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Z - The Blueprint(2001) & Kanye West - Graduation(2007)
*풀버전은 w/HOM Vol. 3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힙합엘이 링크: https://hiphople.com/fboard/26436763
구글 드라이브: https://drive.google.com/file/d/1UwkUmLMC914B5uMiSZMyvVTPQ66VRBSs/view
https://youtu.be/GRKmpn3SBdw?si=NqWPQ6fYiMie7ye-
2001년 9월 11일, 미국 건국 이래 최악의 사고가 발생한 날. 모두가 이 날을 미국의 위세를 상징하던 쌍둥이 빌딩의 몰락과 수많은 사상자들, 그리고 전국적인 충격으로 기억할 것이다. 허나 힙합에게는 조금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 9월 11일은 힙합에겐 '혁명의 날'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2001년 9월 11일 제이지(JAY-Z)의 <The Blueprint>가 발매되었고, 2007년 9월 11일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Graduation>이 발매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힙합 산업은 상당히 흥미로운 양상을 띄며 진행되고 있었다. 서부에서는 Dr. Dre가, 남부에서는 OutKast가 부상하는 가운데 동부 힙합은 마피오소 랩의 유행을 종결하고 팝 랩을 적극 시도했다. The Neptunes와 Timbaland가 주도하는 클럽튠 사운드도 제할 수 없다. 물론 Eminem이라는 거대한 변수 또한 존재했으며, 인디 씬에서 시도되는 재즈 힙합과 네오 소울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힙합의 본질적인 사운드에 관한 것이었다. 펑크와 재즈의 사운드는 이미 채굴될 만큼 채굴되었고, 팝 랩의 잠재력은 적정 수준을 능가하지 못했다. 그리고 팝 랩의 선두에 서있었던 제이지 또한 그 사실을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1집 이후 음악적으로 대단하다고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음악 외적으로도 제이지는 많은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었다. Biggie 사후 4년, 공석이 된 뉴욕의 왕좌에 앉기 위해선 확실한 한 방이 필요했다.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으면서도 힙합의 새로운 기준선이 될 앨범이. 제이지는 소울에서 희망을 보았다. 당시 신인 프로듀서였던 칸예 웨스트와 Just Blaze에게 전체적인 프로덕션을 담당하게 하며 고작 2주 만에 모든 작업을 끝낸 제이지는 그 날로 왕좌에 가장 근접한 사나이가 되었다.
"I Want You Back"을 샘플링한 히트 싱글 "Izzo (H.O.V.A.)", 아련한 사랑 노래 "Song Cry", Nas와 Mobb Deep에 대한 선전포고 "Takeover" 등 싱글 단위로도 <The Blueprint>의 존재감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찬사 받아 마땅한 본작의 아름다운 프로덕션이다. 힙합은 그 작법과 창법에서 멜로디가 심히 결여된 장르였다. 멜로디를 최소화하고 리듬을 극대화하는 것이 힙합의 전략이었으나, 음악에서 선율은 필수적인 것이기에 결국 알앤비 훅이나 신스를 첨가하는 방법으로 멜로디를 삽입해야 했다. 그러나 <The Blueprint>는 가장 기본적인 비트 메이킹 단계에서 고전 소울 샘플을 사용함으로써 가장 예술적인 방법으로 힙합에 화성학적 가치를 새로이 부여했다. 소울 음악 특유의 낭만적인 선율과 선명한 보컬 라인을 하이-피치시켜 고음역대의 미학을 창출하는 칩멍크 소울(Chipmunk Soul) 작법. 그것이야말로 앨범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힙합의 옷을 입은 소울의 유산을 다룰 수 있는 이는 최고의 래퍼였던 제이지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경이로운 플로우는 그 어떤 곡에서도 제 힘을 백분 발휘했다.
https://youtu.be/PsO6ZnUZI0g?si=dT6yqbBw5kZfOGum
정확하게 6년이 지났다. 칸예 웨스트는 6년 전 자신의 지원으로 왕좌에 올랐던 제이지의 첫 라인을 샘플링함으로써 그의 위상을 자신에게 대입했다. <The Blueprint>가 그러했던 것처럼, <Graduation> 또한 새 시대를 열 것이라는 그다운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Graduation>이 <Curtis>와 정면으로 승부 후 압도적인 판매량 차이로 승리한 사건이야말로, 칸예 웨스트의 얼터니티브 팝 랩이 50 Cent의 갱스터 랩을 밀어내고 새로운 시대의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The Blueprint> 이후로 시대는 빠르게 바뀌어갔다. Eminem과 Nelly는 음악 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존재가 되었고 Pharrell Willaims는 라디오를 지배했으며, Dr. Dre 산하에 50 Cent라는 괴물 신인이 등장했다. 남부에선 Lil Jon의 크렁크를 시작으로 Ludacris, T.I., Lil Wayne이 주도하는 트랩이 급격히 부상했다. 무엇보다 칸예 웨스트 본인이 <The Blueprint>에서 시작된 칩멍크 소울을 <The Collge Dropout>에서 이어가고, <Late Registration>으로 성공을 거듭하며 힙합의 새로운 축이 되었다. 힙합에 새롭게 떠오른 키워드는 '일렉트로닉 음악'이었다. 클럽튠의 시대에서 전자 음악에 대한 숙련도,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를 흥분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한 여부가 성공의 판가름이 되었다. 808과 신시사이저, 오토튠으로 무장한 남부 힙합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유행를 좇는 일 없이 혁신을 주도하며 대중성과 음악성의 양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던 칸예 웨스트가 그의 음악성을 포기하고 유행을 추구해야만 했을까? 답은 간단했다. 그의 음악에 트렌드를 덧씌우면 되는 일이었다.
칸예 웨스트는 그의 장기인 보컬 샘플링을 다시 사용해 앨범이 진부한 클럽튠 힙합 앨범 정도로 전락하지 않게 했다. Daft Punk, Michael Jackson 등 과거의 팝 뱅어들을 샘플링하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함과 동시에, 마이크 딘의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동원하며 전자 음악의 색채를 화려히 덧입힌 것이다. 앨범 최고의 히트 싱글인 "Stronger"와 "Good Life"가 탄생한 방식이다. 아레나 락의 영향을 받은 "Champion"과 "I Wonder"는 간결함과 반복의 미학을 상징한다. 또한 오케스트라와 신시사이저의 웅장한 화음이 돋보이는 "Flashing Lights"가 존재하는 반면, 올드 칸예를 연상케 하는 "Everything I Am"이나 "The Glory"가 존재한다. 이와 같이 광활한 음악적 시도야말로 2007년에 발표되었음에도 현 시점에서 <Graduation>의 사운드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이다.
이 모든 격변기에 칸예 웨스트의 역할이 핵심적이었다는 사실은 새삼 그의 혁신성을 돌아보게 한다. 기존의 가치를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이점을 언제든 수용할 수 있는 적응력이야말로 샘플링에 근간을 둔 힙합 음악이 가진 최고의 이점이다. 칸예 웨스트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히 깨닫고 있던 아티스트였고, 제이지는 그런 칸예를 지원할 안목이 있는 아티스트였다. 그들이 적지 않은 시간에 일군 힙합 사운드의 혁명이야말로, 힙합 최고의 아티스트를 논할 때 유독 둘의 이름이 잦게 언급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힙합에 새로운 대체 사운드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점, 그 어떤 때보다 9월 11일의 혁신이 절실하다.
The Blueprint
9.5/10
최애곡: Heart of the City
-Girls, Girls, Girls
-Renegade
Graduation
8.3/10
최애곡: Flashing Lights
-Good Life
-Everything I Am
블로그: https://m.blog.naver.com/oras8384/223237439397
어느덧 이 글을 쓴지도 1년이 지났네요.
11일에 맞춰 올렸으면 딱 좋았을텐데, 최근에 좀 바빴거든요 ㅎㅎ
제겐 체감상 그리 오래 된 것 같지 않은데, 꽤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해요.
그렇지만 이 음악들이 주는 감상만큼은 불변하고 여전히 저를 설레게 하네요.
<Graduation>을 다시 들은 후 칸예 리스닝 파티에서 3집 부분 찍은 것만 다시 봤는데, 그때의 저는 정말 순수하게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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