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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사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여러 집단들 - 밴드, 레이블, 크루 .... 등등 - 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가끔씩 '이만한 사람들을 어떻게 모았지?' 싶어 감탄할 때가 있다. 한국 알앤비에 있어 이러한 감탄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혹자는 나얼을 위시한 브라운 아이즈 소울의 결집을 말할 것이고, 근자의 씬의 흐름에 해박한 이라면 클럽 에스키모, 그리고 그 후신 격인 유윌노우(you.will.knovv)를 지목하기도 할 것이다. 이 중 필자의 취향에 가장 가까운 집단은 따로 있으니, 바로 2000년대 초*중반의 알앤비 붐을 선도했던 레이블 엠보트(M-Boat)이다. 휘성, 거미를 위시한 솔로 보컬들의 기량은 말할 것도 없고, 빅마마, 원티드로 대표되는 기라성 같은 팀까지 보유하고 있던 이 레이블은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가장 세련된 흑인 음악을 보여주던 레이블인 YG와 손잡으며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았다. 이후 내놓는 가수마다 연이어 흥행하며 이들은 한국 알앤비 역사의 한 장을 성공적으로 장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엠보트를 상징할 수 있는 음반은 무엇일까? YG와의 협력의 농도, 그 안에 내재된 음악의 다양성 등 이것저것 재어 봤을 때, 거미의 두 번째 앨범인 <It's Different>가 제격일 듯싶다. 엠보트-YG 사단이 망라되어 거미를 위해 각양각색의 악곡들을 제공해 주었고, 그 위를 자유로이 주유하는 거미의 역량 또한 모범적이면서도 탁월하기 때문이다.
페리, 원타임, 원티드, 빅마마 등 엠보트-YG 사단 내부 인력은 물론, 윤승환, 김도훈 등 엠보트와 교류가 잦았던 이들까지 프로덕션에 고루 투입되었고, 덕분에 앨범은 보다 폭넓은 사운드를 지향할 수 있었다. 앨범의 리드 싱글인 "기억상실"이 소울의 색이 짙다면, 영화와의 타이 업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날 그만 잊어요"는 조금 더 스탠더드하고 한국적인 발라드에 가깝다. 특히 초반에 투입된 트랙들의 장르적 깊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Love Again"같은 상당히 정석적인 어반 컨템퍼러리부터 블루스와 재즈의 향이 강한 "내 곁에 잠이 든 이 밤에" 이르는 광범위한 시대적 범위가 거미의 섬세하고 유려한 보컬을 타고 화려히 구현된다. 중반부로 접어들면 보다 경쾌한, 심지어는 힙합의 범주로 편입될 수 있는 곡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Tonight", "Witches (Doo-Loo-Wap)"의 섹시함, "Dance Dance"와 같은 경쾌함과 훵키함, "그녀보다 내가 뭐가", "So Much", "Round 1"의 강렬함과 카리스마에 이르는 힙합 소울의 향연은 당시 YG 사단이 지닌 세련된 감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심지어 후반부의 "It Don't Matter No More"에서는 네오 소울에 가까운 어프로치까지 보여주니, 거미가 당대 알앤비의 거의 모든 주류를 이리도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오가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 보컬의 뛰어난 역량이 레이블의 절정에 다다른 세련미와 마주했을 때 터지는 이상적인 시너지인 셈이다.
YG-엠보트 아티스트들의 활약은 프로덕션에서만 그치지는 않는다. 휘성이 SNP 출신 다운 야무진 라이밍의 랩으로 존재감을 확보하고, 하동균이 야성적인 톤으로 울부짖는 솜씨 역시 일품이다. 특히 YG에서 차출된 래퍼들이 제각기의 개성으로 당대 제일의 세련미를 새기는 솜씨는 그 자체로도 2000년대 메인 스트림 한국 대중가요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십의 한 예시이다. 원타임, 지누션 등 아이돌에 가까운 그룹에서 동원된 이들의 재기 발랄함이라거나, 마스타 우, 페리, 렉시 등 보다 장르 지향적인 이들의 날카로운 그루브가 거미의 보컬과 어우러지는 모습은 당시 블랙 뮤직 주류의 흥행 공식을 가장 그들다운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다. 어쩌면 클리셰적으로도 비춰질 수도 있지만, 이는 거미가 선보이는 천의무봉의 보컬과 레이블 자체의 세련미의 힘과 섞여 준수한 상업성을 완성시키는 깔끔한 완성도로 자리잡는다. YG와 엠보트가 어떻게 2000년대의 한국 흑인 음악계에서 가장 큰 대중적 인기를 확보했는지, 그 비결이 <It's Different>에 온전히 담겨있다는 것이다.
<It's Different>에는 당시 한창 절정에 달한 YG와 엠보트의 창작력으로 충만하다. 음악적 소프트웨어는 지극히 한국적인 발라드의 그것이지만, 이를 구현함에 있어서는 블루스와 소울, 어반 컨템퍼퍼리 등 북미의 알앤비의 조류에 충실하였다. 알앤비 디바로서 요구되는 카리스마적인, 혹은 경쾌한 부분에 있어서도 YG의 인력을 통해 힙합과 조우하며 슬기롭게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물론 이 모두를 아우르는 거미만의 스킬풀한, 동시에 깊은 보컬이 없었더라면 2005년도 한국대중음악상에서의 수상이라는 가시적이고 뚜렷한 성과에 까지는 다다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모든 조건이 절묘한 지점에서 맞아떨어진 끝에 한국의 2000년대 알앤비의 주류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명작이 탄생된 것이다. 기술과 감수성, 이 둘을 한계까지 끌어올려주는 세련미와 대중성, 정통성까지 두루 갖춘, 균형 감각 까지 탁월한 한국 알앤비의 고전이라 할 수 있겠다.
Best Track: 내 곁에 잠이 든 이 밤에, Love Again (feat. 하동균 Of Wanted), Witches (Doo-Loo-Wap) (feat. 이은주 & 태빈 Of 1T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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