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코 - 논해(feat. Justhis) / 한국힙합의 리빙레전드

어린 시절 내가 리쌍의 '조까라마이싱'을 듣고 힙합이란 문화에 뻑이 갔던 그 시절부터, 다이나믹듀오의 개코는 이 씬의 영웅중 하나였다.

물론 그 당시에는 힙합을 깊게 듣지 않았기에 그의 위대함을 정확히 느끼진 못했지만,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Ring my bell', '출첵' 을 들으며 학교에 갔고, '불면증' 을 들으며 집에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하던 나의 학창시절에 다이나믹 듀오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다이나믹듀오' 혹은 '개코' 라는 이름은 왠지 아련하게 느껴지곤 한다.

시간이 점차 흐르고 흘러.. 더이상 아메바컬쳐는 씬의 메인스트림이 아니게 되었고 역사적인 컨트롤 디스전 이후 힙합씬에서 개코와 최자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개코는 대단한 래퍼임에 틀림없지만 개인 앨범의 퀄리티로는 분명히 아쉬웠고, 최자는 이센스의 그 라인 이후 완전히 랩 퇴물로 결정되는 듯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후 'Grand Carnival', 'Off Duty' 라는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지만 그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앨범 자체는 괜찮았지만 정작 꿀잼 공연에서 꿀벌옷입고 쌩쇼하던게 더 화제가 됐었다).

사설이 길었는데, '논해' 에서 보여준 개코의 랩은 이러한 아쉬움들을 모두 털어버릴 정도로 그의 수준을 여실히 드러낸 엄청난 벌스였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비음을 가진 그의 목소리는 귀에 꽂혀 들어오며, 개코의 날카로운 펀치라인들은 컨셔스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설탕 기업과 악수했다고 해서 내 랩은 달달하지만은 않아'

'존중받아야 마땅해도 전관예우는 솔직히 그건 웃기잖아'

위의 라인들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개코에 대해 품은 의심에 대해 한 방에 날려버릴 만큼 파괴적이였고,

'공룡의 빅 픽처는 빚 많은 개살구들 툭 떨어뜨려 따먹는거'

'재벌들은 논해 예술을 예술가는 논해 재물을'

같은 라인들은 개코가 얼마나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듣는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잠기도록 한다.

또한 이 랩을 '쇼미더머니' 라는 공룡의 입 속에서 뱉었다는 것 자체가 마치 골리앗에게 당당히 도전하는 다윗을 보는 것 만큼 용맹하게 느껴진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랩을 끝까지 듣는 이들은 그의 위대함을 몸소 느끼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마지막 라인은 더욱 높은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 I'm the Greatest. '

그는 이견없는 한국 힙합의 최고 중 하나이고, 여전히 전관예우따윈 필요없는 리빙레전드인 것이다.

여담으로 저스디스의 랩은 나쁘지 않았지만 뜬금없이 부카케 라는 저급한 단어를 쓰면서 그야말로 듣고있던 내 얼굴에 부카케를 싸갈기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굉장히 불쾌했다.

요즘 저스디스 보면 피쳐링을 할 때 그 곡이랑 매치가 되는지보단 자신의 랩 퍼포먼스를 더 중요시 여기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기대가 잘 안되는 래퍼중 하나가 된 듯 하다.

그래도 어쨌든 (feat. Justhis)라는 꼬리표가 붙음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개코의 위대한 랩을 들었을테니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