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gelo - <Voodoo>
한창 힙합 음악을 즐기던 고등학교 시절, 래퍼 매드클라운과 프로듀서 소리헤다와의 합작 곡 "별이 빛나는 밤에"를 참 좋아했었다. 이 곡은 다음과 같은 가사로 시작한다. ‘디 안젤로의 부두, 누자베스 구루, 두근거리는 새벽의 기분 좋은 그루브’. 좋아하는 래퍼의 가사에 언급된 앨범이다 보니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었다. 정보를 찾아보니 몸 좋은 흑인 한 명이 서 있는 앨범 표지가 나왔다. 첫 곡을 재생해보니 기대했던 재즈 힙합 바이브는 나오지 않고, 앨범 타이틀처럼 종교의식 행사 소리가 갑자기 나와서 '이 곡에 내가 7분을 투자해야 한다고?'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Voodoo>와의 첫 만남이다.
<Voodoo>의 진짜 매력을 알았을 때는 알앤비 / 소울을 비롯한 흑인 음악을 좀 더 폭넓고, 더욱 깊게 듣게 된 군 복무 시절. 디 안젤로의 <Voodoo>가 다들 명반이라고 하는데, 내가 못 느끼는 건가 싶어서 여러 번 제대로 들어봤는데, 그대로 디 안젤로의 섹시함에 퐁당 빠져버렸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알앤비 / 소울 음악을 추천할 때, 처음에는 디 안젤로의 음반을 권하는 걸 망설인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알앤비 / 소울 장르에 많은 정보가 없는데 <Voodoo>라는 매니악한 음반을 먼저 접하는 것은 있던 흥미도 떨어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본작을 이 글에 담은 이유는 1980~90년대 너나 할 것 없이 시도하던 그룹 알앤비, 뉴 잭 스윙 사운드에서 벗어나 “네오소울 무브먼트”라는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알앤비 / 소울 장르의 흐름을 바꾼 앨범이기 때문이다.
앨범을 먼저 소개하기에 앞서 위에서 말한 “네오소울 무브먼트”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당시 테디 라일리라는 아티스트로부터 시작된 뉴 잭 스윙은 알앤비 / 소울 장르에 댄스 리듬을 합친 흥겨운 리듬으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강렬한 리듬이 대중에게 강하게 어필된다는 것을 확인한 여러 음악 산업들은 유행에서 뒤처지지 않고자 여러 뉴 잭 스윙 앨범들을 발매한다. 또한, 보이즈 투 맨이나 조데시 같은 그룹 알앤비 / 소울 사운드가 흥행하자, 앞선 뉴 잭 스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룹을 이루어 하모니를 강조한 알앤비 / 소울 앨범을 발매한다. 이런 대중적인 흐름에 염증을 느낀 제작자 케다르 마센버그는 뉴 잭 스윙이나 그룹 알앤비와 차별점을 둔 음악을 만들고자 하였고, 그 과정에서 나온 앨범이 디 안젤로의 데뷔 앨범 <Brown Sugar>와 에리카 바두의 <Baduizm>이었다. 뉴 잭 스윙이나 그룹 알앤비와 구별되는 사운드를 강조하고, 이를 홍보에 이용하고자 “New”라는 뜻인 네오에 소울을 결합하여 네오소울이라는 이름을 만들게 되었고, 이 표현을 다양한 매체가 받아들여 사용하게 되면서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었다.
디 안젤로 본인도 알앤비 / 소울이라는 장르가 점점 팝적이고,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 불리는 장르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하고, 1960~80년대 흑인 음악의 부흥을 일으켰던 여러 아티스트를 본받고자 소울, 훵크, 재즈, 아프리칸 리듬을 앨범의 사운드에 적극적으로 또한 성공적으로 섞어냈다. <Voodoo>라는 앨범 타이틀은 아프리카 토속 종교 중 하나의 이름을 따온 것인데, 종교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듯, 음악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느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디 안젤로는 트랙 대부분을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악기를 직접 연주하고, 믹싱과 같은 기술적인 측면에도 참여하면서 <Voodoo>의 지분 중 80%는 디 안젤로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의 명반 제조기였던 네오 소울 창작 집단인 소울쿼리언스의 멤버이자 힙합 밴드 더 루츠의 드러머 퀘스트러브도 앨범 제작에 참여 및 디 안젤로에게 음악적 영감을 불어 넣어주면서,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일조하였다.
<Voodoo>는 7분 8초라는 짧지 않은 길이의 "Playa Playa"로 시작한다. 루즈한 베이스라인에 디 안젤로의 보컬이 얹어지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지루하고 쓸데없이 곡이 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디 안젤로가 7분 동안 여유롭게, 그루비하고 섹시한 소울을 내게 들려주고 있다고 인식이 바뀌었다. 하나의 종교의식이 시작하는 느낌을 주는 인트로를 포함하여 곡 중간중간 물 흘러가듯 여유로운 디 안젤로의 보컬을 감싸는 관악기 사운드도 인상적이다.
"Devil’s Pie"는 DJ Premier와 공동 작곡한 트랙으로, 클래식한 올드 스쿨 붐뱁 느낌의 드럼 사운드가 정말 탁월하다. 디 안젤로가 아니더라도 괜찮은 래퍼에게 갔어도 하나의 명곡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비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가사인데, 물욕을 악마의 파이에 비유하며 물질주의에 빠진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Left & Right"는 우탱 클랜의 멤버이자 힙합 듀오인 메쏘드 맨과 레드 맨이 참여하였고, 그들이 앨범의 유일한 참여 진이다. 90년대에 가장 랩을 잘 하는 팀의 멤버이기 때문에 셋의 콜라보가 참 반가웠다. 가사는 굉장히 직설적인, ‘네가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게 좋으니 계속 해 봐’와 같은 성 관계 장면이 그려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The Line"은 고뇌에 빠진 한 젊은이가 권총으로 자살을 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약간은 종교적인 색채를 띠는 트랙이다. 베이스라인 루프 위로 디 안젤로의 그루브가 차고 넘쳐 흐르는 곡. ‘I Gotta Pull it, Pull it’ 부분에서는 방아쇠뿐만 아니라 리듬을 가지고도 밀고 당기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Send It On."은 <Voodoo>에서 첫 번째로 녹음된 트랙으로, 이 곡에 공동 작사로 참여한 엔지 스톤과 디 안젤로의 아이 탄생 후에 나왔다. ‘Send it up, Send it through, Send it back to you’로 반복되는 후렴구가 기억에 잘 남았고 일렉 기타와 금관악기의 조화가 참 좋았다. 디 안젤로는 팝의 대명사 중 하나인 프린스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의 열렬한 팬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프린스 느낌이 물씬 나는 특유의 팔세토 창법에서 그런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Chicken Grease"는 프린스가 기타 연주를 할 때 사용하던 음계 방식의 일종을 일컫는 말이다. ‘내가 훵키하고 섹시한 걸 아니까, 내가 노래할 땐 신나게 놀자’는 내용으로 훵키한 리듬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One Mo’ Gin"은 발음도 그렇고 'One More Again'과 'Gin(술) 한 잔 더''라는 두 가지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떠나간 여자를 회상하면서 그녀를 다시 내 곁에 두고 싶다는, 루즈한 베이스라인에 디 안젤로의 애절한 보컬이 더해진다.
"The Root"은 ‘한 여자에게 꽂혀서 그 여자가 자신의 마음에 뿌리를 내렸다’는 내용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울부짖듯이 애드리브를 선보이는 것이 인상적이다.
"Spanish Joint"는 스윙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경쾌한 리듬감이 느껴지는 곡이다. 중간중간 나오는 간주에서는 재즈의 감성을 감상할 수 있다. 전형적인 알앤비 / 소울 트랙의 사랑 주제를 벗어나 ‘네가 없어야 내가 편하게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겠다’라고 말하는 트랙.
"Feel Like Makin’ Love" 여성 올드 소울 싱어 로버타 플랙의 곡을 커버한, 다음 곡인 "Greatdatndamornin’ / Booty"와 더불어 <Voodoo>에서 가장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반복되는 후렴구 때문에 기억에 더 잘 남았다. 앞서 언급한 "Greatdatndamornin’ / Booty"도 마찬가지로 역동적인 리듬감을 가진 <Voodoo>의 다른 트랙들에 비해 차분함을 찾아볼 수 있다.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또 다른 네오소울 무브먼트의 핵심 아티스트 라파엘 사딕과 공동 작곡을 한 "Untitled (How Does It Feel?)"이다. 완벽한 감정 완급조절에 샤우팅에 가까운 창법을 보여주며, 디 안젤로의 보컬의 다재다능함을 유감없이 감상할 수 있다. 끈적끈적한 비트에, 느린 빠르기의 드럼과 일렉 기타 사운드로 만들어내는 그루브는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 곡에서도 프린스의 팔세토 창법에 영향을 받은 것이 느껴지는데, 프린스의 "When Doves Cry" 트랙을 들어본다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곡의 후반부 간주 뒤 분위기가 완전히 고조되는데, 이 부분에서 나오는 애드리브는 알앤비 / 소울 장르의 모든 곡을 통틀어 최고 중 하나니 꼭 들어보았으면 한다.
마지막 곡 "Africa"는 곡 제목답게 아프리카의 퍼커션 사운드로 멜로디라인을 구성하고 있다. ‘아들이 커가는 것을 보는 게 자신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하는 참된 아버지 디 안젤로. 가족 관련 이야기와 더불어 인종 차별에 대한 가사가 나오기도 한다.
트랙 별로 소개를 했는데, 글을 쭉 훑으면 <Voodoo>를 감상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Voodoo> 역시 1시간 20분으로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앨범이다. 알앤비 / 소울 입문자에게 친절한 앨범도 아니다. 스트리머 침착맨이 했던 다음과 같은 말도 떠오른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은 남에게 평양냉면이 좋아질 때까지 먹으라고 한다” 어떤 음악이든 좋다고 느끼기 위해 억지로 여러 번 들을 필요는 전혀 없다. 1980~90년대에 다른 훌륭한 앨범이 많음에도 ≪Voodoo≫를 리스트에 포함한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유행하던 흐름에 편승하는 음악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적 주관을 굳게 믿고 만든, 흐름을 뒤바꾸었던 앨범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Voodoo>는 알앤비 / 소울 감상에 있어 하나의 분기점이라고 믿는다. 평양냉면이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특유의 독특함 때문에 첫인상에서는 불합격 점을 받더라도, 문득 생각이 나서 어느샌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되듯, <Voodoo>가 좋게 들리는 시점이 흑인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자리잡힌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디 안젤로는 <Voodoo> 발매 이후 무려 14년이라는 공백기 이후 자신의 밴드와 함께 <Black Messiah> 앨범으로 컴백한다. 후속 앨범이 발매되기까지 또 다른 14년이 필요할지, 디 안젤로와 알앤비 / 소울 장르의 팬은 그저 기다릴 뿐이다.
저도 삘 받아서 올려봅니다.
리뷰 맞다이 ㄷㄷ
예리님께 Big Shout Out 합니다.. 리스펙트
요즘 진짜 리뷰 전성시대군요 감사합니다
많은 회원 분들이 귀감이 되어주신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흐름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네요.
와 양질의 voodoo 리뷰를 하루에 두개나 볼수 있다니..
오늘 풍년이네요 ㅎㅎㅋㅋㅋ
우주대명반에 걸맞는 리뷰네요 트랙별 설명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글 너무 수준높은게 많네요
다들 잘 쓰시더라고요 ㅎㅎ
나의 사랑, 나의 아버지, 나의 정신적 지주 아 그저 그는
글 잘 읽었습니다
좋아하는 앨범인데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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