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H.O.M #17 매거진에서도 작성되었습니다. 이것 외에도 많은 좋은 글 있으니 시간 날때마다 읽어보시길 강력 추천합니다.
https://hiphople.com/kboard/29552077?member_srl=1053779
(본 글에 쓰인 사진들은 저와 매거진 편집장이신 쟈이즈님이 촬영한 사진들임을 미리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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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오타쿠 문화의 아키하바라처럼, 대개의 서브컬처에는 그 문화를 대표하는 명소가 존재한다. 한국 힙합씬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로는 국힙 언더그라운드 씬이 막 생기기 시작했을 90년대 후반 씬의 주축 역할을 하고 여러 래퍼들을 배출했던, 돈마니(이종현)가 운영한 힙합 클럽 ‘마스터플랜’이 있다. 그 외에도 디제이 켄드릭스가 운영했던 클럽 블루프린트 역시 메이저와 언더 씬 모두를 아우르는 여러 래퍼를 위한 공연장 역할을 겸하며 많은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은 공간이었다. 홍대의 윗잔다리 공원은 길거리 프리스타일 싸이퍼의 메카로도 일컬어진다.
이 매니아들의 만남의 광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던 공간이 3명의 베테랑의 손에서 탄생했으니, 바로 염따, 더콰이엇, 팔로알토가 대표로 있는 데이토나 엔터테인먼트에서 개업한 카페 겸 레코드샵 ‘데이토나 레코즈’다. 힙합/알앤비 계열 블랙뮤직 위주의 레코드샵이라는 포지션도 독특했지만 메이저한 래퍼의 공연부터 씬 안의 마이너한 분야를 위한 이벤트까지, 여러 행사를 개최하면서 많은 매니아들을 만족시켰다.
하지만 이런 데이토나 레코즈도 개업으로부터 2년이 지난 2024년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한국 힙합 팬으로서 힙합씬의 약속의 장소가 사라지는 것은 아쉽게 다가오지만, 이를 뒤로하고 추억을 나누며 존경을 표하는 것 또한 성지를 향한 애정의 표시일 것. 이 글을 통해 데이토나 레코즈에 대한 기억들을 풀어보면서 성지를 향한 애정을 표해볼까 한다.
굿바이 데이토나 레코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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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과 구(舊)의 아카이브로서의 데이토나 레코즈
앞서 말했듯, 데이토나 레코즈는 힙합/알앤비 계열의 블랙뮤직 위주의 레코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게였다. 바이닐 컬렉터와 장르 매니아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진 만큼,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수백장은 돼가는 외국 힙합/알앤비 LP판들이 방문객을 반기며, 그 외에도 바이닐만큼의 종류는 아니었지만 CD와 카세트 테이프 또한 판매되었다. 또한 인기작의 초판처럼, 소위 비싼 값에 팔리는 레어템들은 따로 전시를 해 눈길을 끌기도 하였다.
국내 힙합/알앤비의 경우는 어땠을까? 먼저 CD 음반의 경우 자사인 데이토나 엔터테인먼트의 피지컬은 물론 타 레이블 소속 뮤지션이나 인디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 또는 호모 드러미언스, 1300처럼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적었던 신인 아티스트의 음반까지 입고 혹은 오프라인 독점으로 활발히 들어와 종류 수를 넓혀갔다. 바이닐, 테이프 역시 외국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지만 꾸준히 입고했다. 특히 바이닐은 한국힙합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음반들을 판매하였다. 데이토나 엔터테인먼트의 시작을 알리는 <BENTLEY 1.5+2 합본>, 팔로알토의 데뷔작 <발자국>, 그리고 국힙 트랩 명반의 대명사인 오케이션의 <탑승수속>이 그 예시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한국 힙합의 귀중한 자료 역시 데이토나 레코즈 내부에 있었다. 바로 카운터 근처 책장에 꽂아있는 힙합 잡지 <THE BOUNCE>. 1999년 11월부터 2002년 6월까지 YG 엔터테인먼트에서 무료로 배포하던 잡지는 국내 및 국외 힙합에 대한 소식부터 힙합 공연, 비보잉, 힙합 패션에 관련 정보, 서태지, 드렁큰 타이거 등 여러 힙합 아티스트들의 인터뷰까지 담겨 있다. ‘탑골힙합’이라고도 불리는 1세대 한국 힙합 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각 자료 또한 볼 수 있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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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장소'로서의 데이토나 레코즈
데이토나 레코즈에서는 힙합팬을 위한 행사도 활발히 열렸다. 데이토나 레코즈를 통해 피지컬이 발매될 때도 프리-릴리즈 이벤트가 열렸으며, 관련 각종 머천다이즈들을 구매할 수 있음은 물론, 아티스트의 사인까지 직접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 더콰이엇, 화나, 지스트, 블라세, 서리(30), 언에듀케이티드 등 여러 아티스트가 데이토나 레코즈에서 이 이벤트를 진행했으며, 특히 서리(30) 이후로는 짧은 라이브 공연까지 겸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나이 제한 불문하고 이벤트 입장 및 관람이 무료로 가능하다 보니, 아티스트와 팬들의 약속의 장소 역할이 되곤 했다.
파티 문화가 활발한 힙합 문화를 다루는 곳인 만큼 파티 행사 또한 언급을 안 할 수 없다. “역힙꼰 파티”나 “100일 기념 이벤트”로 대표되는 이벤트에는 여러 주류와 간식들을 특별 판매하고, 여러 DJ들의 디제잉 공연도 펼치는 등 파티에 걸맞은 즐거움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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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게, 더 다양하게
그렇다고 데이토나 레코즈의 이벤트가 오로지 파티나 공연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벤트 호스트의 활동 분야에 따라, 또 아티스트 성향에 따라 이벤트의 내용이 제각기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 그리고 래퍼 큐엠이 진행한 토크 세션 콘서트이다. 김봉현은 더콰이엇과 함께 <힙합과 한국>에 대한 북토크 콘서트를, 큐엠은 프로듀서 컨퀘스트와 프레디 카소와 함께 <개미>에 대한 리스너들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내용들을 풀어내는 자리인 만큼 김봉현은 책 구매자에 한해서, 큐엠은 사전에 연 <개미> 리뷰 이벤트 참여자에 한해 세션에 초대되었다. 이들의 이벤트에는 공연 같은 즐길 거리는 없었지만, 작품과 관련된 심도 있고 유익한 내용들이 오갔다.
허클베리피는 아예 데이토나 레코즈에 프리스타일 싸이퍼 판을 벌렸다. 그의 정규 <Readmission>의 피지컬 릴리즈 파티에 같이 진행된 싸이퍼 이벤트는 래퍼, 힙합을 좋아하는 일반인 상관없이 프리스타일을 뱉어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자유롭게 마이크를 쥐고 싸이퍼에 참여하였다. 이 속에서 프리스타일의 대표격 인물 중 한 명인 올티부터 권설, 인디고 에이드 등 현 프리스타일 공연에서 자주 이름을 비추는 이들까지 참여했다. 또한 이벤트가 끝난 후 허클베리피가 직접 인상 깊은 랩을 한 이를 선정해 자신의 Schoolboy Q의 <BLUE LIPS> 바이닐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주목도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힙합 바운더리 안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메인이 되는 이벤트 또한 여럿 개최되었다. 빈지노의 <24:26> 아트워크 디자이너로도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 차인철은 23년 7월 한 달간 레코즈샵 공간 곳곳에 작품을 게시하며 개인전을 열었다. Sweet Spot 이벤트에는 말립, 뷰티풀 디스코를 포함한 5명의 프로듀서가 참여해 라이브 세션, 그리고 각자가 생각하는 ‘샘플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 세션을 진행했다.
음악 분야의 강연 행사 또한 진행되기도 했다. 비트메이킹 세미나를 열어 프로듀서 린스모크와 함께 비트메이킹, 음원수익구조 등과 관련된 여러 강의를 진행했다. 프로듀서 겸 디제이 보잭(bojvck)과 DJ POOL의 경우 각자 드럼머신과 샘플러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고, 직접 악기를 연주해 볼 수 있도록 체험 공간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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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진은 초상권 관련으로 모자이크 처리 했는데 보는데 크게 지장 없을련지 모르겠네요...
TMI으로 이건 며칠 전에 찍은 폐쇄된 데이토나 레코즈입니다. 당연히 문은 닫혀있고 안도 껌껌하지만 의외로 내부를 다 치우거나 하지는 않았더라고요.
데이토나가 남긴 족적들, 본문에 언급하신 이런저런 유의미한 무브먼트가 터무니없이 비싼 음반 가격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진듯 하네요. 제게도 좋은 문화공간이었지만 결국 ‘음반 비싸게 팔아먹어서 망한 샵’으로 기억 남을듯 합니다.
한 번 가야지..가야지 하다가 결국 시기를 놓쳐버리고 못갔네요..글 잘 읽었습니다
다크모드라서 그런가
검은 글씨 안보여요... ㅎ
구글 문서를 복붙하다 나타난 결과인거 같네요...방금 기본 색상으로 수정했습니다!
THE FROST ON YOUR EDGE 나왔을때 피지컬 사서 사인받았던게 기억나네요 그때 쿤디판다님이랑 110.12한테 받고 좋아했었는데...
데이토나가 남긴 족적들, 본문에 언급하신 이런저런 유의미한 무브먼트가 터무니없이 비싼 음반 가격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진듯 하네요. 제게도 좋은 문화공간이었지만 결국 ‘음반 비싸게 팔아먹어서 망한 샵’으로 기억 남을듯 합니다.
틀린말은 아님
카티 whole lotta red 10 얼마에 파는거 보고 경악했는데
도쿄 타워레코즈 가니까 8만원에 팔더군요
차라리 혼자 청담동같은데 샵이 있었으면 납득이 가는데 레코드샵 옹기종기 모인 마포 바닥에서 장사하면서 그랬다는건 사실상 소비자 기만입니다. 주고객층이 1020 코흘리개인데 결국 애들 눈 가리고 아웅 등쳐먹을 생각했다는게 빡침 포인트죠.
제가 lp 콜렉터는 아니라서 lp 가격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라 판 가격들 봐도 그러려니하고 넘기긴했는데, 데이토나 레코즈 폐쇄 소식이 나오면서 가격에 대한 불만도 대두되기 시작했던게 생각나네요.
그거랑 별개로 가게의 타깃 구매자층(= 힙합/알앤비 lp판 콜렉터)이 소수인데에 비해 스케일을 크게 키워 운영하는거 아닐까하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긴 했습니다. 폐쇄의 원인 중 하나도 그 크게 키운 스케일이 발목은 잡은 것이기도 하고요.
lp판 가격을 합리적으로 낮춘다던가, 아님 말씀하신대로 장소나 크기라든가 적정선에서 타협해서 운영했음 어땠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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