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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는 왜 또라이가 되는가

ellis2022.05.15 02:32조회 수 2106추천수 9댓글 3

 

아티스트와 엔터테이너의 차이는, 퀄리티의 차이가 아니라 카테고리의 차이다. 높고 낮음의 차이가 아니라 수평적인 방향성의 차이다. 훌륭한 아티스트가 훌륭한 엔터테이너보다 고귀하다고 볼수 없고 때에 따라서는 엔터테이너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우리의 무료한 삶에 즐거움을 주고, 견디기 힘든 일상의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위로가 되고,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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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나에게는 그러했다. 사고로 무릎이 작살나 몇개월동안 누워만 있으면서 재활치료를 받던 나는, 하루종일 고통에 시달렸다.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는게 고통스럽고, 밖에 외출도 못하는게 고통스럽고, 재활치료 자체는 무릎이 다시 부서지는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내 다리가 도대체 언제쯤 정상으로 돌아올지, 난 언제쯤 예전처럼 걷고 뛰고 할 수 있을지 기약을 알수가 없다는 심리적인 절망감이 더 나를 압박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진짜 다시 뛰긴 뛸 수 있는건가? 난 지금 바로 눈앞에 여기서 저기까지 옆에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기어갈수도 없는데?

 

근데 무한도전을 보는 그 한시간 만큼은 내 자신이 처한 이 상황이 전혀 생각나지 않고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봅슬레이 특집, 재즈댄스 특집, 레슬링 특집, 스키점프대 특집, 무한상사 야유회 특집, 무한상사 뮤지컬 특집, 알래스카 김상덕씨 특집, 그냥 명수형이 무슨 말만 하면 웃겼다. 나는 다들 그렇게 재미없다 할때도 일반인 항도니가 그렇게 웃겼다. 기억나시죠 은갈치? 뭐 당시 전성기 무한도전은 그냥 틀었다 하면 레전드였으니까 뭐. 딱히 이 특집만 재밌었다 할 수가 없었지. 그냥 그 6명이서 아무것도 안하고 논밭에 앉아서 무한뉴스 하면서 서로 까기만 해도 존나 재밌었으니깐. 나는 정말 무한도전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해. 무한도전이 없었으면, 나는 그때 견딜 수 없었을거야. 무한도전은 그때 내 지옥같았던 병원생활을 견디게 해준 그 어떤 몰핀보다도 강력한 진통제였고, 그 어떤 상담사보다도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해준 테라피였다.

 

그래서 나는 엔터테이너가 상황에 따라, 퀄리티에 따라, 그 어떤 예술작품이나 아티스트보다 위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엔터테이너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갖고 있다. 그엔터테이너라는 말을, 아티스트보다 퀄리티적으로 낮은, 폄하하는 수식어로 쓰는게 아니라는 나의 진심은 이쯤이면 설득이 되었을거 같고. 이쯤에서 질문이 들어오길 예상한다. 오케이 그래서 엔터테이너와 아티스트의 수평적 차이가 뭔데. 거기서부터 본론 시작.

 

...

 

인간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은, 3단계로 나뉜다.


1)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2) 그 떠올린 아이디어를 실현가능하도록 이론화한다.
3) 그 이론을 상용화하여 널리 보급해 문명을 발전시킨다.

 

1)은 Art 예술이고, 이것을 하는 사람을 예술가,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2)는 Science 과학이고, 이걸 하는 사람을 과학자라고 부른다.
3)은 Technology 기술이다. 이걸 하는 사람을 엔지니어라고 부른다.


문명은 태초부터 아티스트와,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만들어 온 것이다.

 

인터넷, 로봇, 인공지능, 핵융합 무기, 로켓발사체, 메타버스, 신용카드, 블루투스. 우리가 지금 21세기에 당연한 권리로 여기고 누리고 있는 첨단 기술들은 전부 H.G 웰스, 에드워드 벨라미 같은 19세기, 20세기 소설가들이 상상해 낸 창작물이다. 그 상상은 과학자들에 의해 구체화 되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화될 수 있는 과학이론이 되고, 엔지니어들에 의해 상용화 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쓰여지면서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그럼 아티스트는 발명품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사람이냐. 아니, 그건 그냥 가장 대표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든 것이고, 그것보다는 한레벨 더 깊게 들어가야 된다. 아티스트의 진정한 목적은, 인식 세계의 경계를 넓히는데 - 있다.

 

불을 발견하기 전의 인간은, 스테이크라는 개념을 인식 자체를 할 수가 없다. 불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불에 구워먹는다는 생각도 못하는 것이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려면, 그 전에 반드시 비행기라는 개념이 우리 인식세계에 입력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비행기가 존재하기 전엔, 승무원이나 기내식이라는 것 개념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뇌 속 인식세계를 맵으로 그린다면,

인식세계.png
이렇게 되어있는 것인데,

 

간단한 비유로, 18세기 유럽인들을 생각해본다면, 그들이 인식하고 있는 세계 안에 존재하는 음악은, 당연히 클래식일 것이다. 그외에 지역별 민족포크음악 정도를 제외하면, 클래식을 제외한 그 어떤 음악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팝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전이고, 재즈라는 개념도 존재하기 전이고, 로큰롤이나 일렉기타는 더더욱 존재하기 전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음악은 곧 클래식이고 클래식이 곧 음악이었을 것이다.

 

거기서 아티스트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클래식의 경계를 넘어서 조금이라도 다른걸 상상하고 시도한다. 그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본다. 한 발자국씩. 일단은 클래식에 바탕과 뿌리를 두고 클래식에 이미 존재하는 악기들로 브라스와 리듬섹션에 더 강조를 주고 댄서블하게 파티에서 춤추기 좋은 스윙재즈를 만들고, 그것에 특유의 비화성적 해결, 텐션의 사용, 즉흥연주라는 이론적 특성을 더해서 재즈를 완성시킨다. 로큰롤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이미 사용하고 있는 통기타로 시작해, 엘비스 프레슬리가 허리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아이돌의 시작이다. 거기서 밥딜런은 기타에 전기코드를 꼽아 일렉트릭으로 나간다. 여기서부터 로큰롤 문명의 시작이다.

 

현재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바탕을 두고, 거기서 한발작 더 나아간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재즈가 만들어지고 로큰롤이 만들어지고 힙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게 인식세계의 경계를 넓힌다는 문장의 뜻이다. 그리고 그게, 예술의 본질이다.

 

빙빙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은 간단한 거다.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 그것이 곧 예술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면 예술이 아니다. 그렇게 단언해서 말할 수 있는거냐고. 응. 그렇게 단언해서 말할 수 있는거야. 물이 젖어있지 않으면 물인가? 아니지. 물이 끓어서 연기가 되는 순간 그건 수증기지 물이 아니다. 비슷하지만 달라. 그러면 물을 수증기라고 부르는게 수증기를 비하하는 것인가. 그게 왜 비하야. 그냥 카테고리적 차이일 뿐인데.

 

그럼 엔터테이너의 역할은 무엇인가. 다시 18세기 유럽의 예로 들어간다면, 엔터테이너의 역할은 당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그러했을 것이고 지휘자들이 그러했을 것이고, 오케스트라 연주원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당시 러시아에서 굶주리고 가난에 시달리는 서프계급의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아티스트가 어떤 인식세계의 경계를 넓혔는지 그딴건 개소리 시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렸을 거라고. 그게 나하고 뭔 상관이야. 나는 아름다운 음악이 듣고 싶어. 나는 재미있는 소설이나 연극을 보고 즐겁고 싶고 위로를 받고 싶고 감동을 받고 싶단 말이야. 그리고 그것이. 인간들의 영혼에 영감을 주고 상처를 치료해주는 그 행위가, 창작보다 덜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혹자는 그럴수 있다. 아니. 그럼 작곡을 하지 않는 가수는, 예를 들면 박정현이나 나얼은, 그럼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말이냐. 그냥 엔터테이너라는 말이냐. 너 왜 나얼 비하해? 다시 말하지만, 이걸 비하로 여기는건 아티스트와 엔터테이너의 정의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둘을 구분짓는 것은 테크닉의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테크닉의 완성도는 오히려 엔터테이너 쪽이 훨씬 높을 수 있어.

 

밥딜런은 아티스트이고, 나얼은 엔터테이너이다. 밥딜런은 까놓고 말해서 노래 좆같이 부른다. 아무나 길가는 일반인을 데려놓고 노래방을 같이 가서 18번을 불러도 그것보다 잘부른다. 기타도 그냥저냥 코드나 띵가띵가하는 수준이지. 솔직히 나도 그거보다 잘쳐. 가수로서는, 나얼이 수천배 더 뛰어나다. 근데 그럼, 왜 나얼은 아티스트가 아니래. 가창력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테크닉이 매우 뛰어난 것과 창작을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떤가. 나얼은 보컬 장인이라고. 그럼 또 기분이 나쁘지 않지,

 

영어로는 이런 사람들에게 이런 표현을 쓴다.. Virtuoso, 버추오소, 거장이란 뜻이다, 대가, 장인, 명인. 보컬의 명인, 보컬의 대가, 보컬의 거장. 이런 표현. 나얼에게 이런 표현은 아무리 많이 써도 부족함이 없다. 이것들은 모두 테크닉의 뛰어남을 수식하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했지만, 높고 낮음의 차이가 아닌것이다. 사과와 오렌지의 맛은 누가 더 뛰어난것이 아니다. 아티스트와 엔터테이너는 쓰임이 다른 것이다.

 

엔터테이너는, 문명의 3단계로 표현하자면, 엔지니어의 3단계급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엔지니어가 일런 머스크라고 치면, 나얼은 알앤비의 일런 머스크인 것이다. 일런 머스크가 테슬라와 스페이스 X 프로젝트에 쓰인 그 어떤 기술들 중 하나라도 자기가 직접 과학이론을 만든게 있는가. 아니, 그는 기존에 누군가가 만든 과학이론과 기술들을 잘 조합해서 상용화하는데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정작 그 기술들을 만든 사람들은 우린 누군지도 모를거라고. 엔터테이너는, 엔지니어다. 그들은 대중과 직접 소통할 수 있고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기술들을 총동원해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고, 그들이 가장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진다. 사실상 그들은, 문명의 꽃이다. 아티스트는 문명의 뿌리, 과학자는 문명의 줄기, 엔지니어는 문명의 꽃.

 

...

 

그러면, 아티스트는 어떻게 인식세계의 경계를 뛰어넘는가. 그건 스스로 발달시키는 능력인가, 아니면 타고난 재능인가. 이것은, 뛰어나고 뛰어나지 않고의 영역이 아니다. 아티스트와 아티스트가 아닌 사람을 구분짓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 관점의 차이, 시각의 차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한가지 주제에 관해서 말을 하는데, 혼자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사과가 둥글고 빨갛다고 말하는데, 이 사람은 혼자 사과가 시큼하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그 사람이 무슨 관찰력 스킬이 뛰어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은 시각적 묘사를 한 것인데, 이 사람은 후각적 묘사를 한 것이다. 관점을 다르게 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음악을 하면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사운드를 좋아하거나, 글을 쓴다면 남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글을 쓸 수 있다. 이상의 시처럼. 그리고 그들은 항상 억울하다.

 

자기는 의도적으로 유별나고 싶어서 유별나게 행동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자기가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다른거다.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사회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냐면, 어렸을때부터 친구가 없고, 좀 이상하고, 유별나고, 왕따를 당한다거나, 다른 사람들하고 잘 못 어울리고, 사회성이 부족하고, 가장 중요한 점은 - 쓸데없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지적을 많이 받는다.

 

아티스트가 괴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그들이 팀버튼처럼 괴상하게 생기거나 행동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그냥 겉모습일 뿐이고. 생각하는게 조금 이상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왼쪽에서 사물을 바라볼때 얘네들은 오른쪽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하는 바에 공감을 하지 못하고 모두가 전혀 좋아하지 않는 행동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얘네들은 억울하다, 왜냐면 자기는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가끔 이걸 코스프레 하는 애들이 있다. 이걸 홍대병, 예술병이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얘네들은 4차원적인 척, 희한한 척, 옷을 이상하게 입고 다니는 척, 머리를 헝클어져서 다니고, 씻지를 않는다던가, 이렇게 예술가들의 겉모습을 코스프레하고다니고 말을 일부러 어눌하게 하고 다닌다던가, 하여튼 예술가들이 보통 하고 있는 모습을 비슷하게 하고 다니는 애들이 있다. 그게 멋잇다고 생각하고. 근데 그럼 그걸 진짜하고 가짜하고 어떻게 구분하냐. 뭐긴 뭐야 결과물이지.

 

이런 아티스트 코스프레 하는 애들은, 그냥 그 코스프레만 할 수 있을 뿐이지, 결과물은 없어. 팀버튼인척 하고 다닐수는 있어. 근데 영화가 없어. 인식세계의 경계를 넓히는게 아티스트의 일이라면, 그걸 이뤄냈다면 머리를 3일동안 안감고 다니건 말건 사람들은 이해해 줄 수 있어. 영화를 팀버튼처럼 만든다면, 말을 어눌하게 병신같이 해도 이해해준다. 쟤는 영화 잘만들잖아. 근데 영화는 하나도 못만들고 그냥 머리만 안감고다녀, 그럼 그게 무슨 예술가야, 노숙자지. 비프리가 아무리 지랄발광을 하고 다녀도 프더비 시리즈 같은 명반을 만든다면 나같은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야 저새끼는 정신병자 개새끼 맞는데 음악을 잘 만들어. 쟤가 한국힙합의 바운더리를 넓혔잖아. 쟤가 한국힙합에서 힙합이라고 불리는 인식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는데에 반박을 할 수 있어? 없지. 있으면 해봐 내가 반박글로 찢어줄테니까. 근데, 만약에 비프리가 음악을 안만든다? 음악을 안만드는데 (혹은 못 만드는데) 행동은 비프리처럼 하고 다니는 애가 있다. 그럼 그게 무슨 아티스트야, 그냥 병신새끼 악플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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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의 쓸모있음. Usefulness of Uselessness.

 

그러면, 이 엉뚱함, 이 시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는 그냥 타고난 것인가. 이상한 유별난 놈으로, 예술가로 태어나야면 가능한 것인가. 딱 잘라 말하자면, 아니다.

 

팀버튼의 외형은, 혹은 예술가병 홍대병 걸린 애들이 코스프레하고 다니는 그 예술가의 외형과 행동거지와 매너리즘은, 그냥 말 그대로 겉모습일 뿐이다. 그게 핵심이 아니고 그게 걔네들이 예술적으로 뛰어난 이유가 아니다. 예술가들이 진짜 약간 또라이고 이상한 놈들이 많은 이유는, 걔네들은 평소에도 세상을 특이하게 사는 놈들이기 때문에, 창작을 할때도 뭔가 이상한게 많이 나오고, 그 이상한 것들 중에 새롭고 신박한 것들이 뭐 하나 얻어걸리는 때가 많은 것 뿐이지, 그 겉모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알맹이는 그게 아니다.

 

알맹이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있음을 알아보는 것이다.

 

몇년전 오랜만에 한국에 갔을때,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처음 가서 보고 세번 놀랐다. 첫번째는 한국에 이런 건물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고, 두번째는 그게 지어지기 전에는 엄청난 여론적인 반대에 부딛혔었다는 것에 놀랐고, 세번째는 이제는 관광명소가 되서 외국인들이나 한국인들을 가릴것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인스타 명소가 되고 데이트 장소가 되고 그 건물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에 놀랐다.

 

용적률이란 측면에서만 보면, 분명히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이다. 저 노른자땅에 아파트를 지었으면 사람들이 거기 들어가서 살 수 있었을 것이고, 상가를 디자인 이딴거 개나주고 한평도 남김없이 가게가 촘촘히 들어가게 빼곡히 지었으면 돈도 더 많이 벌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굉장히 잘 지은 건물이다.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상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야, 한국에도 이런 건물이 지어질 수 있네. 기존 한국 사람들의 인식 세계에 건물은 네모난 것이었다. 근데 저런 건물이 하나 딱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이제 건물은 세모날수도 있고 동그랄수도 있고 하늘에 떠 있을수도 있고 흐물흐물거릴 수도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인식의 경계가 넓어지는 것이다. 가능성의 수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건물 하나로.

 

창작과 창의력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걸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창의력을 키워야돼! 이렇게 생각한다. 근데 그건, 공부하고 전혀 달라서,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이다. 창의력을 키우려고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더 멀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창작과 창의력은, 내 자신을 약간 풀어주면서 나온다. 도에 대해서 노자가 그랬지. 도를 쫓을수록 도가 더 멀어진다. 도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도를 아예 모르고 산다고. 물속의 고기가 물이 뭔지 모르는 것처럼. 가장 창의적인 사람은 그냥 재밌는 것을 쫓을 뿐, 내가 창의적이란 생각 자체를 안하고 산다.

 

내 자신을 풀어준다는 말은, 내가 창작을 할때 이게 되냐? 이게 될까? 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만드는 그 필터, 그 내 마인드 속의 리미트를 푼다는 얘기다. 간단한 예로, 음악을 만든다고 할때, 음악을 만들면서 누구나 그럴 것이다, 사람인지라. 이게 과연 히트가 될 것인가. 이게 과연 먹힐 것인가. 이런 생각을 안할수가 없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면서 사람들이 이걸 좋아할까? 이런걸 생각하는 순간, 이제 창의력은 막히는거야. 결과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리미트를 걸고 있기 때문에. 그 순간부터는 의식적으로, 되는 것만 하려고 하거든. 먹히는 것만 하고 싶단 말이야. 재밌는걸 하는게 아니라. 그럼 아이디어가 안떠올라. 내가 지금 원초적으로 하고 싶은걸 하는게 아니라 이젠 저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가에 대한 그 결과까지 머리속에 두고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막히는 거다.

 

그래서 창의적으로 뭔가 결과를 내는 사람들은, 아예 태어나길 또라이거나 또라이가 되길 결심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라이가 아니면 예술은 할 수가 없어. 기존 인식의 세계의 경계를 넓힐 수가 없어. 왜, 인식의 세계의 경계를 넘어간다는건, 상식을 벗어난다는 거란 말이야. 상식을 벗어나지 않으면 그 경계를 어떻게 넘어, 그 경계 안에 있는데. 상식 밖의 사람을 보는 순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분이 나빠진다. 불쾌함을 표현한다. 저새끼는 뭔가 사회통념적으로 당연한게 아니라 뭔가 이상한걸 하고 있는거 같단 말이야. 동대문디자인타워처럼.

 

동대문디자인타워가 처음 지어진다고 디자인이 발표가 되었을때, 부딛힌 가장 큰 비판은 "주위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는다"였다.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이게, 예술과 아티스트가 흔히 부딛히는 가장 큰 비판중의 하나다. 어울리지 못한다, 섞이지 못한다. 맞지. 어울리지 않지. 근데, 예술은 바로 거기에 존재의 이유가 있는 거거든. 예술은 기존의 것들과 어울리는 것들을 만드는 순간 존재 의미가 없어져. 기존의 것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무슨 말이야, 비슷한단 얘기지. 비슷하단 얘기는 곧 뭐야, 새롭지 않단 얘기지. 그니까 계속 그렇게 건물을 만들다보면 100년전 건물만 계속 보수해서 만들고 있는 파리같은 죽은 도시가 되는거야. 새로운 건물은 하나도 못만들고 그냥 몇백년전 건물들만 계속 보수해서 살고 있는.

 

기존의 것과 조화를 이루고 어울리는 것들만 했으면 우린 지금 클래식만 듣고 있어야 하고 한옥에 살고 있어야 한다. 그걸 벗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는게 예술의 역할이고, 예술을 하고자 하는 자, 아티스트와 그를 서포트 하는 지지자들의 가장 큰 적이 바로 그거야. 사회에 동화되라고 하는 자들. 너희들의 다름, 특이함을 깎아서 동글동글한 우리같은 모양이 되서 여기에 어울리고 우리랑 비슷해지라고 하는 자들. 걔네들은 피해야돼 예술가들은.

 

쓸모없는 것, 용적률이 떨어지는 것, 안팔리는 것, 이것을 단순히 재밌다고 해서 추구하는 용기. 내가 그게 재밌으니까 해보는 용기. 남들이 뭐라건, 이건 안된다, 이건 안먹힌다고 하는거를 그냥 내가 좆대로 해보고 싶으니까 해보는 시도. 그게 창작의 본질이고 창의력의 본질이다. 되기 때문에 하는게 아니다, 하고 싶으니까 하는 것이다. 이건 절때 안되는거야, 기존의 상식의 틀로 보면 이거는 안되는거야, 근데 한번 해보고 싶잖아? 그럼 해보는거다.

 

애기들이 처음 그림을 그릴때, 얘네들은 먼저 아웃라인을 그리고 그 아웃라인 안에 색을 칠하지 않는다, 일단 물감을 도화지에 이래저래 뿌리면서 여러가지 색깔을 뿌린다. 아이들의 뇌는 아직 발달하고 있는 중이므로, 여러가지 다른 색깔들을 눈으로 보는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게 팔리냐 안팔리냐에, 기존 요즘에 핫한 화풍이나 미술계 트렌드와 맞느냐 안맞느냐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래서 막 물감을 뿌려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노자 얘기를 하면, 노자는 극에 달해있는 도는 아이와 같다고 했다. 도가 극에 다다르면, 아이처럼 아둔하고 유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연의 본능만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나는 예술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극에 다다르면, 아이같아진다. 이유 없이, 그냥 손가는 대로 눈가는 대로 하고 싶은대로 해보는 용기. 글을 쓸때나, 음악을 만들때나, 디자인을 할때나, 건축을 할때나. 용기가 필요해. 왜냐면 내가 그렇게 하는 순간, 옆에서 개지랄할거거든. 동대문디자인센터 처음 지을때처럼. 근데 지금 지으니까 어때. 다들 좋아하잖아. 다들 사진찍잖아. 그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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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5.15 02:52

    예전에 이런 주제의 글(더 나아가서는 예술가와 정신병에 대하여)을 많이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난 성격 혹은 정신 질환은 생각보다 흔한 것이며 예술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그걸 표현, 표출 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기질 또한 잘 (더 쉽게) 표출 해내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예술가는 또라이다 라는 인식을 만든게 아닌가 싶네요

  • 5.15 04:42

    흥미롭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 6.16 03:55

    목적 없는 합목적성에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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