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 리뷰를 핑계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내려 가보고자 한다.
Elle Teresa라는 일본 래퍼가 있다. Nicki Minaj가 양산해 낸 여성 래퍼의 디폴트 컨셉인 'bad bitch' 컨셉을 전면으로 내세웠는데, (초기 랩 스타일은 잘 몰라도 현재는) 트랩 장르의 흔한 클리셰 소재들을 가볍고 멜로디컬한 트랩 비트 위에 중독성 있는 싱잉-랩으로 재치 있게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처음 듣고서 난 생각은 '저렇게 대놓고 멍청한 노래도 재능'이라는 거였다. 그렇다고 국내 래퍼 Uneducated Kid처럼 개그 기믹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확실한 건, 중독성 하나는 쩐다. 약간 붕 뜬 목소리로 청자에게 "나는 높이 올라가" "나는 돈을 벌어" "남자들은 나를 원해"라는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명확하게, 지속해서 마치 주술처럼 반복한다는 거다. 물론 이건 당연히 Elle Teresa 혼자만 국한된 게 아니고, 이미 트랩 장르의 너무 흔해 빠진 클리셰가 되었으나, 아무튼 그녀는 일본 힙합 씬에서 '먹힌다'. 중요한 사실이다.
올해 주목받는 신인 래퍼 YUZION(유시온)의 스타일에서 Elle Teresa가 연상되는 게 나뿐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비교적 가벼운 밀도의 비트, 적극적인 클리셰-워드의 구사, 그리고 약간 붕 뜬 싱잉-랩. 물론 스타일을 카피해서 판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는 전혀 아니고, 이건 카피고 뭐고 할 것 없이 이미 프리-소스가 되어버린 양산형 스타일이다. (느낌적으로는 YUZION이 더 Emo Rap 쪽에 가깝다.)
Elle도 그렇고 YUZION도 그렇고, 그들은 그 양산형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구사한다. 전술했듯 Uneducated Kid처럼 개그를 노린 것도 아닌, 정말 '진지하게-멍청해지려고' 하는 것이다.
글 첫머리부터 Elle를 데려온 게 무색하게, 둘이 표현하는 형식은 비슷해도, 그 내용은 약간 다르다. Elle가 성 위계를 비튼 섹스 어필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실제 아티스트의 '갸루'적인 캐릭터라이징과 맞물려 마케팅을 한다면, YUZION의 경우는 성(性)보다는 (bad bitch 컨셉이 아니기도 하고) 돈과 마약에 좀 더 초점을 둔, 그저 힙합을 좋아하는 한 청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참고로 아티스트 본인의 원색적이고 화려한 만화적 캐릭터라이징이라는 면에서 Elle Teresa와 Jvcki Wai가 종종 비교되곤 한다.) 여기서 공통점은 트랩 장르가 그리는 (적어도 동아시아에선) 허황된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노래한다는 점이 되겠다.
YUZION의 문법에 있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바로 그가 미성년자 즉 어리다는 점인데, 그것이 'young blood' 혹은 'young and rich (wannabe)' 식 문법과 약간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이제야 본 트랙 얘기로 들어가자면, 〈Henzclub〉은 그 속성이 엉뚱한 파괴력을 지닌 케이스인데, 나름 허구의 세계에서 놀던 앨범의 다른 트랙들과 달리, 이 곡은 묘하게 현실적인 배경을 지닌다.
바로, 나이 때문에 헨즈 클럽에 출입을 못 한다고 하는.
유흥주점인 클럽은 미성년자가 출입해선 안 되고, 아마 출입 적발 시 해당 사업자가 처벌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현행법상에는 '클럽'이라는 특정 업종 관련 법이 없어, 해당 클럽이 단순 음식점이나 소매점이라고 등록해 영업해도 적발하기 힘들고, 버닝썬 게이트 같은 경우도 이를 뿌리 뽑을 만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아무튼.
"나만 Henzclub 못 가 … 너넨 갈 수 있잖아"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사실 클럽이라는 곳이 그렇게까지 출입할 가치가 있는 곳인지 의문이 들고, 실제로 가본 적도 없지만,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적을 것이다. 다만 내 경험에서 연상했던 건, 바로 재작년까지만 해도 그토록 듣고 싶어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다운로드할 수 없었던 '19금 음원'에 대한 갈망이다. 오타쿠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화제가 됐던 애니메이션이 IPTV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던 데에 품었던 의문과 씁쓸함과 분노 같은 감정도 기억 나고.
"음악 듣고 싶은데"
굳이 클럽까지 가서 들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2만원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 '2만원'의 출처가 랩 머니인지, 부모님 용돈인지 궁금하다. 이에 따라 아마 캐릭터 해석도 달라질 것 같은데.
어쨌든, 한 번은 논해보고 싶던 주제다. 소위 '젊은 세대'의 문화는 보통 향유 계층이 미성년자인 청소년까지 아우른다. 힙합 역시 그러한데, 문제는 힙합의 주요한 특징에는 '욕설이 많다'는 점이 있고, 그로 인해 상당수의 음원에 19금 딱지가 우수수 붙는다.
그러나 이 장르에 있어 가장 핫한 향유층은 아이러니하게도 법적으로 실제 음원에 대한 접근이 법적으로 금지된 청소년층. 헨즈 클럽이라는 소재도 마찬가지로, 국내힙합에 있어서 일종의 메카가 된 장소가 청소년 래퍼 YUZION에게 있어서 금단의 과일 기제로 작용했다. 청소년의 카운터 컬처 논의를 인종 문제에 대한 논의로 이끌어 낸 N.W.A.의 사례까지는 (당연히) 못 미치더라도, 뭔가 이 아이러니한 현상에 대해, 청소년의 입장에서 가볍게나마 발언한 이 곡은 이런 맥락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본 트랙에서 어린 YUZION에게 조언하는 역할을 하는 hu57la의 벌스(Verse)는 마치 아이유의 곡 〈팔레트〉의 G-DRAGON의 벌스 같이 느껴진다. 자칫 꼰대질 같이 들릴 수 있는 인생 선배 입장의 verse는, 이하의 이유로 적어도 〈팔레트〉의 GD 벌스보다 훌륭한데, 우선 헨즈 클럽에 드나들 수 있는 '너네들' 입장에서 우선 그 분노를 재치 있게 받아 치며 대화를 시작하고("어? 그래? 난 2만원 안 들어", "사장 안다고 구라쳐"), 헨즈 클럽의 허상을 부수면서 ("smokepurp 공연도 가봤다 / 다 좆목질하기 바쁘더라") 목표 자체를 일종의 일탈적인 '금단의 과일' 기제에서, 그쯤은 한 번에 품을 수 있는 '아티스트'로서의 꿈으로 옮기는 역할("no need for a fucking wrist band")을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화자의 성장을 응원하며 동료 및 선배로서 동행을 약속하는 구절("so don't worry about that, just walk up with me")에서는 아름다운 우애까지 돋보인다.
hu57la의 말과 함께 각성한 YUZION은 그렇게 또 한 걸음 거물로 성장해 나갈 것이고, 앨범 세계는 다시 트랩의 논리가 지배한다. 굳이 본 트랙의 약점을 지적하자면, YUZION의 랩 벌스는 하나 밖에 없고 그것도 비교적 짧은데, 그 안에서 어른을 향한 불평과 질투, 그리고 각성과 다짐까지 다 욱여넣어, hu57la의 벌스와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중요한 '각성'의 부분이 너무 급하게 처리된 점이 있다. 그래도, 불량-청소년-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잠시 현실로 돌아와, 그 현실의 벽을 친근한 소재를 가지고 재치 있게 노래한 본 트랙은, 점점 더 높아져 갈 영웅이 보였던 인간적인 면모로서 기억하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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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쓴 글을 옮겨 봤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한 번 놀러와주세요 ㅋㅋㅋ
[트랙리뷰] YUZION, 〈Henzclub〉 (feat. hu57la), (2019)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ngs7777&logNo=221719341441&navType=tl
잘봤습니다
허슬러 벌스랑 뮤비같이봐야 넘기여움 쓰담해주는듯이하는데 그게졸귀
Hu57la 좋아
정말 퀄리티있는 글이네요. 놀랍습니다. 잘 정독했어요. 자주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피처링벌스 저는 구리게 들었어요ㅜ
퀄리티있는글은 추천 정성추
유시온이 엘 테레사처럼 완전 bad bitch 이미지로 갔으면 못 떴을듯 너무 클리셰기도 하고
엘 테레사는 진짜 음악이랑 보여지는 이미지가 일치하는 편이라 좋은데
정말 잘 읽었습니다! 모르던 곡인데 주제가 특이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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