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 먼저였던 것 같다.
내가 거부했던 음악을 모두가 떠받들고 있는 낯선 풍경,
이 기분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것이 디 안젤로와 네오 소울이었다.
휴대폰 개통을 기다리며 대리점 소파 위에서 들었던
Playa Playa의 괴상망측한 도입부가 여전히 생생하다.
조금이나마 진가를 알게 된 건 또다시 휴대폰을 바꿀 무렵이었다.
그 고유성.
한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염두에 두지 않았던 부분을 나도 모르게 되뇌게 될 때,
그 체험이 오직 한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때 나는 네오 소울이 좋아졌다.
그런 경험 또는 불가사의.
나를 계속 등 떠미는 듯한 허영심.
그때까지도 완전하게 납득할 수 없었던 '부두'라는 웅덩이.
그 놀라운 경험과 복잡한 마음을 풀어보고자 글쓰기를 결심했다.
글쓰기를 단념했다.
결심했다.
단념했다.
결심과 단념의 루프를 우유부단하게 오가는 사이,
디 안젤로는 맥스웰과 함께 밈이 돼 있었다.
앨범을 발매할 것이다.
하지 않는다.
발매할 것이다.
하지 않는다.
결국엔 하지 않았다.
2014년 12월 15일 디 안젤로가 '블랙 메시아'와 함께 돌아왔다.
'14년이나 기다릴 가치가 있었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시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생산성 없는 질문이 내 글쓰기 경력을
10년 정도 연장시켜 준 듯하다.
디 안젤로는 또 사라졌다.
한 번의 투어, 두 개의 사운드트랙, 한 번의 공연.
이게 10년 동안 그가 남긴 모든 것이다.
그리고 지난 14일,
우리에게 디 안젤로라고 알려진 마이클 유진 아처가 췌장암 투병 중에 뉴욕에서 운명했다.
그 다운 최후였다.
잊지 못할 것이다.
아무런 계획 없이 앨범 발매를 약속하는 무책임함을.
겸손한 척하지만 자신을 세기의 천재로 마케팅했던 뻔뻔함을.
사딕에게 루시 펄을 함께 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그가 벌인 셀 수 없는 기행과 구설수들을.
대다수 곡들을 함께 작사했음에도
켄드라 포스터의 앨범을 홍보해 주지 않은 인색함을.
섹스 심벌 이미지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심취하는 이중성을.
동료들마저 고개를 휘젓게 만드는 예민함을.
마지막까지 어떠한 소식도 전하지 않은 이기심을.
많은 작가들이 펜을 들어 그를 기리도록 만든 얄팍한 재능을.
30년이라는 활동 기간 동안 은총을 베풀듯 하사한 겨우 3장의 앨범들을.
모기 비행 소리 부류 중에서는 그나마 들어줄 만했던 목소리를.
음악에 관한 한 단 한 번도 타협하지 않았던,
결국 불가사의로 기억될 영원히 헤아릴 수 없는 집념들을.
나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Black Messiah>를 함께 만들어낸 더 뱅가드의 멤버들은 다음과 같다. 보컬리스트 켄드라 포스터(공동 작사가)와 저메인 홈스, 드러머 퀘스트러브와 크리스 데이브(에이미 와인하우스), 기타리스트 제시 존슨(프린스)과 이사야 샤키(패티 라벨), 베이시스트 피노 팔라디노, 트럼펫과 혼 세션 로이 하그로브.)
하나의 작품으로서 <Voodoo>가 가지는 의의를 설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앨범은 섹스 잼이다. 샤데이와 프린스도 흠잡을 데 없는 슬로 잼을 들려줬지만 그들에게 그 관능은 요소였지 전부가 아니었다. 반면 디 안젤로와 맥스웰은 각자의 방식으로 섹스 잼을ㅡ적어도 비평적으로는ㅡ인디 록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Voodoo>는 알앤비 포비아 피치포크의 2000년대 앨범 리스트에서 50위 안에 선정된 유일한 알앤비 앨범이다) 다음으로 <Voodoo>는 협업 앨범이다. 퀘스트러브부터 로이 하그로브와 제임스 포이저 그리고 피노 팔라디노에 이르기까지, 디는 본인만큼 월등한 거장들과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게 될 사운드와 질감을 창조해냈다. 그럼에도 신기한 점은 <Voodoo>가 여러 부문의 대가들이 협동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외골수의 단일한 비전을 끈질기게 세공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네오 소울이라는 개념상 명칭을 가볍게 뛰어넘어 당신의 감각을 거의 극한까지 몰아붙임으로써. <Voodoo> 이후 아이폰이 공개되고, 트위터가 탄생하고, 노래하는 래퍼들이 나타나고, 네오 소울이 점차 사장되고, 디 안젤로의 새 앨범이 더 이상 밈 역할도 하지 못할 때쯤, 돌연 <Black Messiah>가 발표됐다.
<Voodoo>가 곧게 뻗은 직선이라면, <Black Messiah>는 의도를 알 수 없는 곡선에 가까울 것이다. 그만큼 이 앨범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분명 훵크였으나, 기이한 타이밍의 브레이크 비트, 거친 기타 리프, 추상적인 작문, 익살맞으면서도 의미를 헤아릴 수 없는 구호들, 하드코어하면서도 유려한 리듬감, 환각적인 보컬 레이어링을 듣고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거라고는 <There's a Riot Goin' On>과 <Maggot Brain>이 전부였다. 또한 형식이나 서사 면에서 연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Black Messiah>는 단지 디 안젤로가 아니라 '디 안젤로와 더 뱅가드'의 작품이 됐다. 디 본인의 말처럼 동료들의 손길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 앨범을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동료들의 공로로 따지자면 <Voodoo> 앞에도 뱅가드의 이름이 새겨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Voodoo>가 외골수의 비전을 확장시켰다면, <Black Messiah>는 천상의 테크니션들이 비로소 합심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이든 펑카델릭이든 간에 위대한 훵크에는 위대한 베이시스트가 있어야 한다. 뱅가드의 부치 콜린스는 피노 팔라디노다. <Black Messiah>의 리듬 파트와 보컬 디자인에는 어딘가 즉흥적이고, 반복되고, 부산스러운 면이 있는데, 이 재기 발랄한 개성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접착시켜주는 것이 바로 피노의 베이스였다. 가령 Prayer의 드럼 스냅과 베이스는 곡이 진행되는 내내 서로 부딪치며 어딘가 어긋난 듯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튜닝되고 툭툭 끊기는 디의 보컬이 더해져 불협화음을 이루지만, 매번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어긋나는 탓에 대부분 불협화음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이는 틀림으로써 올바르게 되는 모순의 연출이며 디의 일렉 기타나 퀘스트러브의 드럼만큼 돋보이는 것이 피노의 테크닉이다. 오프닝 Ain't That Easy에서 피노는 두 번째 절이 끝난 후 박자를 바꿔 애드리브를 위한 순간을 마련해 준다. 10여 초 간 서로 기량을 뽐낸 뒤 디는 메인 루프로 돌아와 노래한다. "나의 최선을 끌어내기 위해 네 사랑이 주는 위로가 필요해." 이번에는 가상의 잠자리 상대가 아니라, 지척에서 함께 그루브를 빚어내는 동료들을 향해.
디 안젤로와 피 펑크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한 넬슨 조지는 <Black Messiah>를 <Fear of a Black Planet>의 훵크 버전이라고 평가했다. 1000 Deaths와 The Charade처럼 사운드와 정치성이 콜라주를 이루는 곡을 듣고 있으면 이런 평가는 더할 나위 없이 합당해 보인다. 그러나 내 생각에 <Black Messiah>라는 캔버스에 펼쳐져 있는 것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맹렬한 저항정신이라기보다는 엉뚱하면서도 유머감각이 있는 목회자의 설교인 것 같다. "정신이 들도록 엉덩이를 때려줘야겠어." Sugah Daddy를 뒤덮은 심술궂은 은어들을 살펴보라. 플러팅과 희롱을 오가는 노랫말이야말로 디 안젤로의 트레이드마크 아니었던가. 바로 다음 곡 Really Love는 더 가관이다. 피노의 시타르 연주와 플라멩코 악센트가 만들어내는 숭고한 앙상블 위에서 디는 처음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때로는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 아저씨처럼 흥얼거린다. 이 밖에도 The Door의 한가로운 기타 멜로디와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르는 블루스가 연상되고 러닝타임 내내 피노의 베이스와 두왑 리듬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앨범 위에서 디 안젤로는 다소 고전적인 방식으로 흑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 그러니까 나스가 랩을 하고 카이리 어빙이 드리블을 하듯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다. 그의 기타는 재즈(Betray My Heart), 훵크(1000 Deaths, Back To The Future), 사이키델릭 소울(Prayer), 플라멩코(Really Love) 등 스타일과 기법을 가리지 않고 활개치며, (헨드릭스, 에디 헤이즐, 프린스가 그러했듯) 록 기타의 뿌리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디 안젤로나 케빈 실즈(MBV) 같은 예술가는 언제나 다루기 까다로운 존재들이다. 창의성에 대한 우리의 가장 낭만적인 이론 중 하나는 '완벽주의에 매몰된 천재'다. 완벽주의에 빠져 십수 년 동안 차기작을 발표하지 않던 창작자가 마침내 오케이 사인을 내렸을 때, 우리는 그 시간에 비례하는 품질과 고뇌의 흔적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그럴싸한 이론은 도무지 현실과 들어맞지 않는다. 나는 디 안젤로와 케빈 실즈가 이 이론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게 아니라 들어맞는 인물이 이 둘뿐이기에 거론한 것이다. 그 케빈 실즈도 결국 <Loveless>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발매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Black Messiah>를 <Voodoo> 앞에 놓는 변절자들은 나날이 늘어 가는 중이다. 얼마 전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제인 로와의 인터뷰에서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진 동료들을 향해 좋은 곡이라면 완벽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선보이라는 충고를 남겼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프랭크 오션이 정확히 디 안젤로의 전철을 밟기를 희망한다. 오션이 더 이상 오렌지나 블론드 수준의 음악을 만들 수 없다면 혹은 만들 생각이 없다면, <Blonde>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다 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예술가에게는 범인들이 혀를 내두를 만한 높은 기준선과 끝내 그것을 고수하고자 하는 프로 의식이 있어야 한다,라는 식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타일러가 혼동한 것은 '완벽주의'는 아집이자 저주가 아니라, 재능이자 축복이라는 점이다. 가끔 자신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되레 괴로울 때가 있다는 아무개의 발언을 볼 때마다 코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디 안젤로가 <Black Messiah>를 녹음하면서 자신의 성향 때문에 단 한순간이라도 괴로워했을까? 천만의 말씀! 그보다 즐거웠던 적이 없을 것이다.
<Black Messiah>를 처음 들었을 때, 에릭 가너와 마이클 브라운이 한 달 텀으로 경찰에게 살해당한 일련의 사건들과 맞물려 이 앨범을 저항의 사운드트랙으로 간주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내가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새내기 대학생에서 전혀 성장하지 않았던 것 같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Black Messiah>에서는 Ain't That Easy, Really Love, Prayer 같은 사랑 노래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Voodoo>에서 나를 가장 사로잡았던 곡들도 Untitled과 One Mo'gin 같은 끈적한 러브 잼이었다. 이 노래들을 좋아한 이유는 이 노래들을 부를 때 디 안젤로가 섹시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디카프리오가 그토록 떨쳐 버리고 싶어 했던 미남 배우 이미지가 그립다고 말하는 속없는 팬들처럼, 나 또한 디가 그토록 떨쳐 버리고자 했던 섹스 심벌 이미지에 쓸데없이 집착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Another Life의 일렁이는 기타 연주와 디의 팔세토가 장막 뒤로 퇴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하게 된다. 그의 목소리, 욕망과 여유가 함께 서린 간드러지는 그 목소리는 수많은 연인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또 서로의 바지를 내리는데, 그 어떤 조언보다 도움이 됐을 것이다.

수많은 명사들의 전기가 아동기에 그들의 행로를 결정지었던 '고전'을 소개하며 막을 여는 것처럼,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그를 그렇게 만든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그 고전이 <Voodoo>였다. 15년 전 나는 이 앨범에 대한 감상을 남기기 위해 음악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나마 형식을 갖춘 평을 올리기까지 9년이 걸렸다. 그 후로도 나는 예닐곱 번 더 이 앨범에 대한 길고 짧은 소감을 작성했으며, <Voodoo>에 관해서라면 리뷰 한 편이 아니라 책 한 권을 써도 좋을 만큼 많은 정보를 소화했다. 음악에 관한 글쓰기는 그 어떤 작문과도 달라서 아무리 만전을 기한들 항상 어딘가 결여된 부분이 있으며, 나는 오래전 연을 맺은 앨범을 통해 매번 그 사실을 통감한다. 나를 컴퓨터 앞으로 끌어당긴 앨범이 <Baduizm>이나 <Urban Hang Suite>,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이 아니라 왜 하필 <Voodoo>였을까? 그것은 바로 이해할 수 없는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받아들이기 힘겨웠던 것은 특유의 농밀하고 괴이한 질감이었는데, 때때로 나를 포함한 많은 팬들은 이 독특한 질감 자체를 <Voodoo>라는 작품과 동일시한다. 디 안젤로와 몇 안 되는 그의 앨범들은 언제나 네오 소울이라는 장르의 기수처럼 간주돼 왔다. 그러나 네오 소울이 과거에서 수확한 고전의 관용구를 현대의 문법으로 재해석하는, 내가 알던 정의의 그 음악이라면, 디 안젤로의 접근은 재해석이 아니라 차라리 '분리'에 가까워 보인다. <Voodoo>는 Back to roots, 즉 뿌리 그 자체였으며,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성명과 다름없었다. (레드 불 뮤직 아카데미 강연에서 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가 네오 소울을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어요. 항상 나는 흑인음악을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이 앨범에 대한 감상은 How Does It Feel의 강렬했던 반향을 해설하는 사설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알몸의 디 안젤로가 그윽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노래를 부르는 연속된 샷들과 함께, How Does It Feel은 청중 모두에게 이 곡이 흐르는 중이거나 혹은 끝났을 때 인생 최고의 섹스가 펼쳐질 것임을 시사함으로써, 알앤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슬로 잼으로 남게 됐다. 이 곡은 <Voodoo>의 성공 동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끄럼 많고 예민한 예술가가 원치 않게 대중문화의 섹스 심벌이 되는 비극의 전조이기도 했다. 디 안젤로에게 화대라며 지폐를 던졌던 여성 관객, 복근을 펌핑하기 위해 지연된 공연, 슈퍼스타가 되기에는 너무 수줍음이 많았던 오순절교회 전도사의 아들 등, 가십거리가 많다 보니 How Does It Feel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언뜻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정말 합당할까? 극적인 케이스로 작품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그 일의 원인이나 결과처럼 느껴지게 마련이고, 무엇보다 디 안젤로 본인이 "복근으로 기억되고 싶진 않다."라며 한탄하지 않던가. 대신 나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 시인이자 래퍼인 사울 윌리엄스는 <Voodoo>의 라이너 노트에 이런 구절을 새겨 넣었다. "우리가 이 새로운 세상에 남성으로서 존재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여성스러운 것을 모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기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디 안젤로가 남성성이라는 덧없는 표상을 벗어던지는데 15년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울의 글귀는 꼭 예언적인 해방 선언문처럼 다가온다. 이처럼 완전무결한 곡이 왜 마지막 트랙이 아닌 걸까? How Does It Feel과 <Voodoo>에 오르가슴의 현시 그 이상의 것이 함축돼 있다면? 우리의 견해를 살짝 전환하는 것으로 앨범을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다면? 풀어야 할 이야기가 많다.
나는 How Does It Feel 못지않은 상징성을 가진 곡이 Devil's Pie라고 생각한다. 디 안젤로와 디제이 프리모가 피 펑크의 미학을 섬세하게 재현한 곡으로서 총 7개의 샘플이 사용됐다. 슬로 템포와 컨템퍼러리 음악의 팬들이 How Does It Feel을 듣고 아연실색했던 것처럼, 밀레니얼의 가장 걸출한 붐 뱁 비트가 디 안젤로의 앨범 속에 숨어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비단 Devil's Pie뿐만 아니라 <Voodoo>라는 작품에서 제일 눈에 띄는 악기가 바로 드럼이다. 이는 루츠의 드러머 퀘스트러브의 공으로, 그는 이 앨범의 드럼 시퀀스를 위해 소울쿼리언스의 동료였던 제이 딜라에게 조언을 구했고, 프로그래밍된 비트에도 인간다운 면모를 주입하기 위해서 완벽하게 설정된 피치를 망가뜨렸다. 그렇게 탄생한 드럼은 어딘가 엉성하고 나른하지만 한 박의 비트가 프랙털이 되어 그 스스로 거대한 리듬을 이루며, 꼭 퀘스트러브의 표현처럼, 관객들을 "불가사의한 루프 속으로" 밀어 넣는다. 또한 피노 팔라디노와 찰리 헌터 같은 테크니션들의 공헌을 빼놓을 수 없다. <Voodoo>가 마치 공연 실황을 생중계하는 것처럼 들리는 데 있어 이 둘은 디 안젤로의 고집만큼이나 큰 역할을 했다. (농담 삼아)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베이시스트가 디 안젤로의 왼손이라고 불렸던 점이나, 연주에 대한 그의 집착 때문에 하마터면 <Black Messiah>의 제작이 무산될 뻔한 점 등을 생각해 보면, 이들에 대한 디의 신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격언은 무엇보다 대중음악에 잘 들어맞는다. 숱한 뮤지션들이 일평생 자신의 데뷔 앨범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아우는 형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데, 이런 현상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Voodoo>다. (<To Pimp a Butterfly>나 <Blonde> 같은 부두 효과의 사례들을 떠올려보라) <Brown Sugar>는 '네오 소울'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 2년 전에 발매됐고, 누구나 그 속에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으며, 제아무리 감각이 무딘 사람일지라도 이것이 어떤 의도와 방향성을 갖고 제작된 창작물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Voodoo>는 그 반대다. 앨범에 참여했던 동료들은 제작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디렉션.", "절차가 없는 작업 방식.", 그리고 "어떤 테이크가 선발될지 알 수 없는 채로 진행되는 길고 긴 잼 세션." 이는 녹음 당시의 고단함을 나타내는 수사적 엄살이 아니다. 나는 '모 베터 블루스'에서 덴젤 워싱턴과 웨슬리 스나입스가 선보이던 것이 '잼 세션'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부터 이 앨범의 즉흥성을 체감했다. 검색창에 Voodoo라는 단어를 입력하기 전부터 이 끈적거리는 점성이 통상의 방식으로 창출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처럼 <Voodoo>는 정교하게 마스터링 된 음원을 통해 이 창조적 여정의 일면을 누구나 엿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Voodoo 이전의 디 안젤로라는 객관적 실재를 아득한 추억으로 만들어버린다.
<Voodoo>가 정말 굉장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평소 음악 감상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을 알앤비 애호가로 계몽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낀 연인들에게 낭만적인 정취를 선사하는 일에도 무능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배경음악을 선곡해야 할 때 그 누구도 How Does It Feel이나 One Mo'gin을 재생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수만 명의 사람들이 만듦새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데다, 알앤비 역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앨범으로 특권 의식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Kind of Blue>나 <Loveless>를 감상할 때처럼, <Voodoo>를 즐길 때는 거기에 창작자의 자의식이ㅡ때론 과하게ㅡ투영돼 있고, 어딘가 불편하고, 한 장르의 정수가 담겨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니까 일생일대의 직관을 한 장의 앨범을 만드는 데 쏟아붓고 그 결실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만끽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특권'으로 믿게 되는 그런 예술의 본보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Voodoo>는, <There's a Riot Goin' On>에 대한 밀레니얼의 응답인 걸까? 아니면 네오 소울 무브먼트의 대표작 혹은 소울쿼리언스의 유산일 수도 있고, 그저 진귀하고 녹진한 그루브일 수도 있다. 꽉 끼는 가죽바지에 상의만 탈의해 준다면 만사 오케이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디 안젤로의 막역한 벗이자 루츠와 뱅가드의 드러머이며, 이 앨범에 관해서는 디 안젤로 본인보다 더 많은 의견을 피력했을 퀘스트러브에 따르면, 그 답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나를 포함한 보통 남성들은 병무청 신검에서 측정한 신장이 평생의 키가 된다. 얼마 전 나는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키가 무려 1cm나 늘어났다는 걸 알았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동안에 내 눈높이가 지반에서 1cm나 멀어진 것이다. <Voodoo> 같은 앨범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작품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서 1cm씩 자라난다. 나는 이 앨범을 완벽하게 파악했다고 확신한 과거의 어느 순간보다 지금 더, 예닐곱 번 소감을 남겼던 시점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더, <Voodoo>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앨범을 잘 이해하게 됐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가 너무 성급했던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디 안젤로의 음악을 네오 소울로만 한정하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섹스 심벌이라는 덧없는 표상을 덮어씌우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우리의 판단을 잠시 유보할 수 있다면.", 그리고 야심한 밤 <Voodoo>가 당신을 어떤 식으로 어루만져 주었는지 떠올릴 수 있다면.




잘 읽었습니다
https://hiphople.com/fboard/24295066
Voodoo 리뷰는 이 글에 적으신 걸 그대로 재활용하셨네요. 덕분에 Voodoo에 관한 글을 쓸 때부터 Black Messiah에 대한 글을 쓰기까지 풍미를 한층 더한 톰보이님의 사유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합니다. 얼마 전 저 아름답고 애정으로 넘쳐나는 글을 재방문하고 제 글이 너무 흉해보여서 지인들에게 온갖 지랄발광을 떨고 글쓰는 걸 그만 두고 싶다고 투정부리다가 겨우 회복했는데... 이번 글은 시의적절했기 때문인지, 혹은 공감대가 많아 즐겁게 읽어냈는지 몰라도 그런 기분은 안 들었네요. 혹은 어제 재밌게 놀고 와서 그랬는지도요. 어쨌든, 피노 달라디노에 대해 한번 짚고 가주신 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네요. 크리스 락 쇼에서 한 Chicken Grease 라이브를 정말 좋아하는데, 피노의 베이스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디안젤로의 음악에 비로소 재미를 들린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가버리다니, 원망도 안 남네요. 서문에서 짚어주신 '결코 잊지 못할' 그의 성격 때문인지, 혹은 그에게서 새로운 음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아예 접고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저 그의 음악 정수와도 같은 라이브를 전 살아서 다시 보지 못할 거란 사실이 서글프게 마음 속에 그림자를 드리우기만 하네요.
책을 얼마나 많이 읽으시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나요
너무나도 뛰어난 필력을 갖고 계시네요,
디안젤로가 톰보이님한테 어떤 의미의 아티스트였는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글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글 읽을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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