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자아 인식은 <Never Enough>의 가장 선명한 궤적이다. Daniel Caesar는 이번 앨범에서 자신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상태, 불안과 흔들림 속에 드러나는 자아의 파편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사랑은 회상의 통로이자 후회의 촉발점이며, 동시에 자기 성찰을 위한 중요한 매개체다. 앨범 전체는 완결된 정체성을 제시하기보다, 불안정한 감정이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되는지 탐구하는 여정으로 다가온다.
초반부는 회상의 그림자로 시작되며, "Toronto 2014"는 포크 기타의 건조한 루프 위에 담백한 보컬을 얹어 과거의 자신을 재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향수는 곧 불안으로 변주된다. "Do You Like Me?"에서는 미니멀한 베이스와 드럼이 불확실한 관계의 긴장감을 음향으로 구현하고, "Buyer's Remorse"는 흔들리는 신스 아르페지오와 불안정한 보컬 톤으로 후회의 결을 섬세하게 짜낸다. "Shot My Baby"는 블루지한 기타 톤과 거친 드럼머신을 결합해 배신의 감정을 과장된 만화처럼 증폭시킨다.
이 불안정한 감정의 절정은 "Always"다. 피아노 건반 사이를 가로지르는 얇은 기타 레이어와, 2절부터 부상하는 스트링 패드는 70년대 소울 발라드의 현악 분위기를 디지털로 재해석한 듯 울린다. 길게 늘어진 리버브의 보컬은 'I'll be here, always'를 확고한 약속이라기보다, 잔향 속에서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는 다짐처럼 만든다. "Always (Remix)"에서는 원곡의 미니멀한 편곡 위에 Summer Walker의 벨벳 같은 보컬이 더해지며, 불안정한 독백은 상호적인 대화로 변주된다.
후반부는 불안과 취약함을 수용하는 단계다. "Pain Is Inevitable"은 악기 편성을 거의 생략하고 보컬을 전면에 배치해, 'Pain is inevitable, misery's a choice'라는 가사가 공기처럼 또렷하게 울리도록 한다. "Unstoppable"은 반복적인 드럼 패턴과 더블링된 보컬로 점진적 고조를 만들지만, 그 웅장함마저 흔들리는 다짐의 층위로 남는다. "Please Do Not Lean"에서는 'I'm unstable'이라는 자기 인식을 피아노와 로우파이 스트링 위에 각인하며 앨범의 주제를 응축한다. "Valentina (Remix)"에서는 원곡의 몽환적인 신스 위에 Rick Ross의 묵직한 중저역 랩이 얹히며, 감정의 스펙트럼을 더욱 풍성하게 확장한다.
<Never Enough>는 정체성의 완성태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불안정한 자아 인식 자체를 기록하는 실험적 작품으로 존재하며, 그 흔들림이 곧 앨범의 핵심 정서가 된다. 미세한 리버브의 꼬리, 의도적으로 비워둔 공간, 거기서만 살아나는 불완전한 보컬의 숨결—이 모든 디테일은 결핍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울려 퍼지게 한다. 그 울림 속에서 Daniel Caesar는 여전히 '찾아가는 중'임을 가장 진솔하게 드러낸다.
리뷰가 확실히 맛있네요
불안해서 좋은 앨범이에요. 뭐 하나 확고한게 없고 불안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어서 희망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결핍을 온전히 나타냈다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글 잘읽었어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사람에게 안정과 만족이란 세잎클로버 밭에서 네잎, 다섯잎 클로버 찾기가 아닐까요. . .
그걸 인정하고 자신을 믿기 시작하는 게, 자기 자신을 찾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 . .
다음 달에 나올 4집도 기대해 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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