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Little Simz - Lotus
오랜 협업자였던 인플로와의 갈등에서 출발하는 앨범은 금전 문제와 그로 인한 배신감, 무너진 신뢰를 여러 곡에 걸쳐 솔직하게 풀어내지만 이 개인적 사건들이 <Lotus>라는 공간 전체를 어둡게 잠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녀 특유의 날카롭고 리듬감 있는 가사가 개인적 이야기와 사회적 시선, 분노와 유머를 자연스럽게 엮으며, 리릭시스트로서의 능력을 뽐내보인다. 아프로비트, 포스트펑크, 소울을 넘나드는 사운드는 앨범의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면서 앨범을 한층 더 탄탄하게 매듭지어준다.

#18
Jane Remover - Revengeseekerz
본작은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변신'의 궤적이 가장 공격적이고 대중적인 형태로 응축된 앨범이다. 2024년의 싱글들 <Magic I Want U>, <Flash in the Pan>, <Dream Sequence> 에서 예고됐듯, 이 앨범은 브레이크비트 팝과 클럽 음악으로 확실히 방향을 틀며 마이애미 베이스, 그런지 훅이 신시사이즈된 브레이크다운과 정면 충돌한다. 슈게이즈, 이모, 인디 록을 탐구한 사이드 프로젝트 <Ghostholding>이 기타 중심의 슴슴한 결과물이었다면 본작은 그녀가 여태까지 일궈온 모든 창조물을 한 데 섞어놓은 결과물이다. 그녀는 이번에도 새로운 피부를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17
Chuck D - Chuck D Presents Enemy Radio: Radio Armageddon
랩이 흑인들의 CNN이라 불리던 시절, 그 최전선에 서 있던 Public Enemy의 Chuck D는 지금도 여전히 같은 자세로 마이크를 쥐고 있다. Chuck D가 보여주는 보법은 그 어떤 신예의 음악보다도 집약적이고 강력하다. Public Enemy의 일원으로서 컨셔스 랩과 폴리티컬 힙합으로 씬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그는 몇 십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열의와 목소리를 <Chuck D Presents Enemy Radio: Radio Armageddon>이라는 전신경으로 우리에게 비춰오고 있다.

#16
EsDeeKid - Rebel
뜬금없이 미디어에서 바이럴되기 시작한 Timothée Chalamet와 EsDeeKid의 동일 인물설로 EsDeeKid의 현 인기는 2025년 힙합 씬의 하반기 전체를 이 인물로 규정할 수 있을 정도로 솟아오르고 있다. 물론 이 어처구니 없는 바이럴을 떼어놓아도 그의 음악은 진실로 매력적이다. 지저분한 저크 비트와 '반항아' 기질이 돋보이는 그의 보컬을 듣노라면, 이상하게 증폭되는 쾌감에 그의 상승곡선 인기가 이해가 된다. 올해 영국 힙합의 도약에서 EsDeeKid, 혹은 Timothée Chalamet의 이름을 빼놓는 것은 송구스러운 일일 것이다.

#15
Sunmundi & Sasco - Contacting
이들의 앨범은 음악적으로는 아방가르드 재즈 랩의 극치를, 주제적으로는 현대 사회의 고통스러운 단면을 어루만진다. 현대의 차가운 접촉보다는 전통적인 접촉을 종용하는 이들의 음악은 가장 언더그라운드스럽게 자신들의 멋을 보여준다.

#14
Mary Sue & Clementi Sound Appreciation Club - Porcelain Shield, Paper Sword
본작은 싱가포르의 래퍼 Mary Sue와 재즈 밴드 Clementi Sound Appreciation Club이 함께 작업한 매우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힙합 앨범이다. 앨범은 현대 세계에서 진리와 전통, 의미와 외형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모습을 음악적으로 풀어낸다. 동남아풍 라이브 악기와 샘플이 어우러져 사운드가 매우 풍부하고 다층적일 뿐만 아니라 동남아 힙합이라는 신선한 느낌까지 부여하면서 앨범의 신비로운 정체성을 굳혔다.

#13
Ovrkast. - While The Iron Is Hot
재즈 랩, 로파이 힙합의 특성상 많이, 오래 들으면 듣는 것이 물리고 지루해지는 것이 당연지사지만, 본작은 이 단점을 인정하고 최대한 무마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곳곳에 산재한 스킷을 통해 앨범의 텁텁하고 낡은 재즈 랩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트랙들의 분량을 적게 잡은 것을 보면 그렇다. 이러한 시도에도 지루한 분위기가 소량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만, 앨범 자체와 트랙들의 완성도가 높고, 많은 피쳐링진들의 참여로 어느정도 희석되었기에 앨범의 감상 자체를 망가뜨릴 정도는 아니다. 먼지묵은 재즈 랩, 로파이 랩의 향취는 때로는 성공적으로 리스너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지만, 그 먼지가 리스너들의 재채기를 유발하는 사례가 더 많았다. 즉, 올드한 것에서 오는 거북함과 지루함을 제거하고 향수만을 부각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본작은 거의 완벽하게 수행해냈다. 그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은 결과적으로 끝내줬다.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던 전작들에 비해 더 역동감 있는 프로덕션을 보여주었고, 피쳐링진, 가사, 래핑, 뭐 하나 제쳐둘 게 없으니 말이다. 자신의 적절한 최고의 때를 맞추어 보여준 본작의 불꽃이 느리게 타오르든 빠르게 타오르든 상관 없으니, 자신의 역량을 모두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2
Deafheaven - Lonley People With Power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밴드라면 결국 자기 자신 과거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특히 메탈 씬에서의 변화는 종종 팬들의 분열이나 정통성 상실이라는 낙인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데프헤븐은 데뷔 때부터 그런 장르적 규정과 기대를 끊임없이 흔들어온 팀이다. <Lonely People with Power>는 겉으로 보면 초창기의 격렬함으로 되돌아간 듯 들릴 수 있지만, 이는 회귀와는 거리가 멀다. 이 앨범에는 지금까지의 모든 선택과 실험이 겹겹이 쌓인 결과가 담겨 있으며, 데프헤븐이 도달한 현재의 좌표를 또렷이 보여준다. 이전의 아름다웠던 결과물을 종합하여 발매한 본작이 아쉽기는 힘들었을테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11
Saba & No I.D. - From the Private Collection of Saba and No I.D.
나름 힙합의 중요한 인물들이 훑고 지나간 터전으로 기능했던 시카고의 영혼을 계승하려는 두 인물이 있다. Saba와 No I.D.다. 시카고라는 공통분모를 두고서 조우한 두 인물의 동행은 더할 나위 없이 담백하고 따뜻한 바람을 만들어냈다. No I.D.의 풍성한 샘플링과 비트, Saba의 절제된 플로우와 가사. 시카고를 빛내기에는 충분한 것들이다.

#10
Marjorie -W.C. Sinclair - Beimax Chessclub
매력적이라는 말보다는 '관능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맞겠다. 디트로이트 트랩, 클라우드 랩을 주축으로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한 본작은 다소 조잡했던 전작들에 비하면 훨씬 안정적인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 터라 더 쉽게 그의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강점은 샘플링의 활용이 상당하다는 것인데, 상술한 정제된 스타일 덕에 그의 능력이 돋보이게 되었다. 속히 '음지'라고 불리우는 앨범들 중에서는 이 앨범을 당해낼 앨범이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9
Panchiko - Ginkgo
한때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형적인 사운드는 과잉과 허세라는 이미지와 함께 평가 절하되었고, 그 흐름 속에서 많은 핵심 아티스트들은 연주의 복잡함을 유지한 채 멜로디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라디오헤드 등으로 이어지며, 프로그레시브 록을 다시 실험의 장으로 환원시켰다. 즉, 기술적 과시보다는 감각과 구조, 그리고 외부 장르의 유연한 흡수를 중시하는 음악적 태도가 자리 잡은 것이다. 노팅엄 출신의 이 밴드는 바로 그 계보 위에서 최신작 <Ginkgo>를 내놓았다. 가장 성공한 로스트웨이브라는 칭호를 받으며 씬의 소소한 호응을 받았던 이들은 이제 멜로디와 복잡성을 균형 있게 결합한 세련된 사운드에 도달했다. 힙합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들이 밴드 고유의 세계관 안에 이질감 없이 흡수되며, 결과적으로 <Ginkgo>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성취감 있는 한편이 되었다.

#8
Westside Gunn - HEELS HAVE EYES 2
웨스트사이드 건은 디스코그래피에 있어서 쭉 프로레슬링과 관련된 가사를 많이 써왔고, 더해서 앨범의 제목이나 곡명, 아트위크에도 이를 많이 활용한다. 상술한 은퇴 선언과 번복이 그의 두터운 팬층에게 피로감보다는 예술을 위한 행동이라고 간주되는 것은 웨스트사이드 건의 '프로레슬링 사랑'에서 불현듯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And Then You Pray for Me>의 씁쓸한 패배 이후, 그는 몇 차례의 은퇴 선언을 고하는가 하면, 심지어 차후 앨범 발매에 대해서 다소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허나, 만전지책을 통해 칼을 갈고 닦은 탓인지, 그는 2024년 들어 발매한 <Still Praying>과 <11>로 다시 한번 프로레슬링 씬을 엮어 자신의 포부를 드러내었고, 올해 공개한 <12>와 <Heels Have Eyes>로 다시 링 위에 당당히 올라섰다. 그렇게 해서 <Heels Have Eyes>의 후속작으로 발매한 <Heels Have Eyes 2>로 결국엔 챔피언 벨트를 거며 쥐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전작 <Heels Have Eyes>가 다섯 곡에 불과한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순간적인 긴장감을 터뜨렸다면, 이번 <Heels Have Eyes 2>는 무려 12트랙, 약 40분에 달하는 볼륨으로 웨스트사이드 건의 캐릭터와 스타일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다. 마치 링 위에서 짧은 스쿼시 매치로 상대를 찍어 누르던 악당(heel)이, 이제는 풀타임 경기라는 긴 호흡과 짜임새 좋게 매듭지어진 각본으로 관객을 매혹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랄까.

#7
MIKE - Showbiz!
필자 생각에 앱스트랙트 힙합은 참 매력적인 장르이면서도 이제는 너무나 정형화되었고, 틀에 박힌 음악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싶다. 모두가 MF DOOM, billy woods, 혹은 Earl을 꽁지 빠지게 쫓아가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재즈 풍이나 네오 붐뱁에 대충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쑤셔넣는 의미 없는 것들을 답습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세탱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물고 등장하는 아티스트들은 너무나 귀중한 보석이여라. 그중 하나는 당연 MIKE다. <Burning Desire> 시기부터 빚어온 어딘가 상쾌하면서도 진중한 비트들을 가지고서 이번에는 <Showbiz!>로 방문했다. 쇼 비즈니스라는 말처럼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극으로 구성한다. 한없이 침울해지고, 랩을 하고, 다시 리프레쉬하고. 이러한 일상적인 가사들을 쓰면서 이들을 힘없이 자백하는 듯한 그의 래핑은 신비롭고 새롭다. 뉴욕의 삶을 사는 동부 래퍼로서, 한 어머니의 아들로서, 최고의 앱스트랙트 힙합 래퍼를 꿈꾸는 MIKE로서, 그가 연기해내는 무엇이어서든 본작을 구가하는 것은 기쁠 뿐이다.

#6
Earl Sweatshirt - Live Laugh Love
우리는 앱스트랙트 힙합을 거론할 때마다, 수많은 기라성을 입에 올리고는 한다. 자, 누가 과연 앱스트랙트 힙합의 거장일까? 유구히 좋은 작품을 제시해온 MF DOOM은 당연할 것이고, 밤하늘의 닻별로 떠오른 MF DOOM과 달리 현재까지도 내로라하는 작품들을 발매하고 있는 billy woods, 언더그라운드 저 밑동에서 조용히 후배들에게 전해질 전등을 닦아오던 EL-P 등. 수많은 이들이 이 장르의 권좌에 앉아왔고, 동시에 그 터전을 가꾸어왔다. 그 터전의 시지(田地)에서 불현듯 등장한 기린아가 있었으니, 그것이 익히들 알고 있을 Earl Sweatshirt가 아니겠는가. <Live Laugh Love>는 앨범의 제목 그대로, Earl의 바람과 변화를 담은 소소한 앨범이다. 짧지만 밀도 높은 사운드 안에서 고통, 혼돈, 비애 대신에 기쁨과, 혼돈과 질서, 성스러움을 동시에 끌어안는 그는 명징적이고, 동시에 도전적인 음악을 통해 자신만의 투쟁과 그 과정에서 얻은 지혜와 환희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울렸던 그의 음악이 이제는 긍정적인 방향에서의 울림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본작은 필자에게 귀하고 감사할 뿐이다.

#5
Slayr - Half Blood
필자에게 디지코어는 참 머리 아픈 장르다. 많은 이들이 이 장르를 사랑하지만 필자는 그 매력을 당최 모르겠다. 과도하게 과장된 신스, 즉각적인 자극에만 집중한 구조, 곡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트랙을 재촉하는 조급함 탓이다. 그런 선입견 속에서 마주한 Slayr의 <Half Blood>는 흥미롭게도 필자의 그 불신을 최소한 흔들어놓는 데에는 성공한 앨범이다. 본작은 디지코어와 레이지 사운드의 전형적인 폭력성을 유지하면서도, 트랙 간 흐름과 프로덕션의 밀도로 이를 하나의 앨범 경험으로 묶어내는 시도로 앨범으로서의 정체성을 굳혔다. 또, 멜로디컬한 트랙과 에너제틱한 트랙들이 적재적소에 놓여있어 강약의 조절도 완벽하다. 어쩌면 이 앨범이 필자의 음악 취향에 분수령이 되어줄 지도 모르겠다.

#4
Geese - Getting Killed
전반적으로 <Getting Killed>는 새로운 록 사운드를 예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구현해 내는 놀랍도록 진취적인 앨범이다. Geese는 이 작품을 통해 독창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사운드로 가득 찬, 대단히 흥미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가사적으로는 청자를 어두운 영역으로 이끌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운드 자체가 무겁게 짓누르지는 않는다. Getting Killed는 Geese가 그 어떤 것도 회피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작업을 창의적이고 뚜렷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앨범은 모든 차원에서 제대로 작동한다. 세상이 불타고 있을지언정, Geese는 훌륭한 록 앨범과 함께 끝까지 맞서 싸우며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3
Freddie Gibbs & The Alchemist - Alfredo 2
전작이 이탈리아의 전통 마피아들을 그려냈다면, 이번 후속작은 동양 조직들과 연계하는 신흥 마피아들을 표현하는 느낌이다. 전작이 보여준 무겁고, 어쩌면 우울하기도 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좀 더 유연하고 고급스러운 자태를 보이는 이 앨범은 여기에 이국적인 비트를 끼얹어 일본풍의 질감까지 이끌어낸다. 두 작품 중 무엇이 더 낫냐는 논쟁은 결국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허나 분명한 건 <Alfredo 2>가 5년 전의 <Alfredo>를 압도할 만큼 생동감 있고 대담하며, 지금 이 순간 가장 빛나는 후속작이라는 사실이다.

#2
McKinley Dixon - Magic, Alive!
재즈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McKinley Dixon의 <Magic, Alive!>는 죽은 친구를 되살리기 위해 마법에 의지하는 세 소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 트랙은 서로 다른 시공간과 시점, 감정선을 가로지르며, 감상할수록 그 안에 숨겨진 세부 묘사들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Dixon은 잃어버린 유년의 순수함, 세대를 타고 흐르는 트라우마, 영성, 고난 속에서의 희망,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 마법의 본질과 같은 주제를 정교하게 담아낸다. <Magic, Alive!>가 종지부를 찍을 그 무렵, 당신은 어느새 그 어둡고도 전원적인 풍경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감각을 느끼게 될 것이다. Dixon이 품은 마법같은 어휘들과 고풍적인 미를 옆구리에 껴둔 채로 살아숨쉬는 듯한 재즈에 매몰되어보시라.

#1
billy woods - GOLLIWOG
흑인, 아프리카, 인종차별, 짐 크로우, 백색과 황색의 빛으로 점칠된 미국의 상류 사회와 그 빛의 가장 아래 매질에서 탐욕스러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불평등과 범죄의 심연. 이 요소들은 미국의 흑인 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힙합 음악—에서 흔히 다뤄져오고, 반추(反芻)되어 왔던 것들이었다. 가장 시초 격으로는 8,90년대의 Public Enemy와 N.W.A가 흑인들의 비참한 현실과 울분을 퍼덕거리고 쿵쾅대는 격렬한 생동감을 지닌 음악으로 선보였으며, 사회 비판적인 힙합 음악들은 그 후에도 크고 작은 물줄기를 거쳐, 오늘날에는 Kendrick Lamar와 언더그라운드 씬의 잔뼈 굵은 래퍼들로부터 대두된 복잡하고, 성찰적이며, 깊은 내용을 담은 음악들이 뿌리를 뻗어나가고 있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뿌리의 주근(主根)을 담당하면서도 은닉되어 있었던 뮤지션이 여기 있다.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는 인물, billy woods다. 스스로 얼굴을 감추고는, 비범함이 느껴지는 톤과 소름 돋는 필력으로 무장한 채 음악을 휘둘러대는 그는, 데뷔 이래로 지금까지 씬에서 가장 위대하고, 걸출한 음악을 분출해오던 명실상부한 명인이었다. '앨범'이라기보다는 '산문'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그는 명료하고도, 암유적인 가사로 자신의 과거와 미래, 미국이라는 거인의 기구한 몸짓의 역사를 앨범 하나하나에 집대성해왔며, 그 결과물들은 역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작품들로 남아 왔다. 예컨대, <Aethiopes>는 그의 음악적, 문학적 능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내어 보여준 최고의 앨범으로 자리잡았고, <Maps>는 일상의 소소한 요소들과 여행이라는 친숙한 소재로 뉴욕의 어두컴컴하고 일그러진 어두운 면들을 비틀어 선보였으며, <Hiding Places>는 그의 스타일을 가장 뒤틀리고 껌껌한 무대에서 가장 잘 토해낸 곳으로 남았다. 한 번, 한 번의 자취마저도 크나큰 폭풍우로 변형되어 우리를 휩쓸었던 그의 다음 여정은 오늘 소개할 <GOLLIWOG>였다.
billy woods는 이번에도 미국 흑인들의 어두컴컴한 이야기를 담아왔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반복적으로 이 주제를 다뤄왔다. 아무리 미국 흑인들의 음울하고, 끔찍한 역사, 그리고 현재가 묵직한 중압감을 지닌 서사라고 할지언정, 소재가 반복되면 그 소재가 얼마나 육중한지는 소비자들에게 하여금 그다지 큰 기여를 해주지 못하는 법이기에, 흑인 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비판도 점차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billy woods도 당연히 알고 있었고, 그는 항상 이 소모재를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신화적인 작사 능력으로 구현해 내는 공감각적인 이미지로 이를 무마해왔다. <GOLLIWOG> 역시 그러한 그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 중 하나이지만, 새로이 도입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청자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호러코어다. "Jumpscare"는 앨범의 초장부터 으스스한 분위기와 소름 끼치는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못박아놨고, "STAR87"은 공포 영화 <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올 때>의 장면을 그대로 샘플링하여 노골적으로 앨범을 공포적인 배경으로 꽉 채울 것을 예고한다. <Hiding Places>와는 결이 다른 호러코어에, 청자들은 흥미를 최대로 높이고, 공포감에서 오는 거북함과 거부감 속에서 billy woods의 가사를 곱씹으며, 앨범에 푹 빠져들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호러코어를 통한 새로운 발걸음은 실로 엄청나고, 성공적인 시도였다.
섬뜩하고 괴이한 에움길을 굽이져 걸어가다 보면, 가끔씩 등장하는 익숙한 사물들에 안도감을 느끼듯, <GOLLIWOG>에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billy woods 특유의 스타일이 직선적으로 드러나는 트랙들이 우리의 마음을 달래준다. 관능적인 색소폰 위로 그의 담담한 톤과 래핑이 두드러지는 트랙 "Misery"부터 EL-P의 여전히 뛰어난 프로듀싱이 포함된 "Corinthians", 그리고 기괴한 에움길을 모두 지나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하기 직전의 비교적 평온해진 감정이 떠오르는 앨범 막바지의 "Born Alone" - "Dislocated"까지.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GOLLIWOG> 속에도 우리가 사랑했던 billy woods의 익숙한 모습들이 잘 담겨있다는 것이다.
잔혹한 냉소를 품은 채로 우리에게 칼날 같은 단어들과 문장을 들이대왔던 그는 적개심과 암영의 실루엣으로 가득 차 있는 사운드 위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진부함을 경감시켰다. 이제 그와 비견할만한 인물이 산 자 중에서 남아있을까? MF DOOM의 정신과 실력을 모두 인계받은 듯한 그는 이제 씬에서 넘볼 자가 없는 인물로 떠오른 것이 자명하다. <GOLLIWOG>의 마지막 트랙의 제목처럼, 그는 이제 래퍼들에게 있어서 "Dislocated"한 인물이다. 얼굴 없는 전설이여, 영원하라!
<선외가작 : LUX, Ego Death At A Bachelorette Party, HYPERYOUTH, Let God Sort Em Out, EUSEXUA, Chrysalis>
올해의 아티스트

올해의 아티스트로는 고민 없이 billy woods를 선정하고 싶습니다. 일단 굵직굵직한 활동들을 나열해보자면 솔로 앨범으로는 <Aethiopes>에 버금가는 <GOLLIWOG>를 들고 왔고 Armand Hammer 활동으로는 높은 수작으로 쳐줄만한 <Mercy>까지 올해를 꽉꽉 눌러담아 활동하지 않았나 싶네요. 이외에도 Backwoodz 소속 아티스트들이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고, Panchiko의 "Shady in the Graveyard"에 뜬금포로 참여해서 좋은 모습을, 또 <Gowillog>라는 수준 높은 리믹스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그외 좋은 활동을 보여준 아티스트들 : Tyler, The Creator, Clipse, Playboi Carti, E L U C I D>
올해의 트랙 5선
https://youtu.be/Pa4cdGquSiM?si=XBDmcpCReV_1-ss5
https://youtu.be/Phh3oVCtzBg?si=Dodzn7vBFLGZ6jMx
https://youtu.be/5lDVpyjkuhE?si=9mGS9bzXFN-aUp7M
https://youtu.be/H8XPg7qqYIg?si=z5dK0bX6AY0zHBvJ
https://youtu.be/rTfhaqQS-K0?si=8mLjiGMp6oNeptsJ
<그외 좋았던 트랙들 : "Stick", "Lovr Blur", "NOKIA", "Copycats", "Valentine's Day Freestyle '25", "Strange Feeling", "Hoe Phase">




Ovrkast. 저는 조금 밋밋하더라구요. 저런 스타일 원래 좋아하는 편인데..
알케미스트는 자기복제의 끝까지 가버린 것 같은데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상관없다고 느낍니다. 여전히 잘 뱉는 엠씨들의 랩을 받쳐주기엔 무리가 없고 다른 좋은 프로듀서들도 많으니 물리면 딴 거 들었다가 잊을만하면 다시 들으면 되니까..
slayr가…얼 마이크 다 때려잡고 5위…
진짜그정도아닌데
전 좋기만 하던데
잘 읽었습니다. 취향이 잘 드러나는 리스트라서 재밌었네요. 척 디가 들어갈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판치코 앨범은 나온 줄도 잊고 있었는데 이 글을 통해 다시 생각났어요 ㅋㅋㅋ 힙합과 비힙합을 가리지 않은 것도 특이하고... 저는 단순 인상만으로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제 연말결산에는 분리해서 다뤘거든요. 그래도 GOLLIWOG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같네요. 이미 제 언어로 몇 번이나 함축한 앨범이라 한들, 기본적으로 너무나 초자연적인 앨범이다보니 타인의 해석을 보아도 그 감상이 새로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리스트에 오버캐스트 앨범이 들어간 만큼 올해의 트랙 후보에도 Small Talk이 올라갔다면 좋았을 것 같기도 하고...
고맙습니다! : )
솔직히 슬래이어는 올해 국힙 디지코어로 충분히..
슬래이어 혐오를 멈춰주세요
풀업투부산 시온 선에서 컷 ㅋㅋ
Where is lil o bro😭
half blood는 20세기 출신들이 별로라 느끼나
오히려 20세기 출신들한테 추천해줄만한 '너무 팝은 아니고 음악성도 적당하지만 기성세대한테도 너무 어렵지 않을 것 같은 디지코어 앨범' 타이틀에 제격인 것 같은데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좋았던 거 순위 매긴 건데
다들 왤케 싫어하시는지..ㅠ
아 죄송합니다 그냥 '저게 저것보다 위에 있다고?'싶은 마음에 그랬어요. 취향 존중을 잠깐 까먹었네요
Sortilège는 혹시 별로셨나요? 대충 봤을때 당연히 있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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