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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TBS 듣고서 감상

title: Kendrick Lamar (4)nomnomcat2025.03.09 16:03조회 수 299추천수 11댓글 4

제가 한국어가 딸려서 긴 글은 일부러 잘 안 쓰려고 했는데 주듣앨 감상 쓰면서 간단하게 몇줄 쓰려다가 이것만 너무 길어져서 따로 올립니다. 진짜 제가 느낀 점을 쓴거지 비평과는 거리가 멀어서 리뷰보다는 말그대로 감상문처럼 봐주세요. 일부러 자세한 내용은 안 썼지만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불편하신 분은 넘어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나는 힙합에 크게 관심이 없을 때부터 켄드릭은 (유명한 것만) 들었을 정도로 켄드릭 라마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현재 최애 래퍼 중에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MMTBS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몇 개만 들어본 트랙들이 듣기 너무 감정적으로 힘들어서 그랬는데 그래도 언젠가는 들어야지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번에 용기를 내 들어보았다. 전체적인 감상은 사운드가 지루하다는 평을 들었는데 한두 곡 말고는 별로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화려한 비트는 몇 없기는 하지만 나는 이 앨범의 피아노 라인들이 참 좋다. 이 앨범에서 다루는 소재는 여럿이 있지만 그 중에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얘기하고자 한다.


몇몇 곡만 추려서 보자면 Father Time을 들었을 땐 나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가 떠오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관심과 사랑을 추구하는 아이, 그런 어린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아빠가 아닌 군림하는 아버지, 그런 환경에서 사랑을 거부하고 상처받지 않겠다며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어른으로 성장한 아이. 모든 사람은 개인의 역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많은 경우 그 상처는 우리가 정확하게 기억도 못할 어릴 적부터 비롯된다. 이런 가족과 관계의 이야기가 이 앨범에서 주를 이룬다.


We Cry Together는 사실 처음 들었을 땐 솔직히 좀 웃기다는 감상이었다. 뭐 그냥 순전히 욕하고 싸우는 내용을 노래로 냈으니...그런데 앨범을 들으면서 맥락과 함께 들으니 내가 살면서 봐온 수많은 관계들이 스쳐가며 너무나도 먹먹해졌다. 마지막에 싸움을 멈추고 관계를 하며 "화해"하는 듯 하지만 결국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고 자기 할 말만 하고 제대로 된 대화는 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위트니의 독백, 빙빙 돌리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얘기하라고 한다 (stop tap dancing around the conversation). 상대방을 듣지 않고 이해하려도 하지 않고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도 않으며 소리만 지르는 이상 이 싸움의 굴레는 계속될 것이고 매번 어물쩍 화해하는 척 넘어가기만 할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소통의 부재는 부부의 대화방식에서 다시 나타나고 그의 자식들은 그걸 보며 자라간다.


Auntie Diaries는 내가 이 앨범을 들으면서 두번째로 눈물을 흘린 부분이었다. 단조로운 비트 위에서 담담하게 뱉어내는 스토리텔링은 너무나도 솔직했고 너무나도 사적이었다. 한 사람이 사람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성숙해지는 과정이 자신에 대한 포장 하나 없이 쓰여있고 나는 그게 참 좋았다. 곡의 끝에서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얘기하며 비트가 점점 소리가 커지는 부분은 너무나도 벅찼다. 이렇게 감정을 끌어올려놓고 다음 트랙인 Mr Morale로 넘어갔을 때 나오는 거친 숨소리와 비트는 이미 몰입된 상태에서 극도로 불안한 감정을 안겨줬고 참으로 불편하면서도 극적인 경험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눈물이 터진 건 Mother I Sober인데 앞서서 눈물이 맺히긴 했지만 그래도 참을만했던 것이 여기서 폭발했다. 여기서 깊게 들어가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이 앨범에서 켄드릭이 다루는 소재 중에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고 위로가 되는 부분이 아주 많았다. 트라우마를 물림 받고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이리저리 치이는 아이, 그걸 내 자식에게 물려주진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불완전한 어른. 하지만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계속되는 상처의 굴레의 저주를 끊는 첫걸음이다. 마지막에 위트니와 딸 우지의 대화가 인상깊다. 넌 해냈어.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켄드릭에게 하는 말이지만 마치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나잇값을 못 할 때도 있고 절대 엄마 아빠처럼은 크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 그들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는 이기적이고 고집이 세다. 마음에 안 드는게 있으면 본능적으로 화부터 난다. 하지만 이것을 인정하고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말 한마디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려하고 화가 나면 일단 한 발자국 멀어져서 정말 그럴만한 일인가 생각해 본다. 상담도 받아봤다. 누구에게도 인정하지 않았던 나의 단점을 몇시간에 걸쳐 털어놓으며 내 삶을 돌아봤다.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 나의 부모의 부모. 나의 부모의 부모의 부모. 그들의 부모. 상처의 대물림. 몇년에 걸친 노력이었고 아직도 나는 흠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사람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


마지막 곡 Mirror에서 켄드릭은 나는 나 자신을 선택한다고 한다. 살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지켜야 할 때가 온다. 나는 작년에 내 삶에서 가장 힘겨웠던 일을 겪었고 나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라져야 했다. 이때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기간은 나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시간이었고 이걸 하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에 앉아 이 글을 쓰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때 나를 선택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그들은 나를 이해해 줬고 자랑스럽다고 해줬다. 너와 나는 노력한 만큼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이 앨범은 나에게 마치 그런 말을 해주는 위로 같다.


끝을 맺자면 제 인생영화가 유전입니다만 스토리도 연출도 그렇고 감정소모가 너무 심해서 인생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못 보겠다는 아이러니함이 있는데 MMTBS도 그런 류같네요. 둘 다 개인적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내 인생에서 정말 정말 중요한 영향이 된 요소가 있지만 선뜻 다시 소비하기가 조심스러워지는…그나마 앨범은 노래 한 곡 한 곡 따로 즐길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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