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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엔 어떤 철학이 담겨있는가

쫀득존떡3시간 전조회 수 735추천수 7댓글 4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 노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비트겐슈타인

예수는 글자를 죽이고, 확립된 모든 것을 죽인다. – 니체

I’m lost in translation / 걍 할 뿐이야 display를 – 저스디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러나 침묵할 수 없다.

 

초기 비트겐슈타인(『논고』)은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라고 했다. 언어로 담을 수 없는 것(윤리, 미학, 삶의 의미)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그러나 저스딛스는 정확히 그 침묵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자기 분열, 사랑과 증고,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번역 과정에서 길을 잃었다는 선언 자체가 이 실패의 인정이다. 그러나 실패를 알면서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철학적 탐구』)은 언어의 의미가 사용(use) 속에서 발생한다고 봤다. 같은 단어도 다른 “언어게임” 안에서 다른 의미를 가진다.

 

대중은 자신의 언어게임으로 가사를 해석하니까 “또 누군가를 디스하네” “내로남불 뱀새끼”라고 읽는다. 언어게임을 공유하지 않으면 번역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자가 말할 수 있다 해도, 우리는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자의 삶의 형식(leensform)이 우리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지하 작업실, 턱관절, 힙합에 대한 사랑, 가족, 이 삶의 형식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의 언어는 “사자의 언어”처럼 들린다. 

 

 

노자는 도덕경 첫 문장에서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노자는 그럼에도 5천 자의 도덕경을 썼다. 저스디스도 그럼에도 71분의 앨범을 냈다.말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 자신의 분열, 모순 사랑과 증오, 이것들을 언어(랩)로 표현하려 하지만, 표현하는 순간 왜곡된다.침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번역 손실을 알면서도 번역하는 것. 왜 이들은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는가?

 

예수 이전의 시대, 천 년간 굳어진 율범, 의례, 규칙—그것들이 원래 담고 있던 생명은 죽어 있었다. 글자를 따랐지만 글자가 가리키는 것은 보지 못했다. 겸손을 말하면서 우월감을 느꼈고, 이웃 사랑을 말하면서 이웃 ‘아닌’ 자를 혐오했다. 니체는 신이 없다는 선언의 의미로 “신은 죽었다”고 외친 것이 아니다. 신의 모든 가치가 고민되지 않고, 현실에는 적용되지 않은 채 고장 나버린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앨범은 명확한 이름(사회비판/자기고백/디스)을 거부한다. 이름이 고정되는 순간, 생각이 멈추기 때문이다. “정답”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의심하기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니체의 “데카당스”다. 원래는 생생하고 팔팔하고 아름다웠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형태만 남아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 상태. 글자는 죽는다. 가치는 죽는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죽는다.

 

저스디스는 죽었는가. "힙합의 대변자", "디스의 왕", "고독한 예술가", “18허승”의 글자들로 굳어졌고, 사람들은 그 글자를 기대했다. 그 글자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 사람들은 이것을 모순이라 불렀고, 내로남불이라 불렀다.

 

구조적 가해자이자 피해자, 힙합을 착취하면서 힙합을 구원하려 한다. 

 

"자! 나는 바그너만큼이나 이 시대의 아들이다. 내가 한 사람의 데카당이라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파악했던 것이고, 바로 이것에 내가 저항했다…"

 

 

ㅡ나를 이해했는가?ㅡ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매달린 자……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마지막 문장

 

두 개의 대립이 아니다. 하나의 상태다.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매달린 자, 라는 하나의 글자. 마찬가지로 저스디스 대 허승도 대립이 아니라 한 인간 안에서 공존하는 두 극단이다. 화해하지 못한다. 하나가 되지 못한다. 미완성이다.

 

"너가 느끼는 걸 지금 나도 느껴. 그래 내가 느끼는 걸 지금 너도 느껴. 우리는 흐느껴. 서로의 상처가 다 보여." 그러나 화해의 장면은 없다. 합은 주어지지 않는다.

 

헤겔은 정과 반이 충돌하여 합으로 나아간다고 했다. 합은 새로운 정이 되고, 또 다른 반과 충돌하여 더 높은 합으로. 이렇게 절대정신을 향해 수렴한다고. 그러나 니체는 다르게 보았다. 정은 반드시 데카당스가 된다. 합을 제시해도 그것도 데카당스가 된다. 수렴은 없다. 반복만 있다. 돌고 돌고 돌고.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다시 또 아래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했다. 저스디스는 십자가에 못 박히지만 부활은 없다. 왜?

 

부활을 저스디스가 보여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도 글자가 된다. "이렇게 부활하면 됩니다"라는 정답이 된다. 사람들은 그 글자를 따르고, 생각하기를 멈추고, 또 다른 데카당스가 시작된다.

 

임제 선사가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살불살조(殺佛殺祖)),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개념에 집착하면 깨달음에서 멀어진다. 저스디스도 직접 인용한다. "부처를 만났고 부처를 죽였지, 임제를."

 

그러나 부처를 죽인 후에 무엇이 남는가. 노자는 무위자연을 말했고, 임제는 평상심시도를 말했고, 니체는 영원회귀의 긍정을 말했다. 파괴 후의 평화를 암시했다. 저스디스는 평화를 주지 않는다. "여기서 살아야 해." 여기가 우리 집이다.

 

 

앨범을 듣는 과정 자체가 데카당스의 수행이다. 번역의 실패를 내용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청자가 앨범을 듣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만든다. 비트겐슈타인적 문제를 음악적으로 수행한다.

 

그러나 이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다. 각자의 세계가 부딪힘으로 인하여, 오해, 실망, 증오, 우울, 분노가 남아도, 우리는 상대의 암호 같은 말을 이해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무언가라도 확실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상대를 자기 멋대로 번역할 뿐인 가해자이기에. 혹은 번역된 피해자이기에. 이 고통과 좌절과 실패도 '죽을' 것이고, 이 깨달음의 아름다운 순간이 삶에서 몇 번이고 반복될 수 있기에.

 

이곳이 우리의 집이다. 죽어도 바뀌지 않을 우리의 집이다.

 

한 인간이 수놓은 혼란스러운 미로 끝에 있는 것은 사체였다.

 

부활은 청자 각자의 몫이다.

 

 

  1. LIT

 

귀환 선언과 동시에 자기 박제의 예고.

 

  1. 내가 뭐라고

 

억압적 탈승화 (마르쿠제) 개념이 힙합 언어로 번역된다. 자유를 추구했지만 (약물의 스펙트럼: 소비/쾌락/중독의 자유) 그 자유가 자기 파괴의 기제가 되었다.

 

  1. 내놔

 

임제종 선불교의 "살불살조(殺佛殺祖)" 직접인용.

노자/손자병법 레퍼런스. "강에서 기다리네 떠내려올 원수들 시체를" 여기에서 원수는 누구인가. 타인일까 자신일까.

“내놔 돈, 내놔 떨, 내놔 pussy / 보단 loyalty": 후렴이 반복되면서 결국 요구하는 건 물질이 아니라 충성(loyalty). 그리고 마지막엔 "보단 love"로 바뀜. 진정한 연결에 대한 갈망. 우상 파괴 후에 남는 것의 변화. 충성은 여전히 관계적이고 조건적이다.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1. Lost

 

"윤락 남성이 피를 흘린 얘긴 모두 그를 따먹네 / 그는 농담이기에" 

고통이 사회적으로 "농담"으로 소비되듯, 저스디스의 고통도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된다.

 

  1. Don’t Cross

 

표면적으로는 누군가를 저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향하는 것일지도.

"빈지노 디스"로 읽히는 이유는, 청자가 저스디스의 언어게임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1. Curse

 

표면적으로는 끔찍한 저주. 저주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라면? 힙합을 착취하는 자들 = 자신이기도 하다.

 

  1. Interrude

 

성공했지만 고독하다. 숨겨진 자기 고백.

 

  1. 유년

 

순수했지만 편견도 물려받았다는 자기 인식. 부모의 언어가 곧 세계의 언어가 되었다. 분노의 기원을 가족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부모도 그들의 부모에게서 배웠을 것이다.

 

  1. VIVID

 

권위자였던 사람의 비극적 결말. 혼내던 사람도 혼나는 사람도 결국 상처받은 인간이었다.

"난 아직도 화합과 사랑이 진심으로 열쇠라고 믿어 / 근데 이런 가치를 요즘 음악으로 뿌리기는 아무도 원하지 않잖아"

CD1의 마지막 가사: "내 삶의 중심에서 / 이젠 너에게로." 희망의 암시. 자기 중심에서 타자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선언. 그러나 CD2에서 이 희망은 산산조각 난다.

 

  1. Dusty Mauve Intermission

 

노자의 "대음희성(大音希聲)" — 가장 큰 소리는 소리가 없다.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의 음악적 구현. 

Dusty Mauve: 먼지 낀 연보라색. 빛바랜 색. 시간이 지난 것들. 기억의 색깔.

 

  1. 돌고 돌고 돌고

 

부모-자녀 권력 관계의 역전 순간. 이것이 해방인가, 비극인가. 분노는 대물림된다. 가정에서 주고받은 상처가 사회로 번진다. 또 제목은 영원회귀를 암시한다.

 

  1. THISpatch

 

Adorno의 문화산업 비판. 의사개성화(pseudo-individualization), 상품화. 한국 힙합씬 전체와 맥 밀러 한 명을 바꾸겠다는 극단적 평가절하. 그러나 이것도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칼날이다.

 

  1. Wrap It Up

 

마약 유통의 세계 희화화, 자신도 발을 담갔었다는 고백

 

  1. Can’t Quit This Shit

 

“세계의 이슈들은 내 애들의 내일이니 / What you think? Of course it's personal"

글로벌 정치가 개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1. THISISJUSTHIS Pt. III

 

자기 분열의 정점, 동시에 “this is justhis”를 외치며 자신을 display한다. 

"니네 underground처럼 / 나의 mainstream도 타의적"

선택의 자유라는 환상. 실제로는 ?에 의해 결정된다.

 

  1. 친구

 

분노 후의 외로움. 망하면 떠나는 건 친구고, 남는 건 가족이다. 그러나 그 가족과의 관계도 상처투성이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안다.

니체의 “친구” 개념:

"한 사람에게 연연해서는 안 된다. 설령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 『선악의 저편』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친구를 찾아 헤맨다.

내가 망하면 날 버려도 되는 게 친구다. 망해도 남아있는 건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다. 친구는 조건적 관계다. 가족은 무조건적 관계다. 그러나 앨범 전체에서 가족과의 관계가 얼마나 상처투성이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무조건적 관계도 폭력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어디에 기댈 수 있는가.

 

  1. 내 얘기

 

"내 친구도 가족도 아닌 내 얘기 / 분명 남의 입에서 나올 때는 꽤 재미있었던 얘기 / 근데 이젠 내 얘기"

다른 사람의 불행은 재미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이야기가 되면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 말하면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침묵하면 내 이야기가 된다.

서로를 바라보지만, 하나가 되지 못한다. ‘합’은 주어지지 않는다.

 

  1. XXX

 

진흙탕에서 레슬링. 누가 더 더러운지 겨루는 싸움. 이기든 지든 진흙투성이가 된다. 깨끗하게 이기는 방법은 없다.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투쟁한다. 그러나 결실이 없다. 더러워지기만 한다.

 

  1. Lost Love

 

1번 트랙의 후렴이 돌아온다. 미로를 한 바퀴 돌았다.

"I'm lost in translation / 걍 할 뿐이야 display를"

처음엔 자신감 넘치는 선포였지만—번역 과정에서 길을 잃지만, 상관없다, 그냥 전시한다. 당당함.

그러나 19번 트랙에서 같은 가사를 다시 들으면 다르게 들린다. 체념의 반복.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길을 잃었다. 여전히 전시할 뿐이다. 순환은 끝나지 않는다.

 

  1. HOME HOME

 

현대 사회의 모든 병리를 열거한다. 무자각적 가담. 자신도 모르게 혐오에 동참한다.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캔슬한다. 자신도 모르게 나치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 탈출 불가능한 미로. 그러나 여기서 살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캔슬"당한 대표적 인물을 마지막 트랙에 배치함으로써, 캔슬 컬처 자체를 문제 삼는다. 동시에 저스디스 자신도 앨범 발매로 "캔슬"당할 각오를 한다.

평화를 주지 않는다.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부활을 주지 않는다.

다만 선언한다. 여기가 집이다. 죽어도 바뀌지 않을 우리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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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3시간 전

    설마설마했는데ㅋㅋㅋㅋ

  • 3시간 전

    처음엔 정반합처럼 저스디스가 스스로를 아우르면서 새롭게 성숙해진 모습을 그려냈다 생각했는데 들을수록 순환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모든 것을 해결해줄 하나의 답을 찾는 것 대신 이러한 순환을 전시하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서 한걸음 더 나아간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고 오버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인류사에서도 한걸음 나아간 발자국이라고도 여겨져요. 불교나 실존주의 철학 등에 뿌리를 내린 생각들이 고통을 직면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그려내고 실천한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순수예술 등에선 이러한 시도가 있었겠지만 상대적으로 대중과 가까운 힙합이란 장르에서 이런 걸 보여주는 건 앞에서 설명한 철학이 우리에게 더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주지 않을까 기대가 되네요.

  • 2시간 전

    재밌게 읽었슴니다 ㅎㅎ

  • 2시간 전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달을 잊어버리고 손가락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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