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초 및 마약은 힙합을 이루는 소재들 중 하나다. 언젠가 스윙스는 ‘힙합은 탄생 이후로 가장 도전을 많이 받은 장르’라고 말했다. 딱히 동의하기 어려운 발언이나 만약에 대중음악이라는 틀로 본다면 맞는 면도 있다. 분명 ‘힙합을 듣는다’는 일종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과장을 보태자면 프랭크 시나트라의 음악을 듣는 기성세대 앞에서 엘비스 노래를 따라부르는 행위가 선언인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그리고 힙합은 당연히 도전을 받아왔다. 이는 인종차별, 세대갈등 등의 프레임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최소한 힙합에 함유된 폭탄이기도 하다. 이 장르가 폭력적이고 혐오적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지만 적어도 이 장르가 폭력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리고 힙합이 천착하는 소재들- 갱스터, 마약 등 범죄- 은 이런 인식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경우이고 힙합은 음악이다. 힙합의 가사가 담는 내용보다 형식적 특성이 힙합의 근본에 가깝다는 말이다. 하지만 힙합은 어느 순간부터 ‘리얼함’을 강조했고 한국의 힙합아티스트들은 한국어로 힙합을 하는 방법론을 발전시키는 것에도 집중했지만 라이프스타일로의 힙합의 한국화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예컨대 스윙스가 후자의 예이다. 하지만 갱과 마약 등의 불온하고 불법적이며 비도덕적인 소재를 다루는 순간 한국힙합은 부유한다. 빈지노의 조소어린 가사대로 한국은 너무 안전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실에 매우 감사하다-. 이런저런 사유로 한국에서 힙합이라는 음악양식의 정착화는 성공적이었지만 결국 힙합이라는 하나의 문화가 현지화되는 것에는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는 결국 ‘솔직함’을 강조하는 힙합문화의 정서가 거리의 삶이라는 테마와 연결되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거리와 미국의 거리는 말그대로 다르다.
래퍼들의 마약흡입에 대한 반응 역시 한국사회는 처벌을 하고 잠시 연예계에서 추방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자숙을 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며 복귀했다. 하지만 한국힙합의 이센스, 빌 스택스, 씨잼은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고 이는 한국힙합에 족적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약물이든 뭐든 힙합의 소재들이 한국사회의 삶이 되는 것은 끔직하게 잘못되었다고 보지만 세 래퍼가 보인 반응은 분명 특기할 부분이다.
이센스 같은 경우 투옥생활은 그가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들 중 하나였다. 빌 스택스는 아예 사회의 상식과 법에 들이박았다. 씨잼은 약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본인의 자화상을 그린다. 그 결과가 킁이다.
씨잼이 킁은 힙합이라는 지역색 강한 예술매체- 본토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이 다른 분야였으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의 형식적 특성과 그 형식에 담긴 소재와 감성 모두 한국의 결로 소화해내는데 성공했다. 이게 킁이 거둔 성과의 핵심이다.
킁이 힙합앨범인가? 분명 이 앨범을 분류하자면 멈블랩과 이모랩에 들어간다. 그는 발음을 최소화하고 발음을 유음(ㄴ,ㄹ,ㅁ,ㅇ)위주로 살리면서 음절단위의 한국어를 깎아서 멈블을 구사한다. 딜리버리에 대한 강박 따위는 안중에 없는 구성은 한국어로 가능한 랩의 새로운 방법론을 가져온 것에 틀림없다. 소재 면에서도 - 딱히 자랑스러워할 일은 아니지만- 씨잼은 실제로 마약을 한 범죄자이므로 이 작품에서 보이는 감정과 내용이 어긋나있지 않다. 총이라고는 훈련소에서나 잡아보는 게 전부인 한국사회에서 반사회적인 소재를 차용하더라도 어색함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킁을 힙합앨범으로 속시원하게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제이지의 블루 프린트와 칸예의 칩멍크 소울 이후로 힙합이 멜로디의 스케일을 얻게 되었고 칸예와 드레이크 이후로 알앤비와 힙합 사이의 선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허나 씨잼의 킁 속 몇몇 트랙은 차라리 록에 가깝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씨잼의 킁은 한국힙합씬에 하나의 질문을 제대로 던진 경우라고도 보아야한다.
사운드 프로덕션은 몽환적이고 소스들을 배합해 리듬감을 지키면서 선율적 감각을 배치하는 능력은 제이키드먼의 물오른 프로듀싱능력을 과시한다. 거기서 씨잼은 싱잉이든 멈블이든 한국어에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장르를 무리없이 소화해낸다. 하지만 이 앨범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씨잼은 본인 약물 경험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이 긍정적인 신호인지 모르겠지만 대중음악계에서 약물이슈를 예술로 소화해내는 모습이 한국대중음악계가 곱씹어볼 응답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킁은 마약의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클립스나 빌 스택스가 아니다. 씨잼이 묘사하고자하는 것은 다름아닌 본인의 얼굴이다. 세상이라는 미로에 길을 잃은 청년의 자화상. 그래서인지 씨잼은 여기서 모순적 내용, 대비의 방식, 솔직하고 적나라한 본인의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가사들로 본인의 혼란을 드러내고 있다. 포커페이스의 “넌 나를 몰라’ ‘그림자는 나의 패션스타일’ 같은 라인들은 그 스스로도 겪는 본인의 혼돈을 표현한다.
킁은 한국어로 힙합을 한다는 것에서, 한국인으로서 힙합을 소화한다는 것에서, 그리고 본인의 내면 표현이라는 음악의 주된 기능이라는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드문 앨범이다. 이 앨범이 한국힙합씬의 명반으로 추대되는 현상에 전혀 이견이 없는 이유기도 하다.
리뷰글은 개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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