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의사소통에서 언어가 어쩌구 한국 힙합씬이 저쩌구 하는 아주 거창한 소리로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무슨 거창한 소리를 가져다 붙여도 그냥 그럴싸한 치장성 표현밖에 안된다고 느꼈다. 벌써 이 문단만 썼다가 지운게 수십번이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은 부끄럽지만 필자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가볍게 가보자고 가볍게.
필자는 유년기부터 심각하게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어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보았다. 얼마나 심했냐면 초등학생 때 옆 자리 앉은 짝에게 가위도 빌려주지 않는 놈이었다. "가위를 안 가져왔으면 네가 책임져야지 으-디 빌려다가 쓰나!" 약간 이런 심보였다. 물론 내가 교과서 같은걸 안 가져오면 그 누구에게도 빌리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거니까 내가 책임 져야된다고 보았다. 중2병이 좀 빨리 도졌다고 해야하나. 당시에는 교사들의 체벌이 성행했던 때라 뭐라도 안 가져오는 날에서는 선생님들한테 오지게 맞았다. 하여튼 그렇게 자라다가 초등학교 때 한 번, 중학교 때 한 번 친구를 잘 만나서 인간이 서서히 개조됐다. 이래서 사람은 친구를 잘 만나야 돼.
그런 식으로 사람이 좀 교화되다가 대학에 들어가고나서 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그럴 수 있다." 는 말버릇이 생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 두 단어는 필자의 삶을 바꾼 마법의 단어다. 웬만한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다"고 넘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뭘 하면 가장 좋을까를 생각하면서 살았다.
아재요... 아직 젊으신 것 같은데 뭔 꼰대같은 소립니까...
인간은 결핍을 채워나가며 여기까지 왔다. 두 다리로는 하루 종일 걸어도 70km밖에 못 가는데 바퀴를 만들어 달면 같은 시간에 열배는 더 멀리 갈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두뇌를 대신할 컴퓨터와 인터넷을 만들고, 원래 앉아서 밖에 못 쓰던 인공 두뇌를 밖에서도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것도 만들었다.
필자는 결핍을 채워나가며 대충 한 사람 하는 몫의 인간이 되었다. 인성이 결핍된 놈에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놈이 된건 옆에서 채워준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다. 나중에는 누가 채워주지 않아도 스스로 뭔가 모자라다 싶으면 채워보려고 발악을 했다.
인간은 빛이 없는 공간을 어둡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은 시각에 의존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빛이라는게 아주 중요하다.
인간은 그 조막만한 빛을 쫓아서 미친듯이 달려나가고, 우리는 그걸 희망이라고 부른다.
앨범커버

더콰이엇 사단을 상징하는 물건은 시계다. 일리네어 시절부터 시계를 소재로한 메타포를 자주 사용했고, 이후 앰비션 뮤직 창단 멤버에게도 시계를 줬었다. 데이토나는 그 자체로도 롤렉스 시계의 한 모델이기도 하다. 데이토나 엔터테인먼트에도 시계를 주는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데이토나 역시 대외적으로는 콰이엇 키드라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다만 일리앰비션 시절과 다르게 더콰이엇은 항상 후방에서 후배들을 지켜보는 역할을 하고, 아티스트 하나하나가 더 조명 받을 수 있게 하자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ooh 연트럴에서 Parking 뜨신 눈물 훔칠 때도 들은 music
하하 이제 말해 어느정도 이뤄 벌어먹고 산다고
하하 27살에 빛을 봤어 이제야 집으로 I go
Skinny Brown - Ooh Wow 中
주머니 가득 full of O's 국민은행으로 swish
난 기억해 I was broke but now I'm acting like was dreaming
Skinny Brown - Angel 中
5년 전 난 거지에 꽁초를 보면 숨겼네
노숙을 했어 겨울에 what do you think about it?
Moveo the naked - Detox (feat. Skinny Brown)의 Skinny Brown 파트 中
다이아몬드로 치장된 찬란한 시계, 데이토나 로고와 같이 박힌 스키니브라운의 이름은 노숙까지 해봤을 정도로 어려웠던 과거를 지나 도착한 현재의 스키니 브라운을 떠올리게 한다.
스키니 브라운은 상당히 영리한 아티스트다
스키니 브라운은 최초 발매한 [BOYSCOUT]을 통해 릴펌 스타일 트랩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후 김효은과 합작앨범에서 릴러말즈가 피쳐링한 트랙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고, 이후 공간계 이펙터를 건 기타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이모코어 기반 음악을 통해 성장했다. 이렇다보니 국내에서 스키니브라운의 음악은 '감성 힙합'이라는 장르로 큐레이션되어 여기저기 퍼져있는 상황이다. 스키니 브라운이 데뷔하던 당시 국내에서는 쿠기가 릴펌 타입의 음악으로 단단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으니 장르적 변화를 꾀하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스키니브라운은 상당히 영리하게 프로덕션을 하는 아티스트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상황을 빠르게 진단하고 노선을 틀어야 할 때 틀 줄 아는 그런 래퍼다.

주 장르.... 난 저 단어가 정말 싫어
그런 의미에서 이번 [Stargaze]는 스키니브라운이 원래 가고자 했던 방향으로 어느 정도 돌아온 음악이라고 보는게 더 타당하다. 그런데 트랩 뮤직이 메트로부민 이후 더 어둡고 무거운 무드로 갔던데 반해서 스키니 브라운의 이번 작은 밝은 편곡의 악기를 많이 쓰는게 눈에 띈다.
스키니 브라운이 말하는 성공
트랩뮤직은 가사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자수성가를 다루는 장르다. 트랩씬에서 가장 자주 쓰던 슬랭은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다"로 순화된 hustle을 비롯해 coco, weed, purple drink등의 마약을 뜻하는 은어 등이 주를 이루니까.
힙합이 국내에서 돈, 여자, 차, 마약 없으면 안되는 노래라는 인식이 박힌건 트랩이라는 장르의 태생 탓도 있다. 힙합은 마초적인 문화고 보통 마초적 문화에서 성공의 상징은 돈 많이 벌어서 예쁜 여자랑 결혼하는 거니까. 그 와중에 마약 딜러가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열심히 마약을 팔고다닌 삶을 노래하다보니 적어도 힙합 트랩뮤직 서사에서 성공=약을 열심히 파는 것이 되었다. 트랩의 주가가 점점 오르던 시기에 한국에서 쇼미더머니가 크게 터졌고, 이게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다보니 힙합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그렇게 박힌 것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만약 드릴이 쇼미 주가가 높을 때 드릴이 퍼졌다면 국내에서 힙합은 서로 칼로 쑤시고 총쏘는 문화로 인식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시 스키니 브라운으로 돌아와서, 이제 스키니 브라운은 성공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지켜야 해, 너를 지켜야 해
발걸음은 앞에 두고 또 뒤를 봐야 해
I cannot love with em lames
I swear 더는 시간 없기에
난 받을 준비중이야 너와 내 인정을
[Berry Loves My Mood] Skinny Brown - 지켜야해 (Feat. Coogie) 中
절반이 불러 Emo hiphop
I swear these rappers my kids
Look what I did
너가 싫어하는 곡들로 street에 도배시켰어 my seed
[Stargaze] Skinny Brown - Look What I Did (Feat. The Quiett) 中
스키니 브라운은 한국 주요 힙합 커뮤니티인 엘이, 힙갤, 펨코에서 앨범이 나올 때 마다 이상하리만치 언급이 없다. 그러나 스키니 브라운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9만이 넘는다. 릴펌식 멍청 트랩에서 릴러말즈, 김효은이라는 우군과 함께 빠르게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모코어 기반의 "감성힙합"이라는 타이틀을 단 채 팬덤을 늘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스키니 브라운은 다시 맨 처음 다뤘던 트랩으로 돌아와 자신의 성공을 노래한다.
I'm not fine r u fine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몰랐어 머리로
생각하는 거랑은 많이 달랐던 현실
누굴 따라가면 여기서 많이들 속지
[Berry Loves My Mood] Skinny Brown - I'm Not Fine (Feat. HOON) 中
어린 나에게 필요했던 건 필수적인 케어, but who?
아빠와 도망치듯 갔던 방학역에서 자기 집을 편히 쓰라던 첫 어른
[Stargaze] Skinny Brown - 방학 中
스키니 브라운은 노숙까지 해가며 냉소를 체득한 어려운 소년기를 지나 성공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자수성가, 스키니 브라운은 자신의 성공서사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트랩을 골랐다. 완벽한 현지화다.
Stargaze는 별을 응시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희망을 좇는다. 현실이 아무리 엿같아도 버티고 살아내면 내일은 좀 더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일단 내일 출근하고 학교가야되는데 다들 일어나잖아.
스키니 브라운은 객관적으로도 힘든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 어두운 우주의 한 점을 뚫고 지구까지 도달하는 별빛처럼.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일궈낸 스키니 브라운은 별을 응시하던 소년이었고, 이제는 누군가에게 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앨범은 별을 바라보는 자신의 팬과 별을 바라보던 자신의 소년기에 바치는 앨범이 아닐까.




스키니 angel 너무 취향이라 빡센거 많이 해주면 좋겠다 싶었는데 daydate에 이어 이번 앨범까지 정말 잘들었음..
Angel... 저도 취향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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