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영웅들은 다 죽었다. 꽃이라던 90년대. 그 개화의 시기를 보낸 이들은 오늘날 많이도 사라졌다. 2016년. 검은 별이 화성으로 돌아가던 그 때가 내 마지막 기회였다. 9년 전의 난 David Bowie라는 이름조차 몰랐고 그가 죽었다는 사실 역시 몰랐다. 이젠 남은 사람이 없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오늘날 Ye의 발자취를 견디며 씨름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낀다. 어쩌면 영웅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겨를조차 없다는 사실이 영광일지도.
한때. 지금보다 국내 힙합을 열심히 들었던 때. 슈프림 팀도 모르던 어린 나는 사이먼 도미닉을 내 영웅으로 삼았다. 훤칠한 외모와 강단 있는 랩.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또랑또랑한 남자. 아는 노래는 요만큼도 없었지만 내겐 충분히 멋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멋을 채 느끼기도 전 그의 뒷모습을 봐야했다.
내 영웅이 DARKROOM이라는 앨범을 내고, 수척한 몰골과 정돈되지 않은 복장으로, 잠에 취한 채 음악과 삶의 괴리에서 죽어갈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예능 프로그램은 그 암실 이야기 속에서 웃고 떠들거리를 찾아나서기에 급급했다. 걱정 섞인 놀림거리를 찾아내며 내 영웅을 비웃고 죽여댔다.
나도 그 때 내 영웅을 죽였다. 영원할 것만 같던 영웅이 무너지는 모습은 큰 충격이었다. 어린 마음은 한동안 당신을 좇겠노라 내세워댔지만, 내 눈 앞 그 사람은 좇을 수 없었다.
나는 도망쳤다. 미워하기도 그리워하기도 하면서 도망쳤다. 다시 봤으면 좋겠다고. 그러곤 내 음악 취향이 변하며 내 우상들도 바다 건너 사람들로 바뀌었다. 만약 그 이후에, 마치 본연의 지조를 되찾은 듯한 화기엄금이라는 앨범이 나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비겁하게 오랜 영웅의 존재를 부정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전만큼 존경하진 않지만, 난 오히려 한껏 움츠러든 그 시기의 작품에만 되돌아가고 있다. 당신의 멋은 그런 고뇌와 붕괴를 거치고서야 온전히 탄생할 수 있었다고. 당신의 고통은 진심이었다고. 그걸 딛고 일어섰기에 더욱 멋있는 거라고.
다시. 지금에 이르러서, 내 영웅은 다 죽었다. 오랜 시간 사랑해왔기에 잘 아는 사람도 있고, 떵떵거릴 듯하지만 막상 잘 안다고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힙합에서 그 중 제일이 누구냐고 하면, 지금은 후자에 속하는 어떤 남자가 떠오른다. J Dilla. 어쩌다 보니 세 번을 연속으로 그 영웅에 대해 써온 셈이 됐다.
그는 내가 태어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내겐 그가 남긴 흔적을 쫓는 것만이 허락됐다. 남긴 음반, 남긴 비트, 남긴 뮤직비디오, 남긴 인터뷰, 그리고 또 무엇이든.
작품이 날 감격시키고 뒤흔들었지만, 그 안엔 풍파를 견디는 나무 한 그루처럼 우두커니 살아온 J Dilla의 철학과 가치관이 숨어들어왔다. 모두들 그의 육감적인 센스와 프로듀싱 테크닉을 칭찬하지만, 난 그런 전문 용어가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Donuts>에 가진 애정도 비슷하다. 겉으론 유작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주로 예술가가 혼을 불태워 삶에 남길 수 있는 최선의 종지부처럼 표현된다. 내겐 내용이 중요하다. 조각난 글자들을 빼면 말 한 마디가 소중한 앨범이지만, 난 그 안에서 J Dilla가 살아온 삶 전부를 담아낸 사진집을 보았다. 사랑하고 아껴온 것들, 우러러본 존재들, 함께하는 친구들, 살아온 기억들, 그 모두를 사진집처럼 흩뿌려놨다. <Donuts>는 그렇다.
이젠 그런 삶이 멋있어졌다. 그런 삶을 살고 싶어졌다. 겉치레도 모양새도 중요하지만, 언젠가 삶을 돌아봐야할 순간이 올 때, 그 때만큼은 있는 그대로를 마주하며 내 지난날에 후회 없이 미소 한 번 지을 수 있기를. 그러니 이젠 내 음악 취향이 중요하지 않다. 내 별은 저물었어도 언제나 밤하늘에 떠 있다.
내 영웅과 같은 하늘 아래 살아 숨쉰다는 건 제법 영광스러운 일이다. 몇 사람을 짚어봐도 아직 내게 그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겠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만나리라고 믿는다. 이 넓은 땅에, 내가 우러러볼 뒷모습이 단 하나도 없을리가. 아마 지금도 묵묵히 제 혼을 불태우며, 나 같은 사람이 닿을 불씨를 뿌려대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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