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출신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의 <Dark Times>를 앨범 제목 그대로 하나의 암흑기를 그려낸 작품이라고 해보자. 게다가 우리는 빈스 스테이플스라는 게토의 한 청년이 비뚤어진 시선으로 흑인들의 빈곤한 삶과 범죄가 만연한 도시의 풍경을 그린 <Summertime' 06>라는 작품을 이미 알고 있다. <Summertime' 06> 당시의 빈스가 바라본 광경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Dark Times>에서 묘사되는 배경은 <Summertime' 06>와는 동일할지언정, 본인이 조망하는 시선이나 정서가 다르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러한 정서는 <Big Fish Theory>와 <Summertime' 06>을 경험한 청자와 거리감을 둔 작품들 즉, 2020년대의 <Vince Staples>나 <Remona Park Broke My Heart>의 연장선상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은가. 한데, <Dark Times>는 최근 작품들의 연장선상으로 보일 수 있는 서정적인 방면들을 보다 적절하게 갈무리했다. 반면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최근 두 작품과 정반대에 가까운 인상이다. 결국, 암흑기의 완성은 이전처럼 낯설다는 감상보다도 이제야 청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서사로 증명되었다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전 작품 <Vince Staples>, <Remona Park Broke My Heart>는 <Big Fish Theory>와 <FM!>을 지나온 팬들에게도 꽤나 낯선 작품이 되었다. 심지어 현실주의와 냉소주의 사이를 오가는 <Summertime' 06>와도 한참은 다른 작품들이다. 훌륭한 디스코그래피를 자랑하는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작품을 내놓을 때, 전작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빈스의 변화는 여타 아티스트들과는 꽤나 다른 이질감을 느끼게끔 만든다. 예로 Kanye West의 작품 <MBDTF>, <Yeezus> 사이에서의 변화에도 아티스트의 행보 및 정체성이 납득할 만한 근간을 제공했다면, 빈스의 경우에는 음악적 변화와 정체성의 변화가 서로 뒤틀리며 이질감을 형성한다. 물론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빈스의 변화를 받아들이고서 기대를 거는 일정 부분에서 오해가 있었거나, 빈스조차도 보유한 정체성의 혼란을 정제하는 데에 부단히 애를 먹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여태껏 청자들은 힙합 씬의 이단아처럼 느껴졌던 빈스의 가사와 음악들은 여타 래퍼들과는 확연히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쾌감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Dark Times>는 우리가 기존에 가졌던 빈스 스테이플스라는 아티스트에게 가졌던 오해를 직접적으로 해소해 줄 뿐만 아니라, 성숙함을 담보로 하는 독특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게끔 한다. 이것이 앞선 <Summertime' 06>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며, 그의 이전 작품인 <Remona park Broke My Heart>와도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제 빈스 스테이플스는 냉소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Dark Times>는 이제껏 보지 못한 빈스 스테이플스 자신의 내면을 받아들이기 위한 투쟁과도 같은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Dark Times>의 세부적인 이야기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삶이 이루는 대비에 주안점을 둔다. 더군다나 빈스가 기록하는 <Dark Times>는 일종의 환멸에 가까운 인상이지 않은가. 음악으로 이뤄낸 성공과 멀어져 가는 친구들, 그리고 나사가 빠진 자신의 모습까지 예전의 삶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그려낼 뿐이다. 결과적으로 현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던 그에게 있어서, 덜 방어적이고도 취약한 내면을 조명하는 데에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선공개 싱글 “Shame on the Devil”는 무미건조하게 내뱉는 랩과 그에 어울리는 모노톤으로 점철된 비트가 이야기의 구색을 더해준다. 묘사되는 우울감과 종교적 귀의의 가사들은 사랑에 대한 인상과 겹쳐지며 독특한 긴장감을 형성할 뿐이다.
“To live is to be, like the nixxa in the tree”
“Close Your Eyes And Swing” 中
인스트루멘탈 트랙 “Close Your Eyes And Swing”의 읊조리는 경구를 시작으로 앨범은 시작된다. 어쩌면 제목과도 같이 작품의 주제를 암시하는 구절이다. 이어지는 인트로 트랙 “Black&Blue”은 구절과 마찬가지로 우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그려낸다. “Black&Blue”는 Thee Sacred Souls의 “Weak for Your Love”를 샘플링하며, 누차히 언급했던 과거 갱 경력을 가난과 폭력의 굴레에 엮었다. 덕분에라도 자신의 성장 환경 및 우울한 배경을 죽어나간 래퍼들의 현실과 겹쳐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다소 허무한 인상에 가까웠던 <Vince Staples>의 모습도 이로써 이해되는 영역이다. ‘어째서 그렇게 냉소적인가’, ‘어째서 꼬아졌나’ 등의 여러 의문들은 숱한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증명되는 것이다. “Goverment Cheese”에서 과거 “Blue Suede”를 샘플링함으로써 분출되는 감정과 우울한 시기를 회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사운드와 현재 상황의 중첩은 앨범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만큼이나 중요하다. 분명 그 태도는 "Blue Suede"의 것과는 다르다. 가장 불운한 시기에도 종교적 광채에 귀의하는 형태를 자랑하는 모습은 숱한 웨스트 코스트 래퍼들이 사용한 카테고리임에도 빈스가 사용하므로 특별한 구석이 생긴다. 그의 음반에 종교적 영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자신을 둘러싼 숱한 질문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본작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본작의 중요 카테고리는 회상으로 그려진 암흑기와 현재 삶의 대치이다. “Étouffée”에서는 <Big Fish Theory>를 발매했을 때의 모습을 그리며, "Radio"에서는 Blue&Exile의 <Below The Heavens>에 대한 헌사와 음악에 의한 감정적 연결고리를 제시하고, "Little Homies"는 본인과 비슷한 상황에 자리 잡은 흑인 동료들에게 전하는 연설과도 같다. "Freeman"은 이전 노래들을 역설적으로 뒤집고는 자신의 성공을 축하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에 가깝다. 음악적 성공과 자신의 삶에 대한 방향의 저울질은 끊임없는 불안감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더할 나위 없는 축배를 들어 올리게 하는 모순적인 형태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오히려 재밌는 부분이다. 나는 빈스라는 래퍼가 이토록 서정적인 방면을 우울한 시선과 현재의 축복을 교차시키며 랩으로 풀어내는 데에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냉소적인 시선을 덜어낸 한 아티스트가 이토록 서정적인 방면을 갈무리할 수 있던 데에는 여러 까닭이 있을 것이지만, 회상과 암흑기라는 키워드가 꼭 그렇게 부정적인 면모만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른하고도 웅얼거리는 랩은 셀프 타이틀 앨범에서 처음 시도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지금의 <Dark Times>에서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점 역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본작에서 이전 <Big Fish Theory>내의 뱅어와 같은 곡들을 기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눅눅한 비트에 어울리는 것은 과격한 랩은 아닐 테니. 빈스의 창의적인 방향성은 어디까지나 가장 개인적인 사고를 앨범에 적절히 녹여내는 방법을 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개인에 대한 독특한 통찰력과 세상을 향한 본인만의 시선을 음악으로 담을 줄 안다는 이야기는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주무기가 아닌가. 침울한 랩이 비트의 매력에 감칠맛을 더해주고 그 사이의 스토리텔링의 섬세함을 놓치지 않았다. 혹은 빈스 본인에게도 가장 거칠었던 앨범을 꼽으라면 <Summertime' 06>를 떠올리겠지만, 가장 어두운 앨범이라고 한다면 <Dark Times>를 꼽지 않을까 싶다. 본작으로 이끌어낸 섬세함과 견고함은 탄탄한 래핑과 서사에 어울리며 앨범에 대한 소구력을 끌어올린다. 납득되는 부분 역시도 빈스 개인의 서정적인 방면이 큰 기여를 했다.
사실 <Dark Times>의 곡들을 둘러보면 빈스 본인이기에 묘사할 수 있던 현실과 빈스라서 느낄 수 있던 감정이 교묘하게 섞인 형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껏 빈스 스테이플스라는 래퍼가 이토록 서정적인 진심을 잔혹한 과거 배경에 버무려 설명한 적이 있었나. 빈스 본연의 관조적 시선은 유지한 채로, 본인의 이야기를 독특하게 엮어서 설명하는 방식은 적어도 <Dark Times>에서는 성공적이다. 어쩌면 <Dark Times>는 빈스의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모노톤에 가까운 작품이면서도 가장 빈스답지 않은 작품이다. 혹은 우리가 이제껏 빈스에 대하여 쌓인 여러 오해가 여러 작품을 통해 점차 짙어졌을지도 모를 이야기다. 내 생각에는 후자에 가깝지만 그에 대한 해석 역시 천차만별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Dark Times>는 빈스에 대한 숱한 질문과 의구심을 서정적으로 해결한, 새로운 여정에 들어선 작품으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빈스가 말하는 암흑기가 과거로 인한 현재의 고뇌에 빠져든 순간인지, 과거의 폭력과 우울로 가득 찬 당시였는지는 뚜렷하게 알 수 없다. (혹은 둘 다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Dark Times>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점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덕분에, 빈스 스테이플스라는 인물을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어쩌면 현재의 빈스는 한참 멀찍이 두던 시선을 이제서야 본인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돌리지 않았나. 암흑기에 들어선 한 아티스트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가장 청자와 감정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LIFE HARD BUT I GO HARDER
돌아오셨군요 한동안 어디가셨나 했습니다
정성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추천 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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