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는 무엇인가. 자아의 존재 유무를 따지기 이전에 ‘나는 무엇인가’를 따지는 것은 어떤 작업인가. 개인을 인식하는 작업으로 고뇌하며 현실과의 괴리를 감당하는 것은 분명 고통스럽겠으나, 아티스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예술을 통한 승화 작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저드의 EP [Too Many Egos]와 “All My Persona”를 의미하는 정규 1집은 [A.M.P.]는 그런 점에서 흥미롭게 느껴지는 앨범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새로이 내놓은 정규 2집 [BOMM]에서는 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아련함이 존재했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에는 앨범 내에 그녀가 견지한 태도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전작이 내면의 탐구 내지 확장에 집중했다면 본 앨범은 일상과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잠시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조차도 모호하게 느껴지는 표현이겠으나, 일단은 저드와 청자 간의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BOMM]이라는 하나의 방식이자 주제는 "Back Of My Mind"라는 기록으로, 혼자 간직한 것이 아닌 경험과 관계의 생생함을 통해 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자기성찰이라는 것이다.
사실 “G 선상의 아리아“는 바흐의 곡을 편곡하여 나온 곡이다. 수많은 이들에게 편곡되고 삽입되는 곡으로도 유명하나, 저드의 "ARIA"는 신디사이저 및 전자음을 포갠 방식의 편곡으로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제껏 삶의 단편에서 본인이 멍청했음을 인정하는 과정을 신디음으로 포장했다. 그렇게 전하는 아리아 사이에 위치한 것은 당연하게도 오토튠으로 가공된 저드의 목소리다. 그녀가 올랐던 선상에서 여태껏 온 길이 평지였음을 고백하는 장면과 본인을 돌아보는 행위가 선상에 오른다는 비유는 수평과 수직의 교차적인 모습으로 이전과는 달라진 사고 방식의 전환을 보여준다. 본인의 땅을 보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높은 곳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본 앨범의 진행과 감정의 변화에 따른 고백이 회고의 수평적 진행으로도 느껴지는데, 결국은 복합적으로"ARIA"가 주는 감동이 곧 얼마나 입체적인 그녀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암시한다는 데에서 훌륭한 앨범의 인트로를 담당했다는 것이다.
"Bridal Shower"는 그 가운데에서 본인의 사랑을 갈구하거나 했던 모습을 그리는 두 번째 곡이다. 저드가 말한 사랑의 봄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는 것이며, 그 속도 역시 마찬가지로 쌓여가는 건반과 변화하는 현악기의 소리와 같지 않을까. 혹은 곡의 중후반부에 변주로 들어가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전자 샘플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하며 지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거칠 것이라 예상되는 흐름이 음악 내에서는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가파른 감정의 골은 저드만이 지닐 수 있는 공간을 현상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무엇보다 가사이다. 가사에서 놓치지 않은 저드의 라임들과 이음새, 훅 보컬, 전자틱한 샘플 소스가 섞인 와중에도 비트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자연스러움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절묘한 음절의 선택은 음악적 심상을 방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저드의 감정 상태가 원활하게 잘 드러나는데 크게 일조했다. 실로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이 애처롭게만 느껴진다는 점은, 무언가의 결핍이 그녀에게 음악이라는 동기 내지 승화를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X됐어”, 그리고 아마도 무언가의 결핍은 그녀에게 거친 말을 내뿜어도 괜찮거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내재된 혼란과 갈피를 잃은 상태의 저드는 “X됐어”라는 말로 본인의 상태를 함축한다. 그보다도 본인의 상태를 표현할 적절한 말은 없었거나, 본인과 타협하는 데에는 딱 좋은 말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본인이 직접 당긴 활시위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향했고, 그렇기에 지나온 시간이 야속하기만 할 뿐이다. 특이한 점은 거칠 듯한 가사에도 불구하고 도시적인 향취의 신스팝과 소울 위에서 거침없는 곡의 진행에 있다. 덕분에 저드의 솔직함이 가장 뚜렷한 방식으로 돋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까닭은 잘 쓴 가사의 몫도 있겠으나 신스팝과 펑크(Funk)의 활용이 탁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Came Back to Blondie
Jerd - Blondie 中
저드에게 회고라는 것은 ‘시계 추를 지나서 다시 만나는 길’이라는 표현과 맞물린다. 그 길에는 추억이 아닌 회한이 가득하기도 하다. 이전과 달라지기 위한 마음가짐과 변화를 추구하는 행동도 결국은 회고를 통한 현재의 판단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그녀에게 스스로 금발(“Blondie”)로 돌아가는 행위는 마음가짐의 변화뿐 아니라, 불안함의 해소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저드에게 회귀라는 것은 다시금 선택을 필요로 하는 행위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금발로 돌아가길 선택한 것은 새로 시작하기 위한 노력으로도 볼 수 있을 테니.
본래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명곡이며,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거쳐간 곡이기도 하다. 저드는 이를 몽환적인 신디사이저의 활용을 통해 리메이크 커버했다. 인상 깊은 점은 앨범에 난데없이 삽입된 형식이 아니라, 여전하게 신스를 버무린 형태로 앨범의 감정선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정취를 돋아 주는데 활용되었다. 탁월했던 것은 앨범 전체에 활용되는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편곡이 본 곡에 활용된 것도 있겠으나, 저드의 상황 역시 “비처럼 음악처럼”의 가사에 맞물려 헤어진 연인의 회상을 잘 그려내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원곡의 아성에 죽지 않고 색다른 절묘한 매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각설"이란 용어는 본래 화제를 돌릴 때나 새로운 이야기를 꺼낼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특이하게도 본 앨범에서의 "각설"은 본 곡을 비롯하여 다른 트랙에서도 자아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이용되었다. 본인을 돌아보는 것도, 본인이 가진 기준도, 하고 싶은 말들도 전부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번 앨범의 목표였으니 말이다. 저드의 솔직함을 피아노 편곡 사이로 잘 드러냈으며, 유기적으로는 앨범 후반부 국면의 전환을 암시하는, 앨범 중반부의 곡이라는 점에서 유독 특별하게 느껴진다. 아련한 코러스와 보컬을 마주하고 난 뒤의 "각설"은 어디까지나 저드 본인 스스로에게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홍시"라는 비유를 통해 자신을 설명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다. 다소 거친듯한 기타와 악기 샘플의 소리가 활용되며 신스음을 버무린 록에 가까운 편곡으로 상당한 변화를 꾀한 점도 인상 깊지만, 더욱 눈부신 것은 가사이다. 본인의 순수함을 덧없게 비유하며 홍시가 되기도 전에 얼어붙어버린 상태로 묘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본인의 허탈한 감정을 홍시에 비유하며, 끝내 가창과 코러스와 샘플이 쌓이는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돌아와 보자. 저드가 말하는 "BOMM"으로. 회고의 작법과 혼란스러운 내면을 들여다 보는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이를 대변하듯이 곡의 도입부부터 무거운 베이스와 시작하는 트랩 비트가 자리한다. 그 자리에 위치한 것은 어릴 적부터 희망에 무너졌던 것과 저드가 생각하는 봄의 의미를 정의하는 랩이다. 우울의 작법과 무거운 트랩 비트의 공간감은 저드의 공허함과 우울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듯하다. 그렇기에 [BOMM]의 뜻이 "Back Of My Mind"로 드러나는 순간이 강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에게 봄은 알레르기만큼이나 지독한 무언가였다.
그 사고는 "영업 안 합니다"로 확장된다. 스토리는 자연스럽게 저드의 일상적인 어투 속으로 확장되며 우울의 사고를 회고할 뿐이다. 본인의 존재가 싫었을 뿐이기에 복잡하게 드러찬 사고가 자리잡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일렉트로닉 소스와 변주된 퐁크 비트 위로 저드의 내면을 대변하는 짱유의 랩이 자리잡은 것이다. 복잡하도록 꼬인 회로의 사고의 모습은 바로 그렇게 등장했다. 첫 시작처럼 저드의 외면은 담담한 모습일 수 있으나, 내면은 뜯어보지 않은 이상에야 복잡하게 뒤엉킨 상태를 볼 수 없다. 결국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퐁크 비트와 랩은 당황할 정도의 내면이었으니, 혹자가 의아하게 느꼈다면 저드의 의도가 확실히 먹혔다고 할 수 있겠다.
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제목인 "VANS" 신발은 저드에게 어떤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봄에 신고 가기 좋은 평범한 단화 내지 캔버스화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드에게는 어릴 적에도, 어른이 된 이후에도, [BOMM]을 낸 시점에도 반스는 본인이 직접 신은 신발이자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였다. 이전의 앨범 [A.M.P.]의 페르소나들을 하나로 합치는 과정은 반스를 비롯한 매개체들을 통해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끝내 봄의 끝을 받아들여 마주하는 것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오토튠의 코러스와 담담하게 내밀은 보컬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회상의 끝, 봄의 끝은, 다시 시작하는 결과로 남길 바라며.
앞서 말했듯이, 본 앨범은 1집 [A.M.P.]와는 다른 접근법을 자랑하는 앨범이 되었다. 힙합과 알앤비를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매력을 자랑하는 것은 앨범을 한데로 묶어주는 전자 신디사이저에 있다. 이전의 앨범이 보컬과 랩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데 큰 매력을 보여주었다면, 본 앨범은 장르의 다양성도 챙기면서 전자음을 통한 구심점을 잡은 점이 앨범의 풍부함을 더해주었다. "영업 안 합니다"의 일렉트로닉 비트, "각설"의 발라드 피아노, "Bridal Shower"의 일렉트로닉, "Blondie" 신스팝적인 편곡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더욱 빛나는 것은 랩 특유의 라임들을 수놓으며 자랑하는 가사들이다. 리스너들에게 모호하고 다양한 자아를 표출하는 것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는 가사들은 특이하게도 리스너들을 저드와 더욱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결과를 남기었다. 저드 본인이 말했듯, '자기 객관화'를 통한 성찰과 회고 그리고 치유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앨범은 자연스럽게 리스너에게 몰입할 이야기를 제공한 것이다. 그뿐인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단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친숙함을 제공했고 그 감정 역시 진솔하게 전달되었다. X됐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 까닭도, 우리가 늘 신는 Vans 신발도 일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니 말이다.
본 앨범이 매력적인 까닭을 어디에서 설명해야 할까. 장르의 다양성, 음악적 역량, 가사의 아름다움, 아니면 그 모두를 포함한 표현의 내적 욕망의 승화 과정이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결국의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배경 역시 저드가 바랬던 ‘자기 객관화’를 통한 감정의 표현이자 자유로운 배경이 정답이 아닐까. 회고의 작법은 빛이 바래면 바랠수록 저드를 입체적으로 보이는 데 활용되었다. 어려운 말이 아닌 쉬운 말로도 그녀를 표현할 수 있음을 알았고, 자기 자신을 올곧게 바라보며 음악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님에도 결국 음악적 승화 과정으로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그녀가 이번 앨범을 통해 해낸 것은 [BOMM] 내에 자리 잡은 우울한 봄의 환경은 초록색의 배경 속 하얀 형체로 저드 본인만 덩그러니 남기었고, 우리는 혼자남은 그녀의 단순한 감정의 독백으로도 충분히 압도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LP인증 겸 쓰는 리뷰입니다...ㅎㅎ
저드의 음악을 듣다보면, 로린 힐이 생각납니다. 저드의 가사를 짜는 방식이 그녀의 것과 닮은 지점이 있으니까요. 어쩌면 저드가 하이라이트의 단체활동에서 벗어나 그녀가 솔로에서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던 시점이, 로린 힐이 퓨지스를 넘어 혼자서기를 한 뒤의 파격적인 앨범을 낸 상황과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같은 맥락에서 저드 역시 본인이 가진 음악적 다양성이 혼자만의 고독과 자유 아래에서 봄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았을까...
크 추천 드립니다
진 챠 조 땟 쓰ㅓㅇ
반스하니 저드는 하우스 오브 반스 Top 3 출신이기도 했죠. . . 여러모로 본인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트랙 제목인 것 같네요.
글 잘 봤습니다 . . !
봄은 닥추
와 지리네요 긴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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