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검색

리뷰

케빈, 지금 어디에 있어? : ARIZONA BABY Review

Xyla18시간 전조회 수 476추천수 4댓글 3

Arizona Baby - Wikipedia

짧고 직설적이지만, 밀도 높은 연결

Kevin Abstract의 ARIZONA BABY는 2019년에 발매된 그의 첫 정규 앨범이다.

그는 본작에서 속도감 있는 전개로 자신의 심연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총괄 프로듀싱은 Kevin Abstract 본인이 맡았으며, Jack Antonoff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해 앨범의 감정적 밀도를 높였다.

BROCKHAMPTON 특유의 날것의 질감 위에 Jack은 따스하고 서정적인 공간감을 더하며, 앨범 전반을 입체적으로 완성해냈다.

단순한 탑라인과 직설적인 언어로 구성된 듯 보이는 이 앨범은, 이면에 치밀한 구성과 높은 사운드 완성도로 놀라움을 자아낸다. 반복되는 훅 구조나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각 트랙의 감정선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Kevin, 지금 어디에 있어?

ARIZONA BABY에는 한국 청자에겐 낯선 지명들이 자주 등장한다.

Texas의 Corpus Christi는 Kevin의 트라우마와 정체성 혼란의 핵심 공간이다.

보수적인 교육 환경, 몰몬교 가정, 가족 간의 갈등, 그리고 성 정체성에 대한 억압이 뒤엉켜 복잡한 감정이 응축된 장소다.

반면 Georgia는 그가 BROCKHAMPTON을 결성하고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을 처음 만났던 공간으로, 일종의 정서적 회귀 욕망이 담긴 장소로 기능한다.

LA에서의 성공과 질주 이면에는 Texas에서 비롯된 상처와, Georgia에서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로 인해 더욱 증폭된 피해의식과 자괴감이 녹아 있다.

 

나아가 황량한 사막으로 대표되는 Arizona의 한가운데서 Kevin은 이 모든 것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때로는 도망치고, 때로는 폭주하며 앨범을 완주한다.

 

 

왜 이 앨범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가

첫 트랙 'Big Wheels'에서 'Joy Ride'로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브라스 사운드와 속도감 있는 코러스가 맞물리며 마치 영화의 오프닝처럼 강렬히 기능한다.

이러한 초반부는 얼터너티브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서 아날로그 악기를 통한 낯선 표현 방식을 선택하며 센세이셔널한 시작을 알린다.

특히 'Baby Boy'와 'Peach'는 Jack Antonoff의 프로덕션이 빛나는 트랙으로, 앨범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이질적인 순간이자 감정적 정점이다.

Ryan Beatty와 Dominic Fike는 피처링으로 참여해 Kevin의 이야기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그 감정을 유려하게 증폭시킨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

반면 앨범 후반부는 강한 아쉬움을 남긴다. 'Crumble', 'American Problem', 'Boyer'로 이어지는 마지막 세 트랙은 감정적 완성도나 사운드적 밀도 면에서 전반부의 긴장감을 이어가지 못한다.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마무리는 다소 급하게 수렴되는 인상을 준다. Kevin의 감정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이야기의 결말을 말하기를 꺼려하는 듯한 태도다.

그런 점에서 ARIZONA BABY는 BROCKHAMPTON이라는 그룹의 전체 커리어와도 닮아 있다.

데뷔 초반의 폭발적인 감성과 미학적 실험정신은 강렬했지만, 종국에는 여러 갈등과 미완의 감정 속에 정리되지 못한 채 해체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울어도 봤고, 웃어도 봤다. 그런데 웃는게 낫더라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도, 앨범 중반부의 트랙들은 Kevin Abstract가 왜 BROCKHAMPTON의 리더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복잡한 감정을 감각적인 프로덕션 위에 미니멀하게 실어내는 능력은, 기존 힙합과 문법을 달리하며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는 2010년대 후반 얼터너티브 힙합의 중심에서, 감정과 서사에 방점을 둔 음악으로 리스너를 설득시켰고, 그것만으로도 이 앨범은 동시대 힙합과는 전혀 다른 보편성을 획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ARIZONA BABY는 BROCKHAMPTON의 등장과 해체의 흐름과도 닮아 있다. 시작은 파격적이었고 중반까지는 강렬했다.

하지만 결말은 다소 미완의 감정을 남긴 채 정리되지 못했다. 만약 그들이 그 끝마저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 이 씬에 훨씬 굵직한 한 문장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많은 장르 팬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오히려 그들의 저력이 분명했기에 더 크게 남는다.

ARIZONA BABY는 '극복의 서사'가 아니라 '잔존하는 고통의 기록'이다.

미국 힙합 속 개인이 가진 자전성과 고백성이 이만큼 밀도 있게 녹아든 앨범은 흔치 않다.

이는 단지 한 퀴어 흑인의 이야기로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할 수 없었던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살아남는 법을 고민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앨범 커버 속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평점: 3.5/5

 

By. @sundayrecords_

신고
댓글 3
  • 1 18시간 전

    잘 읽었습니다

    케빈이 이번 신보로 Blanket의 실망스러운 행보를 극복해낼 수 잇을지가 기대됩니다

  • Xyla글쓴이
    18시간 전
    @mikgazer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티스트라 항상 기대하고 있습니다..

  • 3시간 전

    저랑 취향이 같네여 잘 읽았어요

댓글 달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아이콘] Lil Tecca, Jane Remover 등 아이콘 출시 / 6월 아이콘 ...87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25.05.23
[공지] 회원 징계 (2025.05.09) & 이용규칙 (수정)27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25.05.09
화제의 글 음악 제이콜 이 미친련 ㅋㅋㅋㅋ28 title: Heartbreak외힙른이 9시간 전
화제의 글 그림/아트웍 유명 앨범 커버들이 한국에서 발매됐다면? [pt.1]14 title: Frank Ocean - Blondelambda 18시간 전
화제의 글 리뷰 힙지식 0.01 힙뉴비의 MMLP 리뷰8 릴랩스베이비 17시간 전
리뷰 케빈, 지금 어디에 있어? : ARIZONA BABY Review3 Xyla 18시간 전
220287 음악 오늘자 앨범 감상평(똥글 가능성 100%)3 title: Frank Ocean - Blondekrap0823 18시간 전
220286 일반 로직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보단 많은 것 같은데18 title: LogicMike29 18시간 전
220285 일반 페기 더 올라온거 없음? 위험임무수당 18시간 전
220284 일반 래퍼들 노래로 브랜드 많이 알아가네요3 title: Kanye West (2)국힙은둥글다 18시간 전
220283 음악 벌써몸짓의절반을태워먹은가녀린2025년을위한26 히오스는니얼굴이다 18시간 전
220282 음악 위켄드 Hurry Up Tomorrow 앨범 어떻게 들으셨나요?9 title: 2PacSchoolgirlQ 18시간 전
220281 그림/아트웍 유명 앨범 커버들이 한국에서 발매됐다면? [pt.1]14 title: Frank Ocean - Blondelambda 18시간 전
220280 일반 733C4 W3 10V3 Y0UUUU💕2 title: Trap카티야앨범내 18시간 전
220279 음악 ginseng이 프로듀싱한 노래 추천좀 해주세요5 떨코 18시간 전
220278 일반 영떡 So much fun 디럭스 개맛있네요1 title: Kanye West (2)국힙은둥글다 18시간 전
220277 일반 배너도 바꼈어요4 title: Playboi Carti (WLR)노는아이카르티 19시간 전
220276 일반 힙x) 우왕12 title: Playboi Carti (WLR)노는아이카르티 19시간 전
220275 음악 사이키델릭 좋아함 앨범 아무거나 추천 좀6 title: Lil Yachty오션부활기원 19시간 전
220274 일반 넷플릭스에 아스트로월드 다큐 올라왔네요2 title: VULTURES 1뉴진스하니 19시간 전
220273 일반 이쁘다6 title: Jane Removermikgazer 19시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