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에 다녀왔다.
미술관의 첫 인상은 아주 깨끗하고 하얀 공장 같은 느낌이었는데 전시를 보다 보니
이 점은 청주에서 원래 담배공장으로 지역 경제를 책임 지던 곳을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현대에 맞게 일부러 산업적인 느낌을 가미해서 지은 것인가 하는 추측을 했었는데 때려 맞춘 것 같아서 기뻤다.
이 미술관은 특징이 하나 있는데 기획 전시를 하는 구역 말고 보통은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창고를
개방형으로 시민들에게 오픈 해 미술관의 안보이던 역할까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새로운 시스템의 미술관이었다.
1층의 수장고를 혼자서 처음 둘러보고서는 솔직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관람하는 사람은 다 여섯 쯤 되는데 섹션 마다 작품을 지키고 있는 도슨트가 관람객보다 많았다.
여기서 뭔가 주객이 전도 된 것 아닌가? 하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저기 가만히 작품을 지키고 서 있는 사람들이 이 작품들 보다는 소중한 사람들일텐데.. 하는 마음.
그 장면과 함께 관람을 시작하고 나니 모든 작품이 나에게는 회의적으로 다가왔다.
어머니를 조각한 어느 애틋한 작품을 보고서 저 사람이 나보다 효자일까?
엄마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포옹을 더 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백남준의 인물 시리즈,
그 중 “데카르트” 라는 작품에 쓰여져 있는 영어의 철자가 틀려 있는 것을 보고
무슨 데카르트의 사유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사람이 철자하나 제대로 모르고서 작품을 만드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들끼리 주고 받는 말도 들렸다. “신기하다.” , “재미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거 좋지. 근데 신기하고 재미있는 건 굳이 국가에서 나서서
6층짜리 건물에 매년 예산을 이만큼 씩이나 투자하지 않더라도 많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든 건 최근 존경하던 사람의 더러운 행각들이 밝혀져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 영향도 큰 것 같다.
그렇게 사춘기 청소년 모드로 의심 가득한 관람을 하던 찰나 도슨트의 작품 해설 시간이
되어서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시간 정도 따라다니며 경청하고 나니 작품마다 나름 치열한 고뇌가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그 작가들은 “지나가던 대학생 1”인 내가 보기 좋으라고 그 작품들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걸 표현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의
자기 치료제 역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낸 치료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으로 다가간다면 충분히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이것 저것 갖다 대며 평가하려고 했던 내가 살짝 부끄러워 졌다.
어디선가 봤었던 예술과 디자인 두 가지 모두 훌륭하게 해 낸 디자이너 마르지엘라의 인터뷰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디자인은 필요성에 대한 답변이고 예술은 답변을 할 필요성이라는 말.
내가 뭐라고 그들의 필요성에 대해 왈가왈부 했는지. 갑자기 고3때 내가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들한테 안해봤던 생각을 단 한가지라도 할만한 사유점을 던져 준다면 그건 충분히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충분하다.
미대 입시를 준비 하고 있었던 나는 그런 멋진 생각을 했었다.
아무래도 군대가 날 망친 것 같다. 그 때의 내가 지금보다 훨씬 멋졌던 것 같다.
군대에서 배운 것들과 몇 개를 섞는 중이네요
이왕 국방의무 하신 거 긍정적인 방향으로 치환하시는 모습 멋지시네요 ㅎㅎ
아무래도 예술은 진심과 영혼에 관한 것이죠. 한국에 많은 사람들은 아직 그걸 향유할 만큼의 가치를 시스템이 알려주지도 않구요. 님 말대로 지금 당장 표현하지 않으면 미칠거 같은 그런 기분이 없다면 함께 나눌만한 뭔가를 만들 수 없을겁니다. 그중에서도 진심을 더 크게 담고 노력한 사람들의 작품이 있는 테이트 모던에 들어가면 눈물 나는 이유가 그게 아닐까 싶네요. 너무 강해서 아무런 설명도 필요도 없이 무언가 온 몸을 감싸버리니까요. 번외로 도슨트의 말을 듣고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에 비하면 그 에너지가 백분의 일도 되지 않기에 저는 좋게 보진 않아요.. 우리나라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들을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사물이나 현상을 자신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의식적인 퇴보와 생각없는 단정이 여론과 힘을 장악했죠
표현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잘 산다는 것과는 별개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언제 올까 고민한 때도 정말 오래 되었네요.
2008년 봤던 과학잡지에서 차들이 다 날아다니고 로봇이 길거리를 돌아다닐 줄만 알았던 2020년이 다가옴에도 그런 사람들에겐 한국은 아직도 많이 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아마..."무언가를 망쳤다고 느끼신 시점"의 시작은 군대에서만의 일이 아니라, 점점 군대로 정점을 찍은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보고 싶습니다.
입시 때부터 무의식적으로든 강제로든 의식적으로든.
잣대를 밀어붙이는 방법부터 배우는 거죠. 부모님, 형, 동생에서 시작하여 사회에 뛰어든 시점에서 죽을 때까지 뭔가 합격과 나에 대한 평판을 결정하는 누군가를 쫓아 남의 입장만 살펴왔으니.
하던 일만 계속 해야하는 로봇같은 사회에서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들을 불량로봇으로 찍히는... 그런 Wall E를 통해 남에게 내리는 판단에 대해조금 더 깨닫게 되면서 미친듯이 그 영화를 보고 있었던 기억이 생각나네요. 지금도 마찬가지고.
"사람들한테 안해봤던 생각"을 단 한가지라도 할만한 사유점을 던져 준다...그걸 따르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예술계에 높은 비율로 몰려 있고, 그 사람들은 대개 많은 암시와 정의 기반의 이론을 펼치거나 표출하죠.
하지만 몇십년이 흐른 지금도 헝그리 정신이 절대적 미덕이라고 외치는 사회화된 사람들의 사회에서는 병균 취급을 받죠.
빈둥거리는 사람, 예술병자, 돈 못버는 사람, 군대 정공감.
악착같이 이겨내서 좀 잘된 사람은 일 안하고 편하게 에어컨 쐬며 날로 먹는 사람.
표출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의 교육 시스템과 닫힌 사고들이 지배하는 사회화 기관, 권위자들이 아직까지도 사회의 시선을 규정하죠
그 인간들이 계속 힘을 쓰는 시기가 계속된다면,
아무리 좋은 글과 작품을 써도 주어진 결론과 정리만을 갈구하고, 세줄이상 읽기 귀찮아하는 어른들이 지금보다 넘쳐날 거고,
남들보다 심적으로 약하거나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들은 무심함에 등을돌리고 정신 이상자로 돌변하거나 명을 달리하게 되겠죠.
해봤던 생각만을 고수하고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사회 시스템에 지배당하기를 미약하게나마 거부한 사람의 입장으로써, 이와 같은 사람들은 일분 일초를 불안으로 살고 왜 맞아야 하는지 모르는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받아들인 사람들은 기형적으로 변하는 사회에 목소리 하나 내지 못하는 무기력에 고통받고 있고, 그러면서 표출 수단을 잊어버린 누군가에 의해 '일탈자'라고 규정한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욕하며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죠.
군대가 두려운 이유는 그 의식이 누군가에 의해 사라지는 시점이 또 다시 오는 것인 것 같네요. 부모. 학교, 교육 시스템에 이어서 말이죠.
의식이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왠지 모를 허무함 속에 남은 여생을 100년 남짓동안 보내고 후회할 텐데
저라면 단명한다 해도 그러지 않는 길을 택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 포함 이론과 요약 없이 느끼는 것을 죄악시하는 사회화 기관에 갔다온 이후로 찾던 미술관도 안 찾게 되고, 음식을 음미하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뭔가를 느끼는 것을 잊어버리죠
군대를 다녀온 시점에서도 그런 생각을 잃지 않고 지금 사람들에게 안 해봤던 생각을 다시 하게 된 작성자 분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런 것이네요.
우리가 긴 글을 못 읽는 요약충이 되고, 부당한(해 보이는) 권력이 득세하고 월E의 로봇에 비유되기 전에는 더 좋은 인류였나 생각 해보면 그것도 아니다 싶어요. 그 전에는 동물과 아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 했었고 월E가 그 점을 꼬집기 전엔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가 그 역할을 했었죠. 제가 지향하고 싶은 것은 그냥 지금 까지 해왔던 것 처럼 앞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면 인간으로서 그 역할은 다 하고 있다고 봐요.
이 글은 우리나라의 군대문화에서 이어진 수직적인 조직문화 라고 생각한 부정적이었던 저에게 답이 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평생
저도 주입식교육이나 군대 탓을 한 적 많았었는데
다시 돌이켜보면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더라구요.
저도 지방에 살아서 전시는 자주 못가도
비엔날레는 빠지지 않고 무조건 가는편인데
그런것들을 보면서 느끼는거는
예술이라는 것은 기발한 창의력보다는 과감한 용기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진정성을
우선한 것이 더욱 깊은 인상을 주더군요.
예전에 꼰대같은 교수가 수업시간에 한 말이 기억납니다.
" 그냥 너네는 내일부터 수업에 나오지마라. 니들은 병신새끼들이다.
니들 이짓거리를 하는거에 목숨은 걸 수 있나?
니들은 어차피 작품에 전재산 쓸 용기도 없는놈들 아니냐?"
그림 몇백만원 하는거 보고 비싸다고 하는놈들이 무슨 예술을 한다고 지랄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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