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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은 10장의 앨범들 (+ 2장의 신보)

title: Mach-Hommy온암2023.09.08 17:27조회 수 1189추천수 9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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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irvana - In Utero

 간혹 이 앨범이 그 Nevermind보다도 탁월하다는 소수 의견의 등장에, 나는 무심코 "그럴 수도 있겠다"며 소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Serve the Servants의 도입부와 Heart-Shaped Box의 기타 리프가 훌륭하다는 사실은 뒤로 하고서, 대체 어느 락스타가 자신을 강간해달라는 외침을 공개적인 음반에 담을 수 있을까. 난 커트의 가창을 들을 때마다 언제나 그가 한 마리의 야수와 같다고 생각했다. 맹수가 야성의 이름을 그의 이빨과 발톱에 새긴 채로 고통을 애써 덮어보려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를 발견한 누구나 그가 느끼는 고통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랬음에도 어째서 세상은 커트가 그의 입 안에 권총을 넣는 것을 말리지 못한 것일까. 남은 것은 그의 처절한 포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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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Lana Del Rey - Paradise

 역시 몇 번이고, 난 이 시기의 라나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Norman Fucking Rockwell! 이후로 그녀의 음악성이 수직 상승했다고 한들 Born To Die로 대표되는 트립 합 라나의 음악은 평론지들의 혹평을 뇌리에서 말소해버릴 정도로 너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Paradise는 그런 Born To Die의 연장선상에 있는 EP로서 자유와 섹스, 미학적 비극 등을 계승한 작품이다. 음악적 페르소나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녀가 제공하는 고전적 팜므파탈의 이미지가 이토록 고혹적인데, 내가 당신을 어떻게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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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Pac - 2Pacalypse Now

 투팍은 처음부터 야성과 서정성을 능숙하게 오갈 수 있는 아티스트였다. 공권력에 대한 분노와 그가 속한 사회에 대한 애정이 뒤섞인 이 데뷔 음반은 후속작의 후광에 가려졌다 뿐이지, 결코 당대의 평범했던 힙합 앨범 정도로 평가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다. 특히 신인의 신분으로 미국 부통령의 반응까지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과거 흑인 음악에 대한 레퍼런스가 곳곳이 녹아들어 있으면서도 동서부 힙합의 영향을 골고루 받은 팍만의 정체성은 아직까지도 거론되는 힙합 역사상 최고의 혁명가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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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Westside Gunn - FLYGOD

 이 앨범이 그리젤다 레코즈 소속 래퍼들의 앨범 중 최고작이라는 의견에 어렴풋이 동의가 갈 법도 하다. 비록 웨스트사이드 건이 회사 내에서 랩 스킬로 손꼽힐 만한 래퍼는 아니지만, 그는 그가 원하는 모든 장르적 요소를 꺼리낌 없이 동원할 수 있는 인맥과 자원을 갖추고 있다. 특히 프로덕션 면에서만큼은 삼총사 중 그가 단연 최고로 꼽힐 만하다. 레코즈의 전속인 다린저를 필두로 내로라하는 언더그라운드 프로듀서들을 대동해 골든 에라의 힙합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웨스트사이드 건은 반복되는 리프 하나의 흡입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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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Westside Gunn - Pray for Paris

 처음엔 그다지 매료되지 않았던 앨범이 추후 재청취를 거쳐 훨씬 좋게 인식되는 경험이란 몇 번이고 겪는다 한들 결코 질리지 않는다. 다린저는 이 음반에서 특히도 피아노 위주의 샘플을 채택해 반복시키는데, 그의 손을 거쳐 음산하게 재탄생한 비트들의 위력이란 고급스럽고도 음험하기 그지 없다. 더욱 다양해진 객원 래퍼들의 피쳐링 또한 그리젤다가 주도하는 새 시대의 바람을 상징하고 있었다. 가히 앨범 최고의 비트라고 생각하는 Allah Sent Me의 샘플 클리어가 되지 않은 것에 애석함을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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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arl Sweatshirt - Some Rap Songs

 지독히도 뒤틀린 비애와 그 더미에서 찾을 수 있는 가족애의 이미지. 그 혁신적으로 단출한 구성이나 로파이 샘플을 강조한 사운드 면에서 이 앨범은 가히 2010년대 버전의 Madvillainy라 찬사받아도 무방하다. 처음에는 같은 해의 DAYTONA, TA13OO, KIDS SEE GHOSTS 등에 비해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음반이, 이제는 나에게 끊임없이 최면을 걸고 있다. 그 어디에서도 감상할 수 없었던, 궁극적 침통함의 드럼리스로 말이다. 복잡하게 꼬은 그의 낱말들이 오히려 그의 감정을 가장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은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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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nway the Machine - God Don't Make Mistakes

 그리젤다의 삼총사 중 유독 자신의 입지를 잘 잡지 못한다고 느껴졌던 래퍼에 대한 인식을 단번에 파쇄시킨 수작. 치명적인 라인을 집필하는 능력이라면 베니 더 부처와 함께 최고로 평가받을 만한 콘웨이의 약간은 아쉬운 커리어가 이 앨범 한 장을 통해 마침내 바르게 선 느낌이다. 그리젤다 특유의 리프가 강조된 음악적 색채는 유지하면서도 객원 아티스트들의 자연스러운 색채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점에서 음악적으로 고평가받을 만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와닿는 것은 허탈히도 화하는 콘웨이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과 토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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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Olivia Rodrigo - Guts

SOUR의 성공은 요행이 아니었던 것일까. 어느 정도 탄탄한 완성도를 갖춘 이모-팝 펑크 프로덕션이 아주 특출난 수준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올리비아가 그녀의 이미지에만 의존하는 팝 싱어 따위가 아니란 것쯤은 알게 되었다. 올해로 20세가 된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여성 팝 스타로서 테일러 스위프트만큼 거대하거나 빌리 아일리시만큼 충격적이진 않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가 거부할 수도 있었던 왕도를 천천히, 굳게 걷고 있는 중이다. 그것만으로도 대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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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V - Layover

고작 여섯 곡에 17분 정도밖에 안되는 음반을 정규 앨범이라고 우기는 괘씸함은 둘째치고, 최근에 뉴진스를 성공적으로 런칭시킨 민희진 대표의 기획력은 뷔에게선 오직 마케팅 부분만 유효했던 것일까? 솔로 아티스트 뷔의 앨범이 되어야지, 뷔 외에 어떤 다른 아티스트를 대입해도 무난하게 진행될 앨범을 제작하면 어째야 할까? 곡은 과하게 안정적이고 가사는 과하게 평면적이다. '고유적'이라 칭할 수 있는 것들을 앨범에서 모두 제하고 난 뒤 결국 남은 것은 컨셉 포토와 뮤직 비디오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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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Björk - Homogenic

 비요크만큼이나 독창적이고 아이코닉한 여성 아방가르드 아티스트가 또 어디 있을까? 그리고 그녀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도 이런 색채의 음반이 또 있을까? 요컨데, 난 커버의 기괴함을 이만큼이나 충족시키는 다른 앨범을 찾지 못했다. 두 세계의 소리를 자연스럽게 융합하면서도 총체적으로는 어딘가 꺼림직한 인상을 주는 음악에서 가장 경이로운 것은 그녀의 목소리다. 아름다움부터 끔찍함까지 총체가 가능한 천의 보컬, 그녀 자신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비요크의 목소리는 그러한 초자연적 영력을 지니고 있었다.

 

+ 새벽을 불태운 결과 하루에 10개의 음반을 듣는 데 성공했습니다 크하하 못 말리는 앰생새끼

아직 오늘 더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까지 다 기록하긴 너모 귀찮잖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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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 9.8 17:44

    양 끝이 아주 마음에 드네요

  • title: Mach-Hommy온암글쓴이
    9.8 18:39
    @예림

    그럴 줄 알고 있었습니다 ㅋㅋㅋ

  • 9.8 17:45

    비요크 아줌마는 전설이다

  • title: Mach-Hommy온암글쓴이
    9.8 18:39
    @깐예콜라마
  • 9.8 18:31

    잘읽었습니다

    섬랩송에 대한 감상이 참 공감되네요

    참 묘한 매력을 갖고있는 앨범

  • title: Mach-Hommy온암글쓴이
    1 9.8 18:40
    @DannyB

    3분이 넘는 곡이 없어서 그런지 언제 지나갔는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끝나는 앨범이죠

  • 1 9.8 19:05

    "In Utero가 Nevermind보다도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소수로서 왠지 뿌듯하네요ㅎㅎ

  • title: Mach-Hommy온암글쓴이
    9.8 19:16
    @Pushedash

    빼애액 네버마인드가 더 훌륭하고 아이코닉하다 빼애액

  • 9.8 19:39
    @온암
  • 1 9.8 19:22
    @Pushedash

    ㅇㅈ ㅎㅎ

  • 9.8 19:06

    오늘 앨범 10장을 돌리셨다니 대단합니다 ㄷㄷ

  • title: Mach-Hommy온암글쓴이
    9.8 19:17
    @Polop

    새벽까지 친 거라서 ㅋㅋㅋ 게다가 썸랩송은 24분이고 뷔 신보는 17분밖에 안되서 합쳐도 웬만한 앨범 분량 하나도 안됩니다

    저 후로 로살리아 MOTOMAMI랑 데인저 소트 Cheat Codes 들었네요

  • 9.8 20:07

    온암, 그의 하루는 36시간이란 말인가?

  • title: Mach-Hommy온암글쓴이
    9.8 20:11
    @아몬드페페

    후후훗... 백수에게 '시간'이란, 넘쳐나는 것이 아닌가?

  • 9.8 21:10

    7번 솔직히 양산형 평작이겠지 하고 들었다가 너무 좋아서 놀랐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들어봐야겠네요

  • title: Mach-Hommy온암글쓴이
    9.8 21:28
    @거리가리

    Chanel Pearls는 제 최애곡...

  • 9.8 21:15

    뷔는 잘생겨서 걍 앨범까지 좋게들리던데ㅋㅋ..

  • title: Mach-Hommy온암글쓴이
    9.8 21:28
    @자카

    '비주얼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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