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지의 이름은 여전히 과소평가되어 있다. 그의 eat와 zissou는 한국 힙합을 넘어 201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앨범들이다. 화지의 장점은 명확하다. 그루브 넘치는 플로우, 단단한 랩 훅, 히피스러움을 드러내는 여유. 그러나 핵심은 이 모든 장점을 조합해 완결적인 앨범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다.
그가 앨범을 낸 시기는 리릭시즘과 진지함의 시대가 아니었다. 트랩과 경쾌함의 시대였고, “한국 힙합 80퍼센트는 오케이션 자식들”이라는 이센스의 발언이 설득력을 가질 때였다. 그럼에도 화지의 앨범은 한국 젊은 세대가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과 태도, 대응을 담아냈다.
2016년, 좋은 앨범들이 쏟아졌다. 넉살, 저스디스, 허클베리피 모두 사회 변화의 불가능성과 그 무력감을 표현했다. 넉살이 존엄을, 저스디스가 분노를, 허클베리피가 삶의 다양성을 노래할 때, 화지는 히피의 태도로 관조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zissou의 마지막 트랙 〈이르바나〉에서 드러난 연대의식과 자유로움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가장 힙합다운 태도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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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빈지노
빈지노는 특이한 존재다. 그는 청춘을 상징했고, 한국 힙합 스타로서의 자부심을 보여주었으며, 젊은 성공한 청년의 모습과 동시에 예술가의 태도까지 표현했다. 요약하자면, 그는 언제나 현재의 자신을 응시하고 솔직하게 담아낸다.
나는 그의 앨범에서 늘 90의 완성도를 본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여유가 남아 있다는 의미다. 빈지노의 장점은 수채화 같은 재치 있는 가사와 이미지, 다양한 소스를 소화하는 부드러운 래핑, 그리고 다양성이다. 그래서 그의 디스코그래피에는 실패작이 없다. 다만, 위상에 걸맞은 절대적인 앨범이 부재하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군복무와 결혼을 거치며 그는 젊은 감성에서 멀어졌다. 대신 자신이 속한 세계를 되돌아보고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노비츠키다. 이 앨범은 공감보다는 전시에 가깝다. 그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다양한 사운드를 소화하면서도 앨범의 통일성을 유지한다. 자기자랑과 불만, 유머까지 담은 노비츠키는 그의 역량이 극대화된 결과물이다.
2000년대가 버벌진트와 누명이라면, 2010년대가 이센스와 에넥도트라면, 2020년대는 빈지노와 노비츠키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결국 다양한 정서와 사운드를 받아들이는 그의 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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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버벌진트
나는 00년대 한국 힙합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의 업적을 현재완료형으로 받아들인다. 힙합은 동시대에 민감한 장르이지만, 버벌진트는 그 이상이다. 그는 사실상 한국 힙합의 유일한 게임체인저다.
모던 라임즈와 무명으로 완성한 다음절 라임 작법은 한국 랩을 그 전후로 갈라놓았다. 그리고 누명은 그의 위상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가사를 라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누명은 그 정의를 완성한 앨범이다.
더 깊이 보자면, 그는 시퀀싱된 연주곡을 삽입해 선형적 구성을 깨뜨렸다. 그의 성취는 단순한 작사법의 변화가 아니다. 그로 인해 한국 힙합은 앨범이라는 단위로 완결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 힙합은 버벌진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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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타블로
나는 두 가지 논쟁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 최고의 래퍼가 누구인가, 한국 최고의 작사가가 누구인가. 전자는 명확히 이센스고, 후자는 타블로다. 나는 타블로가 한국 힙합 최고의 리릭시스트라고 확신한다.
그의 비유력, 시각적 이미지 창조, 라임과 전개의 자연스러움, 언어유희, 한국어와 영어를 넘나드는 감각, 주제를 소화하는 넓이와 깊이. 이 모든 것이 한국 힙합이 남긴 문학적 성취다. 그의 가사는 지적 쾌감과 사유, 공감을 전달한다.
타진요 사건 이후의 감정을 담은 〈열꽃〉은 그의 역량이 극한에 달했을 때의 사례다. 〈집〉의 비유, 〈airbag〉의 이미지 창조, 〈밑바닥〉의 묘사력. 모두 한국 힙합이 가장 높이 오른 순간이었다.
물론 그는 래퍼, 멜로디메이커, 프로듀서로도 뛰어나다. 그러나 본질은 그의 문학적 품위다. 그는 진부한 표현과 좁은 주제를 거부했다. 그래서 한국 힙합사는 그를 무엇보다 리릭시스트로 기억할 것이다. 타블로는 한국 힙합의 작사가가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사의 리릭시스트다. 이 문장에 나는 이견이 될 후보조차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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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센스
이제 최고의 래퍼를 말할 차례다. 답은 명확하다. 이센스다. 그의 절묘한 리듬감과 플로우는 다른 이들과 경계를 긋는다. 그의 랩은 고요하게 날아가는 스테판 커리의 3점슛 같다.
저금통을 들으며 다시 생각했다. 그의 랩은 한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치다. 그리고 그가 여전히 스스로를 갱신하고 있다는 사실도. 물론 앨범 자체는 기복이 있다. 그러나 그의 랩은 모든 단점을 상쇄한다.
이센스는 뛰어난 리릭시스트이기도 하다. 일상의 어휘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때때로 잊히지 않는 이미지를 창조한다. 그러나 그의 본질은 청각적 쾌감이다. 에넥도트는 절제된 프로덕션과 섬세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한국 힙합 최고라 불려야 할 랩스킬을 담아냈다.
결국 이센스는 한국 힙합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 그리고 당분간 그곳에서 내려올 이유는 없어 보인다.
오 1위는 아예 생각 다르네요
저는 한국어 랩 디자인이 사수자리 vol.2에서 이미 다 나와버렸다고 생각함
저는 한국말랩의 정점은 버벌진트가 2000년대에 이미 찍었다고 생각해요. 그걸 뛰어넘었다거나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한국말랩은 [11:11]에서의 빈지노 벌스들 정도만 있었다고 보고요.
언급하신 [저금통]의 어떤 벌스도 사수자리 믹스테잎 1, 2와 ‘1219 Epiphany’만큼의 짜임새는 아니었고, 주제나 표현조차 버벌진트의 것들이 지금 들어도 더 참신하고 감각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암튼 정성들여 쓰신 의견 재밌게 읽었습니다.
진태형이 고트.
Verbal Jint
Beenzino
E SENS
개코
Tablo
C JAMM
B-Free
The Quiett
Paloalto
JUSTHIS
CHA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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