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hyme - PRhyme (Deluxe Version)
*풀버전은 w/HOM Vol. 29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hausofmatters.com/magazine/w-hom/#29
https://youtu.be/nhjLCPokpQI?si=mNJnP41lCRUm3Cst
* 리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어째서 [PRhyme]이라는 프로젝트를 본작 발매 1년 후에 발표된 디럭스 버전으로 다뤄야 하는지 논하고 싶다. Royce da 5'9''과 DJ Premier가 담합해 발표한 [PRhyme]은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 수준의 역량을 지닌 장인들의 협업이자 2010년대에도 골든 에라의 저력이 성립할 수 있다는 증명이었으며, 세대와 세대를 잇는 정통파들의 시대정신 — 이는 추후에 구체화해 설명된다. — 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강점이 [PRhyme (Deluxe Version)]에서 유지되고, 일정 부분에서는 강화되기까지 한다. 앨범의 걸출한 유기성에 힘입어 디럭스 트랙들은 결코 사족처럼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원작의 엔터테인먼트를 더 강력하게 제시하게 이른다. 이는 Royce와 Preemo가 그들의 힙합을 결코 상업적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뻔하디 뻔한 레프트오버 트랙들은 없다. 오직 예상치 못했던 협업, 더 강력한 벌스들, 다소 아쉬웠던 볼륨의 원작에서 견고히 나아간 연장선만이 존재할 뿐이다. 순수한 완성도로 증명되는 이들의 문화적 충성심을 의심하고 싶다면, DJ Premier가 디럭스 버전에서까지 ‘뉴에라’라고 한글로 버젓이 적힌 모자를 쓰고 있는 이유를 찾는 것이 그것보다는 더 빠를 것이다.
힙합의 역사를 논할 때 결코 제외되어선 안되는 이름들이 존재한다. 특히 프로듀서들을 언급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래퍼들에 비해 종종 조명도가 낮긴 해도, 음악 그 자체에 공헌도가 더 지대했던 것은 분명 턴테이블과 MPC의 기술사들이었다. 재즈와 소울을 해체하고 가상의 드럼킷을 현실 세계의 규율에 귀속시키며, 어느새 모니터 앞으로 그 자리를 옮겨 808과 신시사이저마저 대담하게 다루던 현대 대중음악의 혁명가들 말이다. Kanye West는 굳이 언급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당연히 나오는 이름이고, Dr. Dre 또한 분명히 그럴 것이다. Q-Tip과 J Dilla, RZA, Pete Rock 등을 모른다면 힙합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들에 앞서 가장 먼저 등장해야 하는 이름이 있다. DJ Premier. 뉴욕 붐뱁 사운드를 정립한 장본인의 고향이 정작 휴스턴이라는 사실 또한 놀랍지만, 힙합 프로듀서로서 그의 능력은 가히 만인지적에 가깝다. Preemo의 역량에 대해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이전 그가 얼마나 대단한 비트메이커인지 제시할 수 있는 필자의 한 마디 감상은 다음과 같다. — 모든 힙합 프로듀서들이 자신이 만든 비트 하나씩만을 가지고 경쟁한다면, 우승자는 DJ Premier일 것이다.
물론 Preemo만큼이나 실력 있는 협력자인 Royce da 5'9''의 역량 역시 분명 언급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힙합 명인들이 탄생했던 디트로이트에서도 Royce의 랩 스킬은 둘째가라면 서러운데, 그에게 둘째로 가라며 재촉하는 장본인이 그 Eminem이니 — Royce da 5'9''이 얼마나 훌륭한 래퍼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심지어 두 절친한 래퍼들이 Bad Meets Evil로 활동했을 때의 파괴력마저 엄청난데, Royce는 때로 Eminem과의 정면 승부에서 우위를 점하기까지 했다. 그만큼이나 탁월한 랩 테크니션으로서 — Royce의 라임 패턴은 힙합 씬에서 찾을 수 있는 종류 중 가장 정교한 편임과 동시에 빈틈없고, 그의 플로우는 긴 호흡에 비해 명료한 전달력으로 리드미컬하게 승부한다. 속도감을 겸비한 정통파로서 갖춰야 할 강점을 모두 갖춘 그의 랩이 전형적으로 들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좋은 비트라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Royce와 Preemo는 그동안 정말 좋은 호흡을 주고 받아왔다. 힙합 팬이라면 도입부만 들어도 익숙할 명곡 “Boom”부터, DJ Premier가 제작에 높은 비중으로 관여한 Royce의 2009년작 [Street Hop]까지. 그리고 [PRhyme]은 그 호흡이 마침내 앨범 단위로 실체화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이면에 숨겨진 세 번째 협력자의 존재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바로 Adrian Younge이다. LA 출신의 사이키델릭 소울 음악가인 그는 특징적인 기타 사운드로 주목받았는데, 블랙스플로이테이션 필름 <블랙 다이너마이트(Black Dynamite, 2009)>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제작하는 한편 필라델피아 소울 밴드 The Delfonics의 앨범을 총괄하기도 했다. 영화적인 분위기로 충만하면서도 잠재된 공격성이 저변에 일렁이는 특유의 프로덕션. 그런 Adrian Younge의 강점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힙합의 세계로 초대한 장본인은 Ghostface Killah였다. [Twelve Reasons to Die], 공포 영화적인 스릴이 맴도는 현대 마피오소 힙합 음반의 수작. 그것은 동시에 Adrian Younge의 능력을 힙합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Preemo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 능력에 주목했다. ‘만약 Adrian Younge의 음악만으로 비트를 만들면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까?’ 실제로 그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PRhyme]은 그러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결과물 같다.
비트 자체에 사용된 음반은 오직 3장뿐이다. [Something About April], [Black Dynamite OST], 그리고 [Adrian Younge Presents the Delfonics]. 자원의 총량에 철저히 제한을 두는 도전에서 DJ Premier가 가진 ‘편집자’로서의 능력은 되려 만발했다. Preemo 최고의 능력이 무엇인가? 샘플로 사용될 곡들로부터 범인이라면 결코 쉬이 감지해내지 못할 — 캐치함을 지닌 짧은 구절을 커팅하고 적절하게 반복시켜 최고의 루프를 창출해내는 것 아닌가? 그것만은 Kanye나 Dilla, 9th Wonder나 Hi-Tek조차 감히 견주어질 수 없는 Preemo만의 오리지널한 테크닉이다. 그의 독보적인 드럼 사운드만큼이나, 턴테이블리즘 기술은 그가 어째서 역사상 최고의 붐뱁 비트메이커로 평가받는지 체감케 하는 기예이다. 이는 Adrian Younge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도 유효하며, 가장 인상적인 연주들이 차출되어 Preemo의 고중량 드럼킷과 만나며 힙합 비트의 형태로 재정렬된다. 때문에 [PRhyme]의 프로덕션은 Adrian Younge의 밴드 사운드와 DJ Premier의 힙합 비트 사운드가 동시에 느껴지는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비록 평소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양한 Preemo의 샘플 출처에 비해 그 다양성이 축소되어 변화폭이 지나치게 좁은 한계는 존재하나, 적어도 [Moment Of Truth] 이래로 DJ Premier가 총괄한 음반 중 가장 순도 높은 힙합 음악을 담아낸 앨범이 본작임은 극명해보인다.
Marshall said that I'd be a problem if I get my shit right
That if it's probably the biggest if I ever live by
-PRhyme, “PRhyme” 中
[PRhyme] 프로덕션의 강점은 Royce da 5'9''의 노련한 랩 메이킹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다양한 결정체로 나타난다. 고작 인터루드 정도 분량의 “U Looz”에서도 Royce의 플로우는 Preemo의 터치로 공간감을 더해낸 Adrian Younge의 사이키델릭 톤의 기타 선율을 종횡무진하며, “Courtesy”에서는 능숙하게 운을 띄우다가 점진적으로 라임의 밀도를 높이며 곡의 텐션을 고조시키는 압도적인 연출을 구사한다. 가끔씩 여자들에 대해 논할 때 필요 이상으로 멍청해지는 것을 제외한다면, Royce는 시종일관 재치있는 비유법을 사용하며 그의 라인마다 해석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래퍼로서 맹위를 떨친다. 평소 의식적이고 정치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던 면모는 잠시 접어두고, 순수히 MC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 현재까지 활동하는 중견급 디트로이트 래퍼 중 단연 최고의 퍼포먼스이며, DJ Premier의 협력자로서 부족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경지이다. 이런 강점이 가장 잘 드러난 트랙은 단연 “Wishin'”이다. 앨범을 통틀어 가장 괴력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비트 체인지가 담긴 이 곡은 파괴적인 드럼 패턴에 걸맞게 Biggie의 “Kick in the Door”를 오마주하며 시작하는 Royce의 경이로운 벌스를 포함한다.
물론 PRhyme 듀오의 저력이 비단 공격적인 톤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호른 샘플과 Dwele의 소울풀한 훅이 준수한 하모니를 선사하는 “You Should Know”와 The Delfonics의 영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To Me, To You”는 분명 앨범 최고의 트랙 후보에 해당하는 곡들이다. 물론 그들에게서마저 자기과시적인 면모와 필요 이상으로 다채로운 워드플레잉은 숨길 수 없다. Preemo의 스크래치와 Royce의 오마주까지, 풍부하게 넘쳐나는 골든 에라 주역들에 대한 샤라웃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지점이 바로 힙합 정통론자들의 작품으로서 [PRhyme]의 전략이다. 때문에 게스트들의 활약도 도저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사이좋게 대마를 나눠 피다가 대선배들의 부름에 급히 달려와 특유의 광활한 어휘력을 뽐내는 Ab-Soul과 Mac Miller, Adrian Younge의 반주 위 스윙하는 재즈 색소포니스트처럼 아슬아슬한 묘기를 선보이는 Common, 은거 중 동굴에서 기어나와 종교적인 어휘를 수놓는 Jay Electronica, 이상적인 엔딩을 선사한 Slaughterhouse 멤버들까지. [PRhyme]은 세대를 막론하고 오직 최고의 실력자들만을 수용한다. 특히 그러한 면에서 “Underground Kings”는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다. 공격적인 비트 위 특유의 야성을 과시하는 ScHoolboy Q도 인상적이지만, 붐뱁 비트에서의 피쳐링이라면 괴수 수준의 활약을 선보이고 제목처럼 UGK를 샤라웃하는 Killer Mike의 벌스는 가히 압도적이다.
The golden era of recording took place in 1968 to 1973, is a time when a hard sound was raw and unrefined. This is where you could find the seeds of hip hop.
-PRhyme, “Golden Era” 中
그리고 [PRhyme (Deluxe Version)]은 본편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와 더 강력한 트랙들만을 담아낸다. 제목부터 골든 에라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Golden Era”는 음악과 가사 양면, 그리고 Joey Bada$$의 참여까지 주제의식을 완벽히 함축해 제시한다. 섣부른 평가일 수 있으나, Black Thought는 Royce da 5'9''과 Common을 완전히 압도하며 “Wishin' II”가 세상에 나왔어야만 했던 이유를 몸소 증명한다. 비트에 가하는 지배력과 어휘의 다양성 모두 과연 현존 최고 래퍼의 것이다. 하지만 “Highs and Lows”는 “Wishin' II”가 디럭스 디스크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것을 원천 방지한다. 최고의 비트, 최고의 벌스, 최고의 게스트. 특히 Royce가 자신의 분량을 감미로운 코러스에 일부 분배하면서까지 마련한 DJ Premier와 MF DOOM의 만남은 힙합 팬이라면 감격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각자만의 위치에서 독보적인 방법으로 언더그라운드 힙합 위상을 드높인 두 거장은 그 상징성에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을 보여주고, Phonte는 덤으로 DOOM 못지 않게 세련된 래핑을 소화하며 언더그라운드 역사에 영광을 부여한다. Royce와 Logic, 신구(新舊) 랩 테크니션이 7분 간 쉬지 않고 경악스러울 정도로 고난이도의 라이밍을 쏟아내는 “Mode II”까지 — [PRhyme (Deluxe Version)]은 본편에 대한 호평을 완벽히 이해한 후 개조를 가한, 훌륭한 확장판의 정석적인 예시이다.
정통파의 관점에서, [PRhyme]은 힙합 엔터테인먼트로서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작품이다. 골든 에라의 주역이 기량을 회복하고 사이키델릭 버전으로 더 강하게 귀환했고, 그 옛날 Eminem과 정면에서 호각을 다투던 디트로이트의 실력파는 근 몇 년 간 최고로 평가받을 만한 라인들을 녹음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해보자면, ‘훌륭한 비트가 훌륭한 랩을 만나면 훌륭한 힙합 앨범이 된다’는 음악적 공식을 정확히 충족해낸 음반인 것이다. 물론 [PRhyme]이 10년에 한번 나올 법한 힙합 걸작 수준은 아니다. 중용보다는 과잉에 가까운 두 주역의 역량, 유기성이 좋다 못해 유사성이 강하다는 태생적 한계, 드라마의 부재 등 냉정하게 접근할 시 결함도 충분히 존재하는 앨범이다. 하지만, DJ Premier와 Royce da 5'9''이 세기의 힙합 걸작을 제작하겠다는 의도로 [PRhyme]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단순한 재기를 넘어 문화에 활기를 불어넣고 영광의 순간을 재현하는 것, 그리고 고전 랩 애호가들에게 90년대의 노스탤지어를 개량형으로 제공하는 것. 심지어 단순히 그 순간만을 빛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10년이란 세월을 지내고도 이렇게 이국의 애호가들에게까지 기억되고 있지 않은가? 잠시 세속적인 언어를 사용해보자면 — 비트는 쩔었고, 랩도 쩔었고, 게스트들조차 쩔었다. 힙합이 그리운가? 이것은 힙합이다. P(remier), R(oyce), 그리고 Rhyme(라임). [PRhyme]이라는 제목이 이 음반의 모든 것을 함축한다.
https://youtu.be/nAZ96Xoegyc?si=DwWq6TqW2iqwc6zh
블로그: https://m.blog.naver.com/oras8384/224106018836
원래 작년에 10주년을 기념하려다가, 이 앨범은 역시 디럭스가 진국이지 싶어서 좀 미뤘습니다.
너무 강강강 느낌이라 쉽게 물리는 감은 있긴 해요.
하지만 정말 쌩랩, 쌩붐뱁을 좋아한다면 싫어하기가 어려운 앨범이죠.
특히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비트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애정하는 앨범입니다.




https://hiphople.com/music_feature/6010184
당시의 엘이 피처도 함께 보시면 재미있을 듯 해요!
저 당시 굵직한 앨범들도 많이 나왔던걸로 기억하는데
그중에서도 클래식한 붐뱁으로 정말 감탄하며 들었었던 기억이 있네요
리뷰 잘봤습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