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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스 Let God Sort Em Out 간단한 소감

title: Mach-Hommy온암6시간 전조회 수 1621추천수 15댓글 25

일단 랩에 대해 논하자면, 사실 2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최고의 실력을 보여준 푸샤 티와 말리스인 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잘합니다. 다만 둘 중에 누가 더 잘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말리스인 것 같네요. 애당초 푸샤 티도 일전 "클립스에서 랩을 더 잘하는 것은 형이다"라는 논조의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 전반적으로 말리스가 정말 칼을 갈고 나왔다는 인상이 느껴집니다. 물론 푸샤가 이번 앨범에서 솔로 음반만큼의 노력을 들이는 것 같진 않으나... 그럼에도 말리스의 라인들은 정말 이름값을 하는 수준입니다. 예전 클립스 음반들에서는 동생에게 살짝 밀린다는 인상은 있었는데, 나이가 들고 나니 랩이 와인처럼 잘 익었네요. 뒤에서도 얘기할 거지만 사실 앨범의 주인공 자체가 말리스로 기획된 것 같기도 합니다.

 

앨범에서 논하는 주제도 예전보다 확장되었습니다. 오프너인 The Birds Don't Sing부터 가족사의 고난을 언급하며 상당히 감동적으로 시작하고, 마약을 팔았던 과거와 현재의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비교하는 방식의 서술이 주가 됩니다. 물론 입체적인 리릭시즘과 강력한 펀치라인들로 랩에서 자신들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 과시하는 것도 잊지 않고요. 여전히 갱스터 랩, 코크 랩이긴 하지만 보다 성숙해진 관점이 돋보인달까요. 게스트들도 훌륭합니다. Chips & Whips의 켄드릭 라마는 비트를 갈기갈기 씹어먹을 것처럼 사악하게 랩하고, P.O.V.의 타일러는 성공한 팬보이답게 퍼렐과 클립스의 은총에 보답하려 하기라도 하는 듯 배고픈 신인처럼 랩합니다. 오랜 동료 앱리바와 마약 얘기가 나오자 후다닥 달려나온 스토브 갓 쿡스도 좋습니다. 나스는 랩을 너무 완벽하게 한 나머지 딱히 언급할 필요도 없고요.

 

클립스는 문제가 없습니다. 게스트들도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퍼렐입니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기대에 못 미친 것은 퍼렐인데, 문제는 퍼렐이 앨범 전체를 총괄하고 비트를 손수 프로듀싱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근 몇 년 간 퍼렐의 비트메이킹 실력이 전성기에 비해 많이 쇠퇴한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니, 그다지 놀랍진 않지만... 그럼에도 클립스의 전성기가 곧 넵튠스의 전성기였던 만큼 이번만큼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노력한 티가 나긴 합니다. 하지만 Let God Sort Em Out의 비트들은 Hell Hath No Fury는 커녕 It's Almost Dry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퍼렐의 주 장기인 강렬한 신스 사운드, 독특한 드럼셋, 그리고 돋보이는 808까지 들어갈 요소들은 모두 다 들어갔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하는 비트는 드뭅니다. 선공개된 So Be It이 고점이었고, 그것마저 다시 오리지널로 교체되기 전까지는 다른 비트들과 다를 바 없었죠. 그나마 M.T.B.T.T.F나 F.I.C.O. 같은 곡이 예전 클립스 타입의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앨범의 톤앤매너를 대표한다고 보기엔 힘듭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앨범 전반에 녹아있는 가스펠 사운드라고 생각합니다. 퍼렐이 만든 가스펠 합창단인 Voices of Fire이 참여한 곡이 많고, 대부분의 비트에 어두운 톤의 가스펠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건 퍼렐의 장기가 아닙니다. The Life of Pablo나 Donda에서 칸예가 시도한 가스펠 힙합이나 노아이디가 MICHAEL에서 다듬은 가스펠 힙합보단 훨씬 더 급진적이지만, 완성도는 낮습니다. 퍼렐의 장기는 미니멀리즘이에요. 그리고 그 단출한 구성에서 그 어느 비트메이커들과도 차원을 달리 하는 감각으로 밀고 나가는 독특한 사운드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것이 경이롭다시피 할 정도로 괴기한 드럼이었고, 그 위 다양한 악기들을 비정형적으로 사용하면 그것이 바로 넵튠스 사운드였습니다. 클립스는 그런 넵튠스 사운드를 대표하는 듀오였습니다. 하지만 Let God Sort Em Out의 경우 퍼렐의 프로덕션과 클립스의 래핑 간 화학 반응이 고순도의 결과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사실 첫 곡인 The Birds Don't Sing부터 존 레전드를 끼워넣으며 약간의 의아함을 초래하기도 했고, 지금은 교체된 So Be It Pt. II의 경우에도 원본에 비하면 현저히 고리타분한 비트로 실망감을 안겨주었죠. 저는 심지어 So Far Ahead와 By The Grace Of God에서 탄식하기까지 했습니다. 클립스의 음악에서 이토록 성스러운 가스펠이라뇨. 순간 DAYTONA의 칸예가 그리워지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By The Grace Of God의 경우에는 가스펠 비트에 뜬금없이 종교적 구원을 논하는 클립스의 가사 탓에 신파적으로까지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말리스의 영향이 큰 것으로 사료되는데, 말리스가 클립스 활동을 중지한 후 종교에 귀의했다는 사실은 유명합니다. 그 후 간간히 낸 작업물도 대부분 가스펠풍이었죠. 정황상 푸샤 티도 이번 앨범에서는 형에게 무게를 실어주기로 한 듯 보이고요. 비단 가스펠을 제쳐놓고도 앨범 최고의 순간들로 꼽는 Chains & Whips와 Chandeliers의 경우에도 켄드릭과 나스의 걸출한 벌스를 제쳐놓고 비트만 보자면 샘플 믹싱이 너무나도 어색하죠. 또 하나, 과거 클립스의 장점 중 하나는 캐치한 훅 메이킹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앨범에는 기억에 남는 훅이 하나도 없습니다.

 

랩 매니아들의 기대치나 클립스 본인들의 공격적인 프로모에 비하면 확실히 아쉬운 앨범이에요. 클립스의 이름값에 걸맞는 랩 레코드를 만들기보다는 그저 클립스의 컴백이라는 이벤트에 의의를 두는 작품처럼 들립니다. Lord Willin'이나 Hell Hath No Fury는 물론, 푸샤 티의 솔로 음반들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메인스트림 랩 씬에서는 탑급, 올해 힙합 음반 중에서는 중상위권 정도라고 평할 수 있겠네요. 절대 AOTY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이것보다 나은 랩 앨범들이 훨씬 더 많이 나왔어요.

 


 

+ 오히려 JvB 싱글들이 훨씬 더 놀랍네요. 이 백인 듀오는 매번 한계를 뛰어넘고 더 좋은 음악을 가져오는 것 같아요.

 

+ 기대했던 클립스조차 이 정도이니... 정말 메인스트림 힙합이 저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작년과 올해를 통틀어 만족할 만한 앨범을 들고 온 래퍼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7년 전에 세상을 떠난 맥 밀러가 가장 좋은 앨범을 냈다니, 참 웃긴 아이러니네요. 어쩌면 힙합에 대 언더그라운드 시대가 도래하면서 세대교체와 더불어 힙합의 인기가 자연스럽게 하락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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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5
  • title: Mach-Hommy온암Best글쓴이베스트
    7 5시간 전

    아, 그리고 곡 제목이 'Inglorious Bastards'인 주제에 가사에 한스 란다 한번을 언급 안 하는 게 너무 괘씸하네요.

  • title: Thomas BangalterDannyBBest베스트
    6 6시간 전

    클립스의 오랜 팬들이나 반길법한 어정쩡한 음악

  • 6시간 전

    힙잘알 추

  • 6시간 전

    저도 퍼렐이 문제였음

    보컬도 솔직히 약함

  • 6시간 전

    3번 트랙빼곤 다 기대이하요

  • 6시간 전

    지금 4번 정도 돌리고 있는데 랩이 너무 탁월해서 다른것들이 지금 신경 안쓰이는 것 뿐이지 구구절절 공감됩니다. 단순히 퍼렐의 폼 문제만은 아닌 것 같고 언급하신 것처럼 푸샤와 멜리스 둘의 의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애초에 1,2집에 근접할 폭력적인 수준의 힙합 클래식을 만들자는 접근은 아니었겠죠 그때와는 너무 많은게 바뀌었으니.. 저를 비롯한 장르 팬들도 이렇게 둘의 조합을 들을수만 있다면 족하다 정도의 마음으로 기다린 게 아닐지..

  • title: Mach-Hommy온암글쓴이
    5시간 전
    @포테이토칩

    접근법이 다르다고 쳐도, 이번 클립스 신보의 제작에 있어서 옛날보다 힘을 더 줬던 것 같긴 하네요. 억지로 웅장해지려는 노력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달까요.

  • title: Vince Staplestls
    6시간 전

    잘 읽었습니다

  • 1 6시간 전

    공감은 딱히 안 가지만 어떤 말씀인지 이해는 가네요.

  • 6시간 전

    랩만 두고 보면 귀가 즐겁고

    퍼렐 비트만 두고 들으면 이도저도 아닌듯한..

    글 잘 읽고갑니다

  • 비트 부분은 너무 공감 비트가 살짝 아쉽더라구요;

  • 6시간 전

    어쩌면 힙합에 대 언더그라운드 시대가 도래하면서 세대교체와 더불어 힙합의 인기가 자연스럽게 하락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게 참 공감이 되네요. 퍼렐은 진짜 보내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군요.

  • 6 6시간 전

    클립스의 오랜 팬들이나 반길법한 어정쩡한 음악

  • 6시간 전

    아직 안들어봤지만 IAD의 퍼렐 비트들은 좀 그럤음

  • 5시간 전
    @패션커쇼

    전 그때보다 더 별로...

  • title: Mach-Hommy온암글쓴이
    1 5시간 전
    @패션커쇼

    Brambleton이나 Let The Smokers Shine The Coupe 같은 곡들은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말이죠, 후반부로 갈수록 퍼렐의 힘이 아쉬워지긴 했습니다.

  • 5시간 전

    가스펠 잘만 넣으면 개맛있는데 퍼렐햄 감다뒤...차라리 돈다 칸예가 그리울지경

  • 1 5시간 전

    채드 휴고의 빈 자리

  • title: Mach-Hommy온암글쓴이
    7 5시간 전

    아, 그리고 곡 제목이 'Inglorious Bastards'인 주제에 가사에 한스 란다 한번을 언급 안 하는 게 너무 괘씸하네요.

  • 5시간 전
    @온암

    쇼샤나ㅏㅏㅏㅏㅏ

  • 5시간 전
    @온암

    ㅋㅋㅋㅋㅋㅋ

  • title: Pusha TAMW
    4시간 전
    @온암

    그 영화 이름은 Inglourious Basterds라서...

  • title: Mach-Hommy온암글쓴이
    2 3시간 전
    @AMW

    아무튼 한스 란다 가사에 쓰라고 아

  • 5시간 전

    잘 읽었습니다

  • 4시간 전

    잘 읽었습니다

  • 그래도 최근 메인스트림 랩 앨범 중에선 가장 잘 들은 것 같아요. 스타일은 푸샤티 솔로 앨범이랑 더 가깝지만, 오히려 Hell Hath No Fury의 스타일로 했으면 관심 못 받았을 느낌... 하지만 가스펠이 잘 녹여들지 못한건 인정해요. 전 푸샤티랑 노말리스의 랩이 가장 좋았어요.

  • 33분 전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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