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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악은 무슨 장르인가요?에 대하여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17시간 전조회 수 1108추천수 12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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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음악을 듣고 난 뒤 생각의 의자가 아닌 컴퓨터 의자로 엉덩이를 옮기는 글쟁이들은 세 번의 시련을 겪는다. 첫째는, 내가 이 좋은 음악을 듣고 난 뒤에 받았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예술적인 감흥과 이 감흥을 표현하기 위해 뒤적여야 할 내 언어 보따리의 모양새 사이 괴리감. 둘째는 생각하는 의자의 중요성을 무시한 덕에 인간 GPT가 되어야 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형식적인 표현과 그 음악의 유전 정보 외에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내가 들은 이 소리를 어느 한 카테고리에 국한시키는 필터링 기능의 부재. 보따리의 모양새는 내가 다룰 내용도 아니거니와 문제랍시고 쿨하게 언급한 나조차 해결하지 못했기에 넘어가면, 나머지 두 문제의 경우 진지하게, 심지어 생판 모르는 이에게 이메일까지 보내며, 고견을 구하고 다녔던 과거가 떠올라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실은 두 번째 주제에 대해 먼저 다루려 했지만, 아무래도 글쓰기의 요는 적절한 시기니만큼, 필요한 때에 하나의 의견이라도 더 얹기 위해 이 글을 먼저 쓴다. 

 

내 생각에 이 문제에 대해서 단순히 음악을 많이 들으라는 의견은 별 의미가 없는 듯하다. 음악을 많이 듣기에 이런 호기심이 생기게 되고, 음악을 많이 듣기에 이런 고민까지 닿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보완 작업 없이 무작정 음악을 많이 듣는 것으로 될 거라 생각했던 내 과거를 기억하기에, 주먹구구식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는 시간만 더 늘리는 것은 절대 추천하고 싶지가 않다. 또, 이 문제에 대해 학구열을 불태우며 공부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이가 있다면, 나의 가치관과 깊이 공명하는 느낌이라 궨스레 가슴이 따듯해진다. 누군가는 번거로움을 자처하는 이 태도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존경하고 배우는 많은 이들은 무의식적인 호기심을 의식화하여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것에 친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럼 각설하고 나의 호기심을 풀기 위해 내 스스로 내렸던 나름의 처방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이 주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는 이유는 힙합 외 장르에 대한 낯섦, 또 그냥 음악 자체가 다면화됨에 있다. 내 생각에 5년, 혹은 10년 이후면 우리가 사용하는 이 필터링 기능 자체가 골동품이 되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CHAT GPT의 압도적인 검색 기능 덕에 이전에는 몹시도 유용했던 구글의 고급 검색 기능을 활용하는 능력 자체가 무쓸모해진 느낌이랄까. 과거의 음악은, 적어도 밀레니엄 세대까지는 이 카테고리가 꽤나 명확하게 작용했다. 특히 그 장르가 힙합이라면 결국 모든 복잡하거나 파편화된 샘플도 힙합의 드럼 위로 환원되기에 더 그랬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마치 컨베이어 벨트와 같이 기계적으로 세분화하고 나눌 수 있는 그런 기준이 아니라 보다 넓고 더 뛰어난 범용성을 자랑하는 포괄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관점의 형성을 돕는 데에 내 생각에 전자음악만큼 뛰어난 장르가 없다.

 

에이셉 라키의 <Don't Be Dumb>이 당장 다음 주에 발매된다. 여느 때와 같이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앨범을 감상하는데 나의 취향과 완벽히 포개지는 곡이 하나 있다 치자. 심지어 오션과 타일러가 함께한다니. 그런데 이 "느낌"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어딘가 느슨한 기타 리프가 들리고, 저기에선 보랏빛 하늘을 연상시키는 몽롱한 신스가 흐른다. 아직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나에겐 whosampled가 있으니까. 샘플을 뒤져 보니 웬걸 어디 들어본 적도 없는 뉴에이지의 한 구다리를 잘라 피치와 템포를 조절해 루프를 만들고, 저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는 어디 60년대 고전 소울의 한 구다리, 설명하기도 어려운 저 이상한 소리는 나름 유명하다고 하는 프리 재즈의 색소폰 소리란다. 우리가 콜라주의 요소 하나하나를 뜯어다 그 정체를 까발리지 않듯, 이런 음악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콜라주" 그 자체뿐이다. 그런데 항상, 생각 외로 그 뼈대만큼은 여전하다. 이질적이고 파편성을 띠는 특성의 이 콜라주라는 개념은 시대를 초월하듯, 드럼만큼은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이 문제가 해결되어가는 느낌을 비슷한 과정에서 받았던 기억이 있다. [Back to the House]라는 책을 읽으며 한 달 내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전자음악을 들었던 그 기억. 은연중에 라키의 신곡에서 느낀 그 알 수 없는 도회적인 느낌을 - 그런 게 다음 주에 발매된다고 가정하자면, Model 500을 들었던 기억으로 이 곡의 비트에서 디트로이트 테크노를 인지하며 곡의 윤곽을 그릴 수 있다면, 전자음악에 양적인 시간을 투자하는 건 나름의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장르의 서브컬처 저 깊은 곳까지 샅샅이 핥아먹는 것이 가장 완벽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면 [Back to the House]를 구매하든 빌리든, 혹은 유튜브에서 전자음악의 역사를 간략히 훑으며 그 뿌리들을 하나하나 뽑아보든, 내 생각에 시작은 이곳이 되는 게 맞는 듯하다. 테크노, 시카고 하우스, 프렌치 하우스, 덥스텝, UK개러지 등, 어떤 작품의 박동을 인지하고 나면, 난 보통 그놈의 "느낌"을 찾기 시작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그 누구라도 어떤 곡이든 단 한 단어로 표현해낼 수 있다면, 내 시기 질투를 받고 조용히 떠나길 바란다. 나의 글에 문학적 수사가 부족한 이유는 간단하게 문학 특유의 탐미성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Blonde>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만큼 몽환적인 겨울이 떠오르고, 또 누군가의 <Big Fish Theory>에는 도심 한가운데에 놓인 듯한 느낌이 들며, 누군가의 글은 마치 현대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나에게 그런 식으로 감상과 이미지를 연결시킬 값진 능력은 없기에, 마치 재귀 함수처럼 이 음악은 어떤 음악의 느낌이 난다고 생각할 뿐이다 - 물론 억지로 쥐어짜내 어떻게든 그럴싸한 표현을 찾으려 하기에 글에서는 그런 식의 표현은 생략한다. 그런데 이 문학의 거부감에 대한 도피처가 내게 나름의 두 번째 단계를 찾도록 했다. 음악 전반에 깔린 분위기를, 그 레퍼런스를 내가 들어온 음악 카탈로그를 뒤적이며 어렴풋이 추적해 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효과적인 장르는 고전 팝과 록이었다.

 

나는 팝이 그 시대의 소리와 취향을 어느 정도는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서브컬처가 있고, 이 수많은 하위 장르들이 경합을 벌여 가능한 한 많은 청중을 사로잡은 순으로 한 계단씩 올라간다. 그렇게 정상에 오른 소수의 장르들이 POP이라는 스카우터에게 낙점되어 닳고 닳을 때까지 굴려진다. 그러니까 듣자마자 어떤 "느낌"이 오는 경우는 대부분 특정한 시대의 까다로운 취향에서 유효 범위가 가장 넓었던 팝 음악을 향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꽤 많은 이들이 <Blonde>와 <Channel Orange>에 즉각적으로 공명한 이유가 고전 팝 음악에 어느 정도 빚을 졌다면, 한때 사이버펑크의 분위기에 미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 80년대의 신스 팝 때문이었다면, 20년대의 꼭대기에 켄드릭도, 제이펙도, 타일러도 아닌 Charli XCX의 이름이 새겨진 이유는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즉각 인지하는 음악을 고전 팝에서 찾는다면, 내 생각에 작품을 만든 아티스트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은 록 음악인 듯하다. 

 

특히, 앞서 언급했듯, 이 글의 주제와 같은 의문을 가질 만큼 많은 음악을 듣는 이라면, 어쩌면 절반이 넘는 아티스트가 고전에서, 특히 록에서 본인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는 재즈와 록, 팝, 그리고 힙합까지, 네 장르의 역사를 어중간히 되짚어 보았는데, 사실상 고전 록에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할애한 만큼 그 양이 방대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록에 그리도 집착했던 본질적인 이유는, 반드시 글을 읽어야만 했던 작품의 리뷰에서는 하나같이 록이라는 단어가 빠진 적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장장 50년이 넘어가는 대중음악의 역사 동안 우리의 귀를 곧장 매료시켰던 음악은 언제나 팝이었지만, 특유의 탐미주의와 진지함이 오랜 여운을 남기고 그 여운이 얼마나 긴지 듣는 이로 하여금 기타와 전자 피아노 앞으로 발걸음을 옮길 만큼의 의지는 있는 사람들을 실제로 움직였던 음악은 대부분 록이었다 - 물론 그 반대도 있겠지. Black Country, New Road, Yves Tumor, black midi, 하다못해 본인의 림 점수를 가장 높이 견인한 작품이 네오 사이키델리아였던 Lil Yachty. [Paint it Rock]을 빌려와 록의 역사를 넘나들어 보든, 주먹구구식으로 RYM의 록 차트를 정복하든, 분위기를 넘어 작품의 레퍼런스를 가장 직접적으로 찝어낼 수 있는 방법은 이곳이 될 것 같다.

 

[Paint it Rock] 한 권과 헤드폰, 그리고 노트북과 함께 한 달 가까이를 틀어박혀 록을 듣던 그 시간이 난 아직도 소중하다. 그러나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가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나에게 한 마디를 던질 기회가 온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음악 리뷰를 많이 읽으라고 샤우팅을 칠 것 같다. 단순히 내가 감상한 작품의 깊은 이해를 위한 후처리라는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리뷰에서 어떤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언급하는 장르명은 열이면 아홉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전문성이 시험대에 올라 글의 신뢰성을 좌지우지하는 유일한 구간이기에 이곳은 글쓴이가 리뷰에서 극도로 예민하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UK개러지가 무엇인지, 그라임이 뭔지, 이놈의 네오-사이키델리아는 대체 뭔지. 단순히 이 흔적을 인지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기보다는 해당 장르가 어떤 식으로 편집되고 조립되었는지를 경험할 몇 안 되는 기회라고 한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럴싸한 글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치 영단어를 단어장에서 외우는 것보다 실제 문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는 것이 머리에 도장을 찍어버리듯 오래 남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한다.

 

나는 고전 팝과 록의 역사를 발판으로 정말 많은 리뷰를 읽어대며 필터링 기능을 다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계는 아직도 말썽이다. 물론 눈에 띄는 실수를 인지할 정도는 되기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그 학구열을 잠재웠지만, 개 고생을 했음에도 한참을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질문에 대해 단순히 음악을 많이 들으라는 답변을 할 수 없다. 내가 가장 음악을 재미있게 들었던 순간을 떠올려 보니, <Blonde>와 같은 음악을 쥐잡듯 찾아먹을 때,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내 무의식에서 떠올렸던 문제들을 의식화하여 하나하나 해결해나갈 때가 아니었나 싶다. 나의 청각적 쾌감의 잔여량이 그 끝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리니 만큼, 내 나름의 경험담과 사소한 의견 한 줄 얹는 것으로 만족할까 한다.

 


 

사실 한 절반 좀 넘게 써둔 글이었는데 갑자기, 그것도 회사에서 급발진해버리는 바람에 일은 집에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번갯불 콩 튀겨 먹듯 흘려 쓰느라 성의 없어 보이긴 해서 아쉽지만 덕분에 일을 할 때보다 시간이 한두 배는 빨리 갔네요ㅋㅋ 이제부터 그냥 집에서 일할까 봐요.

 

https://blog.naver.com/nikesfm/224140678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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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1 13시간 전

    음악을 들을수록 집착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명반이라 하는 것들이나 장르의 특징같은 것도 많이 찾아보긴 하지만 정작 저의 취향을 모르겠더군요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특히나 다양한 장르의 관심이 더욱 생겨지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13시간 전
    @곡예

    저도 이런 문제만큼 중요한 게 본인의 진실된 취향을 찾는 문제인 것 같아요.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고요.

    전 공평하게 제 순수한 취향을 만족시킬 음악 절반, 말 그대로 앎을 위한 음악 절반씩 감상했던 것 같습니다ㅋㅋ

    취향 맞는 음악만 듣다 보면 왠지 공허하고, 그렇다고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음악만 듣자니 음악과 멀어질 것 같더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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