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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앨범, Freetown Sound

TomBoy2021.10.02 21:59조회 수 557추천수 9댓글 6

여러분들은 마음의 앨범이 있으신가요?

'마음의 앨범'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제게는 블러드 오렌지의 <Freetown Sound>가 바로 마음의 앨범입니다.

물론 이 바람 앞의 갈대 같은 애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제게는 이 앨범이 정확히 그렇습니다.

 

"가장 애정하는 앨범이 무엇인가?"

이 질문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Heart of Mine>, <Promise>, <Talking Book>, <channel ORANGE>

같은 작품들 앞에 놓을 수 있는 앨범이 있다는 사실을요.

 

앞으로 종종 이런 앨범들을 위해 글을 써야겠습니다.

기분이 너무 좋아요.

 

 

여러분들의 마음의 앨범은 무엇인가요?

You are special in your own way.

 

 

 

 

2016 Blood Orange - Freetown Sound.jpg

 

우리에게 블러드 오렌지로 익히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데브 하인즈는 런던에서 출생했으며 현재는 뉴욕에 거주 중이다. 데브는 드레드 머리를 했고 현대무용에 대한 그의 애정이 그대로 음각된 듯한 우아한 체형을 지니고 있다. 일포드의 또래 아이들이 디지 라스칼과 베리얼에 열광하는 동안 데브는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았지만, 정작 그의 음악 경력은 펑크 밴드 테스트 아이시클스를 통해 시작됐다. 데브는 자신의 앨범 오프닝에 애슐리 헤이즈를 등장시킬 만큼 정치적인 인물이지만 트위터 멘션에 따르면 그는 게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트레이트도 아니다. 그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머라이어 캐리를 위해 곡을 썼고 애벌렌치스와 대니 브라운을 위해서도 곡을 썼다. 프리드리히 니체에서부터 제임스 조이스와 재커리 심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평론가들은 예술이 얼마나 폭넓게 인간성을 수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예술적 인간"의 변화무방한 생김새를 포착하기 위해 사색을 거듭해왔다. 나는 그들이 찾으려 했던 또 정의하려 했던 인간이 꼭 내 눈앞에 있는 것만 같다. 우리에게 블러드 오렌지로 익히 알려진 데브 하인즈의 재능은 어찌나 세차게 타오르는지, 음악과 인종과 성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관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불살라버린다.


  <Freetown Sound>는 마치 렘브란트가 그린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연상시킨다. 하나의 작품으로서 아티스트 자신과 자신의 음악세계를 이보다 잘 표현한 앨범이 있을까. 나는 프린스처럼 교태스럽고, 잭슨처럼 리드미컬하고, 보위처럼 특별하고, 블론디처럼 신명 나는 유형의 음악들을 찾기 위해 청춘의 대부분을 할애했는데, 그 모든 감각을 단 1장의 앨범에서 느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물 흐르듯이 이어져 있는 17개의 곡들 사이사이 정치적 연설, 고전 샘플, 컬트 다큐멘터리 등이 편집점의 역할을 하며 데브 하인즈라는 인물을 입체감 있게 묘사한다. 단출하지만 강렬한 드럼 비트와 은은한 피아노 코드가 앙상블을 이루는 Augustine에서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데브의 감각이 잘 나타난다. 그는 이 곡에서 로마에서 서 아프리카로의 순례를 떠난 성 아우구스티누스,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에서 런던으로 이주한 자신의 아버지, 런던에서 뉴욕으로 떠나온 자신 등 세 남자의 삶을 등치 시키면서 자신의 신념과 인생관을 피력한다. 그러니까 프리타운의 소리는 곧 뉴욕의 소음이요, 데브 하인즈의ㅡ"Oh, I am a black man living in America."ㅡ자화상인 셈이다. 

 

  버트 바카락, 좀비스, 비치 보이스 등의 뮤지션들은 당대의 록 음악에 바이올린, 첼로, 하프시코드 등의 악기를 도입해 바로크 팝의 선구자가 됐고, 50년 뒤 데브는 추상적인 클래식 연주와 80년대 댄스 팝을 결합해 바로크 알앤비를 선보인다. 솔란지의 <True>부터 루카 구아다니노의 <We Are Who We Are>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데브 하인즈 송라이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수많은 작곡가나 프로듀서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현대의 감수성으로 빈티지에 접근하지만 그 결과물은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유행에 대한 저항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Freetown Sound>에는 끈적한 90년대 알앤비가 있고, 클래식과 재즈가 있고, 퍼커션과 롤랜드 주노 106이 있고, 그레이스 존스와 프린스가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대체 어떻게 한 덩이의 유기물이 됐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는 것이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지 위에서 블러드 오렌지라는 미명하에 고전과 혁신이 절충한다. 특히 데브가 마이클 잭슨을 생각하며 작곡했다는 E.V.P.에서 나일 로저스의 기타 찹과 데비 해리의 웅얼거리는 보컬 위로 잭슨의 춤이 오버랩될 때, 나는 완전무결한 오르가슴에 이른다.

 

  데브의 음악이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데는 섬세하고 미묘한 그의 팔세토가 큰 몫을 했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것은 <Freetown Sound>가 타인의 목소리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당신이 앨범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음성이 애슐리의 격정적인 연설임을 기억하라) 블론디의 데비 해리와 엠프레스 오브의 로렐라이 로드리게즈, 넬리 퍼타도와 칼리 레이 젭슨, 브랜든 쿡과 이안 아이제이아, 그리고 타네히시 코츠와 데 라 소울까지, 데브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은 흑인과 백인, 여성과 남성, 게이와 스트레이트, 소수와 다수, 이민자와 토착민 등등 인간 군상의 다양한 형상들을 모델링하기 위해 섭외됐다. Best to You나 Desirée 같은 곡들은 언더그라운드 댄스의 메카로서 뉴욕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해주지만, 이 흥겨운 리듬 위에서 주인공 데브는 자신의 파트너 혹은 다큐멘터리 영화, 유튜브 클립을 위해 망설임 없이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지다. Better Than Me 뮤직비디오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Call Me Maybe를 부른 인물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은 앨범의 정체성을 희미하게나마 체험시켜줄 것이다.

 

  현실세계의 부조리와 부박함을 들추고 있음에도 데브는 <Freetown Sound>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입장에 선을 긋는다. 공권력에 의해 살상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음악이 어쩜 이리도 신날 수 있단 말인가. 완벽한 모순이다. 젊은 여성들에게 미시 엘리엇이 남긴 유산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인트로부터, 인종 문제와 드래그 문화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에서 채집한 샘플, 현대 문학, 컬트 영화, 강력한 정치사회적 진술들, 필립 글래스, 커티스 메이필드, 에디 그랜트, 워렌 지, 비스티 보이즈 등등 데브는 각 세대의 문화와 이정표를 넘나들며 다층적인 브리콜라주를 빚어냈다. 이것은 꼭 수천 장의 스타워즈 스틸이 합쳐져 요다가 된 포스터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나는 심도 있는 서적을 읽거나 제법 자세한 설명을 들어도 "도대체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란 것이 무엇인지" 온전히 납득할 수 없을 때가 많았는데, 이 앨범은 그 2%의 결핍을 메워준다. "현실이란 언어, 전형, 대중 매체 이미지를 이용해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다소 황당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으로 보면, <Freetown Sound>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의도하지 않은) 완벽한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블러드 오렌지의 디스코그래피,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입장, 데브 하인즈로서의 생애 등 그는 어떤 층위에서도 이상하게 보이거나 기성 예술에 반하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손쉽게 요량할 수 없는 아이디어들로 덩이진 앨범은 자연스럽게 시대를 초월한다. 당연히 모든 사람은 유색인종이 아니고, 성소수자도 아니고, 뉴욕에 정착하려는 이민자도 아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는 그들의 삶과 예술을 동경하는데 일생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것일까. <Freetown Sound>는 미래이자, 고전이고, 개인이다. 하물며 당신이 이 모든 상념과 함의에 관심이 없더라도 춤출 수 있는 무대 한 편을 마련해주지 않는가. 마이클 잭슨의 가호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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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10.2 22:08

    검정치마의 [TEAM BABY] 입니당. 오랜만에 들어도 역시나더라구요. 사랑을 전하는 노랫말이 너무나 따듯해서 언제 들어도 기분이 참 좋아져요.

  • 10.2 23:20

    헐 톰보이님이셨어요??

    글 잘쓰신다 했는데 어쩐지

    대회 우승 축하드립니다 🧡

  • 10.2 23:27

    올해 나온것들중에선 클레어오 새 앨범과 블레이크 밀스& 피노 팔라디노 앨범 맨날듣네요

  • 10.3 01:19

    블러드 오렌지 오랜만이네요

  • 8.31 21:22

    제 최애 앨범이 Promise... 그리고 저도 Bobby Caldwell의 Heart of Mine 앨범 너무 좋아하고... 현대 시대의 최애 아티스트는 블러드 오렌지입니다...정말 저랑 취향이 맞으시네요..

    블러드오렌지 글들을 검색해봐서 이렇게 찾아뵙게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작성하신글들 잘 참고해서 더 들어보겠습니다!! 너무너무 반가워요

  • TomBoy글쓴이
    9.5 20:56
    @CHRTF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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