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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랑 놀자! <Playground> by Otis Lim

title: Dropout Bear (2004)Writersglock2024.06.14 19:37조회 수 135추천수 2댓글 2

* 이 리뷰는 H.O.M #13에서 귀여운 시엘이와 함께 읽으실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리뷰는 아래 링크로~~~ 그리고 H.O.M 1주년 축하해!!!!!!!


https://drive.google.com/file/d/1TOcMqxo97wKZtgxmTrYYeEikejapPcve/view?usp=drivesdk


IMG_3960.jpeg

        어릴적 놀이터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놀이터로 모였고, 해가 저물때까지 놀았다. 술래잡기, 얼음땡, 다방구, 경찰과 도둑, 지옥탈출… 놀이터에서 할 수 있는 놀이는 무수히 많았다. 잡기 놀이를 하다 지치면 땅을 파며 놀았고, 땅을 파다 지겨워지면 그네를 타며 놀았다. 놀이터에 있는 기구들은 본디 만들어진 목적대로 사용된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온갖 기발한 방법을 동원해서 기구들을 타고 놀았고, 누가 더 신박한 방법으로 노는지 경쟁하곤 했다. 매일 만나서 매일 같은 놀이를 해도 마냥 즐거웠다. 나이와 성별에 구애받지 않으며 어린이라면 모두가 너무나 당연하게도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었던 공간. 놀이터란 모두의 행복한 기억을 품고 있는, 그 시절 향수의 노이즈가 짙게 끼어있는, 그런 공간이다. 


        오티스 림의 첫 정규작인 <Playground>에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재치와 유쾌함, 편안함과 행복 등의 솜사탕 같은 정서들이 한 묶음의 꽃다발처럼 엮어져 있다. 알 수 없는 스티커가 붙은 반려견 시엘이의 사진이 박힌 앨범 커버와 (심지어 애플 뮤직에서는 그 스티커가 검은색 눈물을 흘리고 있다), ‘lol’ 또는 ‘후…’와 같은 표현이 들어간 곡 제목 등의 시각적 요소부터 이 앨범이 ’즐거움‘ 하나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할 수 있다. 그러니 <Playground>를 본격적으로 청취하기 전부터 한 번은 풋, 하고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앨범을 재생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실소를 참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첫 트랙 “저체온증”은 (아마도 ‘네’가 없어서 느낄) 허전함을 표현한 곡인데, ‘허전해서 비를 맞음 ->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릴 것 같음 -> 추워서 저체온증이 올 것 같음 -> 비를 맞아 원형탈모가 올 것 같음’으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이 산뜻한 반주에 몸을 맡기고 있던 청자의 얼을 순식간에 뺏어버린다. 아마 눈치가 좀 빠른 청자라면 이 앨범의 무드를 금방 파악해내고 이어지는 트랙들을 즐길 준비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여자친구의 바람이 의심되는 상황을 희극적인 가사와 편곡으로 풀어낸 “시엘이도 웃겠다 lol”, 아예 시엘이를 화자로 내세운 “우리집 강아지와 나의 이야기”, 선공개되며 sns 바이럴을 탔었던 시엘이를 비롯한 모든 강아지를 향한 찬가인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까지. <Playground>에는 청자에게 순수한 웃음만을 줄 수 있는 음악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복잡한 편곡도 거의 없고, 심오한 가사도 없으며, 청취에 부담을 주는 무거운 주제의식도 없다. 청자는 오롯이 듣는 즐거움만을 얻어갈 수 있는, 제목과 연결지어 보자면 다양한 놀이 기구를 즐기며 놀듯이 다양한 곡에 올라타 별 생각 없이 즐겁게 놀 수 있다. 위에 나열한 가사나 내용적으로 재미를 주는 곡들도 존재하지만, 오로지 편곡의 힘으로 우리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곡들 또한 존재한다. 따마와 함께한, 그루비한 베이스가 심히 매력적인 “JAMI”(‘잠이’ 오지 않는다는 후렴에서 따온 제목이나, ‘재미’라고도 읽힌다는 것이 꽤나 흥미롭다)나 저지클럽 비트로 달콤하게 구애하는 “Give Me The Night”, 오티스 림의 보컬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에릭 클랩튼이 살짝 스쳐지가는 듯한 격정적인 편곡의 “후… 이제는 한적해진 골목길” 등은 우리에게 블루스의 매력을 십분 전달한다. 


        블랙뮤직 씬이 전반적으로 활성화됨에 따라, 아티스트의 커리어에 있어 정규앨범이 가지는 무게감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이에 발맞춰 정규앨범에 담긴 이야기나 정서 또한 함께 무거워지고 있다. 물론 혼신의 힘을 기울여 그런 앨범을 제작하는 아티스트들 모두 진심으로 리스펙하지만, 청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가볍게 자주 들을 앨범이 줄어든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오티스 림은 ‘즐거움’이라는 핵심 정서 하나로 뚝심 있게 앨범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 정서를 함부로 남발하거나, 또는 상실하지 않고 앨범의 중심부에 확실히 박아넣었다. <Playground>가 반가운 이유는 단지 잘 만든 알앤비 앨범이라서가 아니다. 음악의 본질인 ‘듣는 즐거움’에 있어서는 정말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앨범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는 어릴 적처럼 놀이터에서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만 놀 수 없어진 우리 어른들. 현실의 놀이터는 이제 몸에 비해 너무 작아졌고, 해가 질 때까지 뛰어 놀기엔 빨리 지쳐버리는 애처로운 우리 어른들. 우리의 머리를 울리고 어깨를 짓누르는 생활의 무게를 잠시 잊고, 오티스 림이 만든 놀이터에서 함께 놀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저 즐거우면 그만이었던 그 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오티스 림의 음악은 마치 그 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아련한 행복감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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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6.14 22:27

    즐겁고 유쾌하게 듣기 딱 조은 앨범 ~

  • 6.16 01:09

    들어보겠습니당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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