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앨범을 다 듣냐?”
맞는 말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음악에 깊게 빠질 때만 해도, 앨범 하나를 다 듣고 화자의 의도와 장치를 해석해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태도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이다. 허나, 자연스레 스트리밍의 시대로 넘어오며 긴 앨범 하나를 다 듣는 행위는 괴짜들의 행위가 되었다. 이제 음반 산업은 차 안에서, 일을 하며, 게임을 하며, 음악을 틀어놓는 일반적인 청자들을 겨냥한다. 이는 싱글이 가진 힘을 더욱 키워주기 이르렀다.

“스트리밍의 시대”
21세기의 1/4을 막 넘기려 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스트리밍은 음반 산업이 벌어들이는 모든 매출 중 70%를 차지하고 있다. 부가 창출 상품의 가치가 높은 K-POP의 한국(27%)을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국가는 글로벌 평균과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 21세기가 막 시작되던 그 시기쯤, 실물 앨범이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것 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레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본인이 좋아하는 곡을 듣기 위해 앨범 전체를 구입할 필요도, 재생할 필요도 없어졌다. 이에 Musicindustryblog.com(MIB)은 2020년대를 앞두고 ‘포스트 앨범 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바뀌어 가는 감상자들의 선호를 소개한 바 있다. MIB는 이 조사 내용을 통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앨범 전체를 재생하는 감상자의 비율은 16%까지 떨어졌으며 산업이 이 흐름에 따라 변해야 한다 권고한다. 이 권고사항이 ‘바이닐의 시대로 돌아갈 실물 앨범’,’라이브 중심의 고객 경험’, ‘정규 앨범의 독점 판매’, ‘새로운 형식의 비디오 플랫폼’이라는 사실은 약 6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선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또한, Middlesex 대학의 Behnam Khodarahmi 교수는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했다. 스트리밍의 시대가 오면서 음반산업은 ‘스킵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고, ‘결국 짧은 인트로’, ‘청자를 사로잡을 첫 10초 구간’, ‘복잡하지 않으며 빨리 등장하는 후렴구’라는 단순하고 덜 독창적인 구성을 반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올 곡 구조’를 찾아낸 산업은 이 행위를 앨범 단위의 작업물에도 적용하며, 자연스레 앨범이 가진 힘을 약화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앨범을 듣는 사람들 — 충직한 군인이자, 신실한 신도”
지금 이 시점에도 앨범 전체를 감상하는 이가 있다면, 크게 두 부류일 것이다. 특정 아티스트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팬덤이거나, 스스로를 음악 애호가라고 말해도 될 만큼 깊이 있는 취향을 가진 사람들. 앞서 언급한 흐름 덕분에 앨범의 길이는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30~40분에 달하는 ‘데이터 더미’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들은 이 서로 전혀 다른 두 집단에 한정되고 있다. 창작자들은 여전히 앨범 단위 작업에 서사와 세계관을 부여하며,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공을 들인다. 스트리밍과 비디오 플랫폼의 최대 수혜자인 K-POP 아티스트들이 매 활동마다 새로운 세계관을 들고 오면서도, 팬덤이 가장 좋아하는 익숙한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버전’으로 돌아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앨범 단위의 세계관 구축은 팬덤 충성도를 높이는 핵심 장치이며, 싱글 중심 시대일수록 이러한 ‘서사가 있는 앨범’은 팬덤 내부에서 오히려 희소한 가치로 기능한다. 현재의 음반 산업에서, 강력한 팬덤은 아티스트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축이다. 도쿄대학교 공학대학원 연구진이 Last.FM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런 경향이 명확하다. K-POP의 글로벌 확산은 소수의 헤비 리스너 즉, 조직화된 팬덤층이 주도한 것이며, 이들의 트랙 재생 수는 지니 계수에서도 다른 장르를 압도할 정도로 불균등했다. 이는 소비가 대중 전체가 아닌 ‘결집된 소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수치적 증거다. 글로벌 비디오 플랫폼 VEVO의 조사 또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응답자의 96%가 자신을 특정 팬덤의 일원이라 답했으며, 이들 중 약 2/3가 아티스트 관련 제품을 구매할 의향을 보였다. 즉, 오늘날 음악 소비의 상당수는 ‘누군가의 팬’이라는 자의식과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팬덤 기반 소비는 매출과 직접적으로 결합해 움직인다. 여러 조사 결과가 일관되게 말해주듯, 음반 산업은 이미 팬덤 기반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그리고 앨범은 이 구조 속에서 더욱 전략적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K-POP의 지니계수는 타 장르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걸 돈 주고 산다고?”
해외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일부 팬들은 꽤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른바 ‘OG Screenshot’이라 불리는 거래로, 유명 아티스트들의 커리어 초기 스포티파이 프로필을 캡처한 이미지를 사고파는 방식이다. 사진 속 월간 청취자 수가 낮을수록 더 높은 가격이 매겨지며, 이 거래가 NFT적 성격을 띤 채 등장한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단발성 유행으로 치부하기엔 이미 충분한 시간이 흐른 셈이다. 이를 단순한 ‘기념품’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거래가 작동하는 핵심은 다른 데 있다. 구매자는 이를 통해 ‘음알못’으로 보이기 싫고, 동시에 ‘음잘알’처럼 인식되고 싶은 욕망을 충족한다.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고, 감상평을 남기며, 커뮤니티 안에서 호응을 얻는 자리. 그 구조 자체에 여전히 수요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결국 ‘음악을 팔짱 끼고 듣는 사람들’, 다시 말해 음악을 하나의 태도로 소비하는 이들의 수는 앞으로도 줄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거래가 활발한 Reddit에서는 지금까지도 새로운 OG Screenshot이 올라오고있다.
“그럼에도 앨범을 듣는 사람들 – 가끔 팔짱은 풀어두길”
앞서 언급한 열렬한 팬덤과 더불어, 커뮤니티에서 포저(Poser)로 몰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이들 역시, 현재의 앨범 청취 실태를 그리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팔짱 끼고 앨범을 듣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rateyourmusic.com(RYM)이나 AOTY.org의 지표는 오히려 반대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RYM은 최근 5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며, 전 세계 웹사이트 트래픽 순위 약 2000위권에 안착했다. 2025년 기준 가입자 수는 130만 명을 넘어섰고, 누적 평점 수 역시 1억 4천만 건을 돌파했다. 한때 음악 평론계의 중심에 있었던 피치포크가 이듬해 ‘유저 평론·유저 평점 시스템’ 도입을 발표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이는 음악 애호가 층의 유입과 결집이 이전보다 훨씬 또렷해졌음을 드러내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스트리밍 시대가 안정기에 접어들며, 소비자들이 단순 재생을 넘어 ‘능동적 소비’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스트리밍 환경이 만들어낸 적극적인 탐색 습관, 팬덤 중심의 소비 구조, 취향 커뮤니티 기반 플랫폼의 성장, 이 모든 요소는 서로 맞물리며 오히려 앨범 단위 감상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분명 ‘싱글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앨범이 가진 힘 역시 함께 강화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더 안심해도 된다. 우리가 좋아해왔던 방식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지속 가능한 태도라는 사실이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되고 있으니까.




w/HOM의 지지난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평소 앨범을 감상하는 형태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보충자료와 함께
써봤습니다!
오지 스크린샷이란게 있는건 처음 알았네요ㅋㅋㅋ
NFT 같기도 하구요 ㅋㅎㅋ
https://youtu.be/lwBVsT2cDoc?si=SAuu25uaSt_LZh-k
공교롭게도 어제 올라온 우키팝 님의 영상 내용과도 일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네요. 처음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제가 지금까지 읽었던 음악 관련 글 중 가장 유익한 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결론도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마음에 드는 방향일 뿐더러요. 다만 숏폼 컨텐츠와 AI라는 변수가 향후 음악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지 고려해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rym이 상승세에 있었군요 ㅋㅋ 역시 세상 모든 일은 작용과 반작용이 함께 일어나는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대 스트리밍 시대에 접어든지 꽤 많은 시간으 흐른 지금 시점에서도
자신의 에너지를 쏟으며 앨범 단위의 감상을 가지시는 분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흥미로운 글입니다 잘 읽었어요!
엘이 OG 스캇콘 NFT로 팔고 싶어졌음
잘읽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인상깊네요
제가 매일 시디피로 앨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돌려가며 듣는 사람입니다
방식이야 뭐든 앨범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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