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기 정규 3집 《out of control》 (2008)

배치기. 그들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200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힙합씬에 나름대로 한 획을 그었던 팀이었음은 틀림없다. 이 당시 배치기를 듣고 힙합에 입문하는 사람도 많았고, 붓다 베이비가 구리다고 싫어하던 사람들도 배치기 때문에 붓다 베이비의 팬이 되기도 했으며, 당시 오버그라운드 대표 힙합 듀오하면 반드시 손에 꼽히는 팀이었다.

하지만 뽕끼 가득한 사운드, 미숙한 라이밍, 박자를 무시하는 듯한 랩 디자인 등으로 인해 실력 논란이 일었었고, 버벌진트가 그 논란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난 버벌진트의 해당 발언이 버벌진트가 배치기 랩이 정말 별로라고 생각해서 나온 발언이라고도 생각하지만, 배치기가 버벌진트 본인이 평소에 안 좋게 보던 스나이퍼 휘하에 있었던 팀이었던 것도 있고, 더콰이엇의 랩이 왜 잘하는 랩인지 설명하려다가 TMI로 내뱉은 발언이라고도 생각한다. 실제로 배치기가 버벌진트를 만나려고 하자 버벌진트가 미안해서 배치기를 피해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오늘 다룰 이 《out of control》도 발매 당시에 평가가 안 좋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에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던 〈No. 3〉를 매우 인상 깊게 들었기에, 당시의 평가를 배제하고 –완전히 배제하진 않을 것이다. 나도 당시 평가 중에 동의하는 부분도 좀 있거든.- 이 앨범을 평가하고자 한다.

원시적인 느낌의 강렬한 인트로 격 트랙 〈Out of control〉로 포문을 여는 이 앨범은, 2000년대 초반의 유명 락밴드였던 Silver Spoon의 보컬 한기철, 당시 스나이퍼 사운드 소속 락밴드였던 신태권밴드, 레게의 조상격이라 할 수 있는 장르인 스카(Ska)를 내세우는 밴드인 Kingston Rudieska, 보사노바와 소울 비트를 접목시킨 음악을 하는 힙합 팀 viva soul의 멤버 Jood의 참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밴드음악의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앨범은 순수 힙합앨범이라기보다는 밴드 사운드에 랩을 얹은 밴드음악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하지만 순수 힙합이 아니라고 해서 나쁜 앨범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 밴드 사운드의 수용은 이 앨범에서 장점으로 작용했다. 전작 《마이동풍(馬耳東風)》에서 느껴지던 뽕끼는 이 앨범에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배치기가 평소에 관심 있어하던 밴드 사운드(그러니까 리얼 악기 사운드)를 앨범의 주력으로 삼고, MC스나이퍼가 프로듀서 자리에서 완전히 물러나면서 사운드가 훨씬 풍성해졌으며, 드럼의 질감도 힙합보다는 락의 질감에 가까울지언정 ‘둥 둥 탁’대던 스나이퍼 스타일 비트의 밋밋한 질감보다는 훨씬 둔탁해졌다. 심지어 배치기가 작곡에 참여한 곡들의 퀄리티도 훨씬 올라갔다. (잘 모르겠다면 탁이 프로듀싱한 2집의 〈술 (건강을 위해)〉과 배치기가 작곡에 참여한 이 앨범의 〈선3〉, 〈어른병〉을 비교해서 들어보자.)

배치기의 랩도 이 사운드와 어우러져 흥미로운 하모니를 보여준다. 이 앨범에서 무웅-당시 예명 뭉-은 이 앨범에서 대부분 레게풍의 멜로디컬한 랩을 구사하고, 탁은 힘을 강하게 준 강렬한 랩을 구사하는데, 이 둘의 랩이 이 앨범의 밴드 사운드의 흥겨움과 상당히 잘 어우러져 시너지를 이룬다.

배치기의 유쾌함에 같이 묻어나는 특유의 호소력 있으면서도 신랄하고 현실적인, 이야기하듯이 풀어나가는 가사도 여전하다. 타이틀곡인 〈no. 3〉부터 사랑하던 사람이 ‘너에게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 머릿속엔 구정물만 고여가잖아’라고 독설을 내뱉으며 떠나가고, 세상에 멍들어 외로움을 느끼고 세상이 자신의 외침을 내친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도 세상에 계속 도전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면전에선 안돼〉에선 뒷담화만 까지 말고 불만을 내뱉어보자고 외치고, 〈웃고 울고 또 웃네〉에선 음악을 하면서 드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며, 〈어른병〉에서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현실 앞에서 자신의 열정과 꿈이 꺾여가는 자신에 대해 한탄한다. 〈파랑새는 있다〉와 〈1402〉에서는 각각 노력은 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하는 인간상과 당장의 이익과 대우에 눈이 멀어 인생을 스스로 파국으로 몰고 가는 인간상을 풍자하고 있다. 〈일곱살 인생〉에서는 탁이 어렸을 적 어머니와 떨어져 친가에 가서 지내야만 했던 상황을 자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이 앨범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앨범의 몇몇 결점이 앨범의 감상에 약간의 걸림돌이 된다. 첫 번째로, 밴드 사운드를 내세우다보니 앨범이 대체적으로 텐션이 높은 곡들로 채워져 있는데, 이 곡들의 비중이 너무 높아서 한 바퀴 돌리기가 너무 어렵다. 그나마 텐션을 낮춘 곡들에서도 탁이 목소리를 너무 강렬하게 내는 바람에 듣기가 조금 힘들었다.

두 번째로, 탁의 랩 디자인 문제를 들 수 있다. 탁의 속사포는 청자에게 쾌감을 줄 때도 있지만, 음절 욱여넣기가 과하다 보니 어떨 때는 리듬감이 아예 박살나버리는 느낌이 있다. 〈가면놀이〉에서 ‘달라진 대우들은 가끔 만족합니다만 솔직히 갈라진 내 자아의 척도를 망각하고 주제를 넘게 행동합니다’라는 구절에서는 아예 플로우가 국어책이 되는 느낌이 있었다.  게다가 탁의 랩이 그루비한 랩은 아니기 때문에, 〈skill race〉에서 부드럽게 뱉는 Leo Kekoa와 대비되어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특히 인트로에서 ‘서울’을 발음할 때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이런 점들이 당시 배치기 3집 《out of control》의 혹평에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배치기의 노래에는 무브먼트의 힙합 팀들과는 다른 느낌의 나름대로의 날카로움이 있었으며, 타이틀곡에서마저도 무브먼트 힙합 팀들에게선 보기 힘들었던 날것의 맛-물론 무브먼트에도 에픽하이의 〈Breakdown〉이나 〈따라해〉 같은 곡들이 있었지만-이 있었다. 이런 점이 배치기라는 팀이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렸음에도 지금까지 노래를 찾아 듣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가 아닐까? 

앗,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들었던 앨범이라 한 번 리뷰를 해보려고 했는데 하필 타이밍이... 비판이나 지적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