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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óisín Murphy - Hit Parade를 듣고

TomBoy2023.10.03 12:12조회 수 312추천수 5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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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8

 

 

 

 

 

※ 사춘기 차단제 - 난소와 고환을 자극해 성호르몬을 증가시키는 신호를 차단한다. 사춘기를 늦춰 환자가 스스로 성 정체성을 파악하고, 성전환에 대한 자기 선택권을 주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앨범 발매 한 달 전, 로신 머피는 페이스북 계정에 사춘기 차단제는 "대형 제약회사의 계략"이고 트랜스젠더 청소년은 "작은 혼혈아"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 발언은 앨범보다 더 큰 관심을 받았고 그녀는 곧 상처받은 이들에게 사과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작지만 결집력이 강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죄악시하는 LGBT 커뮤니티가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태생부터 클럽과 댄스음악의 가장 큰 지지자이기도 했다. 머피의 레이블 닌자 튠은 앨범 홍보를 중단하고 판매 수익금을 트랜스젠더 지원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든지 이 사안에 대한 견해가 있을 것이고 머피는 그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사견이지만] 발언자가 공인이나 유명인이라고 해서 누군가가 그에게 더 큰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머피의 논쟁적인 발언과 이 놀라운 앨범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녀의 발언에 그 이상의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수박 겉만 핥고 있는 것처럼 보인달까. 물론 어떤 일에 정통해야만 그 일에 대한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귀 기울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한 아티스트의 창작물과 도덕성이 불가분이라고 간주하는데, 그것은 두 성질이 합쳐져 한 인간을 나타낸다는 뜻이지, 둘을 같은 선상에서 다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로신 머피는 몰로코 시절부터 기발한 댄스 음악의 대명사였다. 한데 기발함에는 '기발하기만 한'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십상이다. 솔로로 변신한 후 그녀는 수많은 장르를 디스크 하나에 욱여넣거나, 런던의 난다 긴다 하는 프로듀서들을 규합하거나, 디스코처럼 제3의 전성기를 맞이한 장르에 도전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해왔다. 코로나 시대에 같은 카테고리에 분류된 제시 웨어가 디스코 퀸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한 것과는 달리, 머피는 새로운 파트너 DJ Koze와 함께 다시 한번 기발한 댄스 음악으로 회귀한다. 코제는 독일 출신 하우스 프로듀서로서, 머피와는 자신의 앨범 <Knock Knock>을 통해 이미 일면식이 있는 상태였다. <Hit Parade>의 전조처럼 여겨지는 <Knock Knock>과 앨범의 이루 말할 수 없이 색다른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다려온 창조적 반려자를 비로소 조우한 듯하다. 미드 템포 하우스이자 봄을 향한 찬송가 CooCool, 펑키한 기타 리프와 평온한 태도가 공존하는 The Universe, 죽음에 대한 섬뜩한 반추가 담긴 Fader, 슬로 번 하우스 You Knew 등, 머피와 코제의 봄부터 이어진 싱글 세례는 우리가 필요로 하던 그 아방가르드 팝이었다.

 

<Hit Parade>는 선공개 곡만큼 청자를 압도하진 못한다. 트랩 비트에 맞춰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튜닝된 Two Ways의 보컬은 마치 아무개의 사운드 클라우드 계정에 올라온 조악한 리믹스처럼 들린다. 바로 전 트랙 Crazy Ants Reprise에서는 보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주적 존재가ㅡ혹은 멍청한 인플루언서가ㅡ식기세척기에 관한 시를 읊조리는데, 이는 기교와 형식에 대한 열망이라기보다는 제임스 조이스나 타르코프스키가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기 위해 삽입한 장면, 즉 과잉된 자의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몇몇 과욕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로신 머피의 최고작이다. 초현실주의의 기괴한 커버 아트에서부터 머피와 코제의 더없이 자유분방한 프로덕션까지, 매우 우스꽝스러우면서 동시에 정말 탁월하다. 하우스나 아트 팝 같은 하나의 장르를 골자로 여러 장르를 아울렀다는 점이나 불안감을 형상화하려 했다는 점에서 <Hit Parade>는 그녀의 솔로 데뷔작 <Ruby Blue>를 연상시킨다. 둘 모두 하나의 작품으로서 통일성보다는 복잡성에 초점을 뒀고 유별난 아이디어와 사운드가 손댈 수 없을 만큼 뒤섞여 있었지만, 어떤 방면에서 보든지 간에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유형의 예술 그 자체였다.

 

그레이스 존스를 떠오르게 하는 디스코 넘버 Murphy's Law에서 머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제한된 일상을 흥분감 넘치는 댄스 플로어처럼 즐기라는 그녀의 권유로부터 3년이 흘렀다. <Róisín Machine>의 관능적인 춤사위와 과장된 의상 콘셉트는 <Hit Parade>에 와서 정신 착란에 빠진 듯한 보컬 튜닝으로 대체됐다. 그라임스나 트래비스 스캇이 떠오르는 이 오토 튠은 꾸밈없는 음색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못마땅한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꾀꼬리 같은 음색일지라도 디테일과 개성을 우선시하는 방식보다 더 가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한편 코제는 CooCool에서 마이크 제임스 커클랜드의 경쾌한 트럼펫 연주를, Fader에서는 샤론 존스의 파워풀한 절창을 샘플링했다. 확실히 앨범 전반부는 컨템퍼러리 소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세련미와 노스탤지어를 품고 있다. 그동안 머피의 음악이 대개 이런 식이었지만 이 앨범은 신기할 정도로 일관성이 없다. 어떤 부분은 그런 변덕을 잠재울 만큼 천재성이 도드라지는 반면 어떤 부분은 그저 실망스러울 뿐이다. 이런 변덕맞은 앨범을 들을 때마다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나 <The Dark Side of the Moon> 같은 작품이 우리 마음속에 잘못된 관념을 심어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음악이 이렇게 훌륭한데 유기성 좀 없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단 말인가.

 

전반부가 고전 소울과 올드팝에 대한 파스티셰였다면, 머피와 코제의 가장 실험성 강한 시퀀스가 후반부 포문을 연다. 각각 7분에 달하는 3개의 하우스 트랙이 연달아 이어지는 구간으로서 러닝타임만 21분이다. 누군가는 이 구간이 자의식 과잉이나 과욕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 하지만 세상에는 타르코프스키, 헤르만 헤세, 칸예 웨스트처럼 넘쳐흐르는 자의식을 자양분으로 삼은 이들의 예술도 있는 법이다. 실험성과 자의식으로 충만한 20분을 지나 보내며, 5-6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것도 재능이라는 제임스 머피의 말을 되새겼다. 아닌 게 아니라 You Knew는 신스 중심의 덥 하우스 넘버로 7분 동안 악기 구성이나 템포에 변화가 없지만, 그루비한 퍼커션과 장난기 가득한 가사, 절묘하게 믹스된 보컬이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이 시퀀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Can’t Replicate는 비요크의 Big Time Sensuality와 마돈나의 Vogue를 황금비율로 혼합한 하우스 팝으로서, 그 시절 언더그라운드 댄스 신을 추억하는 빈티지 팬들의 송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Hit Parade>는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들려주는 건 아니지만, 클래식 사운드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새로운 스타일을 고안해 내는 일만큼이나 값진 능력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Hit Parade>의 제작 기간은 6년에 걸친 긴 여정이었으며 대부분 원격으로 진행됐다. 머피는 자신의 파트를 코제에게 보냈고, 그녀의 말에 따르면 최종 결과물은 원래 버전과 크게 다르거나 아예 재창조됐다. 예를 들어 컨트리 소울이 포스트 덥스텝으로 변신하거나, 머피의 음성 편지, 틱톡 동영상에서 커트한 말소리, 촌극 같은 내레이션, 그리고 time을 dying처럼 들리게 하는 익살맞은 악센트가 불쑥 튀어나오는 식이다. 나는 일류 예술가와 그렇지 못한 이들의 가장 큰 차이가 '유머'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은 풍자와 해학으로 무성하지만 오히려 불쾌할 때가 있고, 어떤 작품은 한없이 진지하지만 줄곧 은은한 웃음기가 감돈다. 누군가를 향한 감정에서 오는 강렬한 힘과 그 힘이 실은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Hit Parade>의 놀라움은 그 복잡한 역학관계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천연덕스러운 유머야말로 두 파트너가 아니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기발한 경험이라 할만하다.

 

 

 

 

 

---

 

원래 한 달 전에 쓰려다가

논란이 앨범보다 커진 광경을 보고 마음을 접었습니다.

앨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그 논란을 반드시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주요 비평지들이

하나같이 저 주제를 다루는 방식을 보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외려 독기가 오르더군요.

 

본문에서 밝혔듯이

예술가의 창작물과 그의 도덕성은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것은 트랜스젠더에 관해 편견 어린 발언을 한 머피와

Hit Parade를 만든 머피가 동일인이기 때문이지,

둘 사이에 깊은 상관관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녀는 트랜스젠더를 혐오하기 위해 앨범을 제작한 것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가령 사춘기 차단제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 약이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많은 청소년에게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약의 효력은 여전히 과학적으로 불투명하고

대규모 임상실험이나 식품 의약국의 허가를 받지 않았으며

적지 않은 국가에서 부작용을 이유로 처방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정체성 문제를 겪는 청소년들을 서포트하는 것,

한 약품의 효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것.

머피가 트랜스젠더에 관한 발언을 한 것,

그 당사자가 앨범을 제작한 것.

 

언뜻 둘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둘은 개별로 깊고 진중하게 논의될 사안이고,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나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세상 모든 일이 당시 나의 신념이나 직관, 단편적인 정보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복잡합니다.

 

 

저는 인터넷 논쟁으로 사소한 문제 하나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윈처럼 하나의 문제에 수십 년씩 매달려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이성을 차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매체로 돌아갈 필요성이 있는 것 같군요.

책 한 권도 읽을 여유가 없는데, 첨예하게 대립하는 논쟁 속으로

어떻게 그리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평론가가 자신의 글에서 어떤 말을 하는가는 완전한 자유입니다.

머피의 발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도 되고요.

하지만 그 발언을 빌미 삼아 모두가 유사한 논조로 캔슬 컬처를 조장하는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정말 촌스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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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10.3 12:14

    익숙한 앨범인데 논란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앨범 감상과 함께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 10.3 12:54

    음악하고 논란은 따로 봐야된다고 생각은 하는데 또 말처럼 쉽지는 않은 거 같기도 하고 참 아이러니하네요. 글 잘 봤습니다!

  • 10.3 15:01

    위 논란은 몇 번을 읽어도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별로였습니다. 별개로 앨범은 올해 나온 음악 중에서도 상당히 고평가 받을 작품이 아닐지. 앨범은 정제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사운드나 하우스를 이용한 변주가 생각보다 다채로우며 코제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먹혀든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팝과 하우스 사이의 새로운 퍼레이드.

  • 10.3 15:15

    Tomboy님 글 읽고 커버 때문에 안 듣다가 들어봤는데 정말 맘에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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