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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정규 2집-사랑과 행복

title: ASTROWORLDAlonso200011시간 전조회 수 296추천수 4댓글 2

https://blog.naver.com/alonso2000/223754542019

 

 

 

 

한국에 블랙 뮤직을 도입하려 했던 여러 선구자들은 알앤비의 멜로디와 힙합의 리듬, 훵크의 흥이 공존하던 뉴 잭 스윙이 지닌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 듀스의 "나를 돌아봐", 그리고 업타운의 "다시 만나줘" 등의 주옥같은 레퍼토리들이 대중을 연이어 휩쓸었고, 이 히트곡들의 제작자가 제작하거나 조력한 이들도 - 지누션, 유승준, 타샤니... - 잇달아 성공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는 한동안 뉴 잭 스윙이 점령하게 된다. 이러한 90년대의 과도기적인 흐름은 본래 살롱01 크루의 아트워크 디자이너였던 기린을 매료시켰다. 믹싱도 마스터링도 경험이 일천했음에도 3년여 만에 그럴듯한 정규를 자체 프로듀싱으로 발매할 수 있었을 정도로 기린은 성실했고, 또한 그만큼의 재능도 있었다. 그의 정진과 추구는 <사랑과 행복>에서 비로소 완성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때에 이르러, 기린은 시대의 각 요소를 차용하여 패러디하는 것을 넘어, 그 시간들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90년대를 제대로 오마주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복고를 넘어 온고지신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우선 앨범에 내재된 ‘향수(鄕愁)’에 좀 더 주목해 보자. 앨범의 가사만 훑어봐도 기린이 지닌 복고에의 감수성은 쉬이 드러난다. 첫 트랙 에서부터 이소라와 소방차가 언급되는가 하면, 영화 <라붐>, 알리야,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에 이르기까지, 앨범에 담긴 문화적 코드들은 순수함과 그리움에 맞닿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순수함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일 것이다. 보이비와 함께 요사이의 계산적인 연애 방식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첫눈에 반한 상대를 붙잡으려 DJ에게 선곡을 부탁하는 애수 어린 순간들, 혹은 이별과 미련, 어장관리에 시달리는 인간적인 모습들은 ‘합정역 브라운’, ‘당진 왜목마을’ 등의 구체적인 지명을 통해 현실감과 설득력을 얻는다. 이를 90년대 냄새 풀풀 나는 명료하고 담백한 보컬을 통하여 구현하며 앨범은 뚜렷한 개성과 시대성을 아울러 획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명료함과 노스탤지어는 객원 아티스트들과의 호흡에서도 뚜렷하다. 앨범에 두 차례나 등장하는 후디의 맑은 보컬에서 "말해줘"에서의 엄정화, 혹은 S.E.S의 그림자를 잡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신세하가 퍼포먼스와 프로듀싱 양면에서 80년대의 신스 팝 트렌드를 뉴 잭 스윙에 절묘하게 섞어낸 것, 전작 <그대여 이제>에서 협업했었던 보이비가 이번에도 고식(古式) - 아마도 테디와 지누션, 언타이틀의 영향을 받았을 - 을 갖춰 단단하고 경쾌한 랩을 펼치는 것 역시 동일한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커리어 내내 지속적으로 DJ, 파티 문화에 깊은 관심과 존경을 표하고 있는 기린인 만큼 360 Sounds의 DJ들이 절묘한 지점에서 스크래치와 댄스브레이크를 형성해 내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한국 힙합 디제이 중에서도 최고참이라 할만한 DJ 소울스케이프의 합류가 리스너들에게는 더욱 각별하게 여겨질 것이다. 한편, 기린은 과거와 추억을 선호하고 동경하지만, 이를 답습하지는 않으려 했다. 살롱01 시절의 동료인 김아일이 세련되고 유연한 퍼포먼스로 자연스레 뉴 잭 스윙에 녹아드는가 하면, 비프리가 Jay-Z를 오마주하며 훅 치고 들어오는 대목은 그의 솔직함이 "눌러봐"에 묘사되는 기린의 놀라울 정도의 진지한 자세, 예술관과 절묘하게 맞물리면서도 곡에 자연스레 그의 세련미를 더하는 묘수였다. 던밀스 특유의 구수한 랩과 내레이션이 기린이 기존에 추구하던 유쾌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련한 페르소나를 성공적으로 받아치면서 그 사이에서도 은근한 킬링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지금의 아티스트들을 통해 완성해낸 매력 있고 영리한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

 

 

 

 

향수와 진정성, 정통과 재해석이 공존하는 협업, 이 모두를 담아내기 위해 기린은 도리어 프로덕션의 기본기를 다진다는 방향을 택했다. 기존에 그와 협업한 바 있던 DJ 매직 쿨 제이를 주축으로 하는 프로덕션에 프랙탈이 가세하여 완성된 앨범의 사운드적인 큰 줄기는 뉴 잭 스윙으로 대표되는 90년대의 분위기에 높은 수준으로 충실하다. 기본적으로 둘 다 전자음악 경험이 풍부한 프로듀서인 만큼 신시사이저의 활용이 부각되는 편이다. 808 스네어가 주가 되는 훵키한 드럼라인이 전면에 나서면, 그 뒤에서 신시사이저 멜로디가 넘실거리며 팝스러운 경쾌함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에 레이 백을 곁들여 늘어뜨리면 솔리드를 연상시키는 슬로우 잼 섞인 발라드 넘버인 "너의 곁에"도 등장하며, 그 뒤를 팝스러운 힙합 소울 트랙인 "착한 남자"로 확장시키는 흐름에서는 기린이 뉴 잭 스윙에서 컨템퍼러리 알앤비, 힙합 소울로 이어지는 시대적 변화를 높은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를 구현함에 있어, 리듬 자체는 과거지향적으로 향하되, 신시사이저 운용, 혹은 보이스 샘플 및 보코더의 활용은 2000년대 이후의 트렌디한 팝 알앤비 내지는 팝 랩의 그것에 가깝다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을 기반으로 한발 더 나아가면, 브론즈의 AOR의 영향을 짙게 받은 전자 악기 운영, 혹은 전 문단에서도 언급되었던 신세하의 신스 팝에 가까운 접근이 등장하는 것이다. 토대를 과거에 두고 있음에도 이를 신식으로 변용, 융합하려는 부분은 <사랑과 행복>의 성취를 기린의 전작들보다도 훨씬 높은 곳에 올려다 놓는다.

지난날의 낭만을 그리워하고 회상하며 되돌리려는 시도는 이미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무한도전 -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등의 여러 방송을 통해 소위 '복고', '뉴트로' 붐이 선풍처럼 불던 2010년대 초 중반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시류 가운데서도 기린의 성과가 빛날 수 있던 데에는 과거의 키치함을 유지하면서도 묘한 구석에서 세련미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경향을 유지하되, 절묘한 지점에서 재해석을 더한 프로덕션, 정석적이고 간단명료한 퍼포먼스로 전하는 지금의 보편적인 이야기는 그 자체로 '모범적인 복고란 무엇인가'에 대한 좋은 답안이다. 이에 대해 기린은 앨범의 소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사랑과 행복] 은 막상 처해 있을 당시엔 크게 마음에 닿아있다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 그때그때 행복함이 뭔지를 알고 그 행복을 즐기며 사랑을 나누고, 느끼는 것이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쩌면, 기린이 과거의 음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나중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참 된 행복은 바로 지금, 우리 곁에 있다는 다소 사소하고 우스꽝스럽지만 당연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추억의 소리로 끄집어낸 지금의 이야기는 그렇기에 더욱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Best Track: Jam (Feat. Qim Isle, Hoody), 너의 곁에, 눌러봐 (Feat. B-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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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title: ASTROWORLDAlonso2000글쓴이
    11시간 전

    https://drive.google.com/file/d/1kMJQoWxajg8KRYyH9AOSELAbkzwYKKgZ/view

     

    본 리뷰는 HOM#21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5시간 전

    눌러봐 비프리랩 진짜 개 쫀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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