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7seipBHTp8o
2000년대 중반, 힙합씬의 기류는 Ice Cube, Big Pun, Dr. Dre 등으로 대표되던 갱스터 랩의 퇴조와 의식 있는 가사를 뱉는 거리의 시인들의 부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데뷔 앨범 <Food & Liquor>에서 스케이트보딩을 매개로 소외된 청소년 문화를 조망했던 Lupe Fiasco, <The College Dropout>과 <Late Registration>의 자의식적이었던 Kanye West, 경찰들의 폭력과 흑인들의 해방을 위해 목소리를 내던 2인조 그룹 dead perz 등등. 힙합은 더 이상 갱스터들이 자신의 폭력성을 뽐내기 위한 문화가 아니게 된 것이었다. 젊은 나이의 의식적인 흑인들은 칩멍크 소울과 네오-소울 사운드를 무기로 삼아 사회를 향한 본인들만의 메시지를 던지곤 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Common(커먼)이 있었다. Common Sens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초기의 그는 1994년 <Resurrection>이란 이름의 걸작을 발표하며 단숨에 평단과 리스너들의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앨범의 수록곡이자 힙합 역사상 가장 중요한 트랙 중 하나로 손꼽히는 "I Used to Love H.E.R"에서 힙합 문화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한 그는 이후 Ice Cube와의 마찰을 겪었고, 해당 디스전에서 완벽한 승기를 거머쥐어 컨셔스 랩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런 그에게도 일시적인 방황과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그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했고, 그는 여전히 본인의 최고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Like Water for Chocolate>, 그리고 <Electric Circus>로 색다른 시도와 일종의 반항을 꾀했었다. 본 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작품은 바로 후자에 있다. <Electric Circus>는 재즈, 소울, 일렉트로니카를 비롯한 기타 장르들의 흡수와 당시 Erykah Badu와의 교제와 Soulquarians 크루와의 협업을 통해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실험성을 표방하고 있었으나, 그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엇갈린 평가를 마주하게 되었다. The Guardian은 본작을 힙합이 무엇인지에 관한 획기적인 청사진이라 평했고, Pitchfork는 본작을 완전히 게으르고 산만한 정체불명의 음반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비판을 마주하게 된 커먼은 <Electric Circus> 이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실험적인 음악들이 꼭 위대함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Electric Circus> 이후 3년 만에 발표된 커먼의 6번째 정규 앨범 <Be>는 흔히 회귀라는 단어로 요약되고는 한다. 허나, <Be>를 그저 단순한 컴백 앨범 남짓의 작품으로 평가한다면 그것은 분명 큰 오산일테다. <Be>는 실패의 뒤안길에서 이루어진 재정비와 자아 확립 끝에 도달한 정제된 형태의 자가 인식이었으며, 커먼이 본인의 장점이 무엇인지—그리고 힙합이라는 장르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 결과물이었다. 앞선 문단에서 언급했듯, <Electric Circus>의 실험 정신은 나름 높이 평가할만했음에도 불구하고—결국 그는 보다 미니멀하고 밀도 높은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를 다시금 써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Be>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Kanye West와 J Dilla의 프로덕션이다. Kanye의 경우 당시 <The College Dropout>, <Late Registration>을 발표하며 이미 프로듀서와 래퍼 양면의 부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본작 <Be>에서 그의 프로듀싱 역량은 커먼이라는 MC와 잘 어우러질 수 있게끔 더욱 정제되고, 또 클래식한 힙합의 정수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그 스펙트럼을 확장한 모양새다. "The Corner", "Chi-City", "Real People"에서 Kanye는 복고적인 소울 샘플링들을 전면에 내세우되, 그 곁에 박자 운용과 베이스라인의 흐름을 비롯한 여러 디테일들까지를 섬세히 조율해 배치하며 빈티지함과 트렌디함 사이의 균형을 훌륭히 잡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중에서도 "Go!"는 Kanye의 독보적인 역량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트랙이다. John Mayer와 Kanye 본인의 보컬과 간결한 피아노 루프, 그리고 강박적인 드럼 패턴을 조합해 트렌디함과 커먼 특유의 고전적인 래핑이 충돌하였고, 결과적으로 이 지점이 끝내주게 매력적으로 구현되었으니 어떠한가. Kanye의 비트는 굉장히 명료하다. <Be>에서 보여준 그의 프로듀싱이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그의 비트들이 비어있을 때는 과감하게 비워져있고, 감정적인 연출이 필요한 순간에는 거칠지 않게 사운드를 채워나가기 때문이다. Kanye의 이 명징한 프로듀싱 감각이야말로 <Be>가 현대에도 클래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렇다고 해서 Dilla의 프로듀싱 역시 무시할 것이 못 된다. Dilla가 프로덕션을 맡은 트랙들은 Kanye의 것보다 느슨하고 재즈적인 결이 돋보인다. "Love Is...", "It's Your World, Pt. 1 & Pt. 2"에서 Dilla는 특유의 스윙감과 불균형한 프로덕션의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커먼의 래핑에 맞춰 본인의 프로덕션을 훌륭하게 절제해넀다. 그의 드럼은 아주 미세하게 박자를 타고, 샘플링된 피아노와 현악기 사운드들은 한 박자 늦게 감정을 표출한다. Dilla의 손끝에서 탄생한 트랙들은 분명 Kanye의 것보다는 덜 구조화되어있고 덜 명확하지만, 오히려 그 모호함이 앨범의 트랙들을 더욱 여운 있게 만들어주었다. 결과적으로 <Be>는 두 거장의 상반된 프로듀싱 철학이 충돌하지 않고, 되려 이가 하나의 커다란 문법 아래서 공존하는 보기 드문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Be>의 빛은 순전히 Kanye와 Dilla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중앙에는 커먼의 언어가 있었다. <Be>에서 그는 다시금 시인이 되었다. 힙합이라는 문화를 여자로 의인화했던 그의 대표곡 "I Used to Love H.E.R."의 날카로운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는 본작에서 보다 성숙하고 사려 깊어진 시선으로 사랑, 미래, 현재를 비롯한 여러 복잡한 개념들을 조망한다. "The Corner"에서 그는 흑인 커뮤니티의 고단한 일상을 고발했고, "Testify"에서는 하나의 법정 드라마를 랩이라는 도구를 통해 완성했다. 커먼은 본작에서 더 이상 대의명분을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웃의 친근한 말투로, 혹은 속삭이는 어조로 우리에게 진실을 들려주었다.
앨범의 포문을 열어젖히는 "Be (Intro)"는 그야말로 현대 힙합씬의 인트로 트랙을 상징하는 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씩 등장하는 현악기 사운드와 Kanye의 간결한 비트, 반복되는 업비트 베이스 루프 위로 커먼이 읊조리듯 내뱉는 'I want to be as free as the spirits of those who left'라는 첫 문장은 <Be>가 단순히 그의 과거로의 회귀를 담은 작품이 아니라 지금보다 나은 삶을 바라는 현재의 선언임을 나타낸다. 그는 현재 본인이 살아있음을 찬미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비루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인지를 설명한다. 그것이 "Be (Intro)"가 역대 최고의 힙합 앨범 인트로 트랙 중 하나인 이유이다. "Be (Intro)"는 <Be>라는 작품을 대변하는 트랙이자, 앨범 전체의 정서적인 설계도를 제시한 상징적인 트랙이다.
이후의 트랙들에서 커먼은 명확한 주제를 갖고 앨범을 전개해 나간다. 자아, 공동체, 사랑, 신앙, 생존, 또 미래. 커먼은 이러한 여러 축들을 바탕으로 곡들을 배열하고, 각 주제에 관한 깊은 통찰을 이끌어낸다. "Faithful"에서 그는 신과의 관계에 관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Love Is..."에서는 사랑이란 감정의 덧없고도 찬란한 본질을 천천히 풀어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이 뭐냐 하면, <Be>에서 그는 특별히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거창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상적인 어휘들로 우리를 감동시킨다는 점이다. 커먼이 본작에서 보여준 리릭시즘은 마치 누군가의 일기처럼 평범한 내용이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과 표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못하다.
앨범의 전반적인 구성 역시 주목할 만하다. 11트랙, 42분이라는—당시의 기준으로는 굉장히 짧은 러닝타임을 가졌던 <Be>는 그만큼 군더더기가 없다. 각 곡은 독립적인 감정을 전달함과 동시에, 앨범의 흐름이 어수선해지는 지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두 프로듀서 Kanye와 Dilla의 치밀한 설계와 커먼의 몰입감 있는 퍼포먼스가 맞물린 결과다. 특히 마지막 트랙 "It's Your World, Pt. 1 & Pt. 2"는 아웃트로 트랙으로서의 완급 조절과 서사를 완벽히 조율해 내며, 리스너들에게 격한 감동과 여운의 도가니를 선사한다. "난 오리가 되고 싶어, 난 레슬링 선수가 될래, 난 멋진 댄서가 될 거야, 난 첫 흑인 여성 대통령이 될 거야. 이건 너의 세상이잖아'. 곡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인터루드 파트와 Bilal의 아름다운 코러스는 힙합 역사상 최고로 아름다운 순간들 중 하나로 손꼽힐만하다.
이처럼 <Be>는 어떤 커다란 혁신을 꿈꾸거나, 화려한 테크닉으로 무장한 앨범이 아니다. 오히려 커먼은 자극적인 것에서 한 걸음 물러서, 삶과 힙합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기에 <Be>가 커먼의 최고작으로 귀결되는 것은 어쩌면 극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Be>는 2000년대 초반 힙합씬의 갈림길에서 한쪽 방향을 단호하게 가리켰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커먼은 <Be>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해냈다. 힙합은 폭력의 언어나, 오락의 수단으로만 소비될 문화가 결코 아니다. 힙합은 거리의 시이자 삶의 기록이고,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언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언어가 진정성을 띨 때, 그것은 수많은 영혼들에게 안식과 위안을 선사할 수 있다. <Be>는 우리가 그 사실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준, 조용하지만 강력한 증거이다.
On w/HOM -> https://drive.google.com/file/d/1lW5GCDHRPiDDcHJdNo1rqDVjgQeCboda/view
내일이 20주년입니다.
대추
너무 좋아하는 앨범입니다...
입문작은 TPAB였지만 제가 외국 힙합을 진심으로 본격적으로 듣게 만든 앨범은 바로 이거였죠
잘 읽었습니다
한 때 정말 좋아했었던 앨범인데 오랜만에 다시 들어야겠어요
크으으으
너도 올만에 돌려야지 개추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