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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pha - Lahai 리뷰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2023.10.30 14:27조회 수 1209추천수 1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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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pha - Lahai

 

단순한 읊조림만으로 타인의 음악을 인간 관념의 바깥으로 빼내는 것은 가히 독보적인 능력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지닌 몇 안 되는 능력자 중 제임스 블레이크와 샘파는 특히나 내 눈에 띄었다. 제임스 블레이크와 마찬가지로, 샘파는 Process를 통해 그의 목소리가 어느 곳으로도 가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나 사방으로 뻗어나간 그 목소리가 적어도 나에게는 닿지 않았던 듯하다. 나는 Process를 듣고 난 후 이 앨범이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곧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샘파는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다이어그램에 속한 예술가 중 한 명이고, 이제 이곳은 일렉트로닉인지 얼터너티브 R&B 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다양한 전자음과 그에 걸맞은 드럼 프로그래밍을 위시한다. 일렉트로닉이 일종의 시금석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샘파의 일렉트로닉과 그 쓰임새는 내가 비교군에 놓았던 다른 이들에 비해 감각적이지 못했다. 그러니까, Process가 발매된 2017년부터 지금까지의 샘파는, 적어도 내겐 타인의 작품에 목소리를 보탤 때만이 매력적인 가수가 된 것이다. 그리고 Lahai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보란 듯이 부숴준다. 피상적인 차이라고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비율을 미세하게 재조정한 것뿐인데, 무엇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과거의 카탈로그를 뒤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이성과 감성 모두에 맞닿을 수 있는 음악을 만나는 일은, 솔직히 말해 기적에 가깝다. 내가 정확히 이것을 기다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Lahai의 얼개를 언제나 내 머릿속에 그려온 것은 분명하다.

 

“Bro, Samph, bro, wake up”. 장장 6년의 시간 동안 두 번째 작품을 내지 않았던 샘파를 깨우는 오프너부터 "Rose Tint"까지, 앨범에 수록된 14곡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은 날아다니는 것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 한 마리의 갈매기이다. 미국 소설가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은 무리 내의 다른 갈매기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조금 독특한 갈매기 조나단에 대한 이야기다. 그저 먹이를 재빠르게 낚아챌 수 있을 만큼의 유려함만을 갈고닦는 다른 갈매기들과는 달리, 조나단은 비행 그 자체에 매료되어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 저 위로 날갯짓을 계속한다. 마찬가지로, 샘파는 Lahai에서 시간과 공간, 사랑, 관계, 영원, 그리고 믿음처럼 하나같이 간단하게 재단할 수 없는 주제들을 탐구한다. 앨범은 시간과 사랑에 대한 은유가 있고, 너무나도 당연하기에 잊고 있었던 사실들을 상기할 수 있는 질문이 있다. 오프너의 후렴구에서 빽빽한 비트 위로 들리는 “Who do you care about? Watch who you care about.”처럼, 유한한 시간 속에서 우리가 진실로 보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일은 지금 보니 나뿐 아니라 꽤 많은 이들에게 시의적절했던 듯하다. 특히나 "Jonathan L. Seagull"에서 설파하는 진실한 다양성과 개성의 가치는 현시대의 캐치프레이즈에 가까울 만큼 많이 인용된 바, 정도 없는 곡해가 난무하는 이 시기에 필요할 뿐 아니라 앨범의 콘셉트로도 훌륭하다. 다양성은 정답을 지우는 것으로 시작하고, 우리 모두는 샘파의 말대로 같은 길을 다른 속도로 지나니까. 그리고, 본작 Lahai 또한 어떠한 정답도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 담긴 주제와 샘파의 질문들이 얼마나 깊이 있고 또 얼마나 새로운지를 따져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미 수많은 조나단들이 수백 번의 아름다운 활공을 시도한 흔적을 우리는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샘파는 칼 세이건도 아니고, 칸트도, 부처도, 하다못해 그들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다. Lahai에서만큼은 샘파 또한 우리의 바로 옆에 서서 우주를 바라보며 이 주제들을 탐구하는 소시민에 가깝다. 무릇 저 위의 절대자보다는 같은 위치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음악사의 수많은 부전공 학도들이 망설임 없이 그들의 견해를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딸의 존재가 샘파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 아름다운 변화의 순간을 조명하는 "Evidence"를 제외하면 Lahai는 생각의 결실이 아닌 머릿속에 복잡하게 꼬여 있는 상념을 그대로 투사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사운드 또한 마찬가지다. 다소 가벼운 무드로 캐치한 훅을 자랑하는 힙합 넘버 “Only”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수록곡은 어딘가 알 수 없고 신비로우며 몽환적인 소리로 가득하다. “Can't Go Back”은 이러한 앨범의 무드를 고스란히 함축한 곡으로, 분열적이면서도 정적인 비트와 은은한 피아노가 합을 이루며 우리의 공상을 돕는다. “Dancing Circles”는 경고음처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피아노음이 리듬을 이루고 그 위에 또 다른 피아노 멜로디가 엄숙한 기류를 퍼뜨리며 곡을 완성시키는데, 피아노만으로 리듬과 리듬,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멜로디와 가사가 춤을 추듯 맞추어지는 모습을 보면 이 곡을 Piano Dancing으로 바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앨범 내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Suspended"로, “Time issue, I miss you. Life, issues, time.”이라는 노랫말이 SF 영화 속의 한 시퀀스처럼 반복되면 우아한 피아노음을 마치 빨리감기한 듯한 루프가 더해지며 신비로움을 체현해 내는데, 이 기묘한 기계 장치는 한 단계 더 깊은 집중과 몰입을 가져올 매력적인 아웃트로다. 겹겹이 쌓이는 보컬과 코러스는 앨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정교하게 짜인 분주한 드럼 리듬이 곡의 밑바탕을 이루는데, 나는 이 곡을 듣고서 곧장 Mr. Morale & The Big Steppers를 떠올렸다. 조금 과장해서 Mr. Morale을 만들던 당시의 켄드릭의 이상이 이곳에 전부 담겨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IDM, 퓨처 개러지, 네오 소울, 피아노와 스트링, 그리고 약간의 신디사이저로 저 미지의 주제를 표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조금 다른 얘기다.

 

나는 최근 하나의 작품으로 분명한 구심점을 갖췄다고 일컬어지는 앨범들을 찾아 헤맸지만, 아무리 들어도 이 원론적인 개념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의 훌륭한 예시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을 본작 Lahai에서 찾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Lahai의 일관된 드럼 리듬은 본작에 가장 많은 물음표를 붙인 일등공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본작의 유기성 또한 이 지점에서 두드러진다. 단순히 정글 타입의 분열적인 드럼 리듬을 골자로 한 것뿐 아니라 이 작품에서 피아노와 보컬이 원하는 대로 유려하게 흐를 수 있도록 매끈한 길의 역할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공간을 제외한 다른 주제들의 표상이 그의 음악에서 그려지거나 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나마 우리가 가장 생경하게 느낄만한 재료가 무엇일지에 대한 고심의 결과가 IDM인 것은 그럴싸하지만, 결국 소리만으로 미지의 세상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키는 것은 이제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이 재료들이 더 이상 참신하지 않다는 것이 인간 창의력의 한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절묘한 조화, 더없이 익숙한 악기지만 샘파의 목소리 아래에서만큼은 왠지 낯설게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까지, 어쩌면 이것은 미시감에 가깝지 않을까. 열역학의 엔트로피를 거스르는 차가운 전자음에서 따스한 피아노 선율로의 이동이 슬픔과 불안의 과거에서 팬데믹 기간에 태어난 새 생명을 통해 믿음과 치유, 사랑이라는 테마로 옮겨가는 과정을 그려낸다는 점 또한 신기로운 면이 있다. 익숙한 카테고리도 더없이 완벽한 각본과 솜씨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전혀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듯 낯선 감정을 느끼게 되니까. 이쯤 되면, 나는 그가 표현하려던 것이 대상의 신비로움이 아니라 그 대상에 다가가는 과정의 신비로움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샘파가 이러한 주제를 고찰하고 도취되어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상념들을 소리로 표현하려 애쓰는 모습이 결과물 만큼이나 신비롭다. 나는 그곳에 도취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피상적이고 결과론적인 해석을 떠나 더 먼 곳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면, 나는 왜인지 알 수 없는 무력함을 느낀다. 감정 표현에 능수능란한 예술가조차 가장 어색한 장르를 골자로 해도 미지의 세계를 완벽히 표현해낼 수 없고, 우리는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무지의 가운데에 서서 그저 우리의 통제력 바깥에 있는 절대적인 힘의 작용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만 본다.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하며 새로운 무지를 또 생산해 내는데, 왜 우리는 신비로운 것을 신비롭게 두지 못하고 또 다른 무지를 생산해 내는 걸까. 왜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을 알기 위해 몸부림치는 걸까. 샘파는 왜 우주와 시간, 공간, 수많은 본질들을 파헤치는 걸까. 과거 수많은 현인들은 왜 저마다 사족을 붙인 자의적인 해석을 굳이 글로 남기며 끊임없이 후대의 학자들에게 씹고 뜯기는 걸까. 내 생각에 인간에게만 주어진 이 고상한 취향은, 밤 하늘의 별빛을 넘어 우주의 공포스러울 광막함을 기어이 느끼고야 마는 인간의 이 욕구는 미지의 세계 그 자체를 아름다움으로 인식하고서 도취되고 또 경이를 느낄 수 있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샘파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과 그를 괴롭히던 개념들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그는 아직 그럴싸한 답을 찾지 못한 듯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가 필요한 무언가를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계속해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되풀이할 것 같다. 시간, 공간, 빛, 운명, 믿음, 사랑, 그 무엇이 되었든, 이 단어들의 비밀을 발견하는 순간만큼이나 그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도 매력적일 테니까.

 


 

2023년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 AOTY가 나왔군요. 솔직히 읽고 들으면서 느꼈던 잡생각들을 구구절절 글로 적어놓긴 했는데, 그냥 듣기 좋다는 말 외에는 크게 의미는 없어보입니다. 가사도 의미도 다 좋지만, 전 피아노와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나 아름답게 어울릴 줄은 몰랐네요. 물론 Process는 아직도 별로입니다.

 

https://blog.naver.com/nikesfm/223250524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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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1 10.30 14:58

    이틀 연속으로 인스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누구씨도 제발 이런 기깔난 작품 하나 들고 컴백했으면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10.30 21:39
    @온암

    순수하게 행복해 보여서 잠시 내버려두기로 했습니다..ㅋㅋ

  • 1 10.30 16:08

  • 1 10.30 16:08

    맛있다! 잘읽었습니다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10.30 21:39
    @DannyB

    감사합니다!

  • 1 10.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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