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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2.

LucindatomasBBreaux2024.01.29 12:30조회 수 1384추천수 11댓글 15

1994 #2.

Common - <Resur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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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1990년대에는 거의 존재하는 모든 래퍼가 거리의 시를 썼다. 그들이 가진 문장력의 노련미를 판가름하는 것이 게토의 리릭시즘이었고, 그들의 플로우를 멋스러운 스릴로 뒤바꾸어놓는 것이 거리에 관한 전언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불세출의 랩 보컬리스트가 Nas이며, BIG L이었고, The Notorious B.I.G였다. 이정표가 될만 한 이들이 모두 거리의 시를 쓴 탓에— 유망한 래퍼 지망생들은 전부 갱스터 랩과 하드코어 랩의 전당 앞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폴로 셔츠를 입은 Kanye West가 소울 샘플과 함께 불쑥 나타나 랩 주제의 판도를 크게 뒤집어버렸다. 힙합을 논하는 이들의 태도는 급속도로 다분화되고, 썩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다가, 결국엔 완전한 과도기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하지만 이 모든 시류의 개선이 이루어지기 전에, Kanye가 자신만의 독특한 분수령을 개척하기 전에, '힙합은 거리의 시다' 라는 명제가 완전한 본류였을 때에, 이러한 수식에 탈구축을 선언한 이가 바로 커먼(Common)이다. 그는 중후하면서도 지적인 센슈얼함을 지닌, 1990년대 힙합 씬의 이단아였다. 

 

 커먼의 랩에서는 부유한 가정의 특권스러운 매너가 잘잘 흐른다. 그 랩 내부에 비속어와 욕설이 가득할지라도, 커먼의 혀는 상스러운 워딩마저 깔끔하고 신사적인 일갈이나 유머로 바꿔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흡사 구식 턴테이블같은 자글자글한 목소리에 갓 두드린 쐐기마냥 탄탄한 발성이 더해지면— 커먼의 랩은 어떤 방식의 플로우를 구사하던 간에 고급스러움을 자아낸다. 그가 커리어 초중반까지 갱스터 랩을 배척하고, Ice Cube와 장내 소동을 일으키게 된 것도 이러한 그의 일대 상류층적 태도에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영웅전과 같았던 골든에라 시기 래퍼 속에서도 커먼의 존재감은 두드러진다. 맹수들이 드글거리던 우탱클랜과, 미치광이 예술가들 같았던 Outkast, 존재 자체로 하나의 수사가 된 BIG과 2Pac 사이에서도 거리를 초탈해 랩을 뱉던 커먼의 모습이 그야말로 독보적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배우가 외모만으로 모든 실력이 판가름나는 것이 아니듯이, 감독이 미장센만으로 연출자의 공적을 내세울 수 있는 게 아니듯이, 커먼 또한 결국 랩을 잘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씬에 얼굴을 알렸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은 건조한 공치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정말로' 랩을 잘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 무렵 일순간 절정에 달했던 커먼의 랩은 그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Resurrection>에서 거의 그 대부분을 들을 수 있다. 이 앨범 속에서의 커먼은, 거의 믿기 힘들 정도로 센슈얼하며 담백한 랩을 무아지경으로 뱉어놓고도 아쉽다는 듯 후렴을 읊어댄다. 쭉 짜도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듯한 프로덕션, 휘휘한 적막을 청렬하게 찌르는 재즈 루프 모두가 그의 랩 속에서만큼은 이국적인 우수를 띤다. 커먼은 —그 비결은 알 수 없으나— 그러한 일들을 실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유자재로 행할 줄 알았다. 물론 그보다는 타고난 상류층 래퍼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앨범이 시작된 지 채 3분도 지나지 않아 '가끔은 소고기도 먹지만 되도록 절제하지(Eatin beef sometimes I try to cut back on that shit)'라 내뱉는 커먼의 랩에서는 야생적인 날 것의 냄새보단 모던한 우디의 향이 난다. 하지만 그 우디 향을 유지한 채로 부유층의 컨셔스를 써내려가는 것이 커먼의 센스이고, 그 정체성이 그가 지금까지 지켜온 유일의 원초아였을 것이다. 조금은 여유 넘치고 부유한 지위일지라도 사회상에 관한 제언들을 늘어놓는 것, 그것이야말로 커먼의 가사가 가진 열락이자 시대현실과 맞이하는 해후에 가까웠다.

 

 그래서 앨범 속 그의 가사는 다분히 시적이다. 주류 래퍼들이 읊던 '거리의 시'가 아닐 뿐, 이단아스런 상류층의 위치에서 커먼은 '자신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사실들에 관해 수려하게 늘어놓았다. 그 가사 속엔 일상을 흘려보내는 삶에 관한 고찰이 있고 깨달음이 있었다. 단순히 묘사적인 언어의 나열보다 수사학적 에세이에 가까운, 커먼의 가사야말로 '컨셔스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예술론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본류의 규격과는 조금 멀어져있음에도 <Resurrection>은 리릭시즘의 정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빈민가의 퀴퀴한 르상티망은 없지만, 구류된 자유의지와 예술관을 노래하는 그의 언어 안에는 언제나 장렬한 시적 파동이 일었다. 뇌의 근원적 정수를 청렬하게 터치하는 자말의 스윙과, 메마른 혼을 적시는 그랜트 그린의 솔이 담긴 앨범 안에는, 추억처럼 커먼의 가사 또한 있었다. 그러한, 일대의 보석같은 가사들이야말로 앨범의 가치를 배로 띄워올리는 광휘의 일부이자 언어의 테크니션이었을 것이다.

 

 한편 노아이디(NO I.D.)의 손길이 닿은 프로덕션 역시 이러한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톡톡히 일조한다. 아마드 자말, 리빙 재즈, 게리 버턴, 그랜트 그린 등의 무수한 재즈 소스들이 <Resurrection>이라는 하나의 체계 속에서 파편화되어 톤앤매너를 조성하는 용매 역할을 했다. 그 음형과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방법론에 있어서, 노아이디는 샘플러 원곡이 가진 파릇함과 차분함을 여과없이 이끌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제자 Kanye가 오로지 샘플링 활용만으로 <Late Registration>이라는— 힙합사의 경쾌함과 싱그러움을 상징하는 음반을 만들어냈을 때, 그 밑절미를 다진 사람 역시 그였음을 사유해본다면 <Resurrection>은 Kanye라는 예술사의 프리– 프로덕션과 같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Resurrection> 프로덕션의 감촉은 여러모로 올드 칸예의 그것과 닮아있다. 창공을 성큼성큼 밟는 듯한 쾌청함과 재즈/솔 샘플러의 유려한 차핑 스킬은 시대의 단면을 뒤집어놓은 두 프로듀서의 유산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장르의 표층 아래에 정열적으로 뿌렸던 열예들이, 마침내 한 사람의 호젓한 컨셔스 래퍼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숙명적 설렘을 동반한다. <Resurrection>에서 <Be>까지, 블루지한 고급스러움은 계속되고— 오뇌에 찬 예술가가 탄생했다.

 

 <Resurrection>에 담긴 무수한 재즈 힙합 트랙들 중에서는 'Maintaining'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건 단순히 곡 속에서 차핑된 MJQ의 스윙감이 감각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 스윙감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커먼의 래핑 또한 금상첨화다. 재즈 힙합의 선봉장이라 할만 한— ATCQ의 혈기왕성한 오마주가 절절히 흐르는 후렴구를 듣고 있자면 가슴 한 켠에 오후 두 시의 나른한 일광이 비추는 듯한 기분이 든다. 커먼의 랩 앨범이 가진 가장 핵심적인 특장점이라면, 재즈의 음형 아래 따사롭게 고인 우수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그런가 하면 프레디 허버드의 차분한 음형을 차핑한 'Communism' 또한 훌륭하다. 이 경우 노아이디는 Kanye보다는 J Dilla에 가까운 차핑과 예리한 변주를 보여주는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샘플 소스 위에 자유자재로 행위하는 커먼의 행색이 퍽 인상적이다. 자신의 이름을 비틀어 —공산주의(Communism)— 경쟁적 자본주의에 관한 한탄과 일상의 무기력함을 논하는 커먼의 착상이 빛을 발하는 순간, 앨범의 가치가 배로 널뛰기하는 이유도 그런 부분에 있을 것이다. 힙합이란 대주제가 맹렬히 숨쉬던 90년대 중반 무렵에— 이런 고급스러움을 선사할 수 있는 앨범은 <Resurrection>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이야말로 부정할 수 없는 전언이자 그 자체로 진실이 되는 수사인 것이다.

 

  커먼의 랩에는 기품이라고 할만 한 것이 있었고, 그런 그의 면면을 확연히 표구한 것이 <Resurrection>이었다. 2000년대로 넘어가면 <Be> 또한 그가 가진 내면의 고투와 인식의 치열함에 관해 장엄하게 설파하지만, 적어도 Kanye가 커먼과 접선하기 전까지는 <Resurrection>이 그의 매그넘 오퍼스 역할을 수행했다. 그래서인지 젊은 시절의 커먼을 떠올리자면 그의 2집만이 절대적인 기준점처럼 청자 앞에 불쑥 나타나는 현상이 반복된다. 물론 1집과 3집에도 노아이디의 손길이 닿아있고, 그 앨범 속에서도 커먼의 랩은 준수하다 못해 특출나지만, 거기에 근본적으로 청신함과 담백함이 없는 까닭이다. 커먼은 <Resurrection>이라는 불꽃으로 평범했던 1집의 기운을 찬란하게 불태웠지만,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이었던 예술성의 한 발자국을 딛지 못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무려 11년이란 세월이 지나서야 그 마지막 한 발을, 아주 노련하고 장엄하게 밟아야만 했다. 흔히 커먼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2005년 앨범 <Be>는 Kanye의 혁신적 프로덕션이 담긴 탓에 클래식 반열에 들 수 있었다고 평가받지만, 난 이 때문에 세인의 평가에 반기를 들고자하는— 근원적 충동에 시달린다. 하지만 적어도 분명한 사실은 <Be>에서의 재기가 단순히 탁월한 프로덕션이나 좋은 랩 실력 덕택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조금 더 추상적이고 모호한 영역에서의 '부활'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참 골든 에라의 부흥기가 끝나고 Kanye가 고급스런 힙합의 경지를 열었을 무렵, 커먼이 Kanye와 그가 제조한 전설적 프로덕션을 거느리고 <Be>를 발매했을 때— 거기엔 1994년의 매캐한 초연을 연상시키는 우수가 있었다. 아워 포엣, 커먼 센스(Our poet, Common Sense). 그건 분명 <Resurrection>에 담겼던 센슈얼함과 같은 재질의 우수였다.

 

 

2024. 01. 29. Mon. Seoul / Lucinda Tomas B. Brea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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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10. 04.

54:23

Relativity 

No I.D, The Twilite Tone

 

 커먼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자 그의 초기 명반이라 평가받는 <Resurrection>입니다. 1집 <Can I Borrow A Doller?>로 무난한 데뷔를 끝마친 커먼은 이 앨범을 통해 실력파 래퍼이자 흥행 래퍼로 거듭났습니다. 미국 내에서 어마어마한 흥행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싱글 "Resurrection", "I Used to Love HER" 등이 공전의 평가와 쏠쏠한 상업적 성과를 거두며 커먼을 안정적인 궤도로 올려주었습니다. 커먼 그 자신의 입장에서도, 프로듀서 노아이디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입지전적이며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낸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Resurrection>은 작품 자체가 내포한 기운 자체가 긍정적인 앨범입니다. 청명한 스윙감을 자아내는 샘플러를 막론하고, 중산층의 입장에서 써내려가는 거리의 시는 2020년대 현재에 들어도 일대 고급스럽습니다. 엘이 여러분들도 오늘은 <Resurrection>의 애상적 래핑을 들으며 오후를 고급스레 열어보는 건 어떨까요? 긍정적인 기운이 온몸을 뒤덮고 내면의 고투를 치유해드릴 것이 분명하니까요.

 

마침.


1994 #3. 

 

Organized+Konfusion+Equinox+Pub.jpg

2024. 01. 30.

신고
댓글 15
  • 1.29 14:04

    이거만 기다렸습니다 ㅠㅠ역시 커먼!

  • 1.29 15:27
    @앞날

    사랑합니다ㅋㅋㅋㅋ

  • 1.29 14:28

    글도 글이지만 사진 고르시는 센스가 야무지시네요. .

  • 1.29 15:27
    @공ZA

    ㅎㅎ 감사합니다

  • 1.29 15:09

    이 글 보고 뽕차서 바로 커먼 들으러 가야겠습니다 글 너무 잘 쓰시네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 1 1.29 15:28
    @Pushedash

    와주셨네요!! 감사합니다 ㅎㅎ

  • 1.29 20:58

    매일연재 폼 미쳤다

  • 1.30 09:18
    @hgwe8071

    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 1.30 10:17

    열정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Be가 생각보다 꽂히는 작품이 아니었어서 잊어가던 래퍼였는데 좋은 앨범이 또 있다니 기대돼요

  • 1 1.30 10:58
    @hoditeusli

    ㅋㅋㅋㅋㅋ 꽤 좋아요..!! 칸예 2집 좋아하신다면 취향에 잘 맞으실겁니다 ㅎㅎ

  • 1.30 11:41

    와 넘 좋은글이네요 글도 잘 쓰시고 저도 1994년에 미친인간입니다 ㅋㅋㅋㅋㅋ 1994년이 힙합 최고의 한해 !!!!

  • 1.30 12:45
    @nasty2pac

    94년 맛깔나죠ㅋㅋ 감사합니다!

  • 1.30 15:48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 1 1.30 16:06
    @귀여운타일러

    옙 감사합니다!

  • 1 1.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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