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검색

리뷰

GZA - Liquid Swords

예리12시간 전조회 수 724추천수 18댓글 20

IMG_4321.jpeg


Genius/GZA - Liquid Swords




"What are the biggest lessons you have learned about life through chess?"

(당신이 체스를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요?)


"So many. It involves critical thinking, planning ahead, strategising – it’s very helpful, on many different levels, and sometimes I can be dealing with a situation, or… anything, and I would think of chess and relate whatever I was doing with the chess board – a certain opening, or a tactic."

(너무 많아요. 비판적인 사고, 수를 내다보는 법, 전략 세우기... 다양한 수준에서 도움이 되고, 어떠한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게 해줘요. 체스에 대해 생각하며 체스판에서 두던 어떠한 오프닝이나 전술을 무엇과도 연결지었죠.)




Rapper GZA from the Wu-Tang clan is also know as a big chess buff_ ????.jpeg


  <Liquid Swords>는 세 가지 모티프의 융합이다. 장군 암살자[Shogun Assassin, 1990], 체스, 그리고 GZA의 Wu-Tang Clan. 굳이 ‘GZA의’ Wu-Tang Clan인 이유라 하면, 이 모티프들 중 누가 가장 큰 목소리를 가졌는지 짚어봐야 한다.


  모두들 GZA를 래퍼의 면모로 들여다보지만, 그를 묻는 인터뷰에서 GZA는 줄곧 힙합이나 음악 이야기보다는 체스 기사의 사명감과 목표 의식을 보여왔다. 이 관점에서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Liquid Swords>도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인다. 앨범 커버에는 체스라는 대주제를 떡하니 꺼내두고, 후에 발매된 <Liquid Swords (Deluxe CD Chess Set)>에선 앨범 구성품에 체스판을 포함시키기까지 이른다.


  다만 껍데기를 제치면 작품에 ‘체스’라는 개념이 개입하는 정도는 그리 크지 않다. GZA와 RZA를 비롯한 익숙한 이름들이 줄을 짓고, 트랙리스트는 영락 없는 무당파의 냄새를 풍겨댄다. 존재할까 싶은 샘플링 등의 요소도 당연히 없다. ‘앙파상’, ‘체크메이트’, ‘블런더’ 등의 무질서한 레퍼런스 열거도 없다. 감상에 체스 규칙이니 배경지식 따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체스란 그저 주제의식을 위한 맥거핀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당대 Wu-Tang Clan의 무자비한 총아들이 어떻게 무르익어갔는지 짚어봐야 한다.




IMG_4323.jpeg


  A Tribe Called Quest, Outkast, Public Enemy, Mobb Deep, The Roots, The Pharcyde, De La Soul, Gang Starr... 익히 알려진 모든 기라성들은 오랜 기간 그룹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공과 명성은 모두 그룹의 몫이었다. 그룹이 뽐내온 것은 단 두 가지로, 죽어가지 않는 음악과 그들의 결속력이 얼마나 끈끈한지였다.


  Wu-Tang Clan의 선택은 다소 특이했다. 세간에 충격을 선사한 데뷔 이후 그들의 다음 발자국은 2집이 아닌 멤버들의 솔로 작품이었다. Method Man과 Ghostface Killah는 만화 속 Johnny Blaze와 Tony Stark를 빌려와 완벽히 흡수해냈고, Raekwon은 마피오소 시나리오 속 코카인 셰프로 거듭났으며, Ol' Dirty Bastard는 기어이 "Shimmy Shimmy Ya"와 "Brooklyn Zoo"를 낳기에 이른다.


  ‘우리’를 보여준 Wu-Tang Clan은 다음 단계인 ‘우리가 누구인가’로 나아갔고,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이루어진 이 4년의 과정은 곧 Wu-Tang Clan 세계관의 확장이었다. 2집의 발매에 관중들은 다시 뭉친 주연들에게 열광하며 'Wu-Tang Forever'를 외치고, 그리 재방문한 <Enter the Wu-Tang (36 Chambers)>는 영웅들의 자서전을 감상한 뒤 돌아보는 영웅전이 되었다.




IMG_4325.jpeg


  Wu-Tang Clan의 자서전들 중 <Liquid Swords> 역시 래퍼 본연을 보여주려는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본래 Wu-Tang Clan의 철학이란 동양계 쿵푸 영화 속 무당파 오리엔탈리즘이 비춘 잔인하고 무자비한 하드코어 힙합이었으나, 작품의 주인공 GZA는 지혜롭고 현학적인 리릭시스트이자 차분하고 견고한 랩 아티스트이다. 어찌 보면 그 집합체에서 가장 동떨어진 자칭 ‘Genius’라는 이명을 가진 사나이다. 


  그러한 성미에 어울리게 <Liquid Swords>에서 GZA의 모든 랩은 다소 힘이 들어간 악수로 가볍게 격식 있는 실랑이를 벌인다. 활자들은 글씨가 흩어지지 않게 매끈히 그어낸 잉크들이 채운다. 랩핑은 운치 있는 카리스마를 잃지 않는 선에서 다소 얌전히 휘어지고, 넌지시 던지는 'Wu'의 흔적들만이 대문자로 표기될 뿐이다.


  때로는 덜떨어지고 미성숙한 래퍼들을 꾸짖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세관과 경찰들에게 뒤쫓기기도 하며, Cold Chillin'과의 갈등을 우회적으로 쏘아대기도 한다. 이 모든 상황에서 GZA는 한시도 급하게 걷지 않고 감정에 격해지지 않는다. 필요 하에 불순한 단어들을 뒤섞을 뿐 무의미한 전쟁과 거리를 둔다. 기품 어린 말들은 듣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1995년 당시 29세였던 GZA의 멋은 오늘날 나이를 먹은 중후한 예술가와 다를 바 없다.


  그런 GZA의 격조는 휘하의 인물들에게도 물든다. 잔뜩 날이 서 있지만 기폭을 기다리며 타들어가는 심지. 덫을 밟고 벌집을 건드리기까지 눈독들이는 철칙. 어느 때고 불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게스트들은 GZA의 지령에 따라 제각기의 머리 모양을 한 기물이 되어 자신의 순간만을 벼른다.


  때문에 <Liquid Swords>에서는 세련되고 품격 있는 아우라와 잘 어우러지는 인물들이 돋보인다. “4th Chamber”에선 이슬람에서 키로스와 페르시아 왕국을 오가는 RZA의 칼춤이 벌어지는가 하면, 앨범을 꿰뚫는 최고의 벌스가 Ghostface Killah도 Ol' Dirty Bastard도 아닌 “Shadowboxin'”의 Method Man에게서 나오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마무리마저 Killah Priest에게 일임한 "B.I.B.L.E."은 GZA의 철학과도 같은 엔딩 크레딧이다. 공허한 드럼 소리만이 연이은 와중에 GZA는 미련없이 자리를 뜬 지 오래다.




GZA & RZA (Da Mystery Of Chessboxin).jpeg


  <Liquid Swords>의 GZA는 몸소 총칼을 들이밀며 상대를 겁박하거나 으름장을 놓지 않는다. 턱수염을 매만지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필요하다면 몇 분이나 몇 시간이라도 들일 듯 다음 기물의 움직임을 고민하며 상대를 짓이기기 위해 찰나에 눈독을 들인다.


  이것이 GZA의 문법이다. 힙합이 가장 뜨겁게 작렬하던 동부 황금기의 한복판, GZA는 작품을 ‘전략’의 개념으로 접근한다. 체스는 컨셉도 콘셉트도 아니다. GZA 본연의 상징성에서 떨어져나와 자연스레 작품의 매커니즘으로 녹아든 GZA의 삶 자체와도 같다.


  음악과 그 너머의 무언가를 내다보는 태도. 그 태도가 GZA와 <Liquid Swords>를 완성시킨다.

신고
댓글 20
  • 12시간 전

    윗 더 엠씨쓰 네임

  • 예리글쓴이
    12시간 전
    @따흙

    To live out the name

  • 10시간 전

    처음 체스에 관한 문답은 누구의 어록인가요?

  • 예리글쓴이
    10시간 전
    @KnightsVizion

    VICE에서 한 GZA의 인터뷰입니다

    https://www.vice.com/en/article/i-interviewed-gza-and-all-he-wanted-to-talk-about-was-chess/

  • 10시간 전

    가장 먼저 산 힙합앨범

  • 예리글쓴이
    10시간 전
    @식스핑거

    👍👍👍

  • 9시간 전
  • 예리글쓴이
    9시간 전
    @에미넴앨범

    👍

  • 9시간 전

    이글만큼은 공자보다 즈자

  • 예리글쓴이
    9시간 전
    @공ZA

    G(ONG)ZA

  • 9시간 전

    쫌 멋있네

  • 예리글쓴이
    9시간 전
    @민트초코냠냠

    감사합니당

  • DMX
    8시간 전

    연검!

  • 예리글쓴이
    8시간 전
    @DMX

    물칼

  • 7시간 전

    사실 왜 아직도 제목이 액체검인진 이해 못했지만 아무튼 정말 믓진 앨범

  • 예리글쓴이
    7시간 전
    @HipHaHa

    영어 제목으로는 [Legend of the Liquid Sword]라 불리는, 영화 초류향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 6시간 전
    @예리

    감사해요!!

  • 5시간 전

    최근 발매된 빌리 우즈의 GOLLIWOG이 빌리 버전의 Liquid Swords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네요. Illmatic만큼이나 힙합에서 '성서'라는 표현을 수식할 자격이 있는 몇 안되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 예리글쓴이
    5시간 전
    @온암

    🤔😋

  • 2시간 전

    아직 안 들었는데 들어야 하나

댓글 달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아이콘] Lil Tecca, Jane Remover 등 아이콘 출시 / 6월 아이콘 ...83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25.05.23
[공지] 회원 징계 (2025.05.09) & 이용규칙 (수정)27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25.05.09
화제의 글 그림/아트웍 찐짜x100초고퀄리티 내한 칸예웨스트 벽화65 title: MUSICㄹrebt 7시간 전
화제의 글 리뷰 GZA - Liquid Swords20 예리 12시간 전
화제의 글 인증/후기 최근에 산 lp들12 title: Jane Removerchalogd 2025.05.24
219181 음악 안녕 여러분13 title: Jane Removermikgazer 11시간 전
219180 일반 이상한 어그로로 찾아 오는 피싱충들아 이거부터 읽어라12 title: Jane RemoverIrvine 12시간 전
219179 음악 밴드캠프에서 cd 시켜보신분3 title: 스월비DJ브라키오사우르스 12시간 전
리뷰 GZA - Liquid Swords20 예리 12시간 전
219177 인증/후기 시부야 타워레코드 칸예6 Yeeeeee12 13시간 전
219176 음악 드레이크 켄드릭 화해하는 꿈꿨음5 title: 후디션던포에버 14시간 전
219175 그림/아트웍 맞춰줘11 Kanyeꓪest 14시간 전
219174 인증/후기 [인증] 90년대 여성 붐뱁 좋아하신다면! (6편)17 title: Kurt CobainDJSam 14시간 전
219173 음악 런닝할 때 들을 앨범 추천좀요4 두우율 15시간 전
219172 인증/후기 COMMON Be 20주년 앨범 아직 파네요2 title: 808slkm37793 20시간 전
219171 음악 뭔가 담백한앨범이나 노래 있을까요3 NJHPAM 22시간 전
219170 음악 님들 독서할때 듣기좋은 앨범도있음?36 title: Kendrick Lamar (4)켄드릭은신이야신 23시간 전
219169 일반 찐 켄평 << 딱 정해줌12 카녜는신이다 2025.05.24
219168 일반 릴테카 영화 데뷔? title: Tyler, The Creator (CHROMAKOPIA)크랙커 2025.05.24
219167 일반 갠적으로 못생긴 래퍼 1위18 title: 왕wonjusexking 2025.05.24
219166 리뷰 50 (스압주의)6 title: Graduation히오스는니얼굴이다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