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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국 흑인음악 결산 - 한국 힙합은 상처 입었다. 한국 힙합은 고문 받았다. 그러나.....?

title: ASTROWORLDAlonso20002024.12.31 14:01조회 수 3771추천수 24댓글 14

https://blog.naver.com/alonso2000/223710490938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러운 시절이었다. 희극인의 지나치고 무도한 풍자에서 불거진 분쟁은 이내 장르 씬 내의 자정에 대한 끝 모를 토의로 이어졌다. 한편, 특정 아티스트의 웹상에서의 부정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나며 한국 힙합의 명예에 중대한 훼손이 가해진 적도 있었다. 리스너들이 바라 마지않을, '쇼미더머니 세대' 이후의 슈퍼스타의 등장도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수많은 충돌과 논쟁, 고뇌 사이에서, 아직은, 아직은 한국 힙합은 잔뜩 가라앉아 있는 듯 보인다. 과연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가 바라는 해답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마도, '과도기적 혼란을 몰락으로 오독하지 말라'라고 하는 나의 지론이 올해만큼 세파에 의해 흔들린 적은 없었던 듯싶다.

놀랍게도, 한국 힙합은 이미 해답에 꽤 근접한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기이할 정도로 과거의 이름들이 돌아오거나, 돌아올 거라는 예고가 쇄도하는 현상은 이 바닥 역시 비껴가지는 않았다. 2020년대 초반에 하나 둘 생겨났던 신흥 레이블들은 올해의 왕성함으로 방송의 영향력이 훨씬 줄어든 한국 힙합의 뿌리를 채워나갔다. 이 수많은 움직임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디킨스의 명구가 떠올랐다. 수많은 텍스트에서 잊을만하면 인용되는 그 경구 말이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中

근자의 몇 년간이 한국 힙합에 있어 어둠의 계절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팬데믹으로 인해, TV 쇼의 도태로 인해, 이로 드러난 성세 이면의 비행으로 인해 장르 씬 자체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안다. 그러나, 그 어둠 이면에서는, 아직도 멈추지 않는 발전을, 열정을 말하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다. 더 콰이엇의 장담대로, 숱한 노장들의 친숙하고 웅혼한 외침을 따라, 그리고 바닥에서 움트고 있는 숲이 될 묘목들을 따라, 우리는 기어이 홍대로, 언더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이미 거대해진 생명이 하루아침에 절명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올해 언더그라운드의 여러 움직임을 본 나의 결론은, 이내 의심을 '가장 어두운 때를 거친 연후에야, 비로소 새벽이 온다'라는 확신으로 바꾸었다. 이제 다 왔다. 이 생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지켜간다면, 끝내 여명이 밝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01. 노병은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아마 누군가 한국 힙합의 통사(通史)를 적어야 한다면,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상징적인 인물들이 있다. 네 박자 리듬을 사랑하던 강남의 죽마고우는 한국 힙합 주류의 인간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역동적인 둘이 되었고, 혼의 지도를 그려가던 세 남자는 어느 누구보다 서사적으로 높이 섰다. 영등포 하자센터의 꿈 많던 소년이 대부호 혹은 거물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차마 조용하다 할 수는 없으리라. 검은 소리를 내며 체스판 위를 달려나가던 두 준마 곁에는 어느새 그 영물들을 따르는 수많은 제자들, 추종자들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한국 힙합의 한 세대를 열어낸 인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돌아왔던 것은 미명으로 가득 찼던 2024년의 한국 힙합을 열광시키기 충분한 것이었다. 이들은 지난날을 가슴에 품었고, 이것을 이 문화에 가장 뜨거운 사랑의 형태로 돌려주었다. 그리고, 이들을 동경하였던 후기지수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여 손을 맞잡으매, 어느새 열기는 가득하고 고동이 만방에 울렸다. 스카이민혁이 딥플로우, 가리온과 같이 넘볼 수 없는 가치를 외쳤고, 비와이는 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다시 태어나도 같은 길을 걷겠다 다짐했으며, QM이 더 콰이엇과 함께 마지막 생존자로서의 자부를 말했다. 위명과 명예는 이렇게 이어졌다.

 

 

이 명예를 다른 방식으로 증명해낸 일도 있었다. 마스터플랜의 옛 전우들이 뭉쳐 근원으로 돌아왔다. 자유의 음악을 외치던 풍운아는 또 다른 천재의 손을 맞잡고 자신의 야성과 분방함을 가장 정제된 방식으로 드러냈다. 실수를 저질러 무너졌던 사내마저도 끝내 옛 인연들, 한국 힙합의 고금을 모아 드러낸 향수로 기어이 재입학에 성공했다. 이 수많은 권토중래의 일들, 뿌리에 위치한 이들의 아성은 우리가 어째서 그것들을 좋아했었는지 결국 증명해냈다. 그것은 열정이었고, 사랑이었으며,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쌓아 올린 정통과 기술의 힘이었다. 뿌리가 살았는 한, 줄기는 시들지 않는 법이다.

 

 

P.S. 한편, 사업에 집중하던 슈퍼스타는 그의 커리어 가운데서도 제일 스타성이 짙은 작품을 꺼냈다. 알앤비의 고금을 모으고, 미국 힙합씬의 거성과 노장부터 케이팝 스타들까지 두루 아우르며, 그 자신이 지닌 정체성을 영리하게 드러냈다. 이제 그의 다음 계획은 무엇일까? 아이돌 프로듀싱? 차기작? 다가올 날들을 기다릴 일이다.

02. 우리는 어디에서든 싸울 것이다.

 

오랫동안 SNS 프로필 상의 이름으로 남아있던 나즈카 레코즈가 마침내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레이블이 공식적으로 공개되기 전부터 이들은 이미 한국 힙합의 다른 누구보다 성실했다. 작년부터 이어져 온 프레디 카소의 허슬은 올해에도 끊임이 없었고, QM 역시 정규 앨범을 시작으로 다수의 싱글을 매월 발매하는 등 이 둘의 열성이 올해 역시 가득했다. 레이블의 영 건인 모도와 앰비드 잭의 활약 역시 두드러졌다. 둘 다 근자에 보기 드문 정석적인 랩 테크니션이기도 하거니와, 작가주의를 중시하는 등 후일의 아성을 능히 도모할만하다. 특히, 모도는 앰비드 잭과의 합작인 <RUSHHOUR>에서 실험성 짙은 프로듀싱에도 능함을 보여줬으니, 다방면에서의 활약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한국 힙합에서 장르적 깊이와 지역적 페이소스를 가장 유려하게 조합시켰던 집단인 VMC를 계승한다는 이들의 야심과 자부가 머지않아 한국 힙합을 가득 채울 것 같다. 성실성과 작가주의가 충만한 이들이기에 걸 수 있는 기대다.

 

 

보스의 오너리스크조차도, 거물이었던 스윙스와의 분쟁조차도 KC의 확장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식케이는 언제나 해외 장르 씬의 조류에 유독 민감했고, 이를 한국 힙합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데 열심이었다. 이는 KC 설립 후 레이지의 사이키델릭함과 폭발력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로 이어졌다. 이미 전자적인 부분에 일가견이 있던 방달과의 오랜 동행을 레이블에 직접 영입하며 지속하는 한편, 본고장의 레이지 프로듀서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를 시도하였다. 김하온 역시 이를 따라 기존의 건전하고 명상적인 페르소나를 완전히 탈피하게 되었다. 최근 제이민을 영입하는 등 확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미 대중적 지지가 확고한 이들인 만큼 KC는 이미 씬에 확고히 정착했다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작년에 비하여 침체되어 보이는 AP 알케미지만, 그럼에도 명맥은 미약하게나마 이어졌다. 키드밀리가 두 차례의 협업작을 보여줬고, 오카시의 창의성은 여전히 빛났다. 노윤하는 여전히 왕성했고, 율음은 <CICADA>에서 다방면의 재능을 드러내며 후일의 스타가 될 가능성을 드러냈다. 이 중 필자의 취향에는 던밀스의 <인생을 바꿀 앨범>이 제일 와닿었던 것 같다. 현시점 한국 트랩의 하이엔드를 결집시킨 상징성과 프로듀싱, 랩 양면의 유능함도 물론 작용했겠지만, 마이너스를 제로로 돌려놓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가슴을 절절하게 했다. 탁월한 소프트웨어를 견고한 하드웨어가 받쳐줬기에 가능했던 성과다.

 

 

앰비션 뮤직은 대중적인 방향으로의 선회로 인한 리스너들의 호오를 떠나서, 계속 꾸준했다. 특히 올해 앰비션 뮤직이 내놓은 두 장의 앨범은 꾸준함과 더불어 높은 결과치까지 아울러 확보한 작품이었다. 20트랙 가까이 되는 물량공세를 퍼부은 던말릭을 보자. 앰비션 뮤직 입단 이후로 기존의 붐뱁을 벗어나 트랩, 팝 랩 등으로 확장을 모색하던 던말릭의 시도는 <THURSDAYCLUB MIXTAPE>에 이르러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그동안 던말릭이 시도한 다 방면의 음악을 집대성한 것은 물론, "성산로 42.m4a"를 통해 그동안의 커리어에 대한 회고, 그리고 자신에게 영감을 준 이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드러냈다. 던말릭의 회상이 방대한 영역의 포용이라면, 제네더질라는 정제와 집중을 택했다. 어느덧 이립에 위치하게 된 만큼 이전의 활달함의 자리를 차분함과 결기, 성숙과 책임으로 채워냈다. 언뜻 자조적으로 보이지만, 제네더질라는 그 이면의 희망과 앞날에 대한 기대까지 담아냈다. 각자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반환점이 될 두 작품이 상반된 성질을 지닌 것이 흥미롭지만, 사실 이 둘은 참된 자신에 대한 진정 어린 성찰에서 우러나온 작품이라는 데에서 일맥상통한다.

 

 

플리키뱅이 이렇게까지 거대해질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사실 쇼미더머니에서 드릴 래퍼의 하나로서 하입되었을 때만 해도 커뮤니티와 장르 팬들의 반응은 다소 냉정했다. '색이 한정적이다.', '완급조절이 안 되어 있어 과하고 버겁다.' 같은 여러 비판적 안건이 그에게 있었고, 힙합플레이야 콘텐츠에서 비친 거만해 보이는 태도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플리키뱅의 2024년은 이를 쇄신하기에는 차고 넘쳤던 해였다. <The Predator 2: FLEEKY SYNDROME>을 통해 드릴을 벗어난 다 장르 차용과 게스트의 다변화를 통한 음악적 확장을 검토해 본 플리키뱅은 이내 자신의 장점인 야성과 날카로움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방안을 택했다. 자신의 주장기인 브롱크스 드릴과 저지 클럽을 기반으로 멤피스, 레이지 등 저돌적인 장르들을 끌어들였고, 여기에 호러코어적인 컨셉트를 덮어쓰며 캐릭터까지 확보했다. <AKUMA>의 야성, 그 이면의 영민함은 플리키뱅을 더리플레이 레코즈의 4번 타자이자 한국 드릴의 또 다른 아이콘의 위치로 격상시켰다. 언에듀케이티드 키드를 위시하여 트레이비에 이르는 더리플레이 레코즈의 모두가 뚜렷한 결과물을 남겼지만, '더리플레이 레코즈'라는 브랜드가 한국 힙합에 정착하게 된 1등 공신은 단연 플리키뱅의 몫이었다.

03. 레이블이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작업물이 없다면 살 수 없다.

 

홍다빈 - <Giggles>

DPR의 선봉장으로서, DPR 라이브는 언뜻 승승장구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러나, 그 성세의 이면에는 사장과의 갈등, 아버지의 투병과 같은 수난의 역사가 있었다. 그랬기에, DPR 라이브가 자신의 본명인 '홍다빈'을 내걸고 내놓은 <Giggles>는 그가 겪은 일을 반영하듯 형식도 복잡다단하고, 내용 역시 공격적이었다. 훅과 벌스의 경계는 불분명하고, 레이지와 트랩부터 익스페리멘탈 힙합, 펑크와 신스웨이브까지 산개하여 혼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구성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일관적으로 홍다빈 특유의 영리하고 화려한 멜로디 메이킹이 유지되고 있는 데다, 이것이 앨범을 관통하는 화자의 울분과 결합하여 압도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기 때문이리라. 고진감래를 기다리는 절치부심이 뼈저리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호미들 - <Yains>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대 초에 걸쳐 영앤리치 레코즈가 받았던 하입의 대부분은 호미들에 진 빚이 컸다. 영 떡, 미고스, 퓨처 등 북미 씬의 트랩 붐을 한국 특유의 뒷골목 정서와 결합하는데 능했던 이들은 영앤리치에서 이탈하자마자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UK 개러지, 드럼 앤 베이스, 하우스 등의 댄스 뮤직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가져왔고, 멤피스, 뉴재즈 등 북미 장르 씬의 최신 유행의 도입도 인상적이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있다면 한국의 Y2K 감성의 적극적인 차용이다. 버즈의 록발라드를 샘플링해 이모 랩으로 비틀어버리고, 빅뱅의 화려함과 서정성을 복각하는 모습은 한국적인 감성과 정서에 호소했던 그들다운 영리함이 가장 창의적으로 반영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트랩으로 고착되어 있던 이미지를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타파해냈으니, 이들의 다음 확장의 방향이 어디일지 더욱 흥미로워진다.

 

 

EK - <ESCAPE>

래퍼라면 일단 랩을 잘해야 한다는 명제는 현시점에서도 유효하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ESCAPE>의 EK는 훌륭한 래퍼이다. 멤피스 랩과 칩멍크 소울 요소가 적절히 가미된 트랩 사운드, 심지어 밴드 프로덕션까지 오가며 EK는 자신의 주장기인 정교한 박자감과 뚜렷한 기승전결, 그 사이의 원숙함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이센스, 오왼, 비프리 같은 솔직한 말을 뱉을 줄 아는 게스트들, 그리고 앨범 내내 반복되는 공격적인 태도와 진솔함까지 더해지면서 EK의 탈출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탈출의 방향이 자신다움과 진정성이었기에, 또한 10년대 중반부터 쌓여온 기대치를 완벽하게 맞받아칠 만하기에 더더욱 빛나는 작품이다.

 

 

오코예 - <Whether The Weather Changes Or Not>

화지의 지원을 받고 이주민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활약했을 때부터 오코예는 이미 될성부른 싹이었다. 팔로알토가 이들의 첫 정규 제작에 거금을 쾌척한 일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고, 그 결과물인 <Whether The Weather Changes Or Not>의 결과물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The o2가 큐 더 트럼펫, 윤석철 등 검증된 재즈 세션맨들을 끌어들여 재즈와 네오소울, 익스페리멘탈 힙합까지 넘나드는 독특한 결을 제조해냈다. 그 위로 이쿄의 화려하게 굽이치는 퍼포먼스가 쇄도하며 하나의 잘 짜인 밴드의 협업을 보는 듯한, 한국의 수많은 재즈 랩 앨범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작품을 빚어냈다. 첫 정규에서부터 이미 이 정도의 경지라니, 과연 이들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더욱 기대된다.

 

 

키츠요지 - <FLY>

키츠요지는 지난 몇 년간 줄곧 착실했고, 거칠었으며, 자신다웠다. 그가 근 몇 년간 내놓았던 수많은 결과물 가운데서도 <FLY>가 지닌 야성은 유독 특별하게 다가왔다. 키츠요지는 현재 한국 트랩 프로듀서 계의 신성인 헤콥과 접촉했고, 라이브 세션 운용에 특화된 동료인 얼라이브 펑크도 끌어들여 트랩의 원류인 더리 사우스에 접근하려 했다. 그가 원래도 트랩에 능했던 것을 생각하면 <FLY>의 프로덕션에서 그가 날아다닐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 위에 더해지는 자신의 어둡고 거칠었던 지난날, 그리고 그런 자신을 건져 올려준 힙합에 대한 깊은 감사와 사랑은 그 진정성이 쟁쟁하게 다가온다.

 

 

쿤디판다 - <MODM 2 : The Bento Knight>

쿤디판다에게 있어 2024년은 유독 힘든 해였을 것이다. 동료의 부정행위로 인한 해악이 자신의 평판까지 깎은 데다, 자신의 크루까지도 와해되고 말았다. 쿤디판다는 이 숱한 고난을 마주하고, 이를 능히 넘어서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Somozu'라는 가상의 게임 캐릭터에 다시 한번 투영했다. 야간캠프의 주도 하에 주조된 게임의 어려운 난이도에 걸맞은 복잡다단하고 실험적인 OST 위로 쿤디판다는 자신의 날카롭고 유려한 랩 스킬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완급조절은 더욱 뚜렷해졌고, 과할 정도로 쨍쨍했던 톤 역시 우리가 수용하기에 더욱 편해졌다. 게임에서 마주치는 여러 적수와 NPC들은 앨범의 여러 게스트의 형태로 드러나 쿤디판다와 랩 스킬로 경쟁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의 퍼포먼스를 받쳐주는 지원군의 역할도 한다. 서사와 오락 모두 절묘한 지점에서 만족시키는 올해의 랩 앨범.

 

 

크루셜스타 - <HERON>

크루셜스타의 다재다능함은 그 방향이 자신을 향했기에 더더욱 빛났다. 타입 비트들을 영리하게 활용해 믹스테이프에 가까운 다양성을 갖추었음에도 자신의 뚜렷한 정체성이 있었기에 이것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었다. 공공구와 언오피셜보이같은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현주소부터 소울컴퍼니의 옛 동료들을 품는 방대한 협업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넓은 영역을 누비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지혜를 지녀 살아갈 것임을 다짐하는 크루셜스타의 여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 역시 자신다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성찰하게끔 한다.

 

 

이안캐시 & 코르 캐쉬 - KASH on Ka$h

최근 수많은 피처링으로 하입되었던 코르 캐쉬가 베테랑 트랩 프로듀서인 이안캐시와 조우했다. 코르 캐쉬의 러프하고 야성적인 퍼포먼스를 위해 이안캐시는 20트랙이나 되는 앨범의 거대한 분량을 타이트한 트랩으로 채워냈다. 한국 트랩의 현재를 대표하는 인력들을 곳곳에 배치하고, 후반부에는 코르 캐쉬 본인의 진솔한 부분마저 꺼내며 자신들이 이용 가능한 모든 무기를 앨범에 담아냈다. 사실 예측이 어렵지 않은 뻔한 맛의, 아는 맛의 앨범이다. 그러나, 이들이 드러내는 포악함과 맹렬함, 그리고 단순함의 미학은 알고서도 당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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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title: ASTROWORLDAlonso2000글쓴이
    12.31 14:03

    올해 연말 결산의 각 부제는 역사적 인물들의 명언을 조금씩 비튼 것입니다. 누구의 명언인지 다 맟추신 분께 2025포 쏩니다.

     

    기어이 또 새해가 오내요. 내년에도 힘내서 달려보겠습니다.

  • 1 12.31 14:28
    @Alonso2000

    맥아더랑 처칠만 알겠네요 ㅜ

  • title: ASTROWORLDAlonso2000글쓴이
    12.31 14:30
    @FINNIT

    나머지 두 개도 2차대전기 연합군 지도자 명언입니다

  • 12.31 14:15
  • 12.31 14:19

    연초부터 연말까지 후끈한 화제와 싸움으로 점칠되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부정적인 시선과 싸워야했던 2024년인 한 편, 그 시간동안 나온 작품들의 평균적인 퀄리티는 확실히 높아지지 않았나 싶었던 2024년이었네요

  • 12.31 14:17
  • 12.31 14:29
  • 12.31 15:09
  • 12.31 18:40

    정성글추. 별개로 럭셔리플로우, 케이씨테잎, 94-92, 이스케잎 요 네개 빼곤 2번 돌릴만한것도 없었음.

    개인적으론 23년에 비해 라인업이 많이 쳐지네요

  • 12.31 19:11

    연말에 귀한 글 감사합니다~

  • 12.31 20:44

    이 중에서 제너더 질라 신보가 최고였음

  • 1.1 03:08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양홍원의 슬로모를, 그 중에서도 Goslow 를 가장 많이 들었네요. 힙합이 전반적으로 가라앉은것 같아보여도 내실을 다진 한해라는것은 부정할수 없을겁니다.

  • 1.1 09:49

    명언을 비틀었다고 하시지만 그것을 각 앨범과 뮤지션에 대해 평하면서 적재적소에 쓰신 감각에 감탄했습니다. 정말 잘 봤습니다.

    개인적으론 '검은 소리를 내며 체스판 위를 달려나가던 두 준마 곁에는 어느새 그 영물들을 따르는 수많은 제자들, 추종자들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라는 표현이 참 와닿네요.

  • 2.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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