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음악 듣는 것조차 사치일 만큼 바빴던 터라 귀에 이어폰을 꽂을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웬걸 예상치도 못했던 인간의 앨범이 발매됐다. 나는 Donda와 Vultures의 진통을 볼 때면, 칸예가 이 음악시장 자체에 혼란을 주는 본인의 행동으로 후대의 아티스트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 하나, 일종의 보헤미안 운동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이 또한 칸예이기에 개소리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여튼 간만에 찾아온 여유를 더욱 풍요롭게 해준 칸예에게 참 감사한 마음이다. 리뷰는 당연히 아니다. 발매된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리뷰 쓸 시기도 아니고 이 오리무중 상태의 앨범에 대해 뭔가 써보자니 당장 하루만 지나도 앨범이 지나간 자취에 대해 왈가왈부한 글이 될 것 같다. 마치 우리 모두가 칸예의 뒤를 따라가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칸예가 가장 원하던 모양새 같기도 하다.
이저스 에라를 그 어떤 시기보다 그리워하는 칸예의 팬들은 20년대의 칸예에게 아쉬움을 전혀 느끼지 않을 것 같다. 무언가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얘기라 그렇다. 돌아보면, Yeezus는 칸예의 커리어 중 가장 칸예답지 않은 순간이었다. 칸예는 지금껏 개척자가 된 적도 없고, 장르를 불문하면 그다지 혁신가라 부를만한 인물도 아니다. 기존의 소스를 가져와 본인의 음악에 그 누구보다 재치 있는 방식으로 끼얹는 이 일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잘할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는 대중성을 정말 기막힐 정도로 절묘하게 얻어낸다. 칸예의 음악은 대중적이지만 대중적이라 욕먹지 않고, 예술적이지만 예술적이라 욕먹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대중적이면서 예술적이다. 내 생각에 이게 칸예의 음악을 가장 잘 묘사한 캐치프레이즈고, 그래서 당시의 기준으로 박살난 대중성이 언제나 신비롭게 다가오는 Yeezus는 가장 칸예답지 않은 순간이었다.
The Life of Pablo를 시작으로 리스닝 파티라는 걸 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캐치프레이즈는 이때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칸예에게는 본인의 음악이 아니라 음악을 하는 본인의 모습에 쏠리는 "시선"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단순한 추측이지만, 이 추측 한 문장으로 지금껏 이해할 수 없던 그의 행동을 전부 이해할 수 있다. The Life of Pablo부터 칸예는 트랩 비스무리한 것을 꺼내기 시작했고, Donda 시리즈에선 아예 트랩 일변도를 달리더니, 지금의 Vultures에 왔다. SOPHIE(🕊️), Flume, Gorillaz, FKA twigs, Justin Vernon, 하다못해 노골적으로 구애하는 제이펙까지, 그들이 칸예에게 잘 어울릴 거란 얘기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칸예의 사운드에 다각도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만한 재능들이 지금 너무나 많다는 뜻이다. 이상하리만치 대중의 귀를 의식하는 듯 보이는 그의 트랩에 대한 집착이 답답한 건 나뿐이 아닐 거다.
칸예 특유의 이곳저곳에서 재료들을 끌어모아 테이블에 펼쳐두는 능력만큼은 여전하다. 범상치 않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런 소스들을 캐치하는 이 능력 덕에 칸예의 지랄에 가까운 성격에도 래퍼들이 끈질기게 들러붙는다. 물론 그걸 하나의 곡으로 완성시키는 일은 정신력과 의지력 문제이니 아쉬울 수밖에 없지만, 내 생각에 칸예의 하드디스크 하나만 훔쳐도 평생 음악적 창의력이 고갈될 일은 없을 것 같다. Donda뿐 아니라 Vultures에서도 Dolla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달라만큼 범용성이 끝내주는 목소리를 가진 래퍼가 또 없다. 그러나 이 문장을 조금 비뚤어진 시선으로 고쳐보면, 달라만큼 모든 음악을 듣기 편하게 만드는 래퍼는 없다. 달라가 앨범의 곳곳을 매끈하고 세련되게 매만지는 모습을 보며 수많은 팬들이 감탄하는 와중에, 그의 미려한 목소리가 등장할 때마다 뒤편에서 잠자코 아쉬움을 느끼는 것도 이제는 반동분자가 되는 기분에 조금 힘들다.
God Breathed는 좀 더 뒤틀리면 안 될까, Heaven And Hell도 뭔가 더 터지면 안 될까, PAPERWORK는 아예 알 수 없는 분위기로 밀고 갔으면 어땠을까, Fuk Sumn에서 페기의 손이 좀 더 자유롭게 움직였으면 어땠을까. 타이 달라 사인이 Yeezus 같은 음악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지만, 칸예가 앞선 가정들을 실현시키는 것은 의지의 영역이다. 기대가 아예 사라졌다. 그가 좋은 음악을 만들 능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의 기분보다 음악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시퀀스 앞에 앉아 있는 본인의 모습이 노출되는 것, 그리고 그만큼 들어주는 것'이 그의 의도라면, 의아할 정도의 트랩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또 한 번 전율을 느끼게 할 범상치 않은 아이디어는 달라의 목소리가 억제기가 되어 Vultures 시리즈 전부를 고만고만한 음악으로 다듬을 거다. 이제 과거와는 달리 Yeezus에 함께할 믿음직한 조타수들이 나타났고, 우리 모두가 Yeezus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데, 정작 창작자가 사라졌다.
칸예는 그가 휘두를 수 있는 무기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지닌 건 다름 아닌 음악이라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라는 출처도 불분명한 명언을 잠시 제쳐두면, 그 누가 자기 집 위로 떨어지는 집중포화속에서 드럼패드를 두들기고 싶을까. 그럼에도 칸예는(계획대로 진행된다는 가정 하에) 4년 안에 5개의 앨범을 발매한다. 이제 칸예의 음악에는 칸예라는 사람이 풍기는 본연의 향취 조금, 예술성의 균형이 박살난 잔해 위를 덮는 매끄러운 포장도로,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기분이 있다. 군데군데 등장하는 성스러운 신스나 보컬 소스는 '일단 이 음악을 칸예가 만들긴 만들었구나' 하는 정품 딱지를 붙여주고, "beautiful, big titty, ~"는 그냥 기분 따라 내뱉은 헛소리일 가능성이 99%이며, 대중성을 상징하는 타이 달라 사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앨범의 아트워크 또한 칸예의 기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탄생한 복잡다단한 앨범이 근래 들었던 그 어떤 힙합 앨범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은 만족감을 주면서 동시에 아쉬움을 남긴다. 악마의 재능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다. 선생 입장에서는 싹수가 노란 놈보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놈이 제일 답답하다. 그러나 한 명의 예술가로서, 그의 작품이 그의 기분을 온전히 반영했다면 이것을 아쉽게만 바라볼 일일까. 생각해 보면, Donda와 Vultures는 20년대의 오락가락하는 칸예의 기분과 이미지를 생각보다 그럴싸하게 담아냈다. MBDTF와 Yeezus가 예술적인 충만함으로 가득했던 그의 모습을 대변한다면, Donda와 Vultures가 혼란 속에서 관심 그 자체에 매몰된 칸예 웨스트를 그려냈다면, 과정이 어찌 됐든 그의 커리어는 입체적으로 뚜렷해진다. 나는 이것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제 과거와는 달리 우리 모두가 Yeezus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데, 정작 창작자가 사라졌다."
개추를 참을수가 없는 문장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이제 과거와는 달리 우리 모두가 Yeezus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데, 정작 창작자가 사라졌다."
개추를 참을수가 없는 문장
추천 하나 얹었습니다.
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fuk sumn 페기 참여한 거 아니었나요?
아 수정한다고 해놓고 그대로 등록해놨네요. 감사합니다.
Yeezus 나왔을때 칸예 인터뷰가 떠오르네요
"2013년의 칸예는 우리를 미소짓게 하지만 2023년의 칸예는 우리를 찌푸리게 만든다"
어쩌면 Vultures의 칸예는 2034년의 사람들이 더 원할지도 모르겠네요...
칸예의 이고로 볼때 더는 남들에게 음악성을 평가받고 싶은 욕구자체가 없을거 같고 그냥 음악 창작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TLOP 때부터 칸예가 일관성없이 오락가락하는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라고 느꼈는데, 지금도 얼마전에 유대인들에게 미안하다 인스타로 포스팅해놓고는 랩가사에 또 Antisemitism 이런 거 나오는 거 보면, 이젠 그냥 쭉 이렇게 가겠구나 싶더라고요.
앞으로 나올 음악들도 계속 이리 돌아왔다가 또 저리 가버리는 괴상한 움직임이 계속될 거 같고 그게 2020년대의 칸예 지금의 칸예구나 싶어서, 더이상 MBDTF나 이저스 같은 음악이 나올 거란 기대는 버렸습니다.
JIK때부터는 "와 이번 앨범에선 또 새로운 사운드를!" 라는 건 느껴지지 않았고, 여전히 음악을 정말정말 잘하지만 그건 또 그때의 칸예의 기분에 따라서 다른 거라 Tell the vision처럼 팝스모크 후로 본인이 재발매하는데 팝스모크의 것과는 달리 분명 누가봐도 미완성인 거 같은데 그냥 내버린 트랙, 그리고 킴과 이혼 후 파괴된 자신의 삶을 담았으나 혹평 받았던 돈다2, 논란이 있던 다베이비와 마릴린맨슨을 리스닝파티에 초대해 같이 등장, 이런 것들을 보면서 전처럼 새로운 개쩌는 음악을 보여주려 하기보다는 지금 혼란한 이 세상에 대해 혼란 그 자체인 본인이 계속 뭔가 메세지를 던지려는 걸 우선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뭐, 모두가 그 메세지를 받아들일 수는 없겠고, 그러한 행동 때문에 오히려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정말 많지많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의 잘 정리된 글을 보니 공감이 참 많이 가네요
눈물이 쏟아지는 글이다
칸예 본인이 의지가 안 보인다
칸예에 대한 분석은 물론 타달싸에 대한 양가적 감정도 정말 공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카니예웨스트….
정말 멋있는 사람.
일단 맨날 펩시맨 비스무리하게 다니는거 부터
이양반은 리스너들한테 친절할 생각이 없음
개쩐다
평소 칸예에 대해서 생각하던 부분이 글로 잘 정리된 느낌을 받네요
본인이 오프더그리드랑 카니발이 돈다 벌쳐의 베스트 트랙이다 = 칸예의 대체불가성을 모른다
붐뱁이든 트랩이든 최소 ye 까진 칸예 본연의 시그니처 재료가 분명히 첨가되어왔는데 돈다 부터는 너무 차트 지향적인 뱅어 위주로 프로덕션이 꾸려지는 거 같아서 답답하네요ㅎㅎ 못하는게 아니고 안하는 거 같은 느낌이라 더 답답함
태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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