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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쉬베놈, 그는 대한민국의 래퍼이다. 충청도 사투리를 곡에 녹여내는 구수한 랩이 시그니처인 그는, 'SHOW ME THE MONEY 8' 4차 예선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우승 후보라 평가받던 펀치넬로를 상대로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 벌스를 선보이며 신선함을 줬고, 그로부터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다. 이후 TFT 모바일과 협업한 광고 테마인 '두둥등장'으로 수많은 바이럴과 열풍을 이끌었고, 그 기세를 이어 'SHOW ME THE MONEY 9'에 출연한다. 여기선 그의 숨겨진 프로듀싱, 기획력 등이 돋보이는 계기가 되었고, 'VVS'를 비롯한 여러 명곡을 남기며 준우승이란 쾌거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그 후 싱글 단위의 작업물만 띄엄띄엄 발매하며 점차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히게 된다. 그러던 중, 마지막 싱글로부터 약 3년 만에 그는 피쳐링과 사진들을 공개하며 컴백을 예고했고, 정규 1집 '얼'을 마침내 공개하게 된다.
머쉬베놈의 첫 정규 앨범 ⌈얼⌋,
여러분의 귀와 마음에
닿기를 바랍니다.
- 머쉬베놈, 머쉬베놈 인스타그램 中 (2025) -
얼 (2025.08.21. / 10트랙 / 30분 36초)
-트랙
1. 돌림판 (feat. 신빠람 이박사) <Title>
2. 몰러유 <Title>
3. 오랫동안 (feat. 거북이)
4. 오토매틱 (feat. 코요태)
5. 띵띵땡땡
6. 날다람쥐
7. 빠에
8. 오늘날
9. 모나리자
10. 얼
'얼'은 우리가 알던 그의 구수한 음악부터,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까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앨범이다. '몰러유'는 사투리를 후렴에 사용함과 동시에, 신디사이저를 통해 뽕짝의 향기를 강하게 풍긴다. 이러한 감상은 그의 이전 싱글들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대중가요를 상기시키는 '오랫동안'과 '오토매틱', 동물 울음소리나 하이톤의 목소리 등의 요소로 재미와 청각적 쾌감을 주는 '빠에', 사뭇 진지해지고 그에게서 좀처럼 찾을 수 없던 슬픔이 느껴지는 '얼'까지. 앨범엔 그의 다양한 모습들이 새겨져 있다. 특히 '돌림판'은 익숙함과 새로움이 결합해 있는 트랙으로, 뽕짝처럼 다가오면서도 하이퍼팝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빙글빙글 도는 돌림판처럼 미쳐 날뛰는 비트와 강력한 중독성을 풍기며 반복되는 후렴은 감히 이 곡이 올해의 트랙이자, 마성의 뱅어라 평가하고 싶어진다.
멋있는 것을 하든 슬픈 거를 하든 사랑을 하던
그 안에 제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걸 좀 제일 중요시했던 것 같아요.
- 머쉬베놈, 유튜브 <엘이맥> 'BTS 봉준호 손흥민, 머쉬베놈 let's go' 中 (2022) -
이 다양한 매력의 곡들이 앨범이란 집합체로 묶였을 때, 이 묶음은 한 사람의 인생으로, 머쉬베놈은 이야기꾼으로 변모한다. '돌림판'을 기점으로 초반부의 신나고 자유로운 분위기는 마음껏 꿈꾸는 해맑은 청소년기가 생각나고, '오랫동안'부터 '띵띵땡땡'까지는 실패해도 희망을 품고 나아가는 청춘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이 흐름은 '날다람쥐'에서 한번 환기되며 이로부터 점차 인생의 후반기를 그려낸다. 삶의 고뇌, 오늘이란 단어의 의미, 느려지고 어두워진 분위기는 인생의 말년을 잘 표현한다. 그리고 결국 '얼'에서는 참회, 사과와 함께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응적 태도를 보인다. 얼에서 다시 돌림판으로 돌아가는 앨범 구조는 끝이 새로운 시작임을 암시한다. 이는 인생의 순환이란 다른 이름으로 다가온다.
또 걸었었던 지난 나의 인생 봐
기름진 음식을 빼곤 먹은 게 없다
…
참회의 시간을 거듭하지
참회의 시간을 반복하지
- 10번 트랙 - 얼 -
이 앨범은 '한국'적인 냄새를 가득 풍긴다. 이를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한 상 가득한 한정식보단 든든한 국밥 같다. 비판의 의미가 아닌, 청자가 친근하면서도 직관적으로 앨범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한국 힙합의 정수라 평가받는 여타 앨범과는 다른 결의 고유함이다. E SENS의 'The Anecdote'처럼 랩 위에 어느 한국인의 개인적인 서사와 감정을 온전히 풀어낸 것도 아니고, 피타입의 'Heavy Bass'처럼 한국어 랩의 새로운 지평이나 깊은 탐구를 보여준 것도 아니다. 새로운 장르 개척이나 로컬라이징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 앨범이 토속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어느 부분만을 포착해 그려낸 것이 아닌 앨범 내 다양한 요소를 통해 한국인의 정서를 이어짐의 방식으로 구축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멋을
좀 멋있게 풀어서 표현하고 싶어요.
- 머쉬베놈, 유튜브 <엘이맥> 'BTS 봉준호 손흥민, 머쉬베놈 let's go' 中 (2022) -
우선 그는 앨범 피쳐링으로 뽕작의 대명사 이박사와, 유명 그룹 코요태와 거북이를 참여시켰다. 그들은 곡에 잘 녹아들어 좋은 콜라보를 보여주었다. 이박사는 특유의 흥으로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했고, 코요태와 거북이는 옛 한국 대중가요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기성세대도 낯설지 않고, 부담 없이 앨범을 들어볼 수 있는 첫 발걸음으로써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리고 그의 가사 역시 한국의 정서를 가득 품고 있다. 짝짜꿍, 널뛰기 등 고유어나 우리나라 전통이 담긴 단어들뿐 아니라 소상공인, 생산적 2교대와 같은 근현대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을 엿볼 수 있는 표현도 대폭 사용했다. 이를 통해 청자는 곡에서 현재나 과거, 혹은 그를 아우르는 감상을 간접적으로 하게 된다. 이는 머쉬베놈 특유의 충정도 사투리와 합쳐져 더욱 살갑게 다가온다. 그의 중독성 있는 후렴과 신나는 비트가 함께이기에, 그 정겨움을 흥겹게 즐길 수 있다.
그냥 진짜 옛날 인터뷰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그냥 자기 것,
그리고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그림이 그려져야지
저는 항상 오케이 했어요.
- 머쉬베놈, 유튜브 <엘이맥> 'BTS 봉준호 손흥민, 머쉬베놈 let's go' 中 (2022) -
그러나 흥겨움이 잠잠해지고 점차 분위기가 가라앉는 후반부에 들어서면 앨범의 진가가 드러난다. 후반부에선 독일 파견, IMF나 88 올림픽 등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언급하기도 하고, 신나게 자유를 얘기하던 초반부와 대비되어 고난과 생존, 죽음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이 전환을 단편이 아닌 흐름으로 부드럽게 풀어내기에 변화하는 감정선을 더욱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매우 신나는 분위기였던 첫 트랙 '돌림판'과 다르게 앨범의 마침표를 찍는 '얼'에서는 비애와 후회, 즉 한이 곡의 기저에 가득하다. 앨범의 끝에 도달하고서야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이 앨범이 단순한 히트곡 메들리가 아닌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중심으로 인생을 그려낸 치밀한 플롯이란 것이다.
저는 얼이란 단어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한국인의 뭔가 그런 것들을,
그 한과 모든 것들을 담은 그 정신을
사람들에게 진하게 보여주고 싶다 해서
만든 노래(얼)니까
한 번 들어봐주세요.
- 머쉬베놈, 머쉬베놈 게릴라 콘서트 中 (2025) -
종합적으로 이 앨범은 한국 사회를 삼인칭으로 정밀하게 묘사한 것이 아닌, 한국인의 삶과 그 애환을 일인칭으로 서술한다는 점에서 그 몰입감이 높다. 물론 머쉬베놈 특유의 구수한 음악이 취향에 맞지 않거나, 다소 신나는 곡들에 몰입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빠에'의 동물 울음소리 묘사는 참신하지만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 우리나라엔 흥겨워 몸을 들썩이면서도 그 속에는 비판이나 고충을 담아낸 탈춤과 같은 예술들이 존재했다. 이 앨범의 성격은 그와 무척 닮아있다. 이처럼 신나지만 그 바탕에 여러 감정을 담아내고, 한국적임과 몰입감까지 챙길 수 있는 아티스트는 머쉬베놈이 유일하다고 생각된다.
힙합이란 장르가 국내로 들어오면서 K-힙합, 로컬라이징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그 토론의 열기가 가장 컸던 시기는 최근이라 생각된다. 드릴이나 레이지같은 장르가 해외에서 유입되었고, 그 열풍을 따라 국내 힙합 씬도 조금씩 변화해 갔다. 그러면서 해외 씬의 유행을 무작정 따라 하거나 한국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화두에 올랐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 앨범은 색다른 느낌으로 한국만의 힙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속에 '돌림판'과 같이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뛰어놀며 즐길 수 있다는 트랙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세대 융합의 가능성 또한 보여주었다.
앨범에서 그는 힘든 일이 찾아오고 좋지 못한 감정들이 복받치더라도 자유를 갈망하며 극복을 외친다. 그 모습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어딘가 닮아있다. 일제강점기나 6.25, IMF처럼 언제나 우리에겐 커다란 시련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힘을 모아 그것을 몰아내거나 극복했다. 우리 민족은 결국 해냈고, 이겼고, 승리했다. 그가 그려낸 얼, 정신의 줏대는 우리가 한국인임을, 그리고 승리와 극복의 민족이라는 것이다. 물론 약한 모습이나 자신을 돌아보고 후회하는 인간적인 면모 역시 드러난다.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의 화자는 어느 한국인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현대, 세계화가 된 2025년에 레트로 스타일의 음악과 함께 한국인의 초상을 담아낸 독특한 작품이다. 그는 힙합이란 장르 위에 대한민국의 희로애락, 그리고 승리의 얼을 조심조심 새겨놓았다. 결국 그가 오랜 시간 바라보고, 앨범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굳건함이었다.
저는 국위선양을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뭔가
나라를 대표하는 누군가가
되고 싶어요.
- 머쉬베놈, 유튜브 <엘이맥> 'BTS 봉준호 손흥민, 머쉬베놈 let's go' 中 (2022)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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