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뷰 이 벤 트] 궁극의 존재에게 대항하지 말지어다 - 13

13 - by Denzel Curry

장르 : 트랩

Ultimate.

덴젤 커리가 그 스스로를 자칭하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단어이자, 그의 최고의 히트곡이자 힙합 역사상 가장 큰 여파를 끼친 곡 Ultimate의 타이틀 자체이기도 하다. 얼티메이트, 즉 궁극의 존재로서 덴젤 커리는, 궁극의 존재로서 거듭나지 못한 다른 이들을 철저히 파괴하며 자신만이 유일한 강자로서 군림하는 인물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경쟁자 모두를 꺾고 자신 스스로에게 있어서 최고의 존재로 남는 것, 그것이 바로 Ultiamte의 의미이자, 그의 분신과도 같은 단어 ULT (이 문구는 Unity, Love, Trust, 즉 단일성, 사랑, 신뢰를 함축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의 가장 큰 의미이다.

이러한 그의 가치관은 그의 작품 전반적으로 나타난다. Denny Cascade, Aquarius Killer와 같은 얼터 이고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아티스트로서의 그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던 그는, 정규 2집 Imperial에 들어서며 그 스스로를 처음으로 ULT로서 명명하기 시작한다. 항상 최고로 남고자 하는 그의 가치관이 작품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만큼, 이전작에 비해 훨씬 더 공격적인 스타일이 돋보인 반면, ULT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뇌 또한 심도있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였다.

Imperial 이후 이어지는 ep 13은, 전작에서 보여준 모습에서 극도의 공격성과 프라이드만을 지닌, 말그대로 짐승과도 같은 덴젤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정신적 성찰과 고뇌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ULT라는 자신의 가치관이자 내면적 자아에 대한 진중한 고민 대신, 덴젤은 마치 야수의 흉포한 울음소리와도 같은 공격적인 메시지와 분노에 가득찬 랩을 뱉어내며, 그가 유일무이한 궁극의 존재라는 사실을 청자에게 직관적으로 각인시킨다. 전작의 심도깊은 메시지는 온데간데 없이, 덴젤의 가사에는 자신을 뛰어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끝없는 멸시와 비난, 자신의 적들에게 보내는 죽음의 경고,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프라이드와 같은, 지나치게 호전적이고 오만한 이야기들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궁극의 존재로서의 덴젤은 자신 밑에 자리하고 있는 실패자들에게 강도높은 무시의 표현들만을 계속해서 뱉어낸다.

글자로만 읽었을 때에는, 이 작품은 그저그런 평범한 트랩 앨범일 뿐이라고 생각되기에 쉽다. 전작에서는 심도깊은 메시지와 훌륭한 프로덕션의 조화를 통해 ULT라는 어구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데에 비해, 그저 오만함만을 이야기하고 프라이드만을 과시하는 이야기에 누가 쉽게 공감할수 있겠는가? 다만, 13에서 덴젤이 보여준 오만함과 과시욕은 메시지에 걸맞는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사운드와 만날때 진정한 모습을 보인다.

앨범을 재생하자마자 흘러나오는 트랙, Bloodshed에서 덴젤은, 제목 그대로 피바람과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공허한 신디사이저 기반 샘플 위에서 거칠게 울려퍼지는 베이스, 그리고 날카로운 기계음은 듣는이로 하여금 Bloodshed라는 단어를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한다. 이러한 사운드와 덴젤의 공격적인 랩은 한데 뒤섞이며, ULT라는 존재로서 덴젤이 지니는 위압감과 힘을 여과없이 나타낸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뒤의 트랙들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다음 트랙 Hate Government에서는 찢어질듯한 신디사이저 비트 위에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Equalizer에서는 Ronny J와 함께 이퀄라이저 기관총과도 같이 끊이지 않는 공격을, Heartless에서는 잔인할정도로 차디찬 그의 이성에 대한 울부짖음을 보여주며, 덴젤은 진중하고 장엄한 ULT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잔혹하고 압도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작품의 끝에 자리하고 있는 Zeltron 6 Billion에 들어서서는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야성적인 비트 위에서, 그의 스승 Lil Ugly Mane과 함께 적들에게 순수한 두려움와 ULT에 대한 공포를 선사한다. 이러한 공격적인 사운드와 호전적인 비트들은 ULT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가사와 한데 어우러지며, 덴젤이 말하고자 한 ULT의 또다른 이면을 청자들의 뇌리에 각인시킨다.

13에서 보여준 공격적인 그의 모습은 단순히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후에 발매된 그의 정규작들 TA13OO, ZUU, KOTMS2에서는 13에서 그가 보인 호전적인 모습들이 한층 더 심화된 상태로 나타난다. MMESYF에서의 진중하고 자기성찰적인 모습을 제외하면, 그의 정규작들 대부분에서는 궁극의 존재일때 뿐만 아니라 인간 덴젤 커리가 지니고 있는 내면의 분노와 고뇌를 날카롭고 공격적인 사운드와 함께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직관적인 연결점이 있다고 보기에는 힘들지만, 13에서 시작된 덴젤의 공격적인 스타일이 후의 작품들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확인할수 있는 사실이다. 그의 스타일 변화가 결정적으로 나타나게 된 기반은, 13에서 그가 보여준 맹수와도 같은 흉포한 모습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비록 정규작도 아닌 짧은 ep라고 해도, 13이 지니고 있었던 잠재력, 그리고 이 작품이 담고있는 ULT의 오만하고 호전적인 이면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것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