콕재즈(CokeJazz)란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힙합 프로듀서'로서 익숙할지 모른다. 힙합 씬의 내로라하는 음악가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인지도를 쌓아온 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껏 빚어낸 결과물들을 들어본다면, 애초부터 힙합 뿐만 아니라 재즈, 록, 칠웨이브(Chillwave) 등 여러 사운드에 폭넓은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많은 음악 팬들이 그에게 '믿고 듣는'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도, 온 장르를 아우르는 그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 덕분이다. 그런 그가 마침내 첫 솔로 미니앨범 [LIMBO]를 발표하며 싱어송라이터의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 자신의 감성을 음악으로 표현할 줄 아는 아티스트 콕재즈. 힙합엘이가 그를 직접 만나 새 앨범 [LIMBO]와 그의 음악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LE: 첫 인터뷰인 만큼, 힙합엘이 회원 분들한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C: 안녕하세요, 힙합엘이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처음으로 인사드리네요. 콕재즈입니다.
LE: 드디어 첫 솔로 작품 [LIMBO]를 발매하셨어요. 그동안 애타게 콕재즈 씨의 작품을 기다려 온 팬들이 많았을 텐데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팬들에게 혹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제가 드디어 앨범을 냈습니다. 저도 되게 신기한데, 이번 앨범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계속 짧은 텀으로 앨범을 낼 예정이에요. 기대해주시고 이번 앨범도 잘 들어주세요.
LE: 이건 마무리 멘트인 것 같긴 한데요. (웃음) 아무튼 콕재즈님 같은 경우에는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새벽마다 인스타그램에서 라이브 방송을 즐겨 하셨던 편이세요. 팬들과의 소통을 평소에도 즐기는 편인가요?
그냥 사람이랑 말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는 않는데, 말하는 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까 (방송을 키죠). 그리고 인스타그램 라이브 같은 경우에는, 제가 술을 되게 좋아하는데, 보통 혼자 술을 마시다 보면 적적할 때가 있어요. 어느 날 그걸 켜봤는데, 동네 친구들이랑 술 먹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자주 했었죠. 요즘은 뜸하지만.
LE: 요즘에는 바쁘셔서 그런 건가요?
그것도 그건데, 좀 질렸어요. 재미없는 것 같아요.
LE: 라이브 방송을 보니까 “힙합엘이 게시판에 자신에 관해 글을 좀 써달라”고 얘기도 하셨던데, 본인에 대한 반응은 자주 확인하시는 편인가요?
제 반응을 본다기보다는, 힙합엘이 자체를 커뮤니티처럼 자주 들어가요. 커뮤니티 보듯이 눈팅을 자주 하는데, 제 얘기가 있으면 확인하긴 하죠. 근데 많이 없더라고요.
LE: 사실 커뮤니티도 커뮤니티지만, 예전에는 다음 카페를 통해서 교류를 나누기도 했잖아요. 혹시 콕재즈님 같은 경우에도 활동했던 카페가 있나요?
다음 카페... 그 당시에 중학교 때부터 다음 카페에 있는 웬만한 힙합 카페는 다 가입했어요. 정모도 다 나가고. 어린 시절에, 만 원짜리 알바 하면서. 그 당시에 피자집 알바를 하고 그랬었는데, 전단지 알바도 하고. 그거 해서 받은 돈으로 꾸깃꾸깃 갔어요. 그 정모비가 보통 만 원이었거든요. 만 원 내고 형, 누나들이랑 음악 얘기를 하면서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있죠.
LE: 기억에 남는 카페나, 그때 알게 된 친구들 혹은 뮤지션들이 있을까요?
지금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은 없네요. 근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카페는, 예전에 ‘랩사모’라는 카페가 있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힙합엘이인데, 힙합계의 멜론, 밀림(millim). 그 사이트를 제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정모도 여러 번 나가고.
LE: 홍대 놀이터도 자주 가셨나요?
싸이퍼? 그것도 몇 번 나갔죠. 왜냐하면 그 당시에 저도 랩을 했었거든요. 웃긴 얘기지만.
LE: 그렇다면 힙합이라든가, 음악에 대해서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어떤 계기였는지도 궁금한데요.
초등학생 때부터 음악을 되게 좋아했어요. 그 당시에 좋아했던 게 거리의 시인들,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 YG 패밀리. 외국 쪽에는 에미넴(Eminem)이 있었죠.
LE: 처음에는 국내 힙합을 들으시다가 넘어가신 건가요?
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거리의 시인들이랑 드렁큰 타이거가 시작이였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힙합을 듣기 시작했고 점점 더 좋아하게 됐죠. 그 당시 제가 가정적으로 좀 힘든 시기였는데, 그 우울감을 좀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음악을 찾곤 했거든요. 거리의 시인들도 그렇고, 음악이 좀 꼬였더라고요. 그 바이브가 너무 좋아서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꼬인 바이브. 내다 버린 자식들 같은… 그게 좋았어요.
LE: 그렇게 음악을 듣다가 본인이 ‘음악을 해야 되겠다.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어릴 때 정말 이것저것 많이 찾아서 했었던 것 같아요. 바둑도 좋아해서 바둑도 배우고, 글 짓는 것도 좋아해서 그런 것도 해보고. 그러다가 중학교 시절에, 무슨 노래를 듣고 있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듣다가 ‘나도 한번 써볼까?’ 이 생각이 들었어요. 랩은 하지 않고 가사만. 그 당시에 다음 카페에 항상 게시판이 두 개 있었어요. 녹음물을 올리는 거랑 가사 게시판이 따로 있었거든요. 거기에 올리려고 자연스럽게 마이크 사서 비트박스도 해보고, 랩도 녹음해 보고. 그렇게 시작을 했어요.
LE: 누가 가르쳐 줬다기보다는 그냥 혼자 스스로 하셨던 거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그 당시에 누구한테 돈을 주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지금처럼 그렇게 잘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배울 수 있는 루트나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이 없었던 것 같네요. 지금은 유튜브만 봐도 나오는데.
LE: 원래 콕재즈님이 울산 출신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울산에는 언제까지 계셨던 건가요?
울산에는 청소년기까지 살았어요. 사람들이 제가 계속 울산에서 산 거로 알고 있는데 저는 아무 말도 안 했고, 그냥 사람들이 ‘어, 울산 애’라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정작 그렇게 많이 살지는 않았고 청소년기쯤 건너왔습니다. 뭐 중학교 때쯤 서울 구로로 왔습니다.
LE: 중/고등학교 때 랩을 하시면서 마이크를 사셨다고 하셨는데, 콕재즈님이 악기도 많이 다루시는 거로 알고 있거든요. 처음 악기를 배웠던 게 언제였는지, 그리고 처음으로 다뤘던 악기가 뭔지도 궁금하네요.
처음 배웠던 악기는 건반이에요. 군대 전역하고 나서 바로 시작을 했었고요. 그때는 그렉 카루카스(Gregg Karukas) 같은 퓨전 재즈 피아니스트들에 빠져 있었어요. 알앤비로 치면 슬로우잼 스타일의 피아니스트거든요. 제가 직접 그런 음악들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어서 배우기 시작하게 됐습니다.
LE: 전역하기 전까지는 따로 다루시던 악기가 없었던 건가요?
네. 프로듀싱하려면 어차피 건반을 거쳐야 하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만지다 보니까 기본적인 코드 몇 개를 알게 된 거고, 악기를 제대로 배운 건 군대 전역하고나서에요.
LE: 프로듀싱을 처음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제가 뭔가 하나를 좋아하면 점점 깊이 빠져들거든요. 근데 어느날 보니까 프로듀서가 너무 멋있더라고요. 진짜 X나 멋있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뒤에 빠져서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잖아요. 전문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그 당시에 생각했을 때는 좀 더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느낌도 있었고.
LE: 어떤 프로듀서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닥터 드레(Dr. Dre)? 그 당시에 웨스트 코스트 음악에 계속 빠져 있었거든요. 그런 사람들도 있었고 한국에서는 엘큐(Elcue). 또 되게 많았는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LE: 그 당시에 활동하던 카페에 올라온 영상 같은 게 영향을 준 거겠죠?
네. 그 카페 통해서 알게 된 형들, 아니면 개인적으로 알게 된 형들 작업실들 찾아다니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했던 게, 두 시간 걸려서 왔다 갔다 하는 걸 거의 매일 학교 땡땡이쳤어요. 그리고선 그 형들 작업실 가서 어깨너머로 봤어요. 그 형들이 저한테 뭘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에요. 그냥 보고 (배웠죠).
LE: 거의 어깨너머로 배우셨다고 봐도 될 것 같은데, 처음 다뤘던 시퀀서 프로그램은 뭔지 기억나시나요?
사운드 포지(Sound Forge)로 시작했습니다. 비트 찾는 프로그램을 수소문해 봤는데,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처음에 시작할 거면 사운드 포지나 소나(Sonar)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운드 포지를 몇 개월 쓰다가, 소나로 갈아타서 시퀀싱이라는 걸 한번 시작해봤어요. 그때는 샘플링, 시퀀싱이라는 게 되게 나뉘어 있었고 그거에 따라서 프로그램도 달랐거든요. 둘 다 해봤죠.
LE: 시퀀서 프로그램이랑 처음 함께 썼던 장비들은 기억나시나요?
사운드 포지랑 소나를 쓰면서 제일 처음 썼던 장비가 마스터 키보드였어요. 아직도 기억나네요. 롤랜드(Roland)에서 나온 A-33이었나? 그런 이름이었는데, 그 장비들로 시작을 했죠. 그것도 중고로 샀는데, 웃긴 게 되게 싸게 샀는데 건반이 하얀색이어야 되는데 거의 무슨 갈색인 거에요. (웃음) 진짜 갈색. 그냥. 그래서 ‘이 사람 담배를 좀 많이 피웠나?’ 했는데, 뭐 쌌으니까. 그때는 돈이 없었고. 피자 팔아서 샀죠. 피자… 제가 많이 팔았죠.
LE: 음악 씬에서 콕재즈라는 이름을 처음 알린 계기는 코홀트 서울 채널에 올라온 “Midnight Jam Session” 영상이었잖아요. 코홀트(The Cohort)와는 어떻게 연을 맺게 되셨고, 그 영상을 어떻게 올리게 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일단 친한 친구가 많이 어울려 다니는 그룹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고요. 그 “Midnight Jam Session”이 아직도 (유튜브에) 있나요? 그 당시에, 아마 2007년부터일 거에요. 유튜브에 비트 메이킹 하는 영상들이 유행처럼 되게 많이 올라오고 있었거든요. 그런 영상들을 많이 보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찍은 거에요. 스마트폰 카메라도 되게 좋아졌더라고요.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촬영을 했었죠. 사실 별생각은 없었고, 그냥 찍어 봤는데 영상에 비친 내 모습이 X나 멋있는 거예요. (전원 웃음) 그래서 ‘어, 좋은데?’ 해서 올리게 됐죠.
LE: 영상에서 드럼머신이랑 기타랑 건반, 멜로디카(멜로디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또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을까요? 그리고 각 악기마다 어느 정도로 연주에 자신이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저는 가만히 있었는데, 사람들이 저보고 다 악기를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모든 악기를 다 다룰 수 있다고 하던데, 결코 아니고요. 전 그걸 제 입으로 말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냥 악기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일 뿐이에요. 그나마 베이스가 있는데, 계속 혼자서 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 되는 것 뿐이지 기본적으로 악기를 잘 다루지는 않아요. 테크니션이라기 보다는 야매죠. 그냥 야매. (웃음)
LE: 트럼펫도 어느 정도 다루실 줄 아시죠?
예전에 그냥 간단한 라인은 불 수 있었는데, 얼마 전에 다시 해보니까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X나 어이없었던 게, 누가 저보고 “너는 한국의 FKJ야”라고 하더라고요. 진짜 개 창피했어요. (전원 웃음) FKJ는 (악기) 다 하나하나 연주자인데. 근데 문제는 전 가만히 있었다는 거거든요. 전 진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사람들이 절 볼 때마다 “오, 역시 넌 모든 악기들을 잘 다룬다… 와… 넌 진짜 천재다…” 아직도 그래요. 그럴 때마다 얼굴이 빨개져서 “아니라니까요!” 이렇게 얘기를 해도, 인상이 한번 박혀 있으면 잘 안 바뀌더라고요.
LE: 팔로알토(Paloalto) 씨의 앨범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셨는데, 또 팔로알토 씨 같은 경우에도 어린 시절에 들었던 한국 힙합 뮤지션이라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어떠셨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그전에도 음악 활동을 하긴 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정식으로 기록되는 첫 작업이다 보니까 되게 예민했어요. 설레고 말고를 떠나서 정신이 없었죠. 스스로 안에 갇히게 되더라고요. 물론 다 하고 나서는 엄청 뿌듯했죠. 지금 제 첫 앨범 내는 것처럼 ‘이제 뭔가 시작을 하는구나’. 그런 느낌이었어요. ‘오늘부터 한 살이다’ 약간 이런 느낌?
LE: 당시에만 하더라도 재지한 무드의 음악을 주로 구현하셨던 것 같은데, 퓨전 재즈 아티스트들한테 영향을 받았다고 하시기도 했고, 당시에도 그런 영향을 받으셨던 걸까요?
일단 퓨전 재즈 아티스트들한테도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저는 퓨전 재즈의 그 의미 자체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지금으로 치면 얼터너티브죠. 솔직히 똑같은 말이에요. '섞는다'는 말 자체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물론 아직 건반을 포기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서 재즈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정말 많이 듣고 있기도 했죠. 스톤 스로우(Stone Throw Records), 제이 딜라(J Dilla), 아니면 루츠(The Roots) 같은 거나, 에리카 바두(Erykah Badu)같은 카테고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LE: 재즈 같은 경우에는 화성학적인 부분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은데, 화성학을 배우기도 하셨나요?
화성학을 배우기는 했지만, 곡을 만들 때 별로 생각을 하진 않는 편이에요. 근데 만들다 보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법칙을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몸에 배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그게 듣기 좋으니까? 듣기 좋게 만들다 보니까 자연스레 그렇게 가는 게 아닐까 싶네요. 화성에 매달리거나 그러진 않아요. 제가 베토벤은 아니잖아요.
LE: 이후에 비프리(B-Free) 씨의 [Korean Dream]에 참여하면서 차세대 프로듀서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됐는데, 일단 비프리 님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작업을 함께 하게 됐는지도 얘기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전역하고 2011년도에 홍대 길거리를 걷다가, 프리 형이 길거리 공연을 하는 걸 봤어요. 그걸 보고 ‘이 사람 X나 멋있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죠. 그 다음에 친구가 [자유의 뮤직]을 들려줬고요. 되게 직설적인 가사 표현들이나, 랩이 그냥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원래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후에 같이 어울려 다니다가 형이 “야 너 나랑 작업 한번 해보자” 해서 기분 좋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LE: 비프리 씨와 서로 작업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재미있었던 일화는, 글쎄요. 항상 같이 작업을 하다 보면 매 순간순간마다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프리 형이랑 작업하면 그래요. 재미있었던 기억이라기보다는, 프리 형이 (작업) 속도가 진짜 빨라요. 남들이랑 한 곡을 할 시간에 그 형이랑은 앨범 하나를 하거든요. 그 정도로 되게 빠른데, 저는 사실 그 당시에 저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 그 텐션 때문에 프리 형한테 핀잔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LE: 조금 전에도 살짝 이야기해 주시긴 했는데, 비프리 님이랑은 꾸준히 같이 작업을 하고 있잖아요. 아무래도 비프리님과의 작업 방식에서 다른 아티스트들과 차이점을 혹시 느끼시나요?
얼마 전에 파일 정리를 하다가 프리 형 파일을 봤는데, 곡이 진짜 몇십 개가 있더라고요. 거의 50~60곡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로 많이 작업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해도 쉽게 알아들을 수가 있죠. 되게 모호한 표현을 해도, ‘아 이런 거구나’. 그리고 서로 피드백이 편하고, 호흡이 잘 맞죠. 그런 점이 제일 좋은 점인 것 같아요. 또, 아까 제가 퓨전 재즈 말하면서 여러 가지를 섞는다는 거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프리 형 같은 경우에도 그런 편이에요. 항상 열려 있고 편견이 없어요. 그래서 더 잘 맞죠.
LE: 비프리 님 외에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작업 중에서는 빈지노(Beenzino) 님과 “젖고있어”를 통해 같이 호흡을 맞추셨어요. 빈지노 님과는 어떻게 작업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한데요. 랩스타 뮤지션과 작업을 하신 감회나 작업기는 어떠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노 형이 [12] 앨범을 만들 쯤에, 그 초기에 피제이(Peejay) 형 소개로 만나게 됐어요. 그 자리에서 지노 형이 “젖고있어”의 가이드 버전과 다른 곡을 가져갔었어요. 그래서 되게 기분 좋았죠. 사실 빈지노라고 하면, 지금도 그렇지만, 되게 아티스트로서 꼭 한번 작업해보고 싶은 그런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돈도 없었는데, 무리해서 술을 왕창 사서 좋은 술을 마셨던 기억이 있어요. 한 마디로 축배를 들었죠. 그런데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도 연락이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한 1년쯤 지났을 때, 저도 잊고 있을 때쯤에 뜬금 없이 딱 연락이 와서 “야 이거 한번 들어봐”라고 파일을 보내시는 거예요. ‘뭐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젖고있어” 가이드 버전에 녹음을 해서 보내주신 거더라고요. 그렇게 작업을 이어가게 됐어요. 지노 형과의 작업은 되게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아티스트와 작업을 하다 보면 당연히 두 명이 같이 작업을 하는 느낌이 드는데, “젖고있어” 만들 때는 그냥 진짜 혼자 작업하는 것 같았어요. ‘혼자 모든 걸 다 했다’ 이런 게 아니라, 지노 형이 같이 작업하는 아티스트들과 음악적으로 되게 동기화가 많이 되는 느낌? 이질감 없이. 표현이 좀 이상한데, 어쨌든 그런 느낌이었어요.
LE: 대화가 그랬던 건가요? 아니면 음악적인 무드에 있어서 그렇게 느끼셨던 건가요? 원래 음악가들끼리 작업을 할 때면 동기화를 시키기 위해 대화를 많이 나누거나, 같이 술을 마신다든지 한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보면 텔레파시 같은 거 같아요. ‘네가 소주를 좋아하고 내가 소주를 좋아하니까 우린 친구가 될 수 있겠구나’ 이런 동질감이 아니라, 동기화라는 거죠. 텔레파시로 페어링을 하듯이. 말은 그렇게 많이 안 하고, 음악적으로 그냥 그걸 느끼는 것 같아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테슬라 두 대가 움직인 느낌이에요. 깜빡이를 켤 필요가 없었죠.
LE: 다시 콕재즈 씨의 작업 얘기로 돌아와볼게요. 초기 커리어를 지나서는 건반보다 기타를 주로 사용하신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건반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아요. 다만 기타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었다가 갑자기 좀 더 보급이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원래부터 있었던 사운드인데, 시간이 지나니까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도 바뀐게 아닐까 싶어요. 프리 형이랑 작업 할 때도 [FREE FROM SEOUL] 때부터는 그런 사운드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LE: 비프리, 빈지노 씨 말고도 던밀스(Don Mills), 서사무엘(Samuel Seo), 엘로(Elo) 등 여러 아티스트들과 합을 맞추면서 참여했는데, 그 중에서 빈지노 님처럼 호흡이 잘 맞았던 뮤지션이 있을까요?
일단 프리 형이 제일 합이 잘 맞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어쩔 수 없잖아요. 그만큼 많이 작업하고 사고방식이 비슷한 사람들이라서.
LE: 그럼 혹시 같이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들이 있을까요?
너무 많죠. 요즘 멋있는 아티스트들 되게 많잖아요. <쇼미더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최근 몇 년 사이에 정말 말도 안 되게 멋있는 아티스트들이 떼거지로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게 힘들 정도로. 그래서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들은 너무 많은데,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릴 체리(Lil Cherry), 재키와이(Jvcki Wai), 그리고 아도이(ADOY)? 새소년의 황소윤 씨도. 이분들 말고도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이름을 다 대라고 하면, 거의 진짜 학교 출석부보다 더 꽉 찰 거예요.
LE: 그런 신인 아티스트분들한테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으시나요?
네. 제가 좀 소극적이어서 그런 것도 있고, 지금까지는 내 거 하기가 바빴다 보니까 그런 시도를 좀 많이 못 했죠. 이제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어요. 의지가 다시 생겼죠. 이제 앨범 나오니까.
LE: 많은 뮤지션과 호흡을 함께 맞췄던 만큼 다른 회사의 러브콜도 진작 있었을 거 같은데, 그럼에도 계속해서 인디펜던트로 활동하셨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그 당시에도 좋은 컨택들이 있었죠. 그런데 모두 힙합을 강하게 표방하는 회사였고, 저는 더 여러가지 음악들을 하고 싶었죠. 힙합이라는 틀에 갇히기 싫었어요. 지금 보면은 내가 너무 고지식했나하는 생각들이 많이 드는데, 그래도 당시에는 틀에 갇히는 게 너무 싫었어요.
LE: 아까 전에는 거리의 시인들, 에미넴, 퓨전 재즈 음악을 이야기했지만, 학창시절에 록 음악에도 관심이 많으셨던 거 같아요.
(록 음악을 듣기 시작한 건) 처음에 린킨 파크(Linkin Park)였어요. 중학교 때 같은 반 학급 친구가 ‘락빠’였거든요. 저는 ‘힙빠’였는데, 둘이 맨날 싸웠어요. 록이 최고다, 힙합이 최고다. 힙합하는 사람 다섯 명이랑 록하는 사람 다섯 명이랑 싸우면 누가 이긴다. (전원 웃음) 록은 과격하니깐 록 하는 사람이 이긴다. 아니다, 힙합은 갱스터니 힙합하는 사람이 이긴다. 되게 유치하게 이런 경험들이 있었는데, 서로를 인정한 후로 듣는 음악을 공유하다보니 록 음악도 본격적으로 듣게 되었죠.
LE: 그렇다면 린킨 파크 말고도 기억에 나는 밴드가 있을까요?
되게 많았죠. 악틱 몽키즈(Arctic Monkeys), 블링크 182(Blink 182) 이런 분들도 있고. 펑크(Punk) 록으로 보면 누구나 들었을 그린 데이(Green Day). [American Idiot]를 되게 좋아했어요. 그리고 아직도 노래방에 가면 예전부터 록만 불러요. 타카피, 크라잉넛, 강산에 형님… 항상 제 안에서 여러 음악들이 공존했던 거 같아요.
LE: 그런 성향이 있었는데 레이블에선 힙합 프로듀서로서 제안이 오니 잘 안 맞으셨던 거군요.
그렇죠. 힙합 프로듀서이기만은 싫었어요. 물론 제 일부일 수는 있지만, 전체로 되는 순간 제가 아닌 거 같은 거예요. 퓨전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린 것도, 장르 자체를 좋아하기 보단 여러 음악을 한 데 섞는 그 맥락이 좋았던 거였어요. 저는 음식점에 가도 메뉴는 세 개는 시켜야 하거든요. (웃음) 무슨 말인지 아시죠? 그래도 하와이안 피자는 아닌 거 같아요. 같은 퓨전이긴 하지만, 옛날에 피자 집에서 알바를 할 때도 하와이안 피자를 처음 알고 만들어서 먹어 봤는데 아 이건 좀 아니다 싶었어요. (전원 웃음)
LE: 다시 돌아가서, 이번에 크래프트앤준과 계약을 맺으셨잖아요. 앞서 얘기한 자세를 바꾸고 회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 음악 성향과 맞닿은 것도 있고, 준백 사장을 보면 일을 되게 잘해요. 그래서 나랑 매치가 잘 되는구나, 이런 것도 있었고요. 일을 잘하는 모습들이 인상에 남았던 거 같아요.
LE: 준백 대표님과는 언제부터 연을 맺게 된 건가요?
알고 지낸 지는 3년 정도 된 거 같아요. 회사 미팅으로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제가 한창 간을 보던 시기였죠. 그러다가 주변에 김아일(Qim Isle)이나 이안 캐시(Ian Ka$h) 등 친한 사람들하고 공통 분모가 있으니까 술도 같이 마시고, 축구도 같이 뛰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LE: 콕재즈란 이름이 힙합팬들에게는 프로듀서로 익숙하지만, 이제는 정말 솔로 싱어송라이터의 첫 발자국을 뗀 셈이잖아요. 원래부터 플레이어의 꿈을 가지고 있었나요? 아니라면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내야 겠다고 마음먹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딱히 보컬을 해야겠다 마음먹지는 않았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고 만들어요. 되게 예전부터 그랬어요. 그런데 힙합이야 주변에 같이 할 아티스트가 많지만, 록이나 퓨전재즈 같은 음악들은 만들어 놨을 때 같이 합을 맞출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여기에다 노래를 하면 어떨까, 연주를 하면 어떨까 해서 가이드처럼 녹음을 하기 시작했는데, 제 목소리가 되게 좋은 거 같더라고요. (웃음) 멜로디를 되게 잘 짜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죠. 그게 2012년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앨범 준비도 2012년부터 해왔던 거겠죠.
LE: 어느덧 음악 씬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도 5~6년이 흘렀는데, 그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어떤 점에서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약간 시간을 거꾸로 갔던 거 같아요. 그 당시에는 되게 노인네였는데, 지금은 사춘기도 안 지난 소년이 된 거 같아요. 겨드랑이 털도 안난 거 같아요. (전원 웃음) 그 당시에는 오히려 스스로 음악에 대한 선이 있었어요. 퓨전을 이야기하면서도, 지켜야 하는 어느 정도의 룰이 많았었던 거 같아요. 음악만 아니라 삶에서도 원칙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런 게 없는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꼰대였다가 급식이 되고 있는 거죠.
LE: 틀에서 벗어난 계기가 있을까요? 더 많은 음악을 듣고 만들다 보니 시야가 넓어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 것도 있는데, 시대에 맞게 제가 진화한 거 같아요. 제가 진화론을 되게 좋아하는데, 진화라는 게 꼭 백 만년에 걸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몇 년 만에 일어날 수도 있는 거거든요. 물론 그만큼 퇴보할 수도 있다는 거지만, 다행스럽게도 저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한 거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요즘은 원칙이란 게 없는 시대잖아요. 좀 더 본능적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를 변화시킨 거 같아요. 왜냐면 2012년도에는 타이트한 음악들이 주를 이뤘고, 인정을 받았는데, 지금은 디보(Dbo)의 세상이잖아요. (전원 웃음) “디보가 우리 모두의 아빠야” 이런 느낌인데, 그 흐름을 저도 자연스럽게 따라온 거죠. 요즘의 음악 씬은 기존의 룰만으로 해석할 수가 없잖아요. 오히려 룰보다 전체적인 멋이나 느낌이 중요하니까요.
LE: 이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 전에 본격 PR타임을 가져보도록 하죠. 자신의 첫 작품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광고 시간인가요? (웃음) 우선 [LIMBO]는 상당히 얼터너티브한 색이 있는 앨범이예요.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80년대 신스팝 같은 사운드도 있고, 재즈 같은 느낌도 있고요. 저의 첫 앨범입니다.
LE: 타이틀을 ‘LIMBO’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원래는 타이틀을 정하지 않고 앨범 작업을 시작했어요. 앨범을 만들다 보니 ‘림보’가 오더라고요. (웃음) ‘멘붕’이 왔다는 거죠. 그런데 멘붕은 좀 CL이 많이 했잖아요. 그래서 림보라 정하기로 했습니다. (전원 웃음) 친구가 저한테 림보가 온 거 같다고 이야기했던 게 제일 크긴 했어요.
LE: 사실 몇 년 전부터 솔로 앨범을 예고 했었잖아요. 이렇게 작품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뭘까요?
결과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멘붕이 와서 그런 거고요. (웃음) 그래서 계속 미루다가, 지금에서야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귀찮았던 것도 있고, 시간이 계속 지체되다 보니 멘붕이 오더라고요. 마치 카드 빚 같은 느낌이었어요. 할부를 해도 그게 한 방에 다가오는 느낌이랄까요.
LE: 사실 2016년까지는 활발히 활동을 하셨던 것 같은데, 2017년부터 다소 활동이 잠잠해졌어요. 혹시 슬럼프를 겪고 있었나요?
그건 아니에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많은 외부 작업들을 거절하고 제 앨범에만 몰두하려고 환경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제 앨범) 작업을 하지 않았죠. 왜냐면 전 X나 게으르니깐. 그래도 그 당시에는 되게 진지했어요. 왜 진행이 안될까 고민하며 지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나니 제가 그냥 게을렀던 것 같아요.
힙합엘이 커뮤니티에 가보면 가끔 “일해라 누구누구” 이러잖아요. 게으른 새X 어쩌구저쩌구… 그 중에 한 명이 저인 것 같아요. 그런 글들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콕해라 일재즈. (전원 웃음) 이젠 그것도 안 되서 콕해라 X재즈 이런 느낌이었다가, XX즈까지 간 거 같아요. 슬럼프라기 보다는 그런 이유가 컸던 거죠.
LE: 구상했던 방향과 지금의 작품과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요?
제가 스스로 목소리를 녹음한 때가 2012년부터 이거든요. 그 때부터 쌓인 트랙이 너무 많아요. 앨범으로 내도 스눕 독(Snoop Dogg)처럼 열 몇 장 이상을 낼 수 있을 만큼 있어요. (LE: 200여곡 이상이 있단 건가요?) 그 정도는 있죠. 짜잘한 거까지 합하면요. 솔로 앨범을 위한 곡이 그렇게 있어요.
어떤 사람은 비트가 그 정도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솔로 앨범만을 위한 곡이 그렇게 쌓여 있어요. 그 중에서 요즘 제 감성에 맞게 세 곡을 골라서 발매를 하는 거고요. 원래는 좀 더 큰 앨범 단위로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진행하면 영영 앨범을 못 낼 거 같았어요. 시작이 중요하잖아요. 이제 세 곡으로 시작을 한 거고, 어떻게 보면 앨범 형식의 곡 수를 찢어서 내는 거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이런 식으로 계속 나온다는 거죠.
LE: 첫 솔로 작을 내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을 거 같아요.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게으르다는 게 제일 문제였고요. 농담 삼아 이야기하지만 제가 저 같은 아들 있었으면 줘팼을 거 같아요. 건반 다 부시고, 기타 다 부시고... 그랬을 정도로 답답했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전원 웃음) 물론 생각만 그런 거고. 작업 면에서 보면, 곡을 프로듀싱 하거나 멜로디 라인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예전부터 해왔던 일이고 하루에 몇 개씩도 만들 수 있는데, 제일 어려운 건 가사를 쓰는 작업이었어요. 그 다음에 본 녹음을 제대로 하는 것도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그 동안 작업은 했지만 가사를 끝까지 완성시킨 곡이 없었거든요. 게으름에 비해서 욕심이 많나 봐요. 사실 그냥 저는 아무것도 안하고 성공하고 싶어요. (전원 웃음)
LE: 그렇다면 본인이 게으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게 혼자 할 때는 몰랐는데, 회사가 쪼다보니깐 제가 얼마나 게으른지를 알겠더라고요. 예를 들면 제가 신용카드를 만들었어요. 한도가 남아있을 때는 제가 많이 쓴 지를 모르잖아요. 그런데 한도를 초과해서 독촉장이 1,000만 원이 날라온다는 가정을 해보자고요. 그러면 X됐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깐 게으름의 척도가 딱 나왔죠. 게으름을 신용등급으로 따지면 8등급인 거죠.
LE: [LIMBO]에서는 또 원 맨 밴드 느낌으로 모든 악기를 혼자 연주한 걸로 알고 있어요. 혼자 연주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나요?
악기를 연주하고 녹음하는 건 별로 어려운 점이 없었어요. 원래 프로듀싱할 때도 하는 일이고, 연주에 대해서 예민하게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여서. 그냥 러프하게 쭉 해버렸어요. 보컬을 녹음하는 게 좀 힘들었고요. 그래도 녹음조차 할 만했는데, 가사 쓰는 게 진짜 힘들더라고요.
LE: 후반 사운드 엔지니어링 작업도 힘겨웠을 것 같아요.
제 작업환경이 믹싱을 할 때 객관적으로 들리는 환경이 아니예요. 그러다보니 믹스하고 뽑아서 에어팟으로 들어보고, 그 수치가 너무 다르니깐 에어팟으로 들은 걸 다시 고쳐보고 그랬던 거 같아요. 모니터링이 제대로 안 된다는 점? 진짜 이 정도면 완벽하다 생각하고 뽑았는데, 개판 엉망진창이더라고요. 그런 점이 믹스할 때 힘들었어요. 그리고 그런 점도 어려웠어요. 곡마다 내고 싶은 느낌을 작곡하면서도 낼 수 있지만, 믹싱에서 살릴 수 있는 부분도 되게 크잖아요? 그런 표현이 정확히 안 되는 점?
예를 들면, 제 머리에는 기타 사운드로 치면 프린스(Prince)가 있는데, 프린스의 조카에 이종사촌 뻘도 안 되는 거 같더라고요. (전원 웃음) 무슨 말인지 아시죠? 프린스는 프린스인데, 전국노래자랑에서 어르신들이 프린스 따라하는 느낌? 전국노래자랑에서 미국으로 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티켓 값이 비싸더라고요. 환율도 올랐고요. (웃음)
LE: 이번 앨범은 어떻게 보면 음원 사이트에 올라온 기존 콕재즈의 프로듀싱 곡을 들었던 이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을 거 같아요.
사실 이 음악에 충격을 받을 사람이 있을까가 의문이지만. (웃음) 제가 봤을 때는 사운드적인 면에서 공통 분모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또 봐” 때처럼 재즈가 섞인 말랑한 사운드만으로 앨범을 내야겠단 생각은 아직 없지만, 프로듀싱 앨범 같은 걸 동시에 계획하고 있긴 해요.
LE: 피처링진과 함께 한 프로듀싱 앨범을 낼 법도 한데, 자신의 목소리로 채운 솔로 앨범을 발표하셨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아까 전에 언급하셨던 자신의 바이브랑 맞아서 그런 걸까요?
저의 지금 바이브랑 맞는 것도 있는데, 너무 오랫동안 해야지 했다가 시기를 놓치다 보니깐 개인 앨범이 우선 순위가 된 거죠. 이걸 위해서 해놓은 게 많다 보니깐 우선 순위가 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제 여러가지 장르나 사운드로 제 스펙트럼이 넓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이번 [LIMBO]에서 좀 이뤄낸 것 같아요.
LE: 이제 각 수록곡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그전에 각 수록 곡에서 중점적인 포인트를 짚어주면 좋을 거 같아요.
이번 앨범 같은 경우에는 조명처럼 공간을 다르게 만드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쉽게 말해서 내 기분이나 무드를 바꿀 수 있는 앨범이란 거죠. 음악의 흐름에 맞게 기분이나 감정들이 흘러간다는 거예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귀에 팍팍 꽂히거나, 가사로 어떤 공감을 주기 보다는. 그래서 가사도 일부러 모호한 내용과 표현들이 많아요. 그런 부분들을 많이 신경을 쓰고 목적을 뒀던 거 같아요. 전체적으로는 이게 포인트고요.
“are you experienced?”는, 예를 들어서 저희가 술을 마시잖아요. 술을 마시면 기분이 너무 좋고 방방 뛸 때가 있잖아요. 그 때의 “야 한 잔 마셔!” 하면서 왁자지껄해지는 느낌. 그런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술 마시면서 회식 가지다가 2차로 노래방 갔을 때. “손에 손잡고”랑 “그대에게” 같이 듣는 느낌으로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곡인 거 같아요. 사운드적으로는 80년대 신스 팝 계통의 음악에 많이 영향을 받은 거 같아요. 예를 들면 클랩 딜레이가 있거든요. 그리고 중간에 리듬만 나오는 브레이크 파트가 있고요. 그런 디테일을 잘 들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신시사이저 소리도 그렇고요.
두 번째 곡인 “songs we loved”는, 그런 날이 있잖아요? 어느 날 느즈막하게 이불에서 딱 일어났는데. 뭔가 날도 어두침침하고, 기분도 착 가라앉고. 그 때의 그 느낌을 좀 쓴 곡이예요. 여러분들이 이 곡을 들으실 때에는 군중 속의 외로움 이런 걸 느끼셨으면 좋겠고, 다들 우울해졌으면 좋겠어요(?). 특색이라고 한다면, 드럼 질감이나 곡에 담긴 사운드가 90년대 힙합스러운 맛이 있어요. 그게 재미있는 포인트인 거 같아요. 그리고 코드가 바뀔 때 생기는 분위기 변화에도 집중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hi, summer” 같은 경우에는… 저는 사실 쫄보에요. 쫄보라서, 물질적으로나 인간관계나 뭔가 원하는 게 있을 때 강하게 먼저 다가서는 편이 아니거든요. 다가가긴 힘들지만, 그러면서도 설레이고. 자신에게 회의적이기도 하고. 그런 느낌을 담은 곡이예요. 이 곡은 전반적인 무드를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잘 보면 곡에 나오는 EP소리가 있는데, 그 소스가 특색 있고 좋거든요. 그리고 베이스 라인이 멋있어요.
LE: 방금 언급하신 대로, “are you experienced?”는 신스 때문인지 80년대 팝 음악을 듣는 듯한 인상이 강했어요. 그 때의 음악에서 느끼는 감성이 있나요?
특정 사운드나 아티스트로 따지면 잘 생각이 나진 않지만, 80년대 중 후반이 좀 그랬던 것 같아요. 그 때 음악을 들으면 세기말 느낌이 들어요. 그 때 어르신들도 그러셨을 거 같아요. “세상이 어찌 되려고...” 그런 느낌이 심하게 드는 곡이 많아요. 훵크(Funk)를 기반으로 한 사운드도 그렇고, 뉴웨이브(New Wave) 음악도 그렇고요. 80년대 오렌지 족에 대한 다큐를 본 적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압구정에서 차 끌고 여자랑 세 마디 나누면 같이 모텔이나 호텔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으로서는 상상을 할 수가 없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그 당시가 과감하고 파격적인 시대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당시가 마약 같은 이슈는 지금보다도 훨씬 많았던 거 같아요. 음악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것만 봐도 파격적인 느낌의 시대가 아니었나? 그게 음악에서도 되게 많이 나오는 거 같아요. 신시사이저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요. 실제로 그 전후로 따져보면 음악이 되게 달라요. 애시드(Acid)라는 그 단어가 부합을 하는 그 때의 사운드인거죠. 약물의 시대. 그에 걸 맞는 혼돈의 문화들.
LE: 펑크(Punk) 같은 경우에는 어떠세요?
제 음악 스타일, 마인드, 패션 모두 펑크에 받은 영향이 크죠. 그리고 80년대가 명반이 제일 많았던 시대가 아닐까요? 제 기억으로는 ‘쩐다’ 하는 앨범은 80년대, 90년대에 제일 많이 나왔던 거 같아요.
LE: 수록곡에 대해서도 한 곡 씩 이야기를 해볼게요. “are you experienced?”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The Jimi Hendrix Experience)의 데뷔 앨범 [Are You Experienced]와 타이틀이 같아요. 혹시 의도한 부분이 있나요?
전혀 없습니다. 원래 곡 제목을 “Trainspotting”으로 하려고 했었어요.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을 보면, 주인공들이 막장스러운 인생을 살거든요. 그런 느낌을 음악에서 주고 싶었어요. 저도 술로 인해 피폐해질 때가 있기 때문에, 그때의 기분을 전달하기 위해 제목을 “Trainspotting”으로 하려고 했죠. 그런데 너무 클리셰한 것 같아서, 결국에는 가사에서 따온 제목 “are you experienced?”로 바꾼 거에요. 지미 헨드릭스의 앨범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LE: 지미 헨드릭스가 아니라도, 혹시 영감을 받아 작업한 인물이 있을까요?
특정하게 있진 않구요. 흔히 말하는 유로팝(Europop) 음악을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런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특정한 아티스트가 떠오르지는 않네요. 예전에 CD를 살 때는 앨범이 몇 년 뒤에 나왔고, 트랙 수가 몇 개 있고, 트랙 순서나 그 다음 앨범까지 모든 정보가 머릿 속에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빠른 시대가 됐잖아요. 음악을 접하기가 쉽다보니까, 전반적인 느낌만 기억할 뿐 특정 아티스트를 꼽기는 힘들 것 같아요.
LE: 또, "are you experienced?"는 아레나같이 큰 장소에서 공연해도 될 듯한 웅장한 사운드가 돋보여요.
제가 영향을 받은 음악들과 시대적으로도 비슷하고, 그런 큰 홀에서 틀면 어울릴 듯한 사운드를 제가 되게 좋아해요. 큰 사운드. 점점 취향이 그쪽으로 옮겨가더라고요.
LE: 크레딧을 보니까, 가사에 제이클레프(Jclef)님, 김아일님이 참여하셨더라고요. 조금 전에 가사를 쓰는 게 어렵다고 실토하기도 하셨는데, 그렇기 때문에 따로 부탁을 드린 건가요?
네. 말씀드렸다시피, 가사를 쓰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마무리가 자꾸 안되더라고요. 아일이와 제이클레프가 가사를 마무리하는 데 큰 도움을 줬죠. 특히 “are you experienced?” 같은 곡은 어떠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지, 정확한 이야기가 있는 곡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 이미지에 대해 설명하면, 그 친구들이 작사를 해주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갔고, 나머지 곡들은 제가 써놓은 가사들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줬어요.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진짜 앨범을 못 냈을 수도 있어요. 샤라웃 투… 아, 이런 건 하지 맙시다. (전원 웃음)
LE: 그 이미지를 설명하는 방식은 어땠나요? 특정 단어를 던져준 건가요?
아주 간단하게, 전반적인 스토리만 공유했어요. 나머지는 이 친구들이 다 붙여준 거에요. ‘무중력’ 같은 경우에는 제가 생각한 이미지 중에 있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약 빤 느낌’을 내고 싶었는데,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단어였던 거죠. 공중에 떠 있는 느낌 있잖아요. 저 위에 있는 느낌. 아, 오해하지 마세요. 전 술만 마십니다. (전원 웃음)
LE: 두 번째 곡인 “songs we loved”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이 곡에서는 회한의 감정도 깊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런 감정이 실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그때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늦가을 오후 두 시쯤에 늦게 깼던 것 같아요. 낮인데도 바람이 엄청 세게 불고 있었고, 되게 어둡더라고요. 되게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그러면서 그리움이나, 고독함 같은 감정이 하루종일 저를 지배했어요. 그 느낌을 곡으로 만든 결과물이 “songs we loved”죠. 가사를 쓸 때도 그 당시의 제 하루를 기록했던 것 같아요. 하루 동안 많은 생각을 했거든요. 대상이 정해져 있는 곡은 아니에요. 친구일 수도 있고, 일, 혹은 여자일 수도 있고… 오히려 스토리보다는 감정 자체에 중점을 둔 곡이에요.
LE: 그런 감정을 뚜렷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운드도 더 신경 쓴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아까 언급한 80년대 유로 팝처럼 참고한 장르가 있나요?
90년대의 가요 같은 음악을 들으면 어떤 아련한 감성이 있잖아요. 그 당시의 사운드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을 많이 살려보려고 노력했어요. 아련한 느낌이 들 수 있게. 제가 기억하는 그 당시의 가요들은 전부 어딘가 아련했거든요. 그 느낌을 좀 살리고 싶었던 곡이지만, 한편으론 80년대 음악과도 닿아있는 것 같네요.
LE: 90년대 음악에는 아련한 감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콕재즈 씨가 생각하기엔 2010년대 음악에는 어떤 느낌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한데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패션이나 유행 같은 게 20년 주기로 돈다고.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장르들을 보면, 우리가 어릴 적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사운드의 다른 버전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역시 문화라는 건 돌고 도는 게 아닐까요? 2010년대 초에 하던 무거운 트랩을 지금 하면 되게 촌스럽잖아요. 지금 댑(Dap)을 추면 되게 촌스러운 것처럼. 그런데 20년 뒤에는 사람들이 다시 댑을 추고 있을 수도 있겠죠. 길거리에서.
LE: 마지막 곡인 “hi, summer” 같은 경우에는 영화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이 곡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500일의 썸머>를 모티브로 만든 곡은 아니에요. 어떤 대상을 원하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찌질함. 그 찌질했던 저의 감성들을 담은 곡이고요. <500일의 썸머>를 보긴 했는데, (제 곡 내용도) 썸머가 못된 사람이라는 것 빼고는 비슷한 내용 같긴 하네요. 그 영화는 보면서 진짜 열받았어요. (캐릭터들의 행동이) 이해는 되지만요.
LE: <500일의 썸머>에서도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사에서도 춤을 춘다는 내용이 있어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줄 알았거든요.
그렇게 뜻을 풀어내니까 되게 멋있는데요? 그냥 그렇다고 할까요? (전원 웃음) 앞으로 인터뷰를 하면 <500일의 썸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곡 하나 가지고도 해석하기 나름이잖아요. 그림도 도화지에 케첩 하나 찍고 예술이라면 예술인 시대에, 해석하기 나름이겠죠.
LE: 이 곡을 만들었을 당시에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다른 곡들처럼, 특정한 상황이나 감정이 영감이 됐을 것 같은데요.
작년까지 유행했던 베드룸 팝(Bedroom Pop) 이런 음악에 영향을 받은 곡인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서 가장 최근에 만든 곡이기도 하고요. 이 곡은 만들고 나서 들어보니까 누벨바그(Nouvelle Vague) 앨범이랑도 결이 맞더라고요. 그렇지 않나요?
LE: 인터뷰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이야기를 나눈 앨범 [Limbo]에 대해 본인이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 정도를 주고 싶으세요?
저는 리드머 스타일(?)로 하겠습니다. 5점 만점에 4점 줍니다. 어떤 의미의 4점이냐면, 시작을 했다는 의미에서 4점을 주고 싶고, 곡의 퀄리티로는 2점을 주고 싶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것, 제 기대치에 비해 절반 정도? 그보다 아래에 미친 것 같아서요. 이렇게 말하면 너무 자신감 없어 보이나? 아쉬운 부분들이 좀 있죠. 하지만 이런 결점도 어떻게 보면 (앨범의) 매력이라고 생각을 하고, 들었을 때는 그냥 좋지 않을까? 마지막 자존심을 부려봅니다. (웃음)
LE: 아쉬운 점도 이야기해주셨지만, 앨범을 만들면서 배운 점도 분명 있을텐데요. 뭐가 있을까요?
혼자만으론 되는 게 없다는 걸 배운 것 같아요. 프로듀싱만 해줄 때는 잘 몰랐는데, 제 이름으로 내는 앨범을 스스로 만들어보니까 그런 점을 많이 느꼈어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은둔형 성격을 좀 깰 필요가 있다는 것도 느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내 앨범을 만들 때 설정해놓는 스토리나 방향을 정리한다는 건 대단한 일인 것 같다.
LE: 본인의 이름을 걸고 내는 첫 프로젝트인 만큼, 이번 앨범으로 이루고 싶은 바가 특별히 있나요?
저와 같은 사운드를 창작하셨던 분들. 지금까지 음지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같이 양지로 올라올 때가 됐습니다. 그러니 그냥, 제 앨범을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많이 들어주시고, 엄마 아빠 계정까지 훔쳐서 돌리시고, 좋아하는 카페, 단골 카페에도 선곡해주시고. 카페에서 듣기 좋아요. 커피 두 잔 마실 돈 아끼면 저한테 만원을… (전원 웃음) 장난입니다.
LE: 혹시 앨범의 피지컬 발매 계획도 있으신가요?
CD는 안 나옵니다. 제작비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솔직히 CD라는 게, 요즘 세상에선 수익이 될 때만 만들잖아요. 전 합리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돈 안되는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웃음) 수지타산이 맞아야지. 수지도 아직 안 왔는데, 타산을 할 수 없잖아요. 앨범의 수지가 나오면 타산을 해보고, 계획을 생각해보려고요.
LE: 프로듀서로서의 콕재즈 씨는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들에 참여할까요? 앞으로의 프로듀싱 계획도 궁금한데요.
아무래도 계속 앨범 작업을 하고 있다 보니까, 프로듀싱 작업을 많이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당장은 참여한 작업이 많이 없는 상태에요. 하지만 이제 슬슬 여러 재밌는 작업에 참여할 계획은 충분히 있습니다. 계획이니까 설레발은 일단 안칠게요.
LE: 마지막 질문입니다. 2019년이 이제 4개월도 안 남았는데, 올해 남은 활동 계획은 어떻게 생각 중이세요?
곧 앨범이 또 하나 나올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을 시작으로 많은 결과물을 내고, 많은 활동을 할 것 같아요. 큰 프로젝트를 소규모로 나눠서 ‘소액 다중 투자’를 하는 거기 때문에… 그리고 많은 합작 프로젝트를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콜라보를 많이 하려고요. 크래프트앤준 소속 아티스트들과도 작업 계획이 있어요. 빠르면 올해, 늦으면 내년 초반부터 계속 나올 제 작업물을 기대해주세요.
LE: 인터뷰는 슬슬 마무리해도 될 것 같네요.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여러분, 그동안 돈 많이 모아놓으셨죠? 이젠 쓸 때가 왔습니다. 바로 저에게. (전원 웃음) 많은 기부 부탁드리고요, 이걸 시작으로 계속 활동이 있을 거니까 기대해주세요. 커밍 쑨입니다.
LE: 지금보다 더 활발해질 콕재즈 씨의 활동이 기대됩니다. 오늘 인터뷰 고생하셨습니다.
CREDIT
Editor
Geda, snobbi(녹취), JANE(녹취)
Photo
ATO
Yup.
콕재즈 형님 제 페이보릿 프로듀서 중 한 명이었습니다. 많은 작업 해주십쇼
콕재즈랑 술먹으면 진짜 웃길듯 인터뷰 보면서 계속 피식하게되네
코홀트랑 작업 좀 해요 특히 오케이션 키스에이프ㅠㅠ
진짜 재밌는 사람이네요 ㅋㅋ
이번에 나온 앨범 너무 좋음..
코홀트에 속해 있다는게 아무 의미없을정도로
본인 음악 하는사람. 멋지네요.
씹인싸행님이시네ㅋㅋㅋ
와... 이렇게 재밌는 분이셨다니...
앞으로 그간 내신 것들까지 꼼꼼하게 챙겨듣겠습니다^^!!!
이형 너무 좋아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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