에서도 가장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뚜렷한 영역을 지닌 지점이기도 하다. 오히려 길지 않은 앨범 곳곳에 녹아든 개성의 표출이라는 측면에서 더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어찌 보면 [흙]은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안전한 길을 선택한 앨범이었다. 전작들에서 왕왕 드러내곤 했던 분노의 정서보다는, 자연 속에서의 거대한 순환과 이를 마주하는 삶의 자세와 성찰에 더 무게를 두었으며, 이를 드러내는 방식은 록(Rock)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기도 했던 이전 작품들 보다 확실히 힙합적으로 탈바꿈했다. 그럼에도, 이를 자신다운 노골적인 표현과 투박한 야생성으로 녹여내는 솜씨는 어느덧 장르 씬의 뚜렷한 베테랑으로 자리매김한, 동시에 자신의 영역을 누구보다 확실히 구축한 아티스트 답다. 그는 [흙]에서 거리낌 없이 한국 힙합 트렌드의 최전선들과 교분을 다졌고, 때로는 기타를 치며 자신의 연약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숱한 도전을 거듭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내내 말하며 제이통이라는 소나무는 자신만의 토양에 뿌리를 단단히 내렸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소중한 가치'란 무엇일까? 제이통은 인터뷰에서 '건강'이라 단언한 바 있다. 지난날은 잊지 않으면서도 매 순간 현재를 마주하며 꾸준히 살아가는 삶, 자연의 순환에 순응하며 자신답게 사는 삶, 그리하여 두터운 덕으로서 자신을 둘러싼 지금과 스스로의 가치관까지 담아낼 수 있는 삶, 이것이야말로 제이통이 추구하고 전파하고 싶었던 건강한 삶,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가 아니었을까?

Best Track: Woof (Feat. Northfacegawd, lobonabeat!), 도레미 (Feat. Wonstein), 자연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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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title: Late RegistrationAlonso2000글쓴이
    4시간 전

    본 리뷰는 HOM#30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hausofmatters.com/magazine/hom/#30

  • 2시간 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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