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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하이 pump를 듣고

아드아스트라13시간 전조회 수 251추천수 4댓글 1

pump는 에픽하이의 첫 믹스테입이다. 데뷔가 20년이 넘은 힙합그룹의 믹스테입에 대해 그들은 <“우리는 가까운 사이니까, 오늘은 재료가 많이 들어간 요리 말고 라면을 한 그릇 끓여줄게”하는 느낌으로요. 그렇다고 정성이 덜 들어간 건 아니고, 오히려 묘한 정이 들어갔다고 생각해요. > 정도로 정리했다. 에픽하이의 앨범 특징을 투박하게나마 말하자면 힙합적인 트랙 절반, 라디오친화적인 트랙 절반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펌프는 전자에 해당하는 트랙들을 집합시킨 믹스테입이다. 


 펌프의 먼저 보이는 특징은 간결한 라인업이다. '따지자면 에픽하이 대 나머지' 라는 라인에 맞게 곡의 작곡,편곡,작사, 퍼포먼스 등에서 에픽하이 멤버들의 플레이어로서의 비중이 높다. 사실상 에픽하이(?)에서 윤하 다음가는 순위인 김종완만이 유일한 피처링인 것도 같은 연유다. 

 간명히 앨범에 대해 말하자면 타블로의 비유와 유사하다. 펌프는 거물타자가 간결한 스윙으로 치는 안타, 거장감독이 연출한 단편, 뛰어난 극작가/소설가가 남긴 강연문이 연상되는 믹스테입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앨범에서 그들이 소거한 부분들을 언급하고 싶은 것이다. 먼저 말한 소위 '라디오 친화적인 트랙'과 '외부영입' 외에 이 베테랑들이 제외한 것은 무게감과 트렌디함, 에픽하이 특유의 문학적 정취이다. 오해하지 마라. 이 앨범이 가볍게 대충 만들어졌다던가 혹은 저질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동안 에픽하이의 오랜 바이오그래피가 가지는 '헤비웨이트'급 존재감은 그들의 앨범을 블록버스터로 만들었다. 그런 블록버스터 규모에서도 그들은 음악적 균형과 문학적 품위를 지켰고 그것이 그들의 비평적/대중적/마니아적 성취의 일등공신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그들의 앨범이 제자리유지라는 혹자들의 평을 유발한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에픽하이가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해왔다는 입장이지만 어느 순간 그들 스스로 넉살 좋게 받아치는 '우리 거 우리가 베끼는 건데 뭐 ㅎㅎ'같은 자기복제가 없었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무게감과 트렌디함을 동시에 추구하고 잡아내려는 의도까지 제거하면서 에픽하이는 맵시있게 달려간다.


인트로와 빈티지하고 단단한 비트와 정제된 프로덕션은 투컷의 비트 메이커,프로듀서, 사운드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을 입증하고 타블로 역시 그동안 가려진 비트 메이커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눈에 띄는 것은 '불행과 행복의 아슬아슬한 탱고

내 삶이 poetry 난 숨만 쉬어도 랭보

죽을 고생도 즐기면 다 여행

지옥에서 보낸 한 철'

같은 가사에 담긴 문학적 재능과 레퍼런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랭보의 시집이다-대신 직설적이고 간단한 편인 라인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타블로의 '여전히 힙합이나 하고 다녀', '기립박수 짤 박어 지휘봉 대신 박규봉 그게 우리다워(개인적으로는 dollar와 달라의 발음유사성을 이용했다고 본다만..)' 같은 가사들은 타진요같은 병신들을 직접적으로 지적하고 짤,박어 같은 단어들은 타블로의 어휘집에 새로운 종류를 추가한다. 물론 그의 독보적인 언어이해도를 기반으로 한 가사들의 재치와 표현은 여전하다. 


특기할 것은 랩 훅과 미쓰라진의 퍼포먼스다. 전자야 잘 드러나는 곡이 뚜렷하니 간단히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미쓰라진이 지금까지 한국 최고의 랩스킬을 가진 래퍼이자 한국대중음악사 최고의 작사가와 균형을 맞추는 부담감 속에서 사이드킥 내지 조연으로 그친 느낌을 이 믹스테입에서는 완전히 지웠다는 사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한다. 

  

발 딛는 곳마다 개박살내, 맘 불낸 후 / 전 세계가 수배 중 월화수목금토일 / … / 우린 땀으로 만들어 웃돈을 주고도 절대 못 살 브랜드”


예컨대 이런 가사들에서 보이는 소위 맛있는 플로우와 라임배치는 그 역시 당연히 에픽하이의 단단한 중심축임을 증명한다.


펌프는 분명 대작이 아니라 소품이다. 하지만 20년 동안 정상에 머무른 자들의 기본기 가득한 잽이기도 하다. 에픽하이는 예술병이라 스스로 놀리던 예술적 야망도 혹은 거창한 서사도 그들의 빛나는 커리어가 주는 무게감도 추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본기라고만 표현가능한 탄탄한 발걸음으로 날렵한 발자국을 남겼다. 이런 기량을 갖춘 그룹은, 그것도 20년 넘는 기간과 온갖 병신들의 공격을 견디면서 살아남은 팀은 드물다. 그게 이 믹스테입이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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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13시간 전

    긴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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