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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살 일대기-당신께 세상은 쇼미더머니

title: Tyler, The Creator (IGOR)Neti2023.03.19 16:54조회 수 5413추천수 37댓글 7

전편: https://hiphople.com/kboard/24851523?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Neti#comment

 

 

 

 

‘차라리 그때가 나았지,

그건 아무짝에 쓸모없는 대사

니가 보낸 십 대의 삶 또 괴로웠던 군대가 지금 되려 그립다니

빨리 뛰쳐나가고 싶어 했던 건 너잖니

 

<이센스-비행>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언제였나요? 당당하게 지금, 이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분들도 많겠죠. 일반적으로 고등학생들은 중학생, 대학생들은 고등학생, 30대들은 20대에 보냈던 시간들을 떠올릴 겁니다. 추억들은 절대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 돌아보더라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줄 것입니다.

 

 

허나 그 다정함이 무색하게 시간은 우리를 눈 깜작할 새에 앞으로, 추억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습니다. 눈을 뜨면 우리는 다시 내일을 향해 내던져지고 철새마냥 잠시라도 머무를 곳을 찾기 전까지 무작정 떠돌아야 합니다. 이센스의 ‘비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간에 멈출 수도, 뒤로 돌아가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하고 떠나야 하는 길고 고된 여정. 말이 좋아 비행이지, 결국 원치 않는 비행은 추락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추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비행이 될 수도 있어

 

 

이런 ‘비행’의 대척점에 위치한 곡이 바로 넉살의 ‘추락’입니다. 넉살 역시 별반 다른 신세는 아닙니다. 그 역시 시간에 등 떠밀려진 채로, 내일을 향해 던져집니다. 그러나 넉살은 이제 그 과정을 즐기고, 오히려 그렇게 되기를 더 바랍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똑같은 추락일지 몰라도 본인이 느끼기에는 멋진 비행이 되는 샘입니다.

 

 

image.png 넉살 일대기-당신께 세상은 쇼미더머니


<유재석 옆 넉살>
 

 

넉살의 정규 2집, 1q87의 키워드는 ‘단절’이었습니다. '나의 비행이 그 비행이었다니. 그것도 야간비행.' 분명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옥탑방에서 친구들과 소주나 한 병 까면서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는데,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옆자리에는 태연과 유재석이 앉아 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성공은 넉살을 아예 낯선 세상으로 데려왔습니다. 전혀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그 못지않게 당황스러움과 두려움 역시 큽니다.

 

 

image.png 넉살 일대기-당신께 세상은 쇼미더머니

<이제는 실망조차 하고 싶지 않은 친구>

 

 

‘추락=비행’이라는 공식은 속된 말로 하자면 정신승리법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허나 넉살은 어떻게든 이겨 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인터넷은 내 커리어가 끝났대.기대가 계속 쌓이다 보면 실망으로 변하고,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무관심으로 변합니다.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는 것입니다. 적어도 1q87을 내기 전까지, 사람들은 점차 그를 아티스트보다는 예능인으로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팬들이 아직 ‘실망’하고 있는 동안에라도 무언

 

가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낯설고 두려운 세상과 싸울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면-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도 있습니다.

 

 

 

 

 

‘만약 삶 속에 두려움이 떨림이라면

설렘과 기대가 내일 기다리고 있다면

 

<넉살-추락>

 

우리는 낯섦을 경계하고, 이는 두려움이라는 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DNA에 새겨져 있는 본능입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주변에 익숙한 것들만 있다면 금새 일상이 지루하고 고리타분해질 것입니다. 언뜻 보면 모순되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일부러 공포 영화를 보고 위험한 어트랙션들을 즐기는 것 처럼 우리는 낯섦을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이끌립니다. 결국 미지에 대한 공포와 여행을 떠날 때의 설렘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넉살 역시 본인 여행을 한다는 기분으로 눈앞에 놓인 낯선 세상에 한 발짝씩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우린 신이 따른 축배, 위에서 아래로. Rich or poor, 똑같이 떨어져, Galileo.’ 결국 낭만은 있었지만 밥값은 없었던 과거의 넉살도, 성공과 함께 고독이 찾아온 지금의 넉살도 모두 똑같이 추락하고 있을 뿐. 넉살은 이내 추락을 결국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양면성을 띄기 마련입니다. 두려움을 받아들이면서 그 반대편의 설렘이 보이고, 오늘의 걱정이 내일의 기대로 변하고, 추락을 배우면서 비행 역시 터득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지만, 넉살이 좋아하던 하루키가 말했던 대로 결국 우리는 아이러니를 통해서 내면을 더 탄탄하게 다질 수 있는 법입니다.

 

 

 

신의 뜻, 혹은 엄마 아빠의 실수

어떤 나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던 그때가 생각나

당장 내일이 오면 알 것만 같은 세상은

비를 쏟아내 소나기를 배워, 끝없는 lesson’

<넉살-추락>

 

 

‘Am I a slave’에서 넉살은 성공의 방식 역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좌절합니다. 허나 한편으로는 우리는 태어나는 것 부터-그것이 신의 뜻이든, 엄마 아빠의 실수이든-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많이 없었죠. 따라서 추락하는 넉살은 이제는 그저 과감하게 중력에 몸을 맡길 뿐입니다. 결국 세상에는 좋은 것만 있을 수도 없고 나쁜 것만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 중에 어디로 떨어지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최대한 세상이 전해 주는 교훈을 배워 가려 할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락은 역설적으로 무엇보다 자유로운 행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누군가의 ‘비행’보다도요.

 

 

그렇게 끊임없이 추락하던 넉살은 마침내 까데호와 만나게 됩니다.  

 

 

 

 

 

 

‘잃어버리면서, 동시에 찾지

굴러 떨어지면서, 동시에 착지

두 개인듯 하나, 인생은 착시

눈물만 보이네, 허나 미소도 있지

 

<넉살-당신께>

 

세상은 그에게 친구이기도 하고 적이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가다가도 다시 새로운 것들로 채워 주기도 했습니다. 그를 울게 하기도 했고 웃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세상은 항상 그의 곁을 함께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그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당신께, 아무 말도 없이 문잠그고, 차가운 등 돌릴 때 ‘ 조차 이제는 그가 세상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밉니다. 난, 아무 두려움 없이. 난 아무 상관도 없이-‘ 당신께 세상은 자상한 엄마이기도 하고, 쇼미더머니와 같은 오디션이기도 했고, 절대 닿을 것 같지 않은 하늘이기도 했습니다. 내일의 당신에게는 어떨까요? 그곳에 무엇이 있든, 이제는 아무 망설임 없이 세상 위를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

 

 

넉살은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훨씬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게 된 것 같습니다. 앨범을 이끌어가는 것은 밴드 까데호의 연주이고, 넉살은 그저 흐르는 대로 편하게 가사를 쓰고 랩을 뱉을 뿐입니다. 1q87과 다르게 당신께는 넉살과 청자가 함께하면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허나 그렇기에 넉살이라는 아티스트가 가지고 있는 깊이와 매력이 더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서른의 하루키. 그들이 들려와 멀리 천천히.’ 넉살이 이 가사를 쓰고 난 후 벌써 7년이 지나고 그는 다시 자신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한대음 2관왕-솔직히 말해서 올해의 트랙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줬으면 했지만-축하드립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비명 같은 노을 소리,

해는 곧 떨어져 추워질 텐데 다들 어디, 숲'

 

‘우습게도 방황은 삶이고 난 바람이었어

그냥 제대로 살아보는게 내 바람이었어

 

<넉살-숲>

 

넉살이라고 해서 당연히 완벽한 사람은 아닙니다. 당차게 ‘팔지 않아’를 외치고서는 어느새 TV에서 여장을 하고 있는 모습은 누구의 눈에는 그저 우스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역시 제대로 살아보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께’에서 넉살은 또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 같지만, 언제 다시 세상에 소나기가 내릴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결국 이 순간, 한대음 2관왕의 영광도 그저 스쳐가는 바람일지도 모르는 법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넉살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과연 세상이 그를 다음에는 어떤 곳으로 끌고 갈지가 기대됩니다. 그곳에는 또 넉살이 어떤 음악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줄지가 기대됩니다. ‘작은 것들의 신’에서 ‘1q87’, ‘1q87’에서 ‘당신께’. 모두 넉살의 방황에서 나온 흔적들입니다. 그러니 언젠가 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지금까지의 여정이 마냥 우습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그의 가사처럼, 이 이야기의 끝은 우리가 모두 아는 해피 엔딩일 것입니다.

 

그의 다음 방황의 결과가 최대한 빨리 나오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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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동대문맨Best베스트
    4 3.19 17:2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넉살 앨범을 들으면서 넉살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님 글을 읽고 보니 “내가 태어난게 섹스와 임신으로만 표현된다면 얼마나 멋 없겠어” “약간의 행운으로 허락없이 태어났네” “우린 신이 따른 축배 위에서 아래로” “우습게도 방황은 삶이고 난 바람이었어”를 말하는 넉살의 가사가 이어지는 것 같아 더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 4 3.19 17:2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넉살 앨범을 들으면서 넉살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님 글을 읽고 보니 “내가 태어난게 섹스와 임신으로만 표현된다면 얼마나 멋 없겠어” “약간의 행운으로 허락없이 태어났네” “우린 신이 따른 축배 위에서 아래로” “우습게도 방황은 삶이고 난 바람이었어”를 말하는 넉살의 가사가 이어지는 것 같아 더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 1 3.19 17:56

    진짜 글 맛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 1 3.19 18:56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정독한거같네요

  • 확실히 추락을 기점으로 음악의 방향성이 많이 바뀐 느낌이에요 당신께를 비롯해서 까데호랑 낸 몇개의 곡들도 그렇고 결혼과 득남도 그렇고 훨씬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 VoB
    1 3.20 07:53

    출근 길에 잘 읽고 갑니다~!

  • 2 3.20 10:35

    넉살은 음악의 돌파구를 잘 찾은거같아요

    많은 힙합 뮤지션들이 유명세와 부를

    갖게되면 본인이 하던 음악이 본인상황하고

    어울리지가 않게되면서 잘하던걸 할수가 없거나

    설득력이 없어져버리기도하는데

    전의 색을 완전히 바꾸지는 않으면서도

    뭔가 다른 길을 찾은 느낌이에요.

    전 작것신 넉살보다도 지금 넉살이 더 좋네요.

  • 1 3.20 18:41

    너무 멋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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