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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리마스터링) 한반도에서도 거리의 시는 쓰여지는가? - 피타입 정규 4집 <Street Poetry> 리뷰

title: 박재범Alonso200016시간 전조회 수 739추천수 14댓글 6

https://blog.naver.com/alonso2000/223862624802

 

 

발매: 2015.03.20.

기획사: 브랜뉴뮤직

1. 폭력적인 잡종문화

2. Do The Right Rap (Feat. Huckleberry P)

3. Timberland 6" (Feat. NUCK Of souldive)

4. 네안데르탈 (Feat. Minos, Justhis)

5. 광화문 (Feat. 태완)

6. 돈키호테2 (Feat. 바버렛츠)

7. 이방인 (Feat. 차붐)

8. 반환점

9. 최악의 남자

10. Vice Versa (Feat. 선우정아)

힙합은 거리에서 생겨나 거리의 이야기를 하는 거리의 음악이다. 오래된 LP 판을 턴테이블에 올려 도회적인 독특한 소리를 내고, 그 소리에 맞춰 이야기를 운율에 실어 뱉으며, 때로는 몸짓이나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 이 모든 행위의 시발점은 뉴욕 흑인 청년들이 거리에서 겪었던 고되고 힘들지만 때로는 유쾌했던 삶이었다​. 이후 미국 각 지역에서는 이 문화에 대한 과감한, 때로는 정치적인 재해석이 이루어졌고, 이는 미국이 지닌 문화적 헤게모니에 의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탄생부터 미국과 밀접할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통신 매체가 발달하며 우리는 더욱 쉽게 저들의 최신 유행을 흡수할 수 있었다. 서태지와 현진영, 듀스 등을 시작으로 한국 가요계의 주류를 점령한 힙합은 PC통신 동호회와 마스터플랜을 거쳐 언더그라운드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국에도 이른바 '힙합 씬'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두된, ‘한국이 이 외래 문화를 어찌 수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좁혀지기 어려운 근본적 차이가 존재했던 것이다. 검은 피부의 그들이 살던 거리에는 언제나 총과 마약이 지척이었지만, 우리의 거리는 그런 것과는 멀리 있어 너무도 안전했다. 삶의 차이와 더불어, 언어의 차이도 또한 간과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 탄생한 음악 표현 방식인 만큼 '랩'은 영어에 가장 최적화된 퍼포먼스였다. 당연히 이를 한국어로 얼마나 수준 높게 구현할 수 있는지가 초기 한국 힙합 발전의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였다.

 

 

 

 

피타입 또한 그 시기에 한국어 랩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제시하려 했던 MC였다. 그는 랩이 지닌 고유의 박자감에 주목하여 '랩은 또 다른 드럼이다'라는 모토를 내걸었다. '문장 구조에 구애 받지 않고 스네어 치는 부분에 운율이 위치한다면 그것이 곧 각운이고 라임이다'라는 그의 발상은 결과물로써 이미 멋지게 증명된 바 있었다. <Heavy Bass>는 피타입만의 한국어 라임에 대한 실험을 이스트 코스트 힙합의 영역에서 극한까지 추구한 작품이었고, 이내 클래식으로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의 일이었다. 적어도, 당시 피타입이 생각한 힙합은 음악은 물론 미술, 퍼포먼스가 융합된 문화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한 그의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에서는 그 일부 단편적인 모습만 부각되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의 대중들은 아직 힙합을 단순한 음악 장르의 하나로만 인식하고 있던 것이다. 여기에서 비롯된 환멸은 '힙합은 폭력적인 잡종문화'라는, 다시 말해 '힙합은 한국 사회와 괴리되어 온전히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라는 일종의 사망선고로 이어지고 말았다. 숱한 비프와 논란을 불러온 문제적인 발언 이후, 피타입은 힙합이라기보다는 랩을 중심으로 재즈, 블루스, 소울 등의 요소가 혼합된 이질적인 결과물 <The Vintage>를 내놓고는 한동안 힙합 씬을 떠나 생업에 몰두하게 된다. 한국 힙합에 마음이 떠나기도 했거니와, 30대로서 사회적 괴리감을 해소할 필요 또한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피타입이 던졌던 화두는 오랫동안 한국 힙합에게도, 자신에게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았다.

힙합 씬 외부에서 상황을 지켜보면서 피타입의 생각에도 점차 변화가 찾아왔다. 후배들에 의해 레이블과 크루들이 단단히 조직되어 갔고, 공연 문화 또한 활발해지는 것을 보며 피타입은 과거 자신이 내렸던 '사망선고'가 다소 성급했음을 깨달았다. 이를 기반으로 피타입은 한국 힙합에 다시 돌아와 <RAP> 앨범을 내놓게 된다. 나름의 호평도 받았지만, 피타입에게는 썩 달갑지만은 않은 작품이었다. '일관성 없이 다양한 스타일을 개인이 적응하는데 급급했던 앨범'이라는 혹독한 자평에는 넓어진 음악적 범위만큼 약해진 구심점에 대한 아쉬움이 분명 존재했다. 공백기 동안 크게 변화한 한국 힙합 씬과의 융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으나, 그가 한국 힙합을 잠시 떠나며 던진 발언에 대한 해답은 될 수 없었다.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실마리가 되었다. 마침 <Heavy Bass> 발매 10주년이라는 시점도 맞물려, 피타입에게 가장 익숙할 90년대 이스트 코스트 힙합으로의 회귀는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다만, 이는 과거의 답습이라기 보다도 계승과 발전이어야 했으며, 더 나아가 지난날 자신이 던졌던 '폭력적인 잡종문화'라는 화두에 대한 그럴듯한 대답이어야 했다.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제일 먼저 다가오는 것은 단연 랩에 대한 변화이다. 기존의 체계적이고 촘촘한 라임 설계를 유지하면서도, 박자를 더욱 세밀하게 분절하여 리듬감을 증폭시키고자 했다. <The Vintage> 시절에 이미 재즈 편곡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만큼 재즈 드럼 특유의 복잡다단함과 섬세함을 자신의 랩에 적용하는 것은 상당히 타당한 접근이었다. 그럼에도 피타입은 여전히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앨범의 소프트웨어를 채워감에 있어 자신이 기존에 사용하던 문학적으로 정제된 표현만으로는 부족함이 있었던 것이다. 힌트는 비슷한 시기 발매된 후배의 작품에 있었다. 차붐이 <Original>에서 ‘툭 나와서 툭 뱉은 듯한’ 표현으로 한국 거리의 풍경을 직조해내는 것을 본 피타입은 곧바로 앨범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아트 폼인 90년대 이스트 코스트 힙합을 기반으로 할 것', '기존에 스스로 구축해 온 랩 스타일을 바탕으로 더욱 날카롭고 유연한 리듬을 발전시킬 것',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언어로 한국의 거리와 그 안의 힙합, 그리고 그 속의 자신을 진솔하게 그려낼 것'. 이 세 가지 규칙은 <Street Poetry>의 10개 트랙 전체에 걸쳐 그래피티처럼 복잡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나타난다.

 

 

 

 

첫 번째 트랙에서부터 피타입은 과감히 자신의 과거 발언을 파묘하기로 했다. "폭력적인 잡종문화"라는 발언 이후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힙합은 랩 배틀, 디스, 브라가도시오 등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문화이며, 여기에는 반드시 폭력적인 측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한, 태생적으로 샘플링이라는 고유의 기법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포용하는 힙합의 음악적 특성은 '잡종'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결국 '힙합은 경쟁적이고 혼합적인 문화'라는 점을 다소 거칠게 표현한 것이 당시 문제적 주장의 본질이었던 셈이다. 이 공격적 혼돈은 과연 한국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일까? 피타입의 대답은 단호하다. '경찰에게 총 맞는 친구는 없어도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은 많아'라고. 비록 물리적인 폭력의 형태는 아닐지라도, 한국인에게 경쟁은 너무나 익숙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어느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나이가 두 자릿수가 되기도 전에 이미 온갖 학원을 전전하며 나이를 아득히 앞선 지식들을 머리에 강제로 주입받고 있다. 성적이라는 획일화된 기준으로 12년 내내 각축이 벌어지고 줄이 세워지는 교육에 대한 대비라기에는 너무도 잔혹한 현실이다. 그 시간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회사에 자신을 맞춰야 하고, 그 자격을 위해 사교육이라는 주사를 다시 도핑하게 된다. SNS와 매체는 이러한 경쟁을 부추기고, 열등감으로 우리를 채찍질한다. 방향을 돌려 힙합으로 들어와도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방송사의 경연은 어찌 보면 1년에 한 번 자신의 커리어를 증명하고 대중적 성공을 거머쥘 또 하나의 수능이었다. 결국 이러한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견디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자본주의 특유의 살풍경한 경쟁을 먹고 자라난, 그래서 아직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무한히 반복되는 듯한 한국 사회 전체도 어찌보면 일종의 게토(getto)이지 않을까? 육두문자와 더불어 디프라이(Deepfry)의 음산하고 냉소적인 프로덕션까지 활용된, '난 목화밭도 못 봤고 내 피부 색깔 역시 못 바꾸'지만 개똥밭같은 우리네 풍경은 보인다는 피타입의 진단은 냉철하면서도 자못 서글프다.

한국 힙합은 이러한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을까? 지금이야 많이 침체되어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수많은 유망주들이 꿈을 품고 모여들던 곳이었다. 미디어는 힙합의 이미지를 뒤집어쓴 채 주류 대중에게 이를 팔았고, 그것이 돈이 되었기에 많은 이들이 성공을 좇아 한국 힙합에 뛰어든 것이다. 앞 문단에서도 말했듯 획일화된 성공의 기준에 허덕이던 젊음들에게 힙합은 예술적 열정과 물질적 성공을 모두 쟁취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로 받아들여졌다. 이들 중 상당수는 힙합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성공과 영달을 위한 또 하나의 수단으로 여겼다. 이들은 '본토'라 떠받드는 미국의 양식을 능숙하게 가져올 수는 있었어도 이것을 자신들의 삶에 어떻게 체화할지, 힙합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피타입은 그런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힙합은 직업 이상의 삶이고, 성공의 별을 향하기 전에 발을 디딘 땅을 먼저 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의 주도 하에 가사 주석 사이트인 호모 리릭쿠스와 흑인 음악 온라인 매거진 겸 커뮤니티인 힙합엘이가 주관하여, '옳은 랩'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Do The Right Rap'이라는 랩 컴페티션을 개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씬의 변질된 흐름에 대해 생각이 많았을 허클베리피가 함께한 동명의 캠페인 송은 한국 힙합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Street Poetry>의 주제와도 부합한다. 중요한 것은 트랙에서 이들이 지니는 자세이다. 이들은 '이것이 옳은 랩이다!'하고 직접적으로 정의내리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옳지 않은 랩'의 예시를 던진 다음 '그러면 너희들이 생각하는 옳은 랩은 뭔데?'라며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거는 것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패시네이팅의 블루지한 접근은 상당히 타당하다. 올드스쿨한 오르간과 맙 딥을 연상시키는 건조한 드럼 룹 위에서 MC 각자의 벌스가 기타 솔로와 콜 앤 리스폰스를 반복한다. 이것을 마지막에 태그 팀 랩으로 받아치며 벌어지는 피타입과 허클베리피의 의사소통은 우리에게 옳은 랩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날카롭게 던져준다.

 

 

 

 

그렇다면 이 쯤에서 이러한 의문이 든다. 힙합으로 사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피타입은 앨범에서 이에 대해 즉답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앨범에서 가장 밝은 템포의 트랙인 "Timberland 6""가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피타입의 오랜 음악적 도반인 킵루츠가 엄선하여 가져온 브레이크 비트에 오르간과 베이스가 섞이며 완성된 가장 보편적인 붐뱁 룹 위로 79년생 동갑내기 두 MC가 처음 힙합에 빠졌던 순간을 노래한다. 피타입과 넋업샨의 라임에서 쉼없이 언급되는 80년대~90년대를 풍미했던 이스트 코스트의 전설들과 그들의 유산들, 디제이가 틀어주는 비트 위로 랩을 주고 받는 모습, 그 순수했던 순간에 있어 6인치짜리 팀버랜드 워커는 문화에 담긴 열정의 상징이었다. 산업화와 확장이 한창이던 뉴욕의 노동자들이 애용하던 옐로우 부츠는 미국 동부의 아티스트들의 삶에서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 상징성이 힙합의 전래와 함께 한반도에도 수입된 것이다. 묵직한 부츠를 신고 골목어귀 어딘가의 클럽에 들어가, 디제이 - 이 넘버에서는 DJ 쥬스(DJ Juice)가 그 역할을 맡았다. - 가 여는 파티에서 흘러나오는 프리모(DJ Premier)나 피트 락(Pete Rock), 제이 딜라(J Dilla)같은 프로듀서들의 비트를 틀어놓고 이에 맞춰 춤을 추고 랩을 주고 받던 그 시절의 추억, 꼭 씬의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일상에 힙합이 스며든 모습은 어쩌면 피타입이 꿈꾸던 힙합다운 삶의 한 단면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대가 흐르며 이러한 과거의 이야기들은 풍화되어갔다. 예술 역시 경쟁과 도태의 멍에를 피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숱한 추억들은 최신의 자극과 상업화, 디지털 공간의 도래로 인한 예술의 공공재화로 인해 무뎌져 갔다. 비단 힙합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북(E-Book)이 대두되며 종이책은 몰락할 것이라는 예언이 제기되었고, 스트리밍 사이트의 등장은 피지컬 앨범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러한 시대의 단편을 직설로 가득한 앨범에서 유일하게 은유와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하는 "네안데르탈"은 어쩌면 <Street Poetry>에서 가장 거대한 담론을 내포한 트랙일 것이다. 디프라이가 채집한 보이스 샘플과 푸지스(Fugees)를 연상시키는 원시적인 리듬의 음울한 조합은 매체의 발달로 획일화되어가는 척도에 희생되어가는 예술가들의 초상을 건조하게 그려낸다. 그 모습은 우월한 신체 조건과 현생 인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지성을 지녔음에도 끝내 경쟁에서 밀려나 멸종된 네안데르탈인과 닮아 있다. 그 이름의 근원을 추적하면 곡의 은유는 더 흥미로워진다. '네안데르탈(Neanderthal)'을 해석하면 네안데르 계곡이라는 뜻이 되며, 그 유래는 계곡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던 네안더(Neander)라는 가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네안더라는 이름을 영어로 바꾸면 '뉴맨(New Man)', 즉 '신인류'라는 뜻이 된다. 시대의 흐름에 침잠하여 멸종되어가는 일족의 이름이 신인류라 불리는 예술가에게서 왔다는 사실은 퍽 역설적이다.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예술가들은 새로운 존재가 되었지만, 결국 이로 인해 시대의 파랑에 침식당해 멸종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의 또 다른 역설은 앨범에서 가장 내용적으로 난해한 트랙이면서도 한편으로는 <Street Poetry>를 대표하는 랩 킬링트랙이라는 점이다. 동세대 MC 중 가장 스킬풀한 인물 중 하나인 마이노스, 자신을 깊이 존경해온 후배인 저스디스는 같이 멸종해가는 동족으로서 현실의 고민을 공유한다. 훅조차 거세한 채 이어지는 멸종과 그 실상, 이후의 귀환과 불멸의 이야기는 세 MC의 탁월한 랩 스킬을 거쳐 유장하게 펼쳐진다. 시대의 조류에도 무뎌지지 않을 예술가들의 고집이 더없이 빛나는 순간이다.

 

 

 

 

결국 상술된 현상, 그 현상들이 모여서 구체화되는 시대의 이면에는 대체로 시스템이 위치하게 된다. 한반도에서 광화문만큼 그 시스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도 드물 것이다. 구중궁궐들과 관청들이 자리 잡았던 조선 왕조의 519년, 왕조의 자리를 침략자들이 빼앗았던 일제강점기의 36년, 그리고 압제를 벗고 고난을 지나 나름의 번영에 다다른 지금까지, 광화문 근처는 언제나 국가와 경제를 운영하는 시스템의 중추였고,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권력의 핵심이 자리잡은 곳이었다. 한편으로 종로에서 나고 자란 피타입에게 광화문 언저리는 비겁하게는 안 살겠다 다짐했던 추억이 서린 삶의 공간이기도 했다. 젊은 날의 피타입에게 래퍼로서의 삶, 힙합으로 사는 길은 젊음의 통곡을 있는 그대로 모아뱉는 스피커와도 같은 것이었다. 역겨울 정도로 가난했고 다사다난했던 인생에도 젊은 피타입은 겨울밤의 종로를 다 담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였고, 이를 종이에 옮겨 적으며 자신만의 시를 써내렸다. 시간이 지나며 광화문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 중앙분리대같은 광장 하나가 섬처럼 자리잡았다. 모든 시민이 지나며 모이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이 광장의 본질이건만, 차도로 둘러싸인 광장은 뚜렷한 목적이 없는 한 굳이 올 이유가 없어져 버렸다. 지난 날 이문세가 불렀던 연가도, 더 옛날에 만년 큰 복을 누리리라 축원했던 희망도 더는 광화문에 와닿지 않게 되어 버렸다. 동네도 변하고, 그 동네를 거닐던 자신도 변해가는 이 현실, 좋든 싫든 시스템 속에서 비참하고 비겁하게 하루를 버텨야 하는 삶에 대해 피타입은 옐라 다이아몬드의 재즈 피아노가 눈처럼 내려앉은 패시네이팅의 서글픈 비트 위에 그저 담담히 적어내릴 뿐이었다. <Heavy Bass> 시절부터 함께한 태완이 길을 잃었노라고 처절하게 외치는 몇번의 훅을 지나 피타입이 우리에게 묻는다. '오늘 난 옛날의 나에게 떳떳한가?' 시스템 속에서 버티며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네 평범한 삶은,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수긍하며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은 떳떳한 걸까?

이야기는 다시 피타입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전설이라 불리던 10여년 전부터 앨범이 발매되었던 2015년까지의 10여년 간을 반추하는 데 있어 "돈키호테2"라는, 피타입의 커리어를 상징하는 트랙을 그대로 잇는 제목은 더할 나위 없이 잘 들어맞는다. 패시네이팅은 재지한 피아노 라인과 그루비한 보컬 운용 등 "돈키호테"에서 킵루츠가 짜 놓았던 곡의 기본적 틀을 영리하게 재해석 하는 한편, DJ 쥬스의 스크래치를 통해 전작을 오마주한 MC들의 라인을 삽입하며 착실한 시퀄 트랙을 만들어냈다. 흥미로운 것은, 10여년의 간격을 둔 두 트랙의 방향이 정반대라는 것이다. 휘성과 같이 "돈키호테"를 부르던 지난 날의 피타입은 현재에 서서 미래를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정체된 이 문화가, 거센 바람을 견디며 앞으로 나가, 빛을 발하는 것. 내가 말하는 걸 기억한 어린 아이들이 어서 자라는 것.' 그 꿈을 위해서라면 바보처럼 서러워도 그는 기꺼이 길을 걸어갈 자신이 있었다. 11년이 지나, 바버렛츠와 같이 "돈키호테2"를 부르는 피타입은 현재에 서서 과거를 바라본다. 지난 날의 성과는 자신의 삶의 형이하학적 윤택함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되려 소포모어 징크스가 되어 지독하게 달라붙는다. 철부지들도 아버지가 되어가는 동안, 시간은 흘러 피타입을 곧 잊혀질 이름으로 몰아붙인다. 그래도, 여전히 사는 방식 따로, 만드는 음악 따로 나눈 적은 없다. 매일 아침마다 악마가 마지막 날이라 속삭여도 피타입은 자신있게 이를 부정할 수 있다. 과거에서 온 부담에 초연해 질 수 있는 것, 슈퍼스타가 되지도 못했고, 그럼에도 녹슨 훈장만은 남아 있는 자신에게 담담해 질 수 있는것, 그래서 적어도 피타입 스스로는, 거리가 갈 수록 낮설어져도 자신의 삶에 떳떳할 자신이 있어보인다.

 

 

 

 

다시 앨범의 시작점으로 돌아와 보자. '나는 목화밭도 못 봤고, 내 피부 색깔 역시도 못바꾼'다는 피타입의 냉소는 곧장 <Street Poetry>의 주된 테마가 되었다. 옳은 랩에 대한 고민, 순수했던 과거에의 향수, 멸종해 가는 예술가들, 시스템 속에서의 떳떳한 삶에 대한 질문, 그 속에 위치한 지난 날과 지금의 자신......앨범에서 계속 되었던 이야기는 결국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뿌리를 내린 것이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한데 뒤섞인 탁류가 되어 도달한 지점이 바로 "이방인"이다. 앨범의 가사적 전개에 있어 가장 큰 영감이 된 차붐이 노골적인 언어로 현실을 한 번 훑고 나면 디프라이가 샘플링한 닐 영의 곡조가 시니컬하게 흘러나온다. 인종의 멜팅 팟인 미국에 가장 잘 들어맞는 테마인 인종차별을 다룬 "Southern Man"의 기타 소리가 음울하게 반복되는 비트 위로 피타입의 냉정한 이야기가 올라탄다. 매체의 발달에도 노트와 펜이라는, 가장 기초적이고 아날로그한 과정으로 창작이 이뤄지는 과정을 퍽 골계스럼고 음란하게 적어내리던 피타입의 생각은 이내 현실에까지 미친다. 21세기의 신세계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대표되는 사이버 세상에 지어졌다. 알고리즘이 내 입맛에 맞는 것만 전해주면, 우리는 그 컨텐츠에 적힌 좋아요 숫자의 고저를 비교하며 타인의 취향에도 아울러 휩쓸리게 된다. 천편일률적인 격류의 밖을 내다보면 세상은 아직도 우울하기만 하다. 꿈과 시련에 연잇는 허탈함을 인스턴트로 때우고, 사이버 세상과 매한가지로 하나의 기준으로 서로에게 군림하려 들기 바쁘다. 래퍼들은 그 사이에서 마약같은 성공으로 리스너들을 유혹한다. 그 사이에서 힙합은 삶의 지향, 목적이 아니라 돈과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이 판에서 내가 가장 거부 반응을 가지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피타입의 질문에는 이렇게 냉소적인 답이 따른다. 우리는 목화밭, 그러니까 미국 흑인들의 애환과 고통을 보지 못했지만, 대신 권력이 미메시스된 서울의 빌딩 숲을 보았다고. 내 가사는, 내가 사는 그런 현실 역시도 바꾸기 어렵다고.

해답은 결국 본질이다. 자신의 삶과 음악이 분리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항상 진솔할 수 있다면 적어도 예술가로서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앨범에서 처음 제작되어 공개된 트랙이 "반환점"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한동안 힙합을 버렸던 피타입이 힙합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확고하게 돌아오는 의미로 만들어진 트랙인 만큼 "반환점"은 앨범에서 제일 힙합의 기초에 기반한 작법을 따른다. 한국 락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이름일 산울림의 "어느날 피었네"와 "골목길",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서 기타 리프와 오르간, 베이스 라인을 가져온 뒤, 이를 졍교하게 재조합 하여 원곡들의 사이키델릭한 맛과 힙합적인 멋, 한국 장르 씬을 개척한 선배에 대한 존경까지 두루 담아내는 솜씨는 앨범에서 패시네이팅의 능력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로 DJ 소울스케이프가 파고들어 기가 막히는 스크래칭을 선사하고, 피타입은 그 위에 서서 비로소 힙합으로 돌아오는 심정을 웅변한다. 긴 시간 동안 바뀐 부분도, 바뀌지 않은 부분도 많은 한국 힙합이다. 그 사이에서 영광도, 방황도 다 겪었다. 이 온갖 관점과 경험을 땔감으로 삼아 피타입은 다시금 열정을 불사르며 아직 살아있음을 외친다. 반환점 찍고 돌아온 사내의 귀향길은 돌아 볼 수록 뜨겁기만 하다.

 

 

그럼에도 아직 현실은 서럽다. 아티스트로서의 자아가 끝나는 지점에는 언제나 보통 사람, 사회인의 페르소나가 위치해 있다. 예술적 영감이 꽃피는 그늘에는 고난과 행복을 방기한 무책임함이 있을 뿐이다. 열정은 식고 냉소적인 잿더미 만이 일상에 남겨진 순간, 피타입은 문득 자신이 "최악의 남자"인 것 같다고 조소한다. 패시네이팅의 무심한 피아노과 키보드만이 그에게 위로가 된다. 이 지점에서도 피타입 특유의 시의적절한 비유가 그대로 드러난다. 붐뱁은 힙합이란 장르의 기본형이었지만, 정작 힙합이 처음 뉴욕에서 태동했을 때는 그러한 이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힙합이 미국 전역으로 퍼지며 수많은 스타일이 생겨난 지라 원류의 힙합을 분류할 말이 필요했고, 그렇게 '붐뱁'이라는 표현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이름을 얻고 분류된 순간 붐뱁은 장르의 시초로서 지니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한국 힙합 1세대', '한국어 라임의 개척자' 같은 타이틀에 피타입에게 더러 붙기도 했지만, 그것이 피타입의 생계에 얼마나 크게 작용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가 음악에서 얻는 소득보다 직장인, 샐러리맨으로서 얻는 벌이가 더 클 지도 모른다. 현자를 자처해도 결국 눈 앞의 구덩이도 보지 못한다는 어느 예술가의 자조가 문득 더 따갑게 파고든다.

<Street Poetry>에서 줄곧 피타입은 세상과 장르, 그 안의 예술가 - 자기 자신 - 에 대해 말해왔다. 그렇다면, 적어도 앨범이 다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예술이 예술가의 말에 화답할 때가 온 것이 아닐까? "Vice Versa"라는 표현은 ‘그 역[반대]도 마찬가지이다’라는 의미이다. 말 그대로, 어느 시인이 쓴 시가 이제는 반대로 우리에게 대화를 청해온다. 유독 사색적인 트랙이니 만큼 "Vice Versa"는 앨범에서 가장 재지한 접근을 취한다. '​내 꿈은 <Illmatic>을 만드는 건데, 큐팁(Q-Tip)이 없어'라는 피타입의 제안에 키비는 박민우의 피아노 선율을 곁들여 안온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앨범의 피날레에 안겨주었다. 그 고운 멜로디를 타고 시는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니, '다가온다'는 표현이 맞을까? 선우정아가 담담히 읊은 바 그대로, 그는 항상 우리 곁에 있지만 막상 우리는 진짜 그를 본 적은 없다. 다만, 시는 그를 찾을 수 있는 흔적들을 몇가지 남겨두었다. 그는 우리의 베겟잇 밑에 있다. 언뜻 밋밋해 보이는 일기장에 숨어있으며, 썩은 빗장 너머 들풀잎 아래에도 존재한다. 헤르만 헤세는 그런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곧잘 예술은 모두 대가(代價)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한다. 실패한 인생의, 발산하지 못한 수성의, 순조롭지 못한 연애의, 몹시 힘들고 실제 가치의 열 배나 높은 보상을 치른 대가라고 말이다.' 언뜻 보기에는 자조적인 토로이지만, 그 자조와 고난 너머의 대가는 그런대로 빛나고 가치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두운 거리의 단어들도, 오만한 자들에 대한 우화들도, 슬퍼하는 이들을 위한 어설픈 위로들도 결국에는 시라는 존재의 우스꽝스럽고 눈물겨운 표정의 일부이다. 피타입은 그러한 '거리의 시'에 대해 앨범에서 확실히 답하는 것을 피한다. 자신 조차도 '내가 시를 쓴 건지, 시가 노래를 쓴 건지, 노래가 나를 쓴 건지, 대체 누가 뭘 쓴 건지...'라며 말끝을 흐린다. 앨범 내내 이어지는 세상 속 거리, 그 거리에 흐르는 힙합, 그 안에 사는 나에 대한 30여분 짜리 시는 그렇게 열려있는 형태로 매듭이 지어진다.

지금 우리는, 우리만의 거리의 시를 지을 수 있을까? <Street Poetry> 이후 10여년간, 앨범에 등장했던 이야기들은 더 지독한 형태로 반복되고는 했다. '옳은 랩'은 갈 수록 더 자취를 감추어 갔다. 인공지능의 고도화는 예술과 창작에 대한 본질적인 논쟁으로 이어졌다. 정권이 두 번 바뀌는 와중에 몇번의 비극이 반복되었고, 바로 지난 연말에 우리는 또 하나의 '험한 명령'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 사이에서 피타입의 입장도, 한국 힙합도 몇번이고 변해버렸다. 피타입이 방송 경연에 대한 문제 제기를 목적으로 시스템에 출사표를 던졌다가 불찰을 겪은 후, 그는 피할 수 없는 이미지의 상처를 겪었다. 그렇게 열정은 또 하나의 멸종을 불러오는 것 처럼 보였다. 그가 전업 뮤지션에서 셀러리맨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본 리스너들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래 보였을 것이다. 한편으로, 한국 힙합은 미디어의 단물을 먹고 덩치가 급격히 커져갔다. 그러나 그 사이 힙합 씬의 대다수는 단 맛에 취해 그 거대한 덩치를 어떻게 가눌지, 어떻게 지켜 나갈지 망각하고 말았고, 이후 TV 쇼의 몰락과 팬데믹을 겪으며 넘어진 한국 힙합은 거대해진 만큼 더 큰 충격에 허덕여야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라 말했던 독일의 어느 철학자의 말대로, 지난 날의 불행은 오늘 날의 밈(meme)과 코미디로 재 등장해 버렸다. 어느 희극인들이 한국 힙합을 골려준 일로 하여금 장르 씬 전체가 들끓은 이후로는, 세상 모든 게 유머와 웃음거리로 소비되고 마는 현상이 비로소 한국 힙합 팬들의 피부에 와닿았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갈수록 힘들고 어려워지기에 다시 <Street Poetry>의 담론들이 더 깊숙히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스템이 짓누르다 흔들리고, 예술의 가치가 변하고, 거리의 풍경이 휙휙 바뀌어 가는 요즘같은 세태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거리의 시는 멈추지 않았고, 멈출 수도 없다. 예술가의 모든 작품은 그들이 마주했던 삶과 무관한 적이 없었고, 살아있는 한 그들은 계속 세상을, 삶을, 예술을 노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당당하고 자신다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긍정하고 극복한다면, 그것이 곧 예술로서 살아가는 것이고, 힙합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필자는 <Street Poetry>를 들으며 결론을 내렸다. 시스템에 순응하며 살더라도, 우리는 거기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움직이며 결국 그 시스템을 더 윤택하게 바꿀 수도 있지 않겠는가. 피타입이 전업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결코 예술이 아니라고, 힙합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여전히 인생에 치열하게 부딪히며 그 부산물을 때때로 음악의 형태로, 문학의 형태로 내놓고 있다. 이쯤에서 다시 질문을 던지고 답해보자. '힙합은 폭력적인 잡종문화인가?' 그렇다. 스스로를 긍정하는 한편, 한없이 경쟁을 거쳐 성장을 거둘 수 있고, 이를 위해 어떠한 예술적 요소도 수용할 수 있는 것이 힙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폭력적인 잡종문화가 한국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한반도에서도 거리의 시는 쓰여지는가?' 그렇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숱한 경쟁과 폭력, 분투의 현장을 담아낼 수 있다면, 이를 멋있는 비트와 랩, 어쩌면 댄스와 그림, 스크래칭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면. 세인들의 철없는 조롱에도, 세상이 변하고 고단해져가는 중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우리만의 시를 써야 하는 이유, 멸종이 눈앞에 다가오더라도 열정을 불살라야 하는 이유가 <Street Poetry>에 있다.

Best Track: 네안데르탈 (Feat. Minos, Justhis), 광화문 (Feat. 태완), 반환점, Vice Versa (Feat. 선우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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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title: 박재범Alonso2000글쓴이
    1 16시간 전

    https://drive.google.com/file/d/14zTczClxs8FzFrFgZVzFkR-fNPIonLbk/view

     

    본 리뷰는 HOM#24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16시간 전

    캬 바로 개추

  • 13시간 전

    이런 양질의 리뷰는 처음 보네요 추천하려고 로그인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3시간 전

    한국에서 이런게 가능하다고? 싶은 앨범으로 사람들이 보통 탑승수속이나 디톡스 등을 뽑는데 스포도 그런 반응이 나올만한 앨범에 분명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 10시간 전

    그저 개씹명반과 그에 대한 개씹명리뷰 잘 읽었습니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본토 그대로의 프로덕션을 유지하면서도,

    그 메시지나 작법만큼은 가장 진한 '한국성'을 유지한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비슷한 류의 앨범을 정말 좋아합니다. 녹념이나 오리지널, 코드림처럼 한국에서 살지 않아 본 사람이라면 그 애환을 100% 이해하기는 어려운 정서가 담긴 앨범이요.

  • 1시간 전

    리뷰 멋집니다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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