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H.O.M #17 매거진에서도 작성되었습니다. 이것 외에도 많은 좋은 글 있으니 시간 날때마다 읽어보시길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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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 BL4CK <HD Late Night Radio> (2024.09.09)
1. opening / 2. lullaby / 3. martian wave / 4. message from IMO (Feat. IMO) / 5. late night radio / 6. think about you / 7. 사랑의 의미 (Feat. DADA) / 8. quiet jungle / 9. trip with you / 10. care 4 u (Feat. The Quiett) / 11. letter at night / 12. around blue / 13. 온실 (Feat. ChaMane) / 14. yakuin station / 15. white shadow / 16. last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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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 블랙은 언제나 꾸준했다. 데뷔는 2012년에 했으나, <Dreamin’ / 확실해>를 필두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2016년이다. 8년 동안 차메인, 더콰이엇, 나플라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곡을 만들었으며, LBNC 레이블에 몸담으면서 소속 멤버들의 적극적인 서포터로도 활약했다. 특히 개인 작업량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활발했다. 싱글 앨범과 타 아티스트와의 합작품의 양도 어마어마하지만, 정규 작품을 1년에 평균 1~2개씩 발매하면서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갔다.
HD 블랙의 주목도가 씬 내외적으로 큰 편이 아니었기에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큰 조명을 받지는 않았으며, 어떨 때는 조용히 지나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넓은 장르 스펙트럼의 프로듀싱, 그리고 프로듀서라는 이점을 활용해 인지도나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때로는 독특한 조합을 과시하는 게스트 섭외력은 HD 블랙의 작품에서 기대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다.
그런 그가 ‘당분간 새 정규 앨범은 없을 것이다.’라는 선언과 함께 새로운 작품을 예고했다. 바로 정규 11집 <HD Late Night Radio>이다. 당분간이라지만 ‘마지막 정규 앨범’이란 선언은 앨범의 의의를 무겁게 만들기 충분했으며, 그의 커리어를 훑었던 이들라면 앞서 서술한 아이덴티티와 관련된 예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다양하고 다이나믹한 사운드들로 채워져 있을까?’, ‘얼마나 많은 피처링들이 있을까?’.
그렇게 공개된 <HD Late Night Radio>는 일반적으로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 플랫폼 등지에서 활발히 나오는 로파이 인스트루멘탈 앨범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즉 전곡 모두 로파이한 질감을 지니며, 차분하고 몽환적인 성격으로 일관되게 진행되는 작품이다. 게스트의 활약도 없지는 않지만 비중은 적은 편이다. 그야말로 보기 좋게 뒤통수를 친 셈이다.
사실 그의 인스트루멘탈 앨범 시도는 2018년에 <Discovery Trip>이라는 작품을 통해 처음 선보였기 때문에 최초는 아니다. 다만 <Discovery Trip>의 경우 전체를 아우르는 앨범의 주제나 특별한 컨셉 없이 구성되어 있어 비트 모음집이란 인상이 더 크다. 그렇기에 앨범으로서의 통일성은 <HD Late Night Radio>이 더 뛰어나다.
‘늦은 밤 라디오’의 여러 채널이 연달아 진행되는 듯, 앨범은 여러 짧은 파트들이 이어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로파이함을 지향하는 만큼, 각 파트마다 다이나믹한 사운드를 선보이는 식으로 구분 짓는 방식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파트의 마지막에 객원 멤버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이로 인해 각 파트의 구성은 곡의 분위기나 제목 등을 통한 빌드업 이후 피처링의 짧은 랩과 가사를 통한 파트에 담고자 한 메시지의 직접적인 전달로 맺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무게감 있는 피처링 역할은 현 힙합씬에서 점차 인지도를 높여나가고 있는 신인인 아이모와 다다, 오래전부터 연을 이은 음악적 동료 차메인, 그리고 HD 블랙이 자신의 우상으로 언급했던 더콰이엇이 맡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음악적 열망(message from IMO), 혹은 부의 가치(are 4 u) 같은 삶과 고민을 써내러 감으로써 짧은 비중만으로 앨범을 장식한다.
특히 “message from IMO” 속 아이모의 열망이 담긴 가사는 여러 정황을 통해 HD 블랙의 열망으로 비치기도 한다. 제목이 되는 “message from (래퍼 이름)”은 소울컴퍼니의 컴필레이션 앨범의 비트들을 한데 묶은 <The Bangerz Instrumental>의 수록곡 위로 랩을 얹는 오픈 벌스 이벤트 ‘TBI Message’의 참여곡에 붙여진 제목이다. 또한 아이모는 중학생 래퍼란 타이틀로 씬에 데뷔를 한 인물이다. 이 연관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접점은 ‘소울컴퍼니에 큰 영향을 받았고 15살에 데뷔를 한’ HD 블랙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들이 우연인지, 혹은 모두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모로 흥미롭다.
피처링의 역할이 크다 한들 결국 작품의 주역이자 작품을 이끄는 것은 HD 블랙이다. 그런 그의 프로듀싱은 로파이 힙합의 어법을 따르면서도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담겨 있다. 기본적으로 재지한 악기 샘플이나 보컬 샘플을 메인으로 활용한 간단한 루프를 잇는 식으로 서늘한 밤의 잔잔한 감성을 구현해낸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여러 샘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쌓아 올리는 구성을 적극 선보여 로파이 힙합 비트로서 챙길 수 있는 풍성함을 구현해냈다. 뒤이어 중간중간 붐뱁에서 볼 법한 타격감 있는 드럼 라인을 차용해 듣는 이로 하여금 다시 앨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think about you”와 “white shadow”는 이러한 특징이 잘 담겨있으면서도 퀄리티적으로도 잘 챙긴 케이스이다.
<HD Late Night Radio> 속 HD 블랙의 밤은 고요하다. 하지만 그가 속에 지닌 음악적 열망이 밝게 타올랐기에 그 풍경은 환하다. 어찌 보면 HD 블랙이 본작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자신이 늘 품고 다녔던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생각하면 그간 그의 앨범 커리어에 반하는 추상적인 작품을 마지막 정규로 채택했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자기 스스로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니 말이다.
물론 이는 ‘당분간’의 이야기이다. 본작의 발매 이후 프로젝트 팀 활동을 예고할 만큼 그는 여전히 음악의 열정을 향해 불타오른다. 그러니 <HD Late Night Radio>는 HD 블랙의 커리어에 있어 쉼표에 비유하는 게 옳을 것이다. 쉼표는 문장을 구분 짓는 용도지, 문장을 끝내는 용도가 아니니까. HD 블랙은 늘 그랬듯이 계속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쭉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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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로 리뷰 올리고 난 후에 HD 블랙님께 앞서말한 아이모 곡 관련으로 리뷰에 쓴 의도한 정황들이 다 맞는지 여쭈어봤는데 맞다고 하네요. 사실 쓰면서도 너무 과대해석한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다행히 정답 맞췄네요(?)
그리고 HD 블랙 또 작업한다!!! 존버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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