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래퍼 릴펌이 문득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릴펌은 나를 힙합의 길로 이어준 래퍼들 중 하나이다.
약 7-8년 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무렵 나는 빌보드 핫100 차트 듣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멜론차트 듣는거나 큰 차이는 없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팝송 차트를 줄줄 외우고 다니는 애들은 흔치 않았으니 어린 나이에 나름 힙스터 부심을 부리고 다녔던 부끄럽고도 귀여운? 과거였다.
어느 날 어김없이 20분짜리 빌보드 핫100 영상을 보던 나에게 낯설고도 괴상한 음악이 들려왔다. 자극적인 의상을 입은 여성들과 화려한 염색머리를 흔들며 구찌갱 구찌갱을 외치던 릴펌의 모습은 shape of you나 듣던 나에겐 색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시절의 기억들이 내게 강렬히 각인되어있어서 그런 것일까? 오랜만에 재생버튼을 누르고 나니 어느새 아무 생각 없이 음악에 심취해있는 초등학생 어린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중성, 작품성 따지며 논쟁을 벌이고 각자 다른 고막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의 의미없는 감정소모 따위 없었던, 순수하게 음악을 즐길 줄 알았던 그 아이..
메시지라고는 조금도 없는 릴펌의 랩을 들으면서 근심 따위 없이 묵직한 베이스에 맞춰 리듬을 타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흐느적한 플로우에 몸을 맡겨보자.
개인적인 추억을 배제하고도 나는 이 앨범이 준수한 트랩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당시엔 랩 못한다고 엄청 까였던거 같은데 날카로우면서 취해있는 듯한 톤과 절묘하게 비트에 어울리는 릴펌의 단순한 랩은 강한 중독성을 유발한다.
비트충인 나는 묵직하게 쿵쿵 울려대는 비트를 좋아한다. Rico nasty와 kenny beats의 합작처럼 트랩 메탈 사운드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앨범은 나의 트랩 취향 그 자체이다.
물론 이 앨범이 내 인생을 바꿀 정도의 임팩트를 줄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냥 신나고 싶을 때 틀고 대가리를 흔들고 싶은, 뇌 빼고 듣기 좋은 앨범이라고 마무리 지을 수 있겠다.
3.5/5
릴펌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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