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전라북도 서북부에 있는 도시로 1읍 10면 16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산항을 중심으로 성장한 서해안 주요 항구도시 중 하나이며, 곡창지대이기도 하였다. 현재는 중공업 관련 공장들이 많이 가동 중이며, 새만금 사업과 관련해 경제자유구역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범죄와의 전쟁>까지 꾸준히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근대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으며, 미군 기지도 있다. 도심은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구분되기도 하는데,구도심과 신도심, 혹은 도심과 비도심의 모습이 굉장히 많이 다르다. 시간을 초월한 이질적 모습들이 한꺼번에 섞여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2) 애드밸류어
- 기본 정보
개요: 애드밸류어(Addvaluer)는 군산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의 인디펜던트 레이블이다.
애드밸류어의 대표적 인물이자 가장 잘 알려진 아티스트이다. 비트메이커/프로듀서이며 지난해 영기획에서 발표한 [MON] EP를 통해 각종 매체에서 주목을 받았다. GQ, 데이즈드앤컨퓨즈드(Dazed & Confused) 등 크고 작은 매체에서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인터뷰할 때 약간 소개를 나누는데, 애드밸류어 인터뷰니까… 애드밸류어를 이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구요, 그레이(GRAYE) 혹은 그라예라고 합니다. 프로듀서이면서 디렉터이면서 애드밸류어에서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일을.
애드밸류어가 생겼을 때부터 그런 일을 다 도맡으셨던 건가요?
아뇨, 아예 맨 처음에는 PNSB랑 사일러밤(Sylarbomb)이랑 저랑 셋이서 했을 때는 어느 정도 일을 맡아서 했는데, 조금씩 하면서 애들이 그걸 버거워 해서요. '이 친구들은 음악만 했으면 좋겠다, 차라리 궂은 일은 내가 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면서 약간 포맷이 바뀌었죠. 이건 모르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지금까지 애드밸류어 모든 SNS는 제가 다 관리했어요. 심지어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까지. 메시지 오는 것도 제가 다 답하고, 메일도 답장 제가 다 하고 그랬어요. 다른 사람처럼 하려고 했는데 (웃음) 나중에는 그냥 별 생각 없이 했어요. 티가 나든 말든.
그러면 지금은 다른 분이 담당하시는지?
지금은 주인백 형이라고 사장 역할을 하고 있는 형이 있구요. 실질적으로 진짜 사장 역할을 하고 있고, 그 형이 일을 나눠서 하고 있어요. 또 친구 한 명이 이제 전역해서, 맨 처음에 할 때 일을 도와주던 친구가 있어요. 공연, 행사 잡아주고. 그 친구가 군대 갔다 와서 일을 도와줄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씩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제가 계속 지고 있던 짐을 조금씩은 덜게 된 것 같아요.
혼자 다 맡아서 하다 보면 힘들었을 것 같은데.
힘들었는데 어쩔 수 없었어요. 여기서는, 그 당시에는 사실상 음악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었고). 저도 몰랐다가 학교 갔다 와서 조금 알게 되어서 내려와서 후반작업, 믹싱이나 마스터링 어떻게 하는 거고 그런 것부터 애들에게 알려주기 시작했고. 진짜 제가 다 부딪힌 다음에 알려줬던 거죠. 제가 맨 처음에 이런 인스트루멘탈 음악 하기 전에 약간 가요 같은 걸 한 적 있거든요. 커머셜한 곡들을 한 적 있는데 그걸 일부러 싱글로 냈던 이유 중에 하나가 그거였어요. 내가 시스템을 먼저 파악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은 만족이 안 되었는데도 먼저 뚫은 거죠. 내가 먼저 뚫고 나서, 사실상 나는 망해도 상관없으니까. 난 어차피 프로듀서라서 이름이 더럽혀져도 상관없으니까. 근데 래퍼나 노래하는 사람은 다르잖아요. 총대 메고 먼저 던졌죠. 그 다음에 음원 유통 시스템이랑 그런 걸 간파하고 나서 애들에게 알려주고, 직접 부딪히면서 시작하게 되었죠. 어려운 점이라면 그 정도? 생각해보면 다 어려웠어요. 그나마 제일 도움 되었던 사람이 로보토미(Lobotomy) 형. 로보토미 형이 제일 많이 알려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공연도 그랬고. 쉬운 게 진짜 하나도 없었어요. 군대도 그때는, 지금도 그렇지만, 일찍 가야 하는 거니까 빨리 결과를 내고 그걸로 결정하자는 게 목표여서. 애들도 그렇고 제가 되게 재촉했죠. PNSB 앨범도 제가 꼬셔서 내자고 해서 낸 거고. TFO 앨범도 제가 꼬셨거든요. ‘아무나 500장 다 판대’ 이렇게 꼬셔서 거짓말해서 낸 거라서 (웃음) 되게 재미있는 게 애드밸류어 멤버들은 실질적으로 제가 다 모은 거예요. 되게 어렸을 때인데 크루 이런 걸 하도 많이 하다 보니까, 인터넷이나 이런 걸로, 모든 사람이 다 아무리 취향이 같고 목표가 같아도 사람이 같아질 수 없구나 그런 걸 느껴서. 이 포맷을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을 내가 다 하고,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게 놔두자. 어떤 음악을 하든지 간에 신경 쓰지 말고. 대신 그런 음악을 뭐 듣는지 공유하면서 좀 재밌게 음악했으면 좋겠다 이런 게 모토였어요. 그 정도 기반이 되었죠. 진짜 그 말대로 유지하고 있고. 전쟁터로 나갈 때 그런 거 있잖아요. 몸빵 하는 애들. 제가 그런 역할이었죠.
멤버들을 모으게 된 과정을 들을 수 있을까요?
고등학교 때 하던 크루가 있었어요. 인터넷으로 만나서. 그때도 제가 다 모았거든요. 한 명씩 다 찾아다니면서. 그렇게 모았는데 그 크루를 하다가 제가 대학을 가면서 다 깨진 거예요. 왜냐면 제가 모았는데 없으니까. 여러 상황들에 의해서 의해서 깨지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집안 형편이 안 좋아져서 급하게 휴학하고 딱 내려와서 너무 심심하니까 다시 애들을 모았죠. 그 많던 20, 30명 되던 애들. 완전 우탱이었어요 (웃음) 그 애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같이 할 만한 친구가 딱 두 명밖에 없는 거예요. 그게 PNSB와 사일러밤. 그 와중에 저와 건너서 알게 되었던, 서울에 있던 BAC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할머니 댁이 군산이고 그래서 놀러오고 그러다 보니까 그 친구들끼리 TFO를 만들게 된 거고, 그래서 초기 멤버가 딱 그렇게 된 거죠. 저와 사일러밤, BAC, PNSB. 래퍼 두 명, 프로듀서 두 명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올 거라는 걸 상상도 못하고 (웃음) 재미있어서 ‘우리 무조건 앨범 내고 군대 가야 해’, 왜냐면 우리가 그 CD를 듣고 싶어서. 가지고 싶어서. 그렇게 시작했던 게 지금까지 된 거죠. 제 욕심으로 다 모았던 게 지금은 각자의 꿈이 되어 있어요.
고등학교 때는 크루 사람들을 커뮤니티로 만났던 거예요?
커뮤니티로도 만나고, 보통 그때 당시에 축제 때 랩하고 이런 친구들 있잖아요. 그 친구들, 소문난 사람은 다 찾아갔는데 그중에 하나가 PNSB였어요. ‘야, 그 동네에서 누가 랩 제일 잘하냐’고 물어봐서 공연을 보러 갔어요. 근데 잘하는 것 같은데 따라 하는 것밖에 못하는 거예요. 우리 카페 이런 거 가입하게 만들고 관심 가지게 하려고 욕하고, 너네 진짜 못한다 그런 식으로 해주고. 나중에서야 원래는 그런 게 아니라 약간 의도해서 친해지려고 했던 거다고 말하면서 친해지고, 같이 녹음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의 다른 멤버들은 다시 결성이 된 후에 모으신 거예요?
그건 모으려고 모은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저희가 PNSB [FRACTICE] 준비 하면서 한 명씩 모이기 시작했어요. 그와 동시에 지금은 없어진 파티 팀이 있는데, 그 파티 팀 하면서 인원이 모이고. 파티 팀은 제가 다 모았어요. 1세대 형들 찾아다니면서 저희 파티하고 싶은데 같이 도와달라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근데 이미 그 형들은 놀 때도 바에 자주 가고, 웨스턴 바 같은 데 다니고 했으니까. 수뇌부 같은 역할을 부탁했죠. 우리가 음악을 하고 디제잉도 많이 하고, 일을 할 테니까 형들은 중심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해서 진짜 부흥했었죠. 그리고 저희가 잠깐 안 하니까 죽었다가 최근에 구스범스가 다시 DJ를 시작해서요. 원래 있던 그 형들 중에 한 명이랑 빅스톤에서 레지던트처럼 음악을 틀고 있어요. 그러니까 다시 분위기가 오더라구요. 그때 당시에는 애드밸류어를 이렇게까지 생각 안 했거든요. 파티 팀이 주 목적이어서 파티 위주로 갔죠. 디제잉도 하고, 그렇게 했는데 너무 행사 돌고 하니까 이런 거에 지쳐서 다시 음반으로 돌아가야겠다, 음반 준비를 해야겠다고 해서 파티 팀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PNSB 앨범을 하게 되었죠.
파티 팀 하셨을 때가 2012년인가요?
네, 그때가 2011년, 2012년 그때 하고 있었죠. 그것도 나름 잘 되었어요. 여기는 그런 게 없었으니까. 되게 작은 바에서 티켓 팔면 진짜 480장 이렇게 나가고, 만 원씩 하면. 가게 두, 세개 엮어서 블락 파티 하고. 되게 재미있었죠. 오로지 우리 힘으로만 그걸 이뤄낸 거니까 그때도 기뻤는데 계속 그렇게 하니까 앨범 아티스트 욕심이 서로 나서. 그러면서 애드밸류어가 갑자기 커지게 된 거예요. 파티 팀으로 우리 이름을 알려놓은 상태에서 앨범 준비하고 공연도 계속 하고, [FRACTICE] 수록곡으로 공연을 계속 했어요 사실은. 몇 곡으로. 꽤 오래 해서. 그걸로 이미 서서히 소문이 났고, 그러면서 구스범스(Goosebumps) 이 친구는 군산에서 태어나기는 했는데 익산에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PNSB랑 건너서 알고 지내면서 친하지는 않았는데 직접 군산까지 찾아와서 보고 싶다 그러고, 작업실 구경하고 그러면서 아예 군산으로 오게 되었고. 같이 하자고 해서. 나중에는 저희끼리 동네 모임 같은 걸 또 열었어요. 굳이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듣는 거 좋아하면 같이 모여서 리스닝 파티 같은 거 하고. 그러면서 친해진 사람들 들어오고. 그러면서 전주에서도 군산 와서 하는 친구들도 있고, 작업실 살면서. 그러면서 지금의 멤버가 딱 만들어진 것 같아요. 되게 많이 했어요 동시다발적으로. 파티 팀 하면서 어쿠스틱 공연 투어를 돌았거든요, 비슷한 멤버로. 그러면서 또 어쿠스틱 음악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도 있고, 레이블 중에서 우리가 하는 음악이랑 약간 다른, 좀 더 칠(Chill)한 음악 하는 보컬 여자애가 있는데 그 여자애가 약간 어쿠스틱 음악 하면서 알게 된 친구. 한 명씩 찾아 나섰죠. 원래 이 동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짓을 하니까. 다 굶주려 있던 거죠. 제 나이 또래 애들은. 그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군산 안에서뿐만 아니라 근처 도시에 있는 사람들도 다 군산으로 모이겠네요.
오히려 전주가 예전에는 되게 문화 쪽으로,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있긴 했는데 약간 지방에 있다 보니까 그 사람들은 직업이 다 있었던 거예요. 먹고 사는 문제도 있고, 그러면서 없어진 상태고. 그 당시에 투어 돌 때 저희가 전주를 자주 갔는데, 분위기가 완전 촌스러운 거예요. 아직도 프리모(Primo, DJ Premier) 비트에 랩 하고 있고, 이게 진짜라고 하고 있고. 그게 잘하면 그것도 멋진데 그냥 흉내만 내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JTV, 청소년 가요제 이런 것도 나갔거든요. 갔는데 완전 개판인 거예요. 자기 곡 가지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주는 기획자들은 많은데 아티스트가 없어서. 그러다 보니까 군산으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거죠. 군산은 기획자가 없는데 아티스트들은 넘치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 시점이어서.
기획자들과 같이 맞물려서 같이 한 작업들도 있나요?
예전엔 없었어요. 저희가 직접 기획하고 직접 만들고.
얼마 전부터 기획자들이 관심을 그렇게 가지게 된 거죠?
사실은 제가 영기획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서부터 많이 관심을 가졌죠. [MON] EP 내면서 하고 싶었던 게 그거였거든요. 서울에서 굳이 앨범을 내고 싶었던 게 그거였어요. 지방에서는 우리끼리 내면 아무도 안 알아줘요. 다른 지역에서 인정을 받고 내려와야 쳐주는 분위기여서. 그럼 내가 서울에서 앨범 내지 뭐, 해서 레이블을 찾다가 영기획에서 내니까 사람들이 다르게 본 거죠. '군산에 이런 애가 있었어?' 이런 식으로. '서울에서 앨범 냈대' 이런 게 되게 커서. 그런 걸 이용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부터 관심을 받았죠.
그러면 영기획 하박국 사장님과는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건가요?
맨 처음에 제가 데모 보내드리고 그랬는데, 사실 앨범 내고 싶다는 말을 하기 전부터 듣고 서포트를 해주셨어요. 영기획에서 기획하는 거에 제 곡 올려주시고 그러다가 이제 ‘사실은 들려주고 싶은 데모가 있다’ 이러면서 들려준 거라서. 그러면서 계약하고 그런 거죠.
처음에 음악을 접하신 건 어떻게 접하셨는지.
제가 프리스타일 농구 같은 걸 했거든요, 어렸을 때. 당시에 프리스타일 게임 나올 때 모션캡처하고 이런 게 다 아는 형들이거든요. 건너서 다 크루였던 형들인데, 그때 막 저도 오디션 봐서 팀 들어가고 그랬는데 그때 음악을 틀고 항상 농구를 했는데, 당시에 스트리트볼 프리스타일 이런 영상에서 쓰이던 DVD 같은 것도 믹스테입이라고 했거든요. 근데 거기에 나오던 음악들이 다 그런 거였어요. 프리모도 있었고, 제이딜라(J Dilla)도 있었고, 슬럼 빌리지(Slum Village) 완전 짱이었고. 그런 음악들이다 보니까 당연히 자연스럽게 힙합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그 와중에 처음 사귄 여자 친구도 그런 음악을 듣고 있어서 ‘내가 듣고 있는 게 멋있는 거네’ 뭔가 확신을 가졌고. 근데 농구로는 돈을 벌 수가 없을 것 같은 거예요. 저는 삼대독자여서 (웃음) 돈을 벌어야 하니까. 원래는 영상을 하고 싶었는데, 영상 또 잠깐 하다가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이 너무 좋기는 한데 음악을 하기는 좀 그렇고 음향을 해야지 라고 해서 시작한 게 툴 다루고 했던 게 계기가 되어서 음악을 샘플링해서 만들고. 그게 처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되게 뭐가 많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족 분위기가 독자라고 해서 엄하지가 않았어요. 너 진짜 하고 싶은 걸 해서, 거기서 최고가 되어서 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버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해서 어렸을 때부터 뭐 하고 싶다고 하면 다 서포트해줬던 것 같아요. 영상 하고 싶으면 진짜 캠코더 사가지고, 나중에는 그걸로 부족해서 대여해서 영화도 찍어보고. 농구할 때 모았던 운동화 같은 거, 옷 같은 거 다 팔아서 장비 샀거든요. 그리고 하루에 용돈이 만 원 이랬는데 그걸 다 안 쓰고 걸어다니고, 애들한테 빌붙어서 책 같은 거 있잖아요. 왜 그 나이 때 통장에 안 넣었는지 모르겠는데 책에 하루 하루 꽂았어요 만 원을. 한 페이지에 하나씩. 그래서 꽉 차면 돈이 꽤 되잖아요. 그거 털어서 장비 사고. 그 장비가 지금까지 오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군산에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어떤 게 있었나요?
저는 다행히 농구를 하면서 그 형들이 음악을 되게 많이 알고 있었거든요. 가지고도 있었고. 저는 커뮤니티가 군산에 박혀 있지 않았던 거죠, 그 나이에. 그래서 그 형들한테 얻기도 하고. 군산에 미군 기지가 있어서 클럽이 발달해 있었거든요. 파티 팀 옐로우 씨(Yellow C)를 할 때 군산에 1세대 DJ들이 있었어요. 힙합 DJ랑 랩 하시는 형들 있었는데 그 형들한테도 맨날 물어보고, 그 형들이 음악 트는 클럽 가서, 그때는 고딩이었는데 그냥 들어갔죠 (웃음) 그냥 들어오라고. 어차피 술 마시거나 담배도 안 피웠으니까. 거기서 음악 듣고. 더 게임(Game) 이런 거 듣고. 그러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때는 인터넷 이런 것도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어서. 잘 할 줄도 몰랐고. 되게 어렸을 때. 더 어렸을 때부터 앨범 별로 듣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러면서 감각 익히고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전에 군산에서 음악을 하셨던 분들이 계셨던 거네요.
네. 클럽에. 그 형들이 있었죠 있기는. 정견(제이켠, J'Kyun) 이런 형들도 클럽 내려와서 공연하고 그랬어요. 나중에 보니까 그 시즌 뒤 쯤에 솔자 보이(Soulja Boy) 이런 거 군산 클럽에서 틀고 그랬을 때 그 시즌에 시모(Simo) 형도 군산에 있었대요. 그런게 되게 신기했어요.
그러면 클럽을 중심으로 한 활동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나요?
아뇨, 지금은 다 끝났구요. 그때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군산이 되게 빠른 것 같아요 그나마. 전주보다 음악적으로 빠른 게 외국인들이 있고, 그리고 약간 클럽 문화? 외국 애들이 노는 문화가 익숙해져 있어요 가게마다. 술 들고 돌아다니고 그런 게 약간 이태원처럼, 일반 애들 눈에 익숙해져 있어서요. 근데 최근에 또 외국인 강사들까지 많아지면서 그런 게 섞여서. 지금은 바닥이 좀 죽었는데 그래도 그 친구들 돌아다니면서 가게에서 음악 신청하고 이런 게 있긴 있으니까요. 요즘 다시 부흥하는 것 같아요.
그때 DJ하고 랩하셨던 분들은?
그 형들은 반대로 저희한테 음악 하고 그런 걸 배우면서 지금은 막, 취미로 만들고 그러고 계세요. DJ도 한 번씩 하시고. 그 형들은 클럽 DJ 느낌이었는데 요즘엔 턴테이블 사서 LP 모아서 스크래치하시고, 그 형들은 역으로 거슬러올라간 거고 저희는 더 앞으로 가는 거고 그런 느낌으로. 애드밸류어는 아니지만 그냥 저희는 가를 필요 없이, 생각만 다를 뿐이지 같은 공간에 있으니까 동료라고 생각하고 좋게 지내고 있어요. 공연도 하고. 그 형들이 직장인이다 보니까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그분들 이전에도 군산에서 힙합 음악이나 이런 게 있었는지.
아무래도 있었겠죠? 있었으니까 그 형들도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저 되게 어렸을 때부터 힙합 클럽이 존재했어요 실제로. 듀렉 쓰고 다니고 그럴 때, 제가 완전 중학교, 초등학교 때부터. 제가 기억하는 건 딱 거기까지예요. 그때부터 있었다는 거. 그리고 아메리칸 타운이라고 있거든요. 거기서부터 클럽 문화가 전해져서 시내로 나오게 된 거죠. 점점 발전해서 뒤에는 문화가 좀 더 생긴 거고. 예를 들어서 위즈 칼리파(Wiz Khalifa)를 제가 거의… 서울에서 위즈 칼리파 아무도 안 들을 때 이미 저희는 여기에서 “Black & Yellow” 틀고 놀고 있었거든요. 저희가 빨랐어요. 그렇게 빠르게 틀고 듣는 게 익숙해지다 보니까 서울 애들보다 더 빨리 가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던 거죠. 음악을 해야겠다 싶을 때, 마음이 섰을 때 좀 자신이 있었어요. 흐름을 이끌어 나갈 자신. 문제는 그거였죠. 흐름은 이끌어 나가는데 누가 우리한테 주목을 하느냐. 왜냐면 앞서 가면 아무도 그걸 안 쳐줄 텐데, 그런 게 있었죠.
고등학교 때 있던 크루는 크루 단위의 활동이나 이런 건 안 했던 건가요?
그 크루에서도 뭔가 활동을 했어요. 저희가 그때 당시 돈 모아서 구도심에 있는 지하 다방 같은 데서 공연장처럼 만들어놓고 거기서 작업도 하고 잠도 자고 그랬거든요. 거기가 마침 여고 바로 앞이어서 일일이 다니면서 공연 오라고 하고 그랬어요. 되게 많이 하고, 애들도 많이 왔어요. 그 좁은 데 50, 80, 100명 와서 보고. 그 돈 나눠 가져서 맛있는 거 사먹고 그랬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게 그때 당시에 저희가 다 오버클래스 팬이었어요. 버벌진트 랩 따라 하고 있고, 영쿡 랩 따라하고 있고. 영쿡 랩 웃겨서 따라 부르고 진짜 그랬죠. 지금도 버벌진트는 저희한테 클래식이라고. 저희끼리 놀 때 음악 틀 때 한 번씩 딱 틀어요. 예전에 듣던 거.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음악적 색깔이나 방향 같은 건 애드밸류어가 처음 생겼을 때 어느정도 정하고 모인 건지.
억지로 정한 건 없구요. 앞서 나가고 싶어 하다 보니까. 그때 당시에는 아무도 트랩을 안 하고 있는 거예요. 아무도 808로 때리는 거 안 하고 있고. 저희는 그 생각밖에 없었어요. 전자악기, 가상악기가 되게 많다 보니까 전자악기랑 808로 때리는 거 하자.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걸 하고 있었어요.
그러면 각 멤버들끼리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비슷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서. 오히려 예전보다 지금이 더 자극 많이 받고,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최근에 얘기했던 건데, 애들이 제 영향을 아무래도 엄청 많이 받아요. 저는 예전부터 그랬고 계속 앞서 나가는 걸 좋아해서 계속 음악을 엄청 많이 듣다 보니까 애들한테 그걸 또 추천해줘요. 그게 제일 크다 보니까 그 영향을 아무래도 많이 받을 거예요 애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안에서 저한테 영향 받은 걸 믹스하는 거죠. 그러면서 그 친구들은 그 친구들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거고.
나중에 언씽커블(Unsinkable)이나 반다(Vanda) 님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지.
제가 곡 듣고 너무 좋아서 메시지로 먼저 컨택을 했죠. 대화해보고 앞으로 생각이 있느냐,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거냐, 별로 크게 뭐가 없어보이더라구요. 우리도 크게 사실 뭐가 없는데, 우리는 당신이 뭔가 좋은 일이 있어서 더 높은 곳으로 가면 서포트해줄 테니까 같이 할 수 있겠냐, 우리는 이런 분위기고 이런 레이블인데, 좋다고 해서 일단은 같이 하게 된 거죠. 마음이 맞아서. '앨범을 내주겠다', 이걸로 또 꼬셨어요. (웃음)
TFO 분들은 앨범 내고 나서 뭐라고 안 하셨어요?
근데 자기들도, 저한테 당했다는 걸 알면서도 내고 나면 좋잖아요. 내고 나면 좋으니까 자기들도 뭐라고 안 하는거죠. 그리고 그걸 냄으로써 그 친구들도 시스템을 다 파악하게 된 거니까.
활동을 하시면서 아무래도 판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셨을 것 같아요. 이걸 어떻게 짤 것인가부터.
항상 생각하죠. 저는 우선 애드밸류어로 이루고 싶은 건 큰 게 아니라, 저희은 편 가르기 없이 뭔가 애드밸류어 하면 알 수 없는 레이블 약간 이런 느낌으로 가고 싶은 게 목표 같은 거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인디 신(scene)도 응원하고 모든 음악을 다 응원하려고 해요. 그래서 계속 곽푸른하늘이나 단편선 같은 형들도 군산에 초청해서, 공연을 저희가 하지 않아도 그런 기획을 하는 이유가 그런 것들 때문이구요. 저는 한국에 특히 그런 사람들이 드물다 보니까 저희가 그런 걸 그나마,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 같고. 그래서 일부러 로컬을 되게 좋아해요 제가. 최근 디제잉 할 때도 로컬 아티스트 음악 되게 많이 틀고. 애드밸류어에서 데려오는 이유도 그렇고, 반면에 우리가 활동하는 영역에서 또한 그들을 응원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면에서 우리와 같은 입장의 음악가들이 있으면 다 응원하고 있어서요. 그런 거에 대한 고민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떻게 그 경계를 없앨 것인가. 팬들도 가지고 있잖아요. 특히 힙합이 가요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좋은 기회가 되었지만, 반면에 좀 어린 친구들은, 어린 팬들은 딱 그거밖에 모르니까. 어떤 유명한 사람이 힙합을 하면 힙합만 들으려고 하고 인디 신 이런 건 좀 얕잡아본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있고. 그런 팬덤은 좀 만들고 싶지 않고, 경계 없는 팬덤을 만들고 싶어요, 저희 애드밸류어 쪽은요. 그러면서 우리가 잘 되게 되면 팬들도 자연스레 그러지 않을까 생각을 항상 해요. 제가 막 라이브 셋으로 할 때 무키무키만만수 리믹스를 트는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이거든요. 굳이 밴드 음악을 리믹스 해서 트는 이유도 그런 거고. 그런 걸 허물기 위해서 은근히 노력해요. 저는 그래서 곽푸른하늘도 되게 좋아하고, 404도 좋아하고, 김오키도 좋아하고 윤석철트리오도 좋아하고 다 듣거든요. 모든 로컬 아티스트는 다 들으려고 해요. 흔히 말하는 인디 신에서 하는 공연도 웬만하면 다 하고 싶고 들어오면. 그런 판을 벌리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어요. 맨 처음에는 애드밸류어에서도 저 혼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약간 힘들었는데 실제로 단편선 형이나 그런 분들을 데리고 와서 인사시켜주고 친해지고 그러다 보니까 그게 진짜 허물어지더라구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게 그거였어요. 우리도 가지고 있던 편견을 허물었으니까 사람들도 허물 수 있겠다 약간 그런...
경험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어떻게 보면 변종이죠. 별난 거죠. 그건 그냥 상관 없는 얘긴데, 한대음 갔을 때 404 나왔을 때 일어서서 리듬 타고 좋아했던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어요. 힙합 관계자들 틈에서. 사람들 다 휴대폰 보고 있는데 우리들만 헐 대박이라고 위에서 막 고개 흔들고 있고. 변종이죠 참. 랩 하는 애들이 봤으면 우리가 어떻겠어요. 힙합 옷은 입고 있는데 기타 치는 음악에 막 놀고 있고.
좋은 거 아닌가요?
좋죠. 아무튼 저희는 어떠한 경우에도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 꼰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저와 같이 하는 친구들은 그렇게 안 되었으면 좋겠어서. 음악에 대한 편견을 다 없애려고 해요.
직접 기획하고 움직이고 이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어쨌든 본인의 여력을 가져가는 일인데, 그레이 님도 음악에 집중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 같거든요.
한 번은 안하겠다고 하고 안 했어요 며칠. 근데 나 말고 아무도 안 하더라구요 그걸 (웃음) 아무도 안 하려고 그러더라구요. 오히려 내가 답답해서 다시, ‘알았어 내가 다시 할게’, 약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저 혼자 다시 하고 그렇게 되었죠. 애들도 제가 그렇게 말할 걸 다 알고 있었던 것 같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랐을 거예요. 제가 알려준 적이 없어서. 지금에야 자기네들이 알아서 익힌 건데, 약간 아티스트로서의 태도 있잖아요. 그런 것도 제가 먼저 가지게 되니까 각자의 생각에 맞춰서 그런 걸 가지더라고요.
음악이나 공연 행사 이런 것 외에도 애드밸류어가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계속 하셨을 것 같아요.
엄청 많아요 저희는. 유투브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옛날에는 2NE1 TV 이런 것처럼 저희 미친 짓 하는거 한번씩 올리고. 팔로알토 형이 봤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런 것도 하고. 믹스다운이라고 저희끼리 정기적으로 장소 계속 바꿔가면서 진행하는 공연, 저희도 그때 당시에 보일러 룸이 목표였어서 영상으로 찍지는 않았지만 계속 그런 활동 하면서 VAT라고 아티스트가 하는 공연 같은 거 영상에 담아서 계속 올리는 그런 것도 계속 했었고. 택스 리턴이라고 저희끼리 모여서 리스닝파티 하는 것도 있었고. 일반 사람들이랑 같이 술 마시면서 노는 것도 있었고. 되게 뭔가 계속 많았어요.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게 되게 많고. 이거에 대한 고민은, 지방이라서 콘텐츠가 워낙 없으니까, 반대로 생각하면 해볼 수 있는 게 진짜 많은 거예요. 그런 점에서는 좋은 것 같더라고요. 지방에 있다는 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해볼 수 있으니까.
지금은 이제 서울과 교류가 점점 늘어나는 편인데, 앞으로도 좀 더 늘릴 생각인지.
저희는 장담하고 말할 수 있는데, 서울에 있든 어디에 있든 저희가 좋아하는 사람, 하고 싶은 사람하고만 할 거예요. 저희하고 생각이 안 맞으면 안 하는 거죠, 아무리 인기가 많고 그래도. 저희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요. 어느 순간 되면 사람 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람 대 사람으로서 얘기했을 때, 음악 얘기를 했을 때 잘 통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다 보니까.
그러면 지금은 군산 근처 분들하고도 교류가 있으신지.
네. 근데 아무래도 저희가 좀 별난 편이다 보니까 같은 지방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되게 드물어요. 그래서, 그러면서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하니까. 저희가 매우 잘하는 그런 사람들은 아니지만 서로의 커리어에 폐가 되지는 않을 정도의 그런 건 되어야 하고, 웬만하면 잘했으면 좋겠고 그런데 최근에 일랍(파프롬홍대 부산, 윅엘이) 쪽과 컨택이 있어서 그런 쪽으로. 지역의 경계 없이 같이 작업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광주 친구들도 2주년 파티 때 만나서 많이 얘기해보고 친해졌는데 되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조금만 더 많이 해서, 그 사람들하고도 작업 많이 하고 같이 끌어주고 약간 그런 걸 생각하고 있어요.
작년까지 인터뷰를 많이 하셨잖아요. 되게 큰 매체에서도 하시고 그러셨는데, 그런 것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피드백이나 이런 걸로 돌아오는지.
진짜 솔직히 말해서 큰 건 없어요.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 어떻게든 나에게 이득이 되겠지 해서 계속 하고 있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즐거운데 나중에는 되게 형식적으로 되더라구요. 음악적인 얘기보다도 어떻게 시작했어요? 얼마나 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뻔한 거. 그래서 나중에는 싫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일단은 나를 먼저 알려야 하고, 어떤 식으로든 알려지면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많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있어요. 엊그저께인가 이스케이프 아시죠? 혹시 인터뷰 계획 있냐고 물어봤어요. 인터뷰 계획 있으시면 저는 저를 추천한다고 (웃음) 그랬더니 왜, 저희는 인터뷰 계획 없다고. 왜 그러시냐고 그러는데 뭔가 앨범 얘기를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인터뷰 요청 들어오는 데가 사실상 음악 얘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래서 만약 이스케이프 인터뷰 계획이 있으면 저를 해주시면 안 되냐 이런 식으로 얘기했는데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돈 벌기 바쁘다고, 6월까지는. 그렇다고 해서 끝났고 (웃음) 영기획이 있는데 왜 그러냐 했는데 사실상 하박국 형 혼자 진행하는 거고, 내가 또 영기획에서 냈는데 또 영기획에서 인터뷰하면 뻔한 것 같아서. 사실은 저도 영기획 미디어 팬이라. 인터뷰하는 것도 되게 좋을 것 같거든요. 되게 깊이 파고드니까. 경력도 경력이라서. 음악적인 얘기도 진짜 마음껏 풀 수 있잖아요. 분량에 상관 없이. 그런 인터뷰를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진지한 이야기를 한 번.
인터뷰하실 때는 아무래도 [MON] EP로 이야기를 하겠죠?
일단 그게 가장 최근 작업이니까. 슬슬 새로 낼 때 되었죠. 준비를 하고는 있는데, 작업이 잘 안되네요.
[MON]도 되게 오래 전에 하셨던 걸 가져온 거라고 알고 있어요.
그것도 [FRACTICE] 하면서 다 끝내놨던 건데, [FRACTICE]가 3년인가 4년이 되었구요. 아, 제가 스물 네 살이니까 4년이 되었네요. 그리고 [MON] EP가 2년이 되었고.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거군요.
네, 당시에는 내주는 회사가 없었으니까요. 너무 힙합 느낌도 아니라서, 전자 음악 느낌도 아니고. 그래서 약간 360 쪽에서 내려고 해도 못 냈을 것 같구요. 전 영기획에서 내기를 진짜 잘한 것 같아요.
어쨌든 하박국 사장님의 서포트도 있었으니까요.
그렇죠. 그게 엄청 고마웠죠. 보통 레이블도 그렇게 해주기는 힘들잖아요. 그 음반 가지고. 근데 할 수 있는 건 다 했죠 진짜. 리뷰 이런 건 제 아이디어였지만 어쨌든 그걸 엮어서 또 콘텐츠를 만들어 주시니까.
[MON] EP 리워크 작업은 있었나요?
리믹스 받고 그런 건 사실상 계획에 없던 건데, 어느 정도 서포트를 받는 시즌이어서 리믹스를 해서, 저 말고 다른 음악가들이 그걸 으쌰으쌰해서 흐름처럼 보이게 하고 싶어서 만든 거예요. 좀 활발해진다, 이런 걸 좀 보여주고 싶어서 많이 부탁했던 거예요. 앨범까지는 생각 없었지만 그런 걸 약간 팬베이스를 의식한거죠. 그런 흐름이 있으면 좋으니까요. 아무래도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건 그때도 알고 있었으니까.
[MON] EP를 만드실 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지셨잖아요.
진짜 은근히 많이 달라졌죠. 만드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고, 생각도 좀 더 깊어졌고, 사운드에 대한 개념도 엄청 많이 바뀌었고. 그게 제일 커요. [MON]은 되게 미니멀하고 정갈하잖아요. 근데 앞으로는 되게 뎁스도 어느 정도 있고, 넓게 가고, 그렇게 하려구요. 근데 힙합을 어쩔 수 없이 좋아해서요. 그 요소가 계속 있는 음악을 할 것 같아요. 베이스 음악을 해도 그렇고. 힙합 진짜 재미있는 음악이라서요. 근데 한국에서는 아쉬운 게 [MON] EP를 또 힙합으로 안 봐주고. 원래 [FRACTICE] 앨범을 내고 나서 모든 관련된 미디어한테 다 보내려고 했거든요. 스캐터브레인도 후보에 있었고 심지어 택배도 다 쌓아놨는데 씨디를 하도 뿌리고 그래서 어느 순간 동이 나서, 이미 리드머로 인해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니까 보낼 필요 없겠다고 생각해서 다시 뜯어서 제가 가지고 있다가 다시 뿌리고 그랬어요. 지방에 있으니까 할 수 있는게 그거밖에 없더라고요. 일단 보내서 잡지사, 미디어 사이트, 웹진 이런 데 다 보내려고 주소, 택배 다 써서 쌓아놨어요. 운이 좋았죠.
리드머 분들께서 굉장히 좋게 봐주셔서.
진짜 저희는 그냥 운인 것 같아요. 100% 실력은 아니고.
제가 원래 페이스북에서 그런 컨셉의 사람이 아니었어요. 엽기 이런 게 아니었는데. 미친 컨셉으로 가면 나는 속 풀리고 보는 사람들도 재밌기는 한데, 이렇게 하면 서울 못 뚫겠다 싶어서 나대로 하자.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대로 말하자. 이걸로 사람들을 끌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용하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MON] EP 작업기를 페이스북에 조금씩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더라고요. '그냥 작업한 게 아니었네', 이런 식으로.
저희는 그런 걸 믿었어요. 인터넷의 힘 그런 걸 약간 믿었는데, 외국은 그때부터 이미 시작이 되고 있었으니까. 저희가 탓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나마 빠른 편인데, 그때만 해도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그런 게 안 만들어졌었나 봐요. 저희는 믿고 있었는데. 인터넷으로 만나는 인맥 이런 거에 대한 생각이 사람들에게 없었던 때라. 그나마 트위터에서 저희는 제일 먼저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도와줬기 때문에 도움이 된 건 있는데, 그래서 그냥 트위터에 처음에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컨셉 이런 거 생각 없이 그냥 아무렇게나 했는데 팔로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 엄청 어필하기 시작했죠. 어떤 컨셉 가지고 재미있는 말을 한다거나 그런 거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죠 한때는. 가장이 된 느낌인데, 내가 그때 당시에 안 뚫으면 다른 애들은 또 좌절하니까. 제 친구들,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던 친구들도 좌절하니까 어떻게든 인터넷의 힘을 보여줘야 했어요. 진짜 미친듯이 했죠. 계정도 엄청 많았어요. 옐로우 씨 계정도 있었고, 개인 계정도 있었고, 부계정도 있었고, 애드밸류어 계정도 있었고 그랬죠. 페이스북 페이지도 진짜 많이 하고. 인터넷이 재미있잖아요. 그런 거에 대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고, 요즘 베이퍼웨이브 흐름도 그렇고 예전 레드불뮤직, 비트 신(scene)이라는 것 자체도 인터넷 해쉬태그 문화 만들어지면서 진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어가지고 휩쓸려다녔거든요. 사운드클라우드랑 텀블러랑. 아직 한국 사람들은 거기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 같아요. 사운드클라우드도 그렇고, 밴드캠프도 그렇고, 해쉬태그는 그나마 싸이월드에서 하던 게 묻어 있어서 사랑글귀 이런 거 (웃음) 하기는 하는데 아직은 더딘 것 같아요. 트위터 같은 경우에는 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고. 점점 더 재미있어지면서 어렵게 될 것 같고. 예전처럼 인터넷에 얽매이지는 않으려고요. 어느 정도 우리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생기니까. 음악으로 승부보려고요 이제부터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저희 노림수는 이거였어요. 인터넷으로 어느 정도 팬덤을 만들어놓고 음악으로 쇼부보고 공연하고 음반으로 입소문 타고. 아무튼 예전에는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초반에 그런 거에 대한, 드립을 어떻게 쳐야 리트윗 많이 당해서 팔로워 늘릴까 그런 (웃음) 저희는 뭘 해도 다 만들어서 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 군산으로 많이 취재 오는 편인가요?
많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계속 간간이 오고 있는 추세죠. 1년 반 전부터는 지방에서 지방으로도 많이 오시고.
지역에서든, 인터넷상에서는 앞서 나가 있다보니까 힘든 점도 생기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점점 더, 우리를 기점으로 해서 저희가 활동하는 지금을 기점으로 해서 앞으로는 지방에 대한 그런 게 그래도 많이 없어질 것 같아요. 말씀드린 대로 인터넷 이런 게 활발해졌으니까, 사람들도 그런 걸 빨리 느끼고 있고. 진짜 외국처럼 허물어지는 것 같아요. 유투브, 사운드클라우드 등등. 그러면서도 걱정이 되는 게 음반 같은 게 많이 안 팔릴 것 같아서. 그런 시대에 발맞춰 음반 같은 건 많이 안 팔리고, 오히려 한국 시스템에서는 그렇게 되면 멜론만 잘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저희는 그런 고민을 계속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 저희는 저희만 먹고 살기보다는 한국의 음악 신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 신에 도움이 되고 싶고 길이 남고 싶고. 그런 걸 다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어요. 클래식 음반 이런 건 요즘 세상에서는 사라졌지만, 클래식 음반은 진짜 음악만 좋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흐름과 엮이는 거잖아요. 저희는 그걸 원해서. 노력해야죠. 이거에 대해서 아직 집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저희는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이런 것보다 클래식 음반 만들고 싶어요.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그런 기점부터.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것만 듣고 자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게 진짜 멋있는 것 같아요.
방향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도 힘든 일인데.
오히려 계속 지방에 있다 보니까 생각하는 것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래퍼들뿐만 아니라 음악가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다르지 않구나, 같은 상황인거죠. 지방에 있어도 돈이 안 되고 서울에 있어도 돈이 안 되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의지할 사람이 서울에는 그나마 좀 인구대비 사람들도 많고, 팬들도 많고. 그 차이?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될 수 있는 게 홍대, 이태원, 이런 플레이스가 있고 동네 분위기가 있는데 저희는 그 자체가 없으니까 헤쳐나가는 거죠. 기획도 하고 우리가 다 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죠. 기획자나 음악가가 으쌰으쌰 하는 그런 그림이 아니니까. 그거 빼고는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생각하는 것 자체는.
저는 퓨처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예측하고 길을 만들어놓는 것,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이 커요. 애드밸류어 애들도 그런 욕심이 있어요. 지방에 있다 보니까 인기하고는 점점 멀어지는 거예요. 인기를 못 얻으면 나중에 죽어서라도 명성을 얻어야겠다 (웃음) 그런 것들이 조금씩 다 생기는 거죠. 그렇게라도 얻고 싶은. 이건 자신 있는데요, 저한테 시간만 있으면 작곡가, 악기, 셋 다 맞춰놓고 대중적인 음악 만들 수 있거든요, 작정하면. 근데 그러기 싫으니까 안 하는 거죠. 물론 그 사람들이 못한다는 게 절대 아니라,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안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거죠.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을 풀고 싶으니까. 물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랑 멀어지게 되는데, 저는 아티스트라는 게 예술 이런 걸 떠나서 사람들이 따라오게 만드는 건 그 아티스트가 멋있어야, 멋있는 걸 해야 따른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뻔한 걸 해서 사람들이 따라오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캐스커 형 영기획 인터뷰를 보면서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 게, 자기 팬들을 이끌어주고 싶어하는 거잖아요. 더 이상 거기 갇혀 있지 마라, 수준 이런 걸 떠나서 좋은 음악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고. 저도 그러고 싶은 욕심이 커요. 제 팬들을 한 흐름에서 머물게 하고 싶지 않아요. 좀 더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이상 같이 가고 싶고. 그래서 더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 (웃음) 트위터 팔로워 2,000명 정도? 그 이상 가고 싶지는 않아요.
비니프(Viniph) 콜라보 컴필레이션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우선 비니프라는 브랜드와 한 주제를 놓고 협업하는 건데요, 비니프는 의류고 볼트에이지(Volt Age)의 앳모스피어(Atmosphere) 형이 또 디자인을 하시고, 황영진 씨라고 유명하신 아트워크 디렉터 분이 있어요. 황영진 씨와 앳모스피어는 시각적인 걸로 풀고, 저희는 음악적으로 풀고, 그걸 비니프가 제품화시키는거죠. 그런 콜라보레이션입니다. 한 주제를 놓고. 제가 일부러 그걸 먼저 제안서를 냈는데, 하고 싶은 사람도 제가 요청을 했고. 컨펌을 아예 없이 가기로 했어요. 서로에 대한 음악적인 터치도 없고 디자인에 대한 터치도 없고 서로 믿고 딱 가는 그런 분위기예요. 근데 약간 이게 S/S 시즌이다 보니까, 그리고 좀 늦게 말한 감이 있어서 늦어진 부분이 있는데, 그리고 작업 시간이 촉박해서 사운드 퀄리티가 제가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총 디렉팅을 본 입장에서는. 근데 애드밸류어가 이제 애드밸류어의 옛날 앨범만 들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MON] EP도 그렇고 [FRACTICE]도 그렇고 TFO도 그렇고. 가장 애드밸류어의 최신 음악을 느낄 수 있는 앨범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하고. 애드밸류어 단체를 가장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음악들을 한 앨범에 담는 거니까. 진짜 웃길 거예요 제 생각에는. 앰비언트와 익스터미널 비트, 랩, 힙합, 다 섞여 있으니까요. 비트 음악, 장르가 다 섞여 있고, 나름 스토리도 있구요. 되게 어둡지만 재미있을 거예요. 저는 일부러 메인에서 빠지고 인트로를 열었죠. 제 곡으로 인트로를 열고. 저희끼리도 프로젝트였어요. 팀을 엮어서 가는 거였으니까. 저 같은 경우는 인트로니까 혼자였고 구스범스랑 PNSB 이렇게 팀하고 TFO도 팀에서 한 곡 내고 서로 갈라져서 다른 멤버들과 섞여서 한 곡씩 하고. 촉박해서 50%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촉박해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쉽게, 간단하게 말하면 아까 그 얘기인 것 같아요. 애드밸류어의 최신 사운드, 프리뷰 버전으로 듣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최근 케익샵에서도 그렇고 플레이를 많이 하고 계시잖아요.
저는 DJ의 영역도 최근에 알게 되어서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게 그 DJ들이 한 시간 동안 음악을 트는데 되게 이미지가 그려지더라구요 머릿속에. 근데 사람들은 그냥 춤만 추잖아요. 그런게 좀 안타까워요. 우리는 최대한 그런 걸 만회하려고 하고 있어요. 마약을 한 사람이든, 죄를 지은 사람이든 어떤 사람이든 간에 우리 음악을 들었을 때 뭔가 진짜 최소한 망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눈 앞에 뭔가가 그려지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걸 목표로 하고 음악을 하고 있거든요. 궁극적인 목표는 많은 사람들한테 그걸 심어주는 거? 그런 걸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너무 사람들은 즐거우려고 듣거나, 기분풀이로 듣거나, 그런 쪽으로만 듣더라고요. 진짜 세상에 좋은 음악들이 많은데. 그런 걸 우리를 통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친구들은, 우리들 중 한 명은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있고 갈 생각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는데 여기서 계속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 친구들은 목표가 그거인 거죠. 장소는 상관없다. 우리가 좋은 음악 하고 사람들을 끌어내면 되는 거다. 그런 건 서울을 가든 안 가든 마음은 다 똑 같은 것 같아요. 단지 서울을 가려고 하는 이유는 이 도시에서 잘 느낄 수 있는 게 떨어져서? 서울이 되었든 어디로든 가고 싶은 거고, 한 번쯤은 가고 싶은 거라서. 딱히 특별한 건 없더라구요.
앞으로 애드밸류어에서 나올 음악들은 기대 많이 해도 좋아요. 진짜 애들이 잘하게 되었고, 이제는 제가 터치 안 하거든요. 예전에는 음반 하나, 믹싱 하나 다 관여하고 디렉팅까지 했는데 이제는 애들이 다 능력이 생겼고 감각이 생겼어요. 아마 걔네들이 지금 노피치온에서, 구스범스 애들은 이제 20대 초반이고, 더 어린 친구들도 있고. 걔네가 제 나이대가 되면 더 잘하겠죠. 저는 그걸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빨리 알려준 거예요. 공부하는 텀을 최대한 없애주려고. 지방이니까 시간이 늘어지면 끝없이 늘어지거든요. 최대한 지방에서 활동하는 이점을 안겨주려고 텀을 줄여주고, 제가 부딪혀가면서 얻은 것들을 최대한 많이 알려주려고 해요. 꼰대처럼 이렇게 해, 가 아니라 이런 게 있더라. 많이 알려줘요. 토키몬스타(Tokimonsta)는 이렇게 하더라, 그런 걸 최대한 많이 알려주고. 내가 봤는데 솔스켑(DJ Soulscape) 형은 이렇게 하고, 그런 걸 최대한 많이 얘기해주고 공유도 많이 하고. 그러니까 애들이 되게 좋아하고 빨리 늘죠. 어느 부분에서는 저보다 훨씬 잘하구요. 몇 살 차이 안나지만. 애드밸류어도 사람들이 기대한다고 하잖아요, 뭘 기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좀 자신있어요. 우리밖에 못하는 음악, 해외에서도 필요없고 전 세계에서 우리밖에 못하는 음악을 들을 기대는 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컴필레이션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음악들이 난데없이 등장하고. 진짜 재미있어요. 전자음악인데 힙합 바이브가 있고, [MON]에서 했던 느낌이 아닌 다른 느낌으로. 솔직히 말하면 많이 아쉬운 트랙들이 몇 개 있죠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안에 그 많은 사람들이 평균 이상의 트랙들을 찍겠어요. 제 것도 구리고, 다 구린데 좋은 트랙들이 몇 개 있어요. 눈여겨 볼 만한. TFO도 진짜 재미있고. 프로젝트 하나는 록 같은 걸 했어요 힙합으로. 악기 구성도 재밌고. 되게 어둡고 칠한 것도 있고. 노피치온에어는 이름과 걸맞게 바람 소리밖에 없고. 공기, 약간 이런 느낌. 자면서 들을 수 있는 트랙. 근데 그 트랙을 일부러 맨 마지막으로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안 들을 것 같아서. 중간으로 (웃음). 저희가 이런 포지션을 계속 지키면 언젠가는 뜨지 않겠어요? 뜬다는 건 큰 꿈이 아니라 음악으로 벌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지 않겠어요.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인터뷰하면서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그거예요. 지방에 있다 보니까 계속 지방 얘기만 하게 돼요. 오히려 저희는 그렇게 안 느끼고 있는데. 초반엔 그런 게 있었죠. 군산! 외쳤는데 점점 그게 아니게 된 거예요. 사람들이 오고, 저희가 가고 그러니까. 그냥 한국인 거잖아요. 이 얘기는 꼭 넣어줬으면 좋겠어요. 나중에는 그렇게 되다 보니까 지역적인 얘기를 할 필요성이 없다는 걸 느꼈어요. 물론 우리가 있는 동네이니까 자랑하고 싶은 게 많기는 하지만. 촌놈을 더 촌놈으로 만드는 그런 것들이 좀 많아요. 우리는 그렇게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우리한테 첫번째는 음악이에요. 지역 이런 건 다 필요 없어요.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 대신 요즘 같은 세상에서 CD를 팔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죠. 똘추죠. 이런 레이블이 어디 있어요. 하는 짓은 다 인터넷 세상이고 그런데 CD를 팔겠다고 하고.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틀이나 제한 같은 게 전혀 없으시잖아요.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게 꿈이에요. 이게 진짜 단점이 될 수도 있어요. 어떤 한 컨셉의 음악가로서는. ‘쟤는 뭐 맨날 달라’, ‘뭐가 뭔지 모르겠어’. 사람들한테는 그렇거든요. 근데 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쟤는 그냥 다 해, 다 할 줄 알아. 근데 다 좋아. 그게 진짜 멋진 거거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전대물에서) 빨간 애 있잖아요,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고집 세고, 맨날 같은 팀 애들 곤경에 처하게 하고. 지 혼자 할 수 있는데 가자고 해서 졸라 맞고 그러잖아요. 저는 그런 애들 안 좋아했어요. 저는 이것 저것 둘러보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그런 게 좋아요. PNSB랑 하는 건 계속 욕심이 있어요. 걔랑 저랑 음악 듣는 취향에 갭이 아예 없거든요. 걔는 랩을 안 들어요. 체크는 하지, 자기 스타일 완성 이런 거에 대한 집착이 있어서. 어디에 랩해도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처럼 자기 걸로 다 먹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목표가 있어서 이것 저것 다 하고 싶어해요. 최근에는 풋워크 듣고 저랑 같이 (웃음) 그랬다가 풋워크 다음엔 뭘까 제가 계속 캐고 있어서 그런 걸 같이 듣고 있고, 되게 재미있는 것 많아요. 킥 소리가 음악이 계속 흐르다가 어느 순간에 클랩으로 바뀌어요. 소리 자체가. 그런 음악도 있고 재미있는 것 많이 나오고 있어요.
저도 빨리 앞으로 가야죠. 빨리 가서 길을 제시하고. 어떤 길이 딱 뚫렸을 때 그 길을 처음 연 사람이 있고, 그 안에서 첫 번째로 달려서 1등이 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1등 이런 건 욕심 없고, 그 길을 제가 열었으면 거기서 슈퍼스타가 한 명 나오겠지만, 제가 그 길을 여는 사람인 건 변함이 없는 거죠. 그래서 #sagyora를 하고 있거든요. 음악 장르를 새로 만들고 있어요. 쉬울 줄 알았는데 되게 어렵더라고요. 원래 없던 장르를 만드는 건데, 기반이 있긴 있는 거죠. 60년대 지루박, 스윙 댄스 이런 게 한국에 들어오면서 그게 퇴폐적으로 변질되었잖아요. 지루박, 난스텝, 부루스 이렇게 변형되면서 한국만의 바이브가 만들어진 거예요. 흐름이 생긴 거죠. 그게 나오는 음악이랑 전혀 상관 없는 거 있잖아요. 음악이 기준인데 춤 추는 사람이 기준인 거죠. 음악은 쿵 딱만 있으면 되고. 한국 건데 트렌디한 거. 약간 그런 걸 만들고 싶었어요. 영국 애들은 풋워크를 가지고 와서 우리끼리 한번 대결해 보자 이런 판을 자주 벌리잖아요. 저도 그런 걸 벌리고 싶은 거죠. 제가 이걸 어느 정도 정리해서 프로듀서들한테 포맷을 나눠주고, 대결을 펼쳐서 누가 1등을 할 것이냐 이런 걸 생각하고 흐름을 만들어보자는 건데, 삼박자 리듬이구요. 템포가 150. 쪼개면 75인 거잖아요. 템포가 약간 계산되어 있는 게, 70하고 두 배 해서 140이면 덥스텝 바이브잖아요. 80에서 160이면 풋워크란 말이에요. 150이면 그 중간이잖아요. 피치를 5씩만 움직이면 어느 음악이든 디제잉 셋으로도 섞을 수 있는 거예요. 삼박자라서 물론 어렵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되지 않을까 해서. 그런 것도 다 생각해놓았고. 요즘 리듬 짜고 샘플 많이 만들어놓고 있는 중인데 재미있어요. 들었을 때 '와 이런 거 한국 거구나' 이런 느낌보다도 '익숙한 느낌인데?' 근데 왠지 삼박자인 거죠. 그리고 모든 댄스 음악이 4/4로 익숙해져 있으니까 삼박자로 나오면 불편할 거란 말이에요. 근데 인스타그램에 사교댄스 난스텝 이런 거 영상에 150 BPM에 사교라 스텝을 박아놓은 영상이 있어요(링크). 맞춰서 튼 게 아닌데, 그냥 틀어놓고 기존 영상의 음악만 끈 건데 너무 잘 어울리는 거예요. 약간 그래서 잘 풀면 비디오 이미지 이런 거랑 같이 해서 진짜 흐름이 되겠다 싶어요. 베이퍼웨이브에서 더 나갈 수 있는, 풋워크에서 더 나갈 수 있는 그런 게 되겠다 생각하고 그런 걸 많이 하고 있어요. 이게 망하든 안 망하든 상관없고 저희한테는 기록인 거죠.
마무리로, 앞으로의 계획 간단하게 얘기해주신다면.
저는 모든 얘기를 음악으로 풀어요. 5년 동안 바다를 본 적이 없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여름에 휴가를 가본 적이 없어요. 그냥 갈 수도 있는 건데 한 번도 놀러가본 적이 없고, 그때부터 거의 미쳐서 살고 있었던 거죠. 이번에 드디어 부산에 가요. 공연하러 가는 건데, 어쨌든 바다 보러 드디어. 심지어 저는 바다가 바로 옆에 있잖아요. 근데 저런 뻘바다 말고 (웃음) 해변을 보고 싶은데 드디어 해변을 보러 가는거죠.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부산 가보고 지금 가는 거니까. 하. (감격의 한숨)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뻥 뚫릴 것 같아요. 진짜 열심히 했는데 저는 아직 부족한 게 너무 많아서. 계속 채찍질 해야죠.
더 음악 잘하는 것, 개인적인 계획은 그거구요. 애드밸류어를 대표해서 말하라고 하면, 꾸준히 새로운 음악을 하는 것. 그리고 더 몸을 부풀리고 최대한 빚지는 거나 낙오자 없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다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게 목표인 것 같아요. 저희 집 가훈을 그대로 가지고 가거든요. 저희 집 가훈이 각자 알아서 살자예요. 근데 애드밸류어도 약간 그런 분위기에요. 각자 알아서 살자. 각자 알아서 재미있게 음악 하면서 살면서 평생 가자, 형제 이런 얘기 절대 안 해요. 그냥 볼 수 있을 때 얼굴 보면서 재밌게 음악 하고, 계속 볼 수 있으면 더 좋은 거고. 그런거죠. 시간의 흐름에 맞춰서. 아마도 자연스럽게 그 생각이 있을 걸요. 오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하겠죠. 우린 형제다 마인드로 가는 친구는 구스범스밖에 없을 거예요 (웃음) 진짜로. 그냥 앞으로의 희망사항도 그렇고 다른 건 없는 것 같아요. 아마 제 얘기보다 다른 친구들 이야기가 더 재미있지 않을까. 걔네는 다른 얘기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저와 계속 얘기해봤자 음악 이야기만 하겠죠. 앞으로 계획도 계속 음악 하는 거고.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잘사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제일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군산에서는 가능한데. 지방에서는 가능한데. 문화적인 것도 그렇고 서울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포기를 못하는 것 같아요. 비싸도. 호주같이? (웃음)
- PNSB
지난 해 [FRACTICE] EP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한국대중음악상 랩&힙합 최우수 음반, 노래 부문에 모두 후보로 올랐다. 독특한 음악과 거침없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확실히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우선 간단하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PNSB라고 하고요. 군산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끝. (웃음)
우선 얼마전에 브레인워시(Brainwash) 쇼케이스에서 공연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게 되게 웃긴게,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올라서 그날 서울에 갔잖아요. 그날 밤에 저희끼리 뒷풀이 식으로 클럽도 가고 놀고 있다가 키드애쉬(Kid Ash) 그 친구를 되게 우연하게 만났어요. 아는 형들이 서로 인사시켜줘서 우연히 얘기를 했어요. 담배 태우면서 대화를 하다가 정말 서로 잘 맞는 거예요. 진짜 별거 없이 만나서 얘기해봤는데 되게 잘 맞아서 아침까지 같이 술을 마셨어요. 어떻게 하다가 취해서 그 친구 집까지 가서 잤어요. 원래 숙소가 따로 있는데.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은데 그러다가 친해졌는데, 다음 날 더 많은 얘기를 했죠. 그러다가 너 쇼케이스 때 와달라고 해서 저도 재미있으니까 가겠다고 해서, 단순하게 이루어졌죠. 그리고 어글리덕(Ugly Duck) 분이랑 전부터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게스트였잖아요. 그 형도 같이 하자 이런 식으로 말이 나와서, 되게 우연찮게 하게 된 것 같아요.
공연 때 반응은 어땠어요?
반응 되게 좋았어요. 일단 그쪽 팬들한테는 제가 되게 신선한 느낌이라기보다는 쟤 뭐지? 이런 식? 물음표 계속 던지는 느낌? 제가 무대에 나온 순간부터 물음표 쏘는 느낌? 근데 제가 거기서 미친 짓을 해버리니까 사람들이 되게 좋아해줬던 것 같아요.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서울 공연을 계속 하실 것인지.
네, 불러만 주신다면 할 의향이 있습니다. 제가 시간이 되고 하고 싶다면.
한국대중음악상에도, 리드머 어워드에도 후보로 오르면서 많은 주목을 받으셨는데 소감이 있으시다면.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쁘거나 그런 감정은 크게 없는 것 같아요. 되게 얼떨떨하고. 저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우리도 노미네이트 될 수 있을까 이런 얘기 장난 식으로 주고 받았는데, 그게 진짜 되어버리니까 기쁘다기보다는 얼떨떨한 거예요. 근데 이제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쁜 일이죠. 꿈을 이룬 느낌? 제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받았던 그 자리에 있었던 거니까. 어렸을 때 무심코 뱉었던 말들이 쑥 온 거잖아요 갑자기. 예상치도 못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되게 기쁘죠. 행복하고.
노미네이트되고 난 뒤에 외부로부터의 반응이 있었는지?
따로 크게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이쪽에 있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건 그냥 제 느낌인데 미심쩍어 하는 부분이 많아요. 제가 느끼는 건데, 지방에 있단 이유만으로도 그렇고, 제가 입장 바꿔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아요. 미심쩍은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제 주관적인 느낌이지만요.
존중을 표하는 것보다?
약간은 있는 것 같아요. 같이 작업하자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는데 붕 떠 있는 말들 같고 (웃음) 저야 하자면 하죠.
[FRACTICE] 같은 경우에는 되게 오래 전에 완성된 앨범이라고 들었어요.
햇수로 치면, 완성이 된 지는 3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오래된 앨범을 새로 발표한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지.
사실은 되게 내고 싶지 않았어요 솔직히. 어떻게 보면 거의 첫 작업물을 데뷔작으로 하는 건데. 보통 랩 하시는 분들은 다들 그렇잖아요. 생각나는 대로 가사 쓰고 녹음하고 그런 식이잖아요. 저는 습작들을 앨범으로 묶어서 내려고 하니까 그게 조금, 제 스스로는 만족도가 되게 없었죠. 사람들은 어떻게 들어주셨는지 모르겠는데 저 스스로는 되게 만족감 자체는 없었던 것 같아요. 이게 왜냐면, 제 주변에는 크루나 팀 사람들은 보시다시피 저만 랩을 했어요. 다 프로듀서들이고 비트메이킹하는 사람들이고. 이런 분들 사이에서 저만 가사 쓰고 랩 하고 이런 식이어서. 프로듀서들 영향을 되게 많이 받잖아요. 어쩔 수 없죠 같이 음악 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그레이 형도 그렇고 사일러밤 형도 그렇고 옆에서 디렉팅을 되게 많이 했죠.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런. 물론 제 주관도 많이 들어갔지만 거의 다 같이 만든 앨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근데 여기서 제가 만족도가 없는 이유는 완전하게 제 생각만으로 이뤄진 게 아닌 것 같아서. 물론 도움을 많이 받아서 좋은 것도 있죠, 어떤 앨범이든 도움을 많이 받잖아요. 근데 스스로는 이제 '아, 이건 좀 더 내 생각으로, 100% 내 생각으로 풀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거죠. 그렇다고 제가 그 앨범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건 아녜요.
그때의 PNSB와 지금의 PNSB는 많이 다르겠네요?
매우 달라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마 진짜 80%는 달라진 것 같아요. 거의 한 바퀴 돈 것 같아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것들이나 가사를 쓰는 스타일이나 이런 것들 다 되게 바뀐 것 같아요. 음악 듣는 게 엄청 광범위해진 것 같고요.
피처링 같은 경우는 당시에 받으셨던 건지?
피처링 같은 경우는 제가 녹음을 다 끝내고 부탁을 했던 거죠. 영쿡(Youngcook) 형이나 우피(Woopy) 형 이런 분들… 저는 저에게 관심 가져줬던 사람에게 부탁한 거예요. 우피 형도 제가 첫 싱글 “One Night”을 발표했을 때 좋게 들어주시고 접촉도 해주셨고 그러니까. 그런 분들하고만 했어요. 제 음악 좋아해주시는 분들과.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는 아무것도 모를 때라 (웃음) 좋아해주면 다 감사합니다 그런 식이었죠.
처음 음악을 접하셨던 건 언제인지?
힙합 음악은… 초등학교 3학년? 1, 2, 3학년 즈음에 있었던 것 같아요. 친형이 듀스 음악 되게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형이랑 이불 뒤집어쓰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듀스 음악을 형이 계속 틀어줬어요. 친형이 어렸을 때 그런 쪽 음악을 되게 좋아했던 것 같고, 그 잔해가 아직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리듬이 되게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 제가 성장을 한 거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웃음) 아마 에픽하이(Epik High) 1집이 나왔을 거예요. TV에서 우연하게 짜장면 먹다가 봤는데 되게 멋있는 거예요. 되게 막 낡은 동네에서 랩 하는 게 멋있어 보였던 거예요. 그때부터 쭉 관심 가지다가 중학교 때는 친구들이랑 좋아하는 랩 따라부르고 그러다가 축제에서 랩도 하고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그런 식이었죠. 근데 그렇게 계속 하다가 ‘난 이거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레이 형을 만났어요. 그레이 형이 그때 당시에는 제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고 있었어요. 스스로 녹음도 하고 비트도 자기가 초이스해서. 그레이 형도 예전에는 같이 랩 하면서, 공연 하자고 사람들을 하나둘씩 모으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는 아웃스탠딩 어빌리티(Outstanding Ability)라는 크루가 있었어요. 저 형이 만든. (웃음) 그렇게 해서 형이랑 친해졌고, 놀러 가서 홈 레코딩 장비들을 보고. 해보라고 해서 바로 가사를 써 봤어요. 그때 아마 중학교 때부터 스스로 써보고 그런 건 있었는데 직접적으로 녹음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녹음을 했죠. 랩이 엄청 재미있는 거예요. 처음 떨렸는데. 그때부터 쭉 좋아하는 비트 있으면 거기다 랩하고, 형들이랑 맘에 안드는 애들 있으면 욕 존나 하고. 존나 오타쿠처럼 지하 작업실에서 막 ‘야, 이런 거 싫지 않아?’ ‘나도 싫어’ ‘그럼 욕하자’ (웃음) 이런 식으로 막… 그때부터 저희만의 문화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성장한 것 같아요.
그러면 작업은 그레이 님이 군산에 돌아오시면서 시작하셨나요?
맞아요. 그레이 형이 대학 간다고 해서 저는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약간… 그레이 형이 없으니까 자신이 없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그러다가 다시 작업을 하게된 건 엄청 자연스러웠어요. ‘형 군산 왔다’ ‘아 진짜?’ 그래서 만났는데 요즘 듣는 음악 들려주고, 이런 비트 만들었다 들려주고. 저 형이 되게 신기한 거예요. 1년 새에 뭔가 엄청난 걸 얻어온 거예요. 제 기준에서는. 그러다가 사일러밤 형도 전주에서 전북대학교 다니고 있었는데 저희 스튜디오 있는 피사의 사탑 어딘지 아시죠? 거기 월세 구했어요. 이랑이 형이 당시에 집에서 작업을 못하는 시기여서. (그레이) 부모님이 어렸을 때는 조금 반대했던 걸로 기억해요. 동네 형들이랑 같이 녹음 부스 만들고 공사하고 그렇게 만들어 놓았어요 형이.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맨날 거기 드나들고 그러다가 사일러밤 형도 연락이 되어서 만나자 했는데 만나자마자 셋이 깔깔댔죠. 너무 웃겨가지고. 사일러밤 형도 자기가 만든 비트 들려주고. 그 순간부터 [FRACTICE]가 시작된 거예요. 정확히 그 순간부터. 정동이 형(사일러밤)이 처음 자기가 만든 첫 비트가 아마 [FRACTICE]에 들어간 “Kiddle Pop”이라는 1번 트랙. 그거였을 거예요. (웃음) 처음 들려줬거든요.
지금까지 그러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도 굉장히 많았겠네요.
엄청 많죠. 저는 랩을 하는 사람인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랩을 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랩이 들어가 있는 음악을 별로 많이 안 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딱 꽂히는 래퍼들의 음악만 많이 들었던 것 같고, 프로듀서들의 앨범이나 인스트루멘탈 앨범들, 연주곡들에 되게 감동했던 것 같아요. 영향이 많았죠, 형들의 영향이 엄청 많았던 것 같아요. 형들도 되게 신기해 해요. 넌 왜 래퍼인데 (웃음) 랩 음악을 안들어? 근데 그거 덕분에 얻은 게 뭐냐면, 랩 하는 사람으로서 비트를 초이스하는 능력 있잖아요. 세련된 거 잘 캐치하고, 요즘에 이런 게 (좋다). 보통 기존의 래퍼들이 할 수 없는 걸 저는 어느 정도 얻은 것 같아요. 세련된 걸 판단하는 기준이나 이런 게 뚜렷해진 것 같아요. 비트는 누가 들려주면 제 의견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 같아요. 보통 누가 비트 컨택을 하면 비트메이커들만 할 수 있는 얘기들인데 제가 정확히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 정도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거에 대해 되게 감사하고 있어요. 이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랩을 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저 스스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나 능력이 많이 늘어난 것 같아서 좋아요.
앨범을 냈을 때 본인이 받았던 피드백은 어떤 것이었는지.
말씀하신 거랑 비슷해요 (웃음) (앞서 나갔다, 어렵다, 모르겠다 등) 그냥 저도 사람인지라 심심할 때 제 이름 서치해보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이게 뭐지?' 그런 사람들도 있으면 ‘아, 이런 걸 해야지’ 하는 사람도 있고, 멋있다고 해주는 사람도 있고, 약 빨았다고 해주는 사람도 있고. 둘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방방” 같은 것도 뮤직비디오 보고 사람들이 ‘이 새끼 뭐야?’ 물음표만 막 던져요 사람들이. 제가 앨범을 내고 바로 활동을 왕성하게 했으면, 제 음악을 직접 사람들과 만나서 교류하고 주고 받았으면 이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죠. 저는 스스로 그럴 수 있다고 믿거든요. 제가 얼마나 어려운 음악을 하든지 직접 만나서 공연을 하고 설명을 해주면 되는 거니까. 설명이라기보다는 느끼게 해주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제가 군대를 갔잖아요. 발매를 (그레이) 형이 대신 해줬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아직 이러고 있는데, 되게 아쉽기도 한데 이제 곧 활개를 쳐야죠. 아무래도 시간적인 거에도 제약이 있어서. 그 부분은 좀 아쉬워요.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걸 들려줬을 때 반응이 어떻든 분명히 느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거면 된 것 같아요. 딱히 뭐 제가 이 곡은 어떻고 어떻고 이렇게 설명을 해준다기보다는 그냥 아직까지 엄청난 공감을 팔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느끼는 사람만 반겨주고 싶어요.
로컬 아티스트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의미 부여를 받으셨잖아요. 누군가는 '한국 힙합 = 홍대 힙합'이라는 공식을 뒤집을 수 있는 첫 가능성이라고도 하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되게 듣기 좋은 말인 것 같아요. (본인도 그런 걸 생각하고 계시는지?) 아뇨, 저는 전혀 그렇지 않고요. 홍대에서, 서울에서 힙합 하는 사람들 영역을 우리가 어떻게 해보자, 판도를 바꾸자 그런 포부는 없었고요. 설명 드렸듯이 워낙 이 앨범 자체가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웃음) 그냥 어린 박원태가 생각하던 걸 순간 순간 적었던 걸 낸 앨범이라 이게 무슨 프로모션 어떻게 하자, 이런 건 어떻게 하자 그런 계획이 전혀 없었어요. 하면서 계속 그냥 돌아가는 방식을 터득하는 식이어서 전혀 그런 건 생각 못했죠. 근데 곡마다, 이런 곡을 사람들이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런 건 생각을 좀 했었죠. 존나 재밌겠다, 사람들이 멍때리는 걸 상상해보면서. 그랬던 건 있었지만 전혀 구체적 계획이 없었어요. 어쩌면 사람들이 그 느낌 때문에 되게 좋아하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엄청날 것 같은 느낌. 육회 같은 것? 그런 느낌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고.
군산 힙합이라는 신(scene) 자체를 지금까지 계속 만들고 계시잖아요, 어느 정도까지 왔다고 생각하시는지.
이 동네 자체에서요? 이게 되게 애매해요. 이건 안 해본 사람은 모르는 느낌인데, 되게 어려운 게, 사람들은 일단 어느 나라에서도 그렇듯이 보여지는 거에 되게 민감한 사람들이에요 대부분. 이런 장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워낙 세대가 젊고 보여주는 것에 민감하고. 듣는 사람들이 애드밸류어라는 존재를 알고, 저란 존재를 분명히 다 알아요. 다 알고 한번쯤은 들어 봤어요 제가 생각하기엔. 근데 그만큼, 제가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 받은 피드백만큼 군산 사람들에게 받은 피드백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x같아요. 나는 왜 이 동네에서 동네 이름 알리고 하고 있는데. 약간 좀 애증인데 (웃음) 왜 몰라주지? 이런 게 컸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체념했어요. 되게 애매한 게, 무조건 군산에서 알긴 아는데 얘네가 이제 뭐, 딱히 자기네 눈에 들어오는 게 없으니까 그냥 얘가 유명한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애도 아니고. 사람들의 기준은 그거죠. 되게 유치하기는 한데, <쇼미더머니>에 나왔냐 아니면 <슈퍼스타K> 나왔냐, 이런 기준이 사람들의 눈에 멋있는 거여서 그 기준을 깨기가 되게 힘든 것 같아요. 순수하게 저희가 하는 음악으로만 이 사람들을 아우르기에는 진짜 확실히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생각 많이 하고 있죠. 저는 분명히 이쪽 사람들을 다 제 팬으로 만들고 싶고 그러고 싶은데 거기서 한계가 느껴지니까. 저도 스스로 이제는 어떤 결과물이 나오든 스스로 어떻게 프로모션하고 그런 것들을 까다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정도예요. 여기서 신을 완벽하게 만든다는 건 아직 불투명한 것 같아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어느 정도라고 말씀드리기가… 다 되었다고 얘기하면 깝치는 것 같아요. (웃음) 아직 멀었다 생각해요. 저희가 더 열심히 해야죠. 오히려 근데 더 자극제이죠. 우리를 더 몰라줄수록 열심히 하니까. 알아줄 때까지. 알아주면 그때는 더 열심히 하고. 되게 좋은 자극제인 것 같아요. 저희 동네 사람들 자체가. 나 한국대중음악상 후보도 오른 사람이야 이래봤자 뭐해요 그 시상식이 뭔지도 모르는데. (웃음) '방송 나와?' 그러니까. 친구들한테 '야, 나 시상식 후보에 올랐다.' 자랑 식으로 얘기하면 ‘어, 그래? TV 나와?’ 이게 끝이에요. 그냥 그게 끝이어서. 무슨 느낌인지 아시겠죠? 그래서 이건 진짜 서럽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되게 자극이 되는. 군산 사람들 자체가 자극이 되는 그런 관계에요. 그래서 애증이죠.
지금까지 음악 하시면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았던 건 애드밸류어 분들 외에는 없나요?
버벌진트요. 저희가 처음 시작했을 당시에 오버클래스라는 크루가, 당시엔 그랬잖아요. 오버클래스라는 존재가 지금 제 반응처럼 ‘뭐지?’ 하는 사람도 있고 존나 빨아주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반응이었잖아요. 근데 저희는 그걸 너무 뚜렷하게 듣고 자란 세대여서. 그리고 저는 그때 당시에 오버클래스가 존나 좋다는 편에 있었고, 제일 예민했던 시절에 버벌진트나 그쪽 분들 음악을 듣고 자랐으니까. 당시 오버클래스 사람들 음반만 샀거든요. 고등학교 때나 스무 살 이럴 때는 영향을 엄청 심하게 받았어요. 스스로 저도 이런 음악 하고 싶다고 기준이 생겨버린 거죠. 몇 년 후에 들어도 '아, 이게 이런 거였구나, 이런 걸 말하는 거였구나.' 매번 들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뭔가 일깨워주는 거 있잖아요. 오버클래스 자체가 앞서간 부분도 있어서.그쪽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나 음악스타일 이런 건 저희 다 영향을 되게 많이 받았고. 이번에 “Rewind” 공개했잖아요. 엄청 소름 돋았거든요. 욕하는 사람들 머리 오함마로 때리는 느낌이어서. 그걸 들으면서 그 애증이 싹 풀렸고.
군산이야 뭐 말할 필요도 없이 그냥. 제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 자체도 영감이잖아요 다. 군산은 제가 일단 태어난 곳이니까, 제가 무슨 행동을 하든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제가 길을 걷고, 저희 집 앞이 바다거든요. 거기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맛있는 데 가서 밥을 먹고, 이러는 거 자체가 저한테는 100% 영감이죠. 일단 저한테는 엄청 큰 의미의 도시고, 제가 태어난 곳이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존재 자체가 영감이고 영향인 거잖아요, 말할 필요도 없이. 군산은 제 입장에서는 그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애드밸류어 분들 외에 군산이나 주변에서 음악적으로 교류를 가졌던 사람은 없는지?
없었던 것 같아요. 가까운 동네, 전주나 이런 데서는 힙합 하는 사람들 되게 많았거든요. 근데 이건 그 사람들 까는 게 아니라, 전 그냥 웃었어요. 그 사람들 보고. 되게 조심스러운데, 주변 동네에 있는 사람들 까기 싫은데 왜 아직까지 저러고 있는지 알겠다 그런 느낌. 왜 저기서 멈춰 있지? 왜 저 붐뱁에서 멈춰 있지? 이런 느낌들 많이 받아서. 예전에 군산에서 힙합 좋아하던 형들이랑도 친하게 지냈었고, 실제로 랩 하시던 형들도 있었고. 옛날 클럽에서 공연하던 형들도 있었고. 그 형들이랑도 얘기해보고. 예전에는 이런 사람도 있었다. 근데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뭐냐면요, ‘나도 옛날에 랩 했었어’. 존나 과거형이잖아요. 왜 지금은 안 해? 지금 안 하는데 왜 나한테 그런 얘기를 들려주지? 솔직히 조언을 해줄 수는 있는데, 약간 선배 대 후배 느낌으로 충고해줄 입장은 아닌 것 같거든요. 왜냐면 그래서 당신들이 힘들어서 그냥 포기한 거니까. 해보지도 못하고 포기한 거니까.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패배한 거잖아요. 현실에 순응해서 패배한 건데 왜 그런 경험담을 나한테 들려주면서 자기를 선배처럼 대접해달라는지 모르겠고, 저는 그런 것도 들으면서 어떤 가치관이라는 걸 형성했죠. 지방에서 음악했다는 형들이 다 그런 식이니까. 나도 왕년에 힙합 했었어. 나스(Nas) 시발, 일매릭([Illmatic]) 임마 이러면서. 하… 뭐지? 이러면서 많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형들도 어떻게 보면 저한테 다 영향을 줬죠. 그러면서 생각했던 건 만약에 내가 나이 먹었을 때 나와 비슷한 걸 하려는 동생들이 생기면 그 애들의 커리어에 절대 지면 안되겠다 이런 생각 많이 해요. 내가 아무 말을 안 해도 동생들이 내 음악을, 내 존재를 다 알고 있는 정도의 위치에 있고 싶어요. 내가 신처럼 받들여진다거나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나도 옛날에 음악 했어 이런 말 절대 하기 싫어요. 내가 30대, 40대가 되었을 때도 ‘니네 그런 거 하는 애들이구나. 그래? 그러면 내가 요즘 하는 거 들려줄까?’ 이런 식이 되고 싶어요. 그게 제일, 어떻게 보면 음악가의 인생으로서 최종 목표인 것 같아요. 되게 꾸준하게. 제가 엄청 늙었을 때도 젊은 세대들한테 안 뒤지는 그런 이야기 해주고 싶고, 절대 안 꿀리는 커리어이고 싶고. 그런 생각은 확실하게 있는 것 같아요.
끝으로, 앞으로 어떤 활동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저는 다음 앨범, 정규 1집 준비해야 하고 리드머 인터뷰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무기한으로 준비 중입니다. 언제 나올지는 몰라요 (웃음) 분명한 건 이전 앨범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다음 레벨의 위치에 있을 거예요. 그건 확신할 수 있어요. 제가 워낙 귀가 예민하거든요. 한 달에 한 번, 빠르면 일주일에 한 번씩 음악을 듣는 성향이 바뀌어서. 힙합 안에서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장르를 통틀어서 그게 되게 바뀌어서요. 저도 제가 짜증나요 그게. 그래서 앨범 준비할 때 되게 고민인 게 그건데, 준비할 때는 아무 것도 듣지 말아야 하나 그런 생각도 하고 있고. 이게 존나 멋있는 거 같아 그랬는데 며칠 지나면 아, 이게 더 멋있어 이러고. 스스로 고민 엄청 많이 해서. 일단 앨범 준비를 할 것 같아요. 제가 그때그때 영향받았던 것들을 그대로 기록해서 멋있게, 군산에서만 나올 수 있는 걸로 만들려구요. 5월을 데드라인이라 생각하고 싱글 두 곡 정도를 준비 중입니다. 7월부터는 정말 안 가리고 활동할 생각이고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제 스스로는.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고. 원래 공연 욕심 그런 것도 없었는데 이제 좀 생기더라고요. 사람들하고 교류하고 싶고, 교감하고 싶은 그런 욕심도 있고. 저는 그러면서 군산에서 놀고 있을 것 같아요. 술 마시고. 특별한 계획은 없고요. 보통 음악 하는 사람들의 패턴으로 지낼 것 같아요. 계속 영감 받고, 영감 받으면 음악 만들고. 술 마시고. 여자 만나고. 그런 계획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사일러밤
TFO는 이미 한 장의 EP와 한 장의 믹스테입을 발표한, 애드밸류어의 초기부터 주축이 되었던 팀이다. 그 중 한 명인 사일러밤은 프로듀서/비트메이커이며, PNSB의 EP에 참여했으며, 꾸준히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우선은 간단하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릴게요.
아, 얼굴 빨개진다. 네, 안녕하세요. 애드밸류어 소속의 비트메이커 사일러밤입니다. TFO 소속이고, 그렇습니다. (웃음) TFO는 서울에서 랩 하는 친구와 함께하는 프로젝트 팀인데, BAC라고 랩 하는 친구와 제가 같이 진행하고 있는 팀입니다. 재작년 9월에 EP 내고 작년 7월쯤에 믹스테입 [PTSM]까지 내고 계속 앨범 준비 중입니다.
어떻게 보면 애드밸류어 안에서 앨범을 빨리 내신 편인데, 되게 일찍 나왔잖아요. 어떻게 빨리 나올 수 있었는지.
저는 작업하는 스타일이 평소에 놀다가 느낌 올 때 한꺼번에 진행하는 스타일인데, 랩하는 친구도 비슷하거든요. 사실은 저 같은 경우도 앨범을 되게 내기 싫어했던 성격이었는데, ‘언제까지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앨범이 나올까’ 얘기했을 때, 도전하는 의미로 가볍게 시작하자는 게 있어서. 일단은 애드밸류어 내에서도 큰 방해 없이(작업에 있어서 멈춰야 하거나 그런 일 없이), 오히려 저희 작업 방식이 몰아서 하면서 저희끼리 빨리 해결하는 스타일이라 남들에 비해서 또 빨리 나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앨범 나왔을 때 피드백 같은 건 어느 정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9; the fine number]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제가 일일이 찾아서, 그래도 그런 게 궁금하니까 찾아보게 되는데 찾아서 보게 되는 정도?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되죠.
어쨌든 장점이 있는 앨범이고, 오히려 지금 나오면 적기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후 [PTSM] 발표하셨을 때는 그때와 상황이 달라지셨는지.
피드백 부분에 있어서도 일단 그 시점이 주는 건데, 저희 애드밸류어 내에서 나름의 움직임이 좀 더 커졌어요. 예를 들어서 그레이 같은 경우에는 그레이가 먼저 앨범을 내고 서울 영기획 쪽과 연락하면서 진행해가고, [PTSM] 낸 게 PNSB 앨범 나온 이후잖아요. 그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다고 생각해요. 일단 잘 된 케이스에서 묻어간 경우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좀 더 조명을 받았던 것 같아요. 앨범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요. (“Real” 같은 곡들은 많이 화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지극히 저한테서 보이는 부분에서만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곡이 어떻게 보면 되게 재미있는 곡인데, 이런 게 있다라는 피드백이 없으니까. 아쉽죠.
처음 음악을 접하셨던 것과, 음악을 시작하신 것은?
처음 들은 기억은, 중학교 때인데, TV에서 다이나믹듀오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이상한 물건들이 지나가고 ‘저게 뭐지’ 하다가. 일단 그런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접하다가 조금 더, 조금 더 듣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나 이제 힙합 해야지’ 그런 게 아니라 관심이 있던 때였는데, 그레이가 관심 있는 애들을 모으더라고요. 그런 자리에서 그레이도 만나고 PNSB도 만나고 그래서 그때 같이 시작하게 된 거예요. 크루를 만들면서.
그러면 그게 애드밸류어의 전신이었던 거죠? 이후에도 꾸준히 만드셨는지.
고등학교 때는 일단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집안의 반대가 있었죠. 일단 하고 싶으면 해라, 하다 말겠지 그러면서. 그래서 제가 장비도 없고, 배경 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랩밖에 없으니까 처음에는 저도 랩을 했어요. 그때 부모님 말씀하시기를 대학 가면 이제 너 하고 싶은 거 하게 해주겠다고. 그때는 취미 생활로 받아들이셨겠죠. 지원해주겠다고 해서, 그러면 대학 가겠다. 대학 간 다음에 지원을 받았는데, 그 사이에 텀은 제가 랩을 했다고는 하는데 사실상 거의 안한 거나 다름없죠. 사실상 제대로 활동하게 된 건 대학교 1학년 때인 것 같아요. 그때부터 곡을 만들기 시작해서. 그래서 거의 활동 같은 건 없고 대학교 1학년 끝날 때쯤 그레이가 군산에 다시 내려와서 작업실 열었다고 해서 그러냐, 그러면 같이 하자,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그러면 BAC님과 팀이 된 계기가 있다면?
제가 그 당시에는 좋아했던 트랙이었는데 (웃음) [9; the fine number]에 “말”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비트를 만들었어요. 근데 제가 만들어놓고도 되게 좋더라고요. 누구랑 하지, 그랬는데 이거에 랩을 해 줄 만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일단 저는 군산에 있고 아는 인맥도 전혀 없을 뿐더러 원태(PNSB)밖에 없는데 원태랑은 맨날 하니까 재미가 없어서. 누가 있지 하다가 이랑이(그레이)가 건너 알게 된 친구가 있었는데 얘 어떠냐고 해서, 그전에 일면식은 했던 상태거든요. 그 친구면 괜찮지 해서 한 곡을 같이 하기로 했어요. 근데 해보니까 잘 되는 거예요. 난 네 랩 좋다. 전 형 비트 괜찮은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하다가 곡이 쌓였는데 앨범으로 내자.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되었죠.
이후에 PNSB님이나 BAC님 외에 같이 작업하신 분이 있으신지?
9034 형이라고 애드밸류어에서 보컬 하는 형이 있는데, 나머지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음악이나 아티스트가 있다면?
저는 좀 다양하게 듣는 편인데, 에비앙 크라이스트(Evian Christ)라고 그 친구를 굉장히 좋게 들었고요. 허드슨 모호크(Hudson Mohawke)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아예 힙합 신에서는 프로듀서 힛보이(Hit-Boy) 상당히 좋아하고요. DJ 다히(DJ Dahi)랑… 그 정도 좋아해요. 마이크윌메이딧(MikeWillMadeIt)도 좋게 듣고 있어요. 브레인피더(Brainfeeder)의 론(Lorn)도 좋아하고.
메인스트림도 즐겨 들으시는군요.
네, 저는 좋게 들어요. 커머셜한 것도 저는 즐겨 듣는 편이라서요.
애드밸류어는 음악적으로 빠른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보니까… 애드밸류어 안에서도 듣는 층위가 다양하게 나뉘고 있군요.
그렇죠. 주된 건 힙합이라고 크게 퉁을 치는데, 그 안에서도 각자 달라요. 그레이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힙합 좋아하다가 좀 앱스트랙(abstract)한 거 좋아하면서 비트뮤직 쪽으로 빠졌다면 저는 처음에는 완전 방글라데시(Bangladesh) 이런 거에 엄청 꽂혀하다가 이상한 쪽으로 풀려 가서. 그래서 다양하게 듣는데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저랑 같이 작업실 쓰는 친구는 앰비언트 음악 하는데 그 친구가 듣는 건 그 친구가 없었다면 전혀 안 들을 곡인데 듣게 되니까 이런 것도 있네, 이런 식으로도 푸네 생각하고. 그런 점이 있어요. 제법 다양하게 듣게 되는.
군산에 있으시면서 애드밸류어 외에도 군산에서 영향을 받은 게 있다면.
이런 말 해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솔직히 저는 없어요. PNSB나 그레이는 사실상 군산 토박이라 모르겠는데 저는 이사를 왔거든요. 딱히 영향을 받았다거나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애드밸류어 외의 사람들과도 많이 작업할 의향이 있으신거죠?
저는 오히려 많이 하고 싶은 편인데, 마음이 많이 맞는 사람? 그런 식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작업하는 스타일이 너무 일적으로 풀리면 오히려 막히는 편이라서, 좀 유대 관계를 쌓으면서 작업하는 게 편해서요. 많이 하고 싶죠.
앞으로 본인의 활동 계획이나 TFO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EP 형식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데, 트랙은 다 나온 상태고. TFO로는 6월, 7월쯤에 곡이 나올 것 같아요. 형식이 믹스테입이 될지 EP가 될지는 아직 결정 안 했는데, 그때 즈음으로 잡고 있고, 애드밸류어 내에 몰디(Moldy)라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랑 같이 작업을 하는 중인데 세 곡 정도 나왔어요. 그 친구랑도 계속 작업할 것 같고. 개인적인 곡은 아직 계획이 없어요.
사일러밤 님에게 애드밸류어는 어떤 곳인가요?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얘기했을지 모르겠는데 저는 진짜 친구죠. 학교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보통 친해지면 고등학교 친구 평생 간다 그런 얘기 하잖아요. 그런 친구들 같아요. 같은 동네에서부터 쭉 같이 음악 해온 친구들. 편하고. 제일 마음 맞는 애들끼리 모인 거라서.
- 구스범스
애드밸류어의 비트메이커/프로듀서이자 DJ인 구스범스는 [#Jingyeok_Shit]을 통해 DJ로서의 행보를 시작한다. 아마 애드밸류어 전체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그의 과거(?)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격적인 스타일부터 소울풀한 스타일까지 전혀 다른 모습들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간단하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저는 애드밸류어의 비트메이커이자 이번에 처음 DJ 시작하려고 하는 구스범스입니다.
우선 DJ로서 처음 믹스테입을 발표하시잖아요. 프로듀서를 하시다가 DJ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 같은 게 있으신지.
비트메이커로서 별로 부가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게 없어서요. 매일 곡만 만들고,.. 그렇게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없어서, 내가 좀 노출되어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믹스테입 제목이 [#Jingyeok_Shit] 인데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뭐라고 해야 하지? 예전에 어렸을 때 그런 거, 뭐라고 해야 하지? (웃음) 약간 징역을… 교도소까지는 아니고 어렸을 때 잠깐 그런 데 있었던, 그런 걸 모티브로 믹스테입 짜면서 음악도 약간 그런 식으로,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웃음) 제가 어렸을 때 생활하던 걸 믹스셋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깡패처럼 음악도 그런 식으로 짜서 틀고.
그러면 이제 굉장히 거친 느낌의 곡들이 주로 되어있겠네요.
네, 믹스셋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제가 비트 찍는 건 거친 느낌은 아닌데, 이번 믹스셋에서는 그런 모습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앞서 말씀해주셨지만 싱글을 두 번 발표하셨는데, [#Jingyeok_Shit]과는 다른 느낌이잖아요. 처음에는 그런 음악에 주로 관심을 가지셨는지.
원래는 제가 그런 음악을 되게 좋아했어요. 몽환적이고 칠(chill)한 느낌의 음악을, 평상시에 센 음악들도 듣기는 하는데 그거보단 칠한 느낌을 많이 듣거든요. 근데 믹스셋에서는 폭력적인 부분이나 제 안에 있는 그런 것들도 담고 싶었어요.
그런 느낌의 곡들을 만드시는 데 있어서 주로 어떤 음악이나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요즘은 되게… 미스터카맥(Mr.Carmack)이라는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있고요. 대부분 제가 듣는 것들은 미스터카맥이나 소울렉션(Soulection) 쪽 음악을 많이 듣기는 하는데 요즘 영향은 미스터카맥이 커요. 이번 믹스셋에도 몇 곡 껴 있기는 한데 이번 믹스셋 말고 다른 셋 짤 때도 상고(Sango)나 그런 쪽으로… 미스터카맥도 센 느낌의 곡이 있지만 칠한 느낌의 곡이 더 많잖아요. 그런 셋도 짜고 있죠.
그러면 음악을 처음 접하신 건 언제쯤아신지, 그리고 곡을 처음 쓰기 시작한 건 언제쯤이신지.
처음 들은 건 중학교 때였어요. 랩을 하고 싶다고 느낀 것도 그때죠. 중학교 때부터 관심은 있었는데 그냥 취미로 애들이랑 노래방 가서 부르는 그 정도밖에 없었어요, 어렸을 때는. 곡 쓴 지는 한 2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어렸을 때는 랩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 돼서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래퍼가 꿈이었는데.
애드밸류어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되신 건지.
제가 군산에서 태어났는데 익산이라는 도시에서 학생 시절을 보냈거든요. 고등학교 때 PNSB를 선배로 만났어요. 제가 학교를 1년 늦게 들어가서. 근데 봤는데 되게 멋있더라고요. 이렇게 여기 시골에서도 저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그래서 저는 익산에서 저 혼자 작업실도 차리고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우연치 않게 PNSB가 그레이 형도 소개시켜주고, 같이 해볼래? 해서 다 접고 군산으로 다시 온 거예요. 온 지는 한 2년 정도 되었어요. 와서 세, 네 달 있다가 바로 "CIGF"라는 싱글을 냈어요.
싱글 발표하셨을 때 반응은 어떠셨는지.
"CIGF"는 반응이 그냥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근데 나머지 하나 냈던 건 반응이 없어요. 저도 좀… 안 좋아하는 건 아닌데, 두 장 다 섣불리 냈다는 감은 있어서. 뭐 하나 해야겠다고 하면 바로 해야 하는 성격이어서요. 싱글 냈던 것들은 생각 안 하고 무작정 하고 싶어서 빨리 진행해서 한 거라 아쉬움이 많이 남죠.
군산 안에서는 어떤 활동 같은 걸 하고 계신지.
특별히 활동하는 건 없고, 이번 DJ 하면서부터 공연 기획이나 파티 기획이나 DJ로서 좀 활동할 것 같아요.
본인이 직접 기획을 하셔서 만들어 나갈 생각이신지.
네, 맞아요. 물론 형들이 도와주겠지만.
군산 안에서 계속 활동하시는 건가요.
네, 일단 군산은 아직 그런(파티나 공연이 활성화되고 그걸 충분히 즐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상태가 아니어서. 이걸 지속적으로 계속, 서울 DJ 분들도 게스트로 해서 군산에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내려고요.
군산에서 받게 된 영향과 애드밸류어의 의미는?
일단 익산에는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없었거든요. 저 혼자 했으니까 심심하고, 음악적으로 할 얘기도 없고, 가족들이 다 군산 살거든요. 군산에 와서 처음에는 몰랐어요. 잘 안 돌아다녀서. 근데 돌아다니면서 군산이 멋있다는 걸 알고, 형들이 음악적인 얘기를 많이 해주니까 영감도 되게 많이 받고. 처음에 영향 받은 사람들이 애드밸류어 형들이어서. 제가 (군산에) 오게 된 이유도 이 형들하고 무작정 같이 하고 싶어서, 멋있어서 오게 된 거니까. 제가 처음 단체 활동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처음 한 것도 여기고. 그러다 보니까 애착이 있고. (음악적으로도.) 특히 그레이 형이나 PNSB한테 음악적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에요.
공연 기획 같은 것도 하시는 걸로 들었는데, 기획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네, 근데 누군가 하지 않으면 여기는 계속 이런 분위기로 흘러갈 거 같아요. 총대 메고, 힘들어도 계속 해야죠. 분명히 열악한 상황이기는 한데, 누군가는 좀 나서서 해야죠. 솔직히 처음부터 분위기 잡힌 곳은 없잖아요. 분위기를 잡아가야죠. 게스트들 모셔 왔을 때 ‘오, 여기도 점점 분위기가 잡혀 가는 곳이구나’ 그런 이미지를 줄 수 있게끔.
기획이나 이런 일을 하는 것들이 결국 일을 하는 거잖아요.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근데 제가 음악에만 몰두하면 잘 안되는 편이에요. 사방팔방 좀 기획도 하고 이것 저것 해야 그걸 빌미로 음악적인 부분이 잘 안 될 때 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일을 하면서. 그렇게 하다 또 작업하고. 다른 일을 하다 영감을 받아서 작업하는 편이어서.
이번에 새로 크루를 만들 생각도 있으시다고.
앱상트(Absinthhh)라는 크루인데, DJ 크루를 만들어서 그레이 형도 있고 션만(Syunman) 형도 있고. DJ 55라고 형도 계시고, 외부 DJ들도 마음 맞는 분 있으면 같이 해볼 생각이에요. DJ적인 활동은 그 크루로 많이 풀어낼 것 같아요.
오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는 많이 안 하셨어요.
사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안 좋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웃음) 하면 길고 해봐야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사실 다른 인터뷰에서 그걸 너무 많이 했어요.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이런 게 있으시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뭘 낼 생각은 없고, 믹스셋 꾸준히 준비하고. 일단 비트를 많이 쌓아놓으려고요. 제가 PNSB랑 작업을 많이 하는데, 맥북 하드가 날아가서 작업물 녹음했던 거나 이런 게 다 없어졌어요. 제가 앨범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도 다 날아가서 그냥 아, 이참에 DJ로서 믹스셋 좀 해보자고 했어요. 일단 비트 쌓아놓고 그런 게 제일 해야 할 일이죠.
- 노피치온에어
어떤 사람은 그를 싸와디캅(Sawadeekub)으로만 기억하기도 한다. 노피치온에어는 전자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이며, 사와디캅은 랩을 할 때 쓰는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바람 소리를 쓰기도 하여 유튜브 블로거 길피디는 그의 음악을 선풍기 음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우선 간단하게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군산의 애드밸류어에서 앰비언트, 전자음악과 약간의 힙합을 같이 하고 있는 프로듀서 겸 비트메이커, 노피치온에어(Nopitchonair)입니다. (그럼 싸와디캅은…) 그건 사실 랩할 때만 쓰는 거구요. 아주 가끔…
처음에 음악을 접하신 건 언제인지.
예전에 형들이랑 같이 군산에서 중학교 2, 3학년 때 힙합을 하다가 중간에 접고 공부하다가 태국 갔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는데 그레이 형, 사일러밤 형이 애드밸류어 계속 하고 계셔서 돌아왔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때는 인터넷으로 힙합 같이 할 사람 구한다고 해서 나갔죠. 그때는 되게 조악했고, 애들끼리 하는 거다 보니까. 지금 애드밸류어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죠. (인터넷이라고 하면 어떤 경로인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데 정글 라디오였던 것 같아요.
음악을 시작하신 건 언제인지.
제대로 시작한 건 제가 스무살 때 시작했어요. 태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음악을 하고 싶어서 한국으로 무작정 오게 되었을 때. 태국에 있을 때부터 사일러밤 형이 음악 하고 싶으면 오라고 했어요. 여기서 애드밸류어 전신이 없을 때에 태국에 갔어요. 다들 흩어져 있을 때.
그때부터 앰비언트 음악을 시작하신 건지.
처음에는 앰비언트라는 걸 모르고 힙합을 하다가 아무거나 만드는 걸 좋아해서 무작정 만들다 보니까 앰비언트 장르를 알게 되었고, 전자 음악에 관심이 가서 시작하게 되었죠. 아직은 그냥 자잘한 공연 정도만 하고 있고, 5월에 앨범이 나오거든요. EP가 나오는데, 그걸 시작으로 이제 활동을 해야죠.
애드밸류어 들어오면서 그런 계열의 음악들을 접하게 된 건가요.
네. 형들이 각자 특이한 걸 하다 보니까 접할 수 있는 것도 많았고.
공연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그때는 라이브 셋이겠네요.
네. APC랑 MS-20 미니 쓰고 있어요. 앰비언트 기반의 전자음악 플레이하고 있고요. 사실 제가 막 움직이는 편이 아니고, 공연 시키면 그냥 하는 편이라 군산에서 했는데 망한 적이 있어서, 다음에는 엄청 열심히 준비하려고요. (망했다는 건 어떤 뜻에서…) 반응이 별로였죠. 저 자체도 되게 만족하지 못했고.
저는 이제 사와디캅의 이미지나 길피디 님 영상에서의 이미지가 강해서 오늘 뵙고 놀랐어요.
원래 제 성격은… 좋죠. (웃음)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낯을 많이 가려서요.
그러면 이제 활동 계획이 있으시다면.
5월에 앨범을 내고, 그때부터 활동을 해야죠. 곡은 제가 했고, 믹스는 그레이 형이 도와줬고. 앨범 제작은 주인백 사장님이 총괄해 주시고.
그러면 이런 음악을 하기까지 애드밸류어 외에 영향을 받은 곳이 있다면?
군산에 있다 보니까 애드밸류어 내에서 서로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기는 한데, 누군가를 따로 알거나 그렇지는 못해요. 전자음악 신에서 활동하시는 분들 중에는.
사와디캅이라는 이름은 이제 버리시는 건지.
버리지는 않아요. 형들이 병신 같은 거 필요하다고 하시면 계속 할 의향이 있죠.
- 주인백
애드밸류어의 대표이며 레이블의 실무를 맡고 있다. 처음 그는 애드밸류어의 팬이었으며 레이블의 규모가 커지면서 들어오게 되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는 이미 이곳에 대한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다.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우선 인사 부탁 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애드밸류어 대표를 맡고 있는 주인백이라고 하고요, 여기 친구들과 알기는 조금 3, 4년 더 된 것 같아요. 2011년? 그 정도부터 알고 지냈고, 지인으로 계속 지내다가 작년 가을쯤부터 본격적으로 같이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하시고 계신 일이 있으신 거예요?
본업으로 하고 있는 건 음악 쪽과 관계가 없고요. 다른 직장에서 일을 하는데 짬짬이 틈을 내서 같이 일을 도와주는 편이죠.
2011년부터 아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알게 되신 건지.
그 당시 그레이랑 TFO의 사일러밤이랑 PNSB 친구들이 그전부터 군산에서 음악을 해왔는데, 아마 SNS를 통해서 알게 되었을 거예요. 군산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 친구들이 음악 하는 친구들인 걸 알고 공연하면 보러 가고, 앨범 내면 구입도 하고 그런 식으로 자주 보게 되니까 인간적으로도 친해지게 되어서 그때부터 계속 친하게 지냈어요. 처음에는 거의 일반 팬과 뮤지션 관계,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SNS로 친해지게 된 게 그 당시에 음악 듣고 싫으면 싫다는 말을 SNS에서 많이 하고 좋으면 좋다고 세게 많이 썼거든요. 그 친구들도 음악 얘기를 자기들끼리밖에 안 하다가 관계 없는 사람이 음악 얘기를 같이 하고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좀 더 가까워지게 된 것 같아요. 저도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그 당시에는 같이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만, 서로 알고 지내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합류하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
계기는 초기에 비해서 이제 멤버들의 숫자도 많아지고 활동을 하고 싶은 것도 다양하고 넓은 범위가 되니까 뮤지션들만 있기에는 기타 잡다한 업무들이나 그런 것들을 처리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스케줄 정리하는 거나 앨범 기획하고 그런 것들. 그래서 한 명 일을 해줄 사람을 찾다가 그레이가 저한테 한번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서 같이 하게 되었어요.
애드밸류어 안에서 하시는 일은 어떤 것인지.
대표를 맡다 보니까 앨범을 제작할 때 투자금을 지원하고, 저희 공연이나 외부 공연을 따서 하면 기획을 하고 있고. 보통 대표들이 하는 일 하고 있어요.
기획이나 이런 일을 하시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으신지.
가장 큰 고민은 아무래도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되죠. 물론 서울도 비슷한 분위기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주류 음악이 아닌 쪽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비율로 따지면 비슷하더라도 절대적인 수가 크잖아요. 군산 쪽은 아무래도 그 수가 부족하다 보니까 그래서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얼마나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 공연을 하면 관객 수는 어느 정도 모을 수 있을까, 그리고 가장 현실적으로는 투자했던 걸 회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크죠. 가장 원초적인 고민이 많죠.
또 아무래도 제가 음악 관련 쪽에서 실제로 일을 해본 경험이 적다 보니까 경험 부족에서 오는 어려움이 많죠. 인맥이라든지, 아니면 구체적으로 다른 쪽과 연락을 할 때 주고 받고 이런 것들. 그전에 전혀 관계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보니까 아무래도… 이런 말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닥 돌아가는 걸 잘 모르니까 그거에서 오는 어려움이 제일 크죠.
관계 형성을 쌓아가는 거에 있어서도 고민 같은 게 많으실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희가 주로 보고 있는 시장이 군산도 있고, 전라북도 쪽에서는 전주 쪽을 바라볼 수 있는 시장이고, 서울 쪽도 경쟁이 치열하기는 하지만 시장이 가장 큰 곳이니까 아무래도 그쪽 개척을 하는데, 전주와 서울은 연고가 없다 보니까, 그리고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자유롭게 왕래하기가 어려운 것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게, 전업을 하지 못해서 아쉬운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거리적인 측면에서도 서울을 자주 왔다 갔다 하기는 어려우니까.
크루 안에서 판을 짜는 공연이나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크루 혹은 레이블이 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계시는지.
네. 정말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렇게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이제 영향력은 없지만 지켜봐주는 분들도 많이 늘었고, 각자 멤버들도 음악적 욕심이 생기다 보니까. 그리고 저희가 로컬에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로컬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서도 음악적으로도 떨어지지 않는 걸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저희가 정말 ‘우리가 좋으면 됐지’ 이런 고민보다는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 늘어나는 걸 바라고 있어서요. 그래야 뮤지션들도 음악으로 생길 수 있는 수입들이 늘어나는 거고. 어떻게 하면 오래 가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요.
그런 일들을 하기에 군산은 어떤 곳인가요?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가 아직… 전주 쪽만 하더라도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리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인구나 그런 수에 비해서. 군산은 아무래도 굳이 저희가 아니더라도 사실 어떤 장르가 되었든 공연을 많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어서 그만큼 이제 언론이나 매스컴에서 많이 다루는 음악이 아니면 큰 관심이 없고 그런 경우가 많죠. 그래서 아쉽죠. 음악을 하는 곳이 저희밖에 없다는 점? 경쟁 상대나 함께 하는 그런 곳이 없잖아요. 그게 다른 분야여도 좋은데. 다른 집단이 있으면 나름대로 교류도 하고 경쟁도 하고, 긴장감이 좀 생길 것 같아요.
그러면 앨범 스케줄이나 기획 같은 걸 조율하시잖아요. 올해 예정된 것들이 있다면.
올해는 우선 구스범스가 DJ 믹스셋을 공개할 예정이고, 5월에서 6월 중에는 PNSB 싱글과 노피치온에서 EP를 준비하고 있고. 6월 중으로 해서 TFO도 앨범을 하나 준비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여름 중으로 해서 몰디(Moldy)라는 신예 래퍼의 싱글이나 믹스테입을 준비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애드밸류어 리믹스 앨범도 션만이라는 분이 공개할 예정이고요. 여름까지는 나올 게 굉장히 많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군산에서 계속 사셨잖아요.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군산은 어떤 곳인지.
군산에 살다 보니까 사실 다른 곳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는데 살고 있는 곳이라 특별한 느낌 같은 건 사실 없어요. (웃음) 굳이 따지자면 군산이 일제 때 중심지였기도 하고 그래서 근대 문화 쪽으로는 써먹을 게 많은 도시인 것 같은데 그게 잘 되고 있지는 않아서. 시 차원에서는 문화 기획을 잘만 하면 굉장히 좋은 공간인 것 같기도 해요. 바다도 있고. 뜬금없이 도시 한 가운데 공원 같은 게 크게 있고. 근데 아무래도 주로 소비자 층이 공장 쪽 남자 분들이라서 문화 자체가 공연이나 전시, 예술 쪽에 관한 것보다는 유흥 문화가 센 곳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대학교 숫자도 적고 젊은 사람 숫자도 한정적이에요. 새로운 문화를 소비하는 건 젊은 층인데 사람이 많이 없어요.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도 한정적이고요. 공연에 호의적인 분들도 계시기야 계시죠. 같은 공연장에서 매일 공연하는 것도 아니고,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동시에 대가를 주고 공연을 보는 형태에 익숙해져 있지 않아요. 무료 공연 이런 것들을 접하는 것도 있지만.
앞으로 군산 안에서 하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군산이랑 전주 쪽을 같이 보고 생각하고 있어요. 전북 쪽에서 거창한 목표라기보다는 꾸준히 저희도 공연을 할 수 있는 인지도를 쌓는 게 목표인 것 같아요. 이번 년도에 빠듯하게 앨범을 계속 준비하고 있는 것도, 어쨌든 저희를 알리기에는 앨범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서예요. 다른 것보다 저희가 음악을 하는 집단이니까 이름을 알리려면 음악으로 이름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준비를 하고 있죠. 전북 쪽에서 공연을 자주 하는 게 목표예요. 이것도 원초적인 답변이기는 한데 (웃음) 지방 사람들에게는 굳이 서울을 가지 않아도 볼 만한 공연이 우리 동네에도 있다, 이런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 막 하는 그런 욕심 없는 청년들이라기 보다는 어딜 가서도 내세울 수 있을 만한 앨범이 국내에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어요. 서울 쪽도 어쨌든 계속 저희가 진출을 하고 싶으면 준비가 되어 있고. 무조건 계속 지역 내에서만 활동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지역도 저희가 가서 교류하고 그러면 좋죠. 동시에 우리 걸 계속 보여주면 사람들도 익숙해지지 않을까, 그 기간을 버텨내는 게 가장 큰 숙제인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지속적으로 공연을 하고 음반을 내야 하는 거고.
다음은 군산 내 주요 장소에 대한 그레이의 답변이다. 각각의 장소는 누르면 지도, 주소, 전화번호 등 기본 정보가 있는 네이버 지도 및 인디스트리트 등의 페이지로 연결되도록 링크를 달아놓았다.
일단 수송동에 '빅스톤'이라는 곳이 있구요. 여기 은파에 '파라디소'라는 곳이 있고, 시내 쪽에서는 '나는섬'이라는 카페가 있고요. 은파에 되게 조그마한 서브스테이지들이 많아요. 그런 곳에서 버스킹 하는 친구들도 되게 많고. 음악과 관련된 곳은 그 정도인 것 같아요. 모든 곳이 음악과 관련은 있죠. 다 음악 나오니까. 추천하고 싶은 곳은 이 정도예요. '레트로키친'도 있고요. 저희가 좋아하는 곡, 아까도 말했다시피 윤석철트리오 나오고. 나는섬이라는 카페에서는 곽푸른하늘, 단편선, 이런 저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 음악이 나오고 있고. 파라디소에는 좀 더 어른들이 듣기 편한 클래식이나 재즈 음악들이 나와서 쭉 들을 수 있고. 각각 나눠져 있는 것 같아요."
빅스톤은 수송동에 있는 라운지 바/클럽 형태의 공간이며 외국인들이 많이 찾기도 한다. 멋진 음악이 계속 나오는 곳으로, 구스범스가 음악을 틀기도 한다. 은파호수공원에는 고전 음악이 흘러나오는 예쁜 카페가 많고, 버스킹 하기 좋은 작은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레트로키친은 수송동에 있는 브런치 카페인데, 좋은 음악과 함께 맛있는 음식들이 있다. 나는섬은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형태의 카페이며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외에도 군산 유일의 레코드숍 뉴 뮤직랜드가 있다.
4) 후기
이번 편에서는 꽤 많은 내용을 편집했다.인터뷰
내용은 물론,처음에는 최근 몇 작품에 대한 리뷰도 짧게 쓰고 그들이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들을 좀 더 나열해보고 싶었지만분량과 균형의 문제 등에 따라 조정이 있었다. 군산 자체의 신이 애드밸류어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애드밸류어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도 이만큼 다룰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각각의
멤버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나 캐릭터도 분명하고, 적어도 앞으로 꾸준히만 작품이 나온다면 크게 성공하거나
그런 모습은 아닐지라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부러워하는 레이블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애드밸류어는 상업적인
성공이나 평론의 지지보다는 ‘플레이어들의 플레이어’가 가지는
모습에 가까운 것 같다. 편집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긴 지면을 걸쳐 소개했다. 그들을 실제 만났을 때 예정에 없었던 기쁨을 많이 얻었고, 그런
것들이 있기에 생계와 마감이 나를 가로막아도 파프롬홍대를 계속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군산에는
맛있는 게 진짜 많으니까 먹으러 여행을 가도 좋다. 가는 김에 애드밸류어의 공연도 보고. 애드밸류어는 유쾌하고, 순수하고, 가끔은 진지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멋있었다.
전 조금 외람되는 내용이긴 하지만 문득 군산하면 박명수가 먼저 떠올랐죠.ㅋㅋㅋ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군산하면 떠오르는 아티스트가 단연 PNSB 형이었는데, 애드밸류어 전체를 인터뷰하신걸로도 군산 씬은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블럭님의 파 프롬 시리즈 반갑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군산하면 떠오르는 아티스트가 단연 PNSB 형이었는데, 애드밸류어 전체를 인터뷰하신걸로도 군산 씬은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블럭님의 파 프롬 시리즈 반갑네요~^^
굉장히 신선하네요! 애드밸류어 응원합니다~~
한달에 한번씩 올라왔었는데 어느순간부터 멈췄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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