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Kinley Dixon - Beloved! Paradise! Jazz!?
웨스트사이드 건의 드럼리스에서 제이펙마피아의 익스페리멘탈, 드레이크의 팝 랩, 플레이보이 카티의 레이지, 나스의 붐뱁과 메트로 부민의 트랩까지, 작금의 힙합만큼 장르 팬들의 시선이 각자의 취향대로 갈라져 버린 때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힙합의 이러한 양상을 히스토그램으로 표현하고 필자, 그리고 필자와 비슷한 취향을 지닌 극소수의 팬들을(마치 장르 선호도의 통계에서 보이는 얇디얇은 재즈의 막대기처럼) 만족시킬 수 있는 래퍼를 소개하려 한다.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출신의 예술가로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작가 토니 모리슨을 좋아하며, 서사적인 흐름의 스토리텔링과 바로크 팝이 연상될 만큼 - 다소간 장황한 부분은 있지만 - 아름답고 풍부한 음악을 만드는 그의 이름은 매킨리 딕슨이다. 그는 때로 빌리 우즈처럼 추상적이기도 하고, 콘웨이 더 머신처럼 거칠기도 하며, 어쩔 땐 제이펙마피아가 떠오를 만큼 실험적이기도 하다. 그는 켄드릭만큼 흑인과 흑인의 삶, 그리고 공동체를 문학적으로 서술하고, 또 오션만큼 서사적이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 매킨리 딕슨의 음악을 포함시키기에 기존의 구간들은 언뜻 합리적이면서도 꽤 아쉬운 느낌이 든다. 우리는 팝과 록, 심지어 포크까지, 고결한 클래식 연주와 라이브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편곡된 풍성한 음악을 들을 때면 뭉뚱그려 바로크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곤 하는데, 약간의 비약은 있지만, 매킨리 딕슨의 음악은 굳이 힙합의 히스토그램에 바로크라는 하나의 분파를 만들고 이곳에 넣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그의 데뷔 앨범 Who Taught..를 들어보면 적잖이 의아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다. 기본적인 마스터링조차 미숙하여 곡마다의 볼륨 편차가 신경 쓰이는 것과는 별개로(딕슨 또한 당시 그들의 모습을 형편없었다고 표현한다), 작품 그 자체는 조금 과할 정도로 완숙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Who Taught..는 재즈부터 오케스트라와 둔탁한 질감의 붐뱁에 이르기까지 재즈 힙합과 관현악 세션을 절묘하게 조합시키는데, 이것이 RYM에서 그의 이름을 식별할 수 있는 첫 번째 표식이라는 점이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매끄럽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것이 단순히 행운과 우연의 콜라보가 아니라는 점을 2년 뒤 발매된 The Importance..를 통해 납득시킨다는 것이고,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래퍼들의 앨범이 줄지어 발매된 2021년에는 세 번째 앨범 For My Mama..를 발매하며 힙합의 걸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점이다. 그의 커리어는 이제 막 발을 들인 예술가들이 으레 그렇듯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기보다 표면적으로 조금은 지저분한 프로덕션을 가다듬고 약간은 장황하게 들릴 수 있는 포인트를 힙합적인 매력으로 치환하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나는 딕슨의 데뷔 순간을 포착할 때면 확고한 연구 주제와 목적을 가지고서 대학원에 입학한 신입생이 떠오르는데, 그들의 성공은 사실상 예견된 것이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일종의 티핑 포인트처럼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래킬 만한 결과를 제시한다는 점도 그렇다. 나와 매킨리 딕슨의 관계에서 티핑 포인트는 전작 For My Mama..의 "protective styles”로, 첫 코러스 이후에 등장하는 중후한 어쿠스틱 베이스는, 약간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나의 심금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런데 본작 Beloved! Paradise! Jazz!?는 조금 과장하면 앨범의 모든 순간이 티핑 포인트로 가득하다.
Beloved! Paradise! Jazz!?는 토니 모리슨의 1990년대 3부작 <Beloved>, <Jazz>, <Paradise>에서 영감을 얻었다. 딕슨의 인터뷰에 따르면 토니의 3부작과 본작은 아름다움 뿐 아니라 고통이라는 특성을 지닌 사랑의 양가적 성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말한다 - Paradise와 Jazz의 순서가 뒤바뀐 것은 풍요로운 삶과 같은 행복의 감정이 Paradise라면, 미래의 불확실성에 의해 혼란이라는 키워드를 대변하는 Jazz가 그 뒤를 잇는 것이 맞다는 생각으로 도치되었다고 한다. 트릴로지라는 그녀 작품의 특성과 병렬로 배치하려는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 칼같이 나눌 수는 없다 해도 - Beloved! Paradise! Jazz!?는 형식상 세 가지의 콘셉트로 구성되었고, 이러한 콘셉트는 28분이라는 러닝타임에 유려하게 들어맞으며 다소 꽉 찬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세 단어를 아우르는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그의 인터뷰를 보면, 이러나 저러나 우리에게는 Beloved! Paradise! Jazz!?라는 하나의 작품이 남는다. 앨범을 바라보면 현대식 미니멀리즘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오히려 어색할 만큼 빽빽한 맥시멀리즘이 있고, 스튜디오의 열기가 느껴질 만큼 수많은 라이브 무대가 현장감을 자랑하며 앨범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실제로 딕슨은 드럼 프로그래밍과 신디사이저의 차가운 전자 음향, 일렉트릭 베이스보다 라이브 세션을 선호해 왔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Who Taught..의 만돌린부터 The Importance..의 색소폰 솔로, For My Mama..의 스윙하는 듯한 래핑까지, 그는 지금껏 모든 작품에 인상적인 인트로를 삽입하여 귀를 사로잡았다. 토니 모리슨의 저서 <Jazz>의 한 구절을 낭독하는 미국의 작가 하닙 압두라킵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본작은 누군가에겐 장광설로 들릴 수 있음에도 두 작가 모두의 팬을 자처한 딕슨의 작품에서 고인의 시구를 읽는 하닙의 모습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우아한 하프 연주와 극적인 현악 세션, 환각적인 코러스가 감정을 고조시키는 “Sun, I Rise”는 앞서 언급한 힙합과 관현악 세션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딕슨의 감각이 잘 나타나고, “Run, Run, Run”은 커리어 내내 틈틈이 보여주었던 생경한 악기들로 만드는 독특한 비트가 그만큼 독특한 호소력을 자랑하는데, 사실상 이 곡은 이러한 특징의 방점을 찍는 순간으로 보인다. 또 세상을 떠난 친구를 위한 “Tyler, Forever”는 장엄한 브라스로 시작되며 전투적인 비트 위에서 의기양양한 타일러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정확히 곡의 중간 지점인 1:31초부터 아름답게 변주되고 아련한 잔향을 드리우며 영원을 암시한다. 연극적이고 영화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는 딕슨의 인터뷰대로 뛰어난 그의 연출력이 짜임새 있는 악기 구성과 맞물리는데, 어쩌면 이것이 앞서 말했듯 나의 취향을 저격한, 내가 바라 마지않던 음악의 표상인 듯하다. 특히나 딕슨에게 요람과도 같은 재즈 힙합 "Beloved! Paradise! Jazz!?”와 "Live! from the Kitchen Table”는 단순 샘플을 통한 재즈 터치를 넘어 색소폰의 본연한 연주에 집중하는 모습이 힙합만큼 재즈를 사랑하는 애호가들에게는 또 어떤 느낌으로 들려올지 궁금하다. 그런데, 본작에서 재즈는 그의 커리어를 넘어서 조금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 같다. 과거의 작품들이 흑인과 흑인 여성, 그리고 그들의 삶을 그렸다면 Beloved! Paradise! Jazz!?는 성별과 인종에 국한되지 않았던 토니 모리슨의 작품처럼 사랑과 공동체, 자신의 경험, 그리고 그가 기억하는 여러 다양한 순간들로 우리를 안내한다. 스토리텔링은 딕슨에게 있어 앨범을 구성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딕슨의 연출적 방향성에 라이팅에 대한 욕망이 드러나는 "Dedicated to Tar Feather”과 “Tyler, Forever”는 마치 한 편의 단편극을 보듯 유려하게 흐른다. 정해진 길 없이 매 순간 순간이 다르고, 또 즉흥적이며, 연주자들의 긴밀한 유대 관계가 엿보이는 재즈라는 장르가 본작과 병치되는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다.
For My Mama.. 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서 딕슨에게는 기다렸다는 듯 컨셔스 래퍼라는 라벨과 함께 재즈 랩, 그러니까 켄드릭 라마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어쩐지 그의 음악은 켄드릭의 To Pimp.. 와 닮은 면이 있지만, 정작 딕슨 본인은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고민 없이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는 답을 할 만큼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이고, 본인과 켄드릭과의 관련성 또한 미지근한 반응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딕슨과 함께 음악을 시작했던 일종의 리치먼드 커뮤니티 멤버들의 생소한 이름은 - Alfred, Teller Bank$, Angelica Garcia, Ghais Guevara, Seline Haze, Ms. Jaylin Brown, Trey Pollard - 그의 커리어 내내 등장했고, 한 인터뷰에서 딕슨 또한 본인의 세계관에서 이들은 최고의 음악가들로, 이미 충분한 역할을 다 해주고 있는 바,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음을 밝혔다. 그는 흑인 공동체보다는 정확히 말해 그가 속해있는 딕슨 공동체에 시선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나 또한 딕슨을 처음 알게 된 순간, 켄드릭의 이름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첨언한다. 결국 내가 딕슨에게 매료된 이유는 지금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나의 취향들을 끌어모아 하나의 앨범을 만드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빈티지 드럼, 산뜻한 플루트, 하프나 만돌린처럼 쉬이 들어보지 못할 독특한 악기 구성, 재즈 본연의 매력을 살리는 솔로 연주, 장엄한 브라스와 유려한 현악 연주의 극적인 연출, 괜스레 만족스러운 딕슨의 예술감까지. 나는 그가 언젠가는 모두를 놀라게 할 작품을 만들 거라 예상한다. 아니, 지금까지의 과정이 우연한 요행의 산물이 아니라면 이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인 듯하다. 딕슨은 리치몬드에서 이전 세 작품을 만들었고, Beloved! Paradise! Jazz!?를 구성할 새로운 영감을 위해 시카고로 이주했다. 내 생각에 음악을 만들기 위해 주변 환경을 바꾸는,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이 작곡법이 일단은 그에게도 유효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언젠가, 더 이상 그의 음악적 영감이 장소와 무관해질 때가 오면, 그가 속한 작은 음악적 공동체를 넘어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아야 할 때가 오면, 그의 잠재력을 만개시켜 줄 누군가를 통해 외연을 확장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 하나를 위대한 서막에 남긴다.
저는, 글에서도 어느 정도 느껴지겠지만, 페기와 대니 합작보다는 이 앨범을 올해의 힙합으로 꼽고 싶네요. 페기, 대니가 구린 게 아니라 그냥 이 앨범이 제 취향이기 때문입니다. 장르를 제한하지 않는다면야 AOTY는 아마 수프얀으로 돌아갈 것 같지만.. 힙합으로는 20년대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https://blog.naver.com/nikesfm/223280563487
토니 모리슨 레퍼런스에 대해서는 처음 알았네요
전작들은 아직 앨범 단위로는 안 들어봤는데, 그럼에도 본작을 들어보면 아마 새로운 10년의 신예 중 가장 독창적이고 원숙한 힙합 아티스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토니 모리슨이 누구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ㅋㅋ
전작들도 모두 이번 작품만큼이나 훌륭하더라고요. 특히 데뷔앨범은 여러모로 신기해요.
감사합니다 ㅠㅠ
앨범 매끄럽게 해석해주신 덕에 정말 편안히 글을 쓸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한 번 듣고 끌리지 않았는데 읽으면서 다시 봐야겠네요. 늘 리뷰 정말 감사합니다!
러닝타임이 워낙 짧다보니 생각날 때마다 종종 들을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게들었고 여전히 좋다고 생각하지만 안들은지 꽤 지나서 오랜만에 각잡고 다시 돌려봐야겠네요
한창 여름에 발매됐는데, 개인적으로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앨범인 것 같아요.
NikesFM님의 애정 혹은 관심이 가득 느껴지는 글이네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이 앨범 돌리고 나서 딱 느낀 게 너무 짧아서 아쉬웠음
좀 많이 짧긴 하죠. 그나마 유기성이 있다 보니 크게 아쉽진 않았는데, 금세 다음 작품을 또 기다리게 만드네요.
짧은거 빼면 진짜 좋게 들었음
좋은 앨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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