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alonso2000/222543677724
생각해 보면 던말릭의 커리어는 꽤 파란만장했다. 10대에 이미 높은 수준의 붐뱁에 대한 이해도를 보여주어 곧바로 씬의 핫 루키로 떠올랐고, 한국 힙합 씬의 거물 중 하나인 딥플로우와 대등하게 디스전을 치렀으며, 전적으로 본의 아닌 누명으로 한동안 잊혀졌다가 '선인장화: MALIK THE CACTUS FLOWER'(2020)이라는 걸작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그리고 결국 앰비션 뮤직이라는 단단한 기반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리스너들은 자연스레 던말릭의 다음 행보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던말릭은 그 주목에 충분히 부응해 줬다.
일단 먼저 귀에 들어온 건 예상외로 높은 트랩의 비중이다. 물론 'Be a pro', 'Good night night (Feat. pH-1)', 'Sole Survivor (Feat. 김효은, FANA)'같은 양질의 붐뱁 트랙도 있으나, 권디엘이라는 비트메이커가 주조해낸 트랩 비트의 질은 기대 이상으로 준수한 편이다. 트랩 방면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듀서인 GAKA역시 간만에 모습을 보여 깔끔한 트랩 프로덕션을 남긴다. 물론 더 콰이엇의 붐뱁비트역시 여전히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가령 'Not an ambition'에는 2000대 중반 즈음의 칩멍크 소울의 맛이 물씬하고, 'Sole Survivor'는 드럼 없이 베이스와 재즈 샘플들 만으로 꾸덕한 그루브를 형성하는 네오 붐뱁의 방법론을 따른다. 이 두 부류의 사운드 모두를 재지한 소스들과 던말릭의 섬세한 퍼포먼스가 관통하며 앨범에 필요한 만큼의 유기성을 형성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HNdNHTJHtI
한동안 앨범에 피처링을 배제해왔던 던말릭이었으나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꽤 많은 피처링진이 참여했다. 던말릭과 같은 크루이기도 한 저스디스는 그에 대한 호오를 떠나서 이번에도 높은 완성도의 랩을 보여줬고, 새로이 레이블 메이트가 된 김효은은 간만에 붐뱁 비트를 능숙히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무엇보다도 더 콰이엇 곡 위에서 랩하는 화나를 다시 볼 수 있다는게 너무 반갑다. 의외의 지점은 드비타, pH-1, 우원재 등 AOMG & H1GHR 사단의 멤버들의 참여인데, 예상외로 합이 준수하다. 역시 던말릭의 새 동료인 릴러말즈는 최근 작업물에서 시도했던 보컬을 보여줬는데, 앨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재즈 풍의 소스에 꽤나 잘 묻었다. 자신의 앨범 단위 커리어에서 처음 시도하는 적극적인 협업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앨범 혹은 아티스트의 아티스트리를 해치지 않았다는 점이 특히 놀랍다.
물론 이 앨범의 주인공은 역시 던말릭이다. 탄탄한 기본기와 거친 톤, 촘촘한 라이밍은 붐뱁은 물론 트랩에서도 건재했으며, 가사적인 면도 전작에서 보여준 개인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란 서울 사람이 전시한 도시'라는 본 앨범의 컨셉에 걸맞게 소재가 보다 확장되었다. 'Human fever'에서 보여준 코로나 시대의 스산한 거리의 풍경이라거나, 성공한 뒤 바뀌는 주변의 태도를 다룬 '요청 99+' 같은 트랙이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전작이 보다 붐뱁이라는 장르적 근본에 집중한 깊은 앨범이라면, 이번엔 보다 다양하고 새로운 걸 시도한 넓은 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장점은 놓치지 않고 여전히, 또 훌륭하게 구현시켜 놓았다. 이 정도면 정말 탁월한 영역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랩'이라는 음악적 표현방식에서 줄 수 있는 직접적인 쾌감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던말릭 같은 아티스트의 존재는 참 귀하다. 이후에도 더 좋은 그의 커리어가 우리를 반겨주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기대해본다.
P.S. 2021년 11월 25일에 이 앨범의 보너스 트랙 격인 맥시 싱글 'DAWN IN SEOUL'이 발매되었다. 페니와 그루비룸, 더 콰이엇의 빈티지한 프로덕션이 앨범과 잘 맞물렸음은 물론, 여전히 훌륭한 던말릭의 퍼포먼스와 내밀한 이야기, 유라의 보컬을 감상할 수 있으니 'PAID IN SEOUL'과 'DAWN IN SEOUL'을 같이 이어서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Best Track: 칭칭칭 (Feat. DeVita), Be a pro, Sole Survivor (Feat. 김효은, FANA)
역시 음악적인 부분을 집어내는 리뷰를 읽는 건 항상 즐겁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리뷰글 개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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