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검색

[연재] 파 프롬 홍대 - 2. 부산

title: [회원구입불가]Bluc2014.03.14 10:51추천수 19댓글 14

unnamed.jpg

[파 프롬 홍대] 2. 부산



목차


1) 지역 정보

   - 기본 정보

   - 특징

2) 시작하며

    - 제이통 [부산]

3) 초기의 크루

    - DMS 크루

    - 빅 브라더스 패밀리

4) 부산 기반의 크루

   - 지기펠라즈

   - 혼란속의 형제들

   - 벅와일즈

5) 현재 부산 신의 크루

   - 그랜드픽스 : 프리즈몰릭 인터뷰

   - 아우라지/얼라이브 뮤직 : 기표 인터뷰

   - 아발란채 : 매그닉 인터뷰

   - 크랙브레인 : 딜비 인터뷰

6) 그 외 음악적 기반

   - 봄비노 레코드

   - JU

   - OJ 사운드

7) 사이퍼

   - 부대 똥다리

   - 장전동 아지트

8) 장소들

   - 스트리트 숍

   - 음반 가게

   - 공연장/클럽/

9) 팬들의 이야기

10) 끝내며





00.jpg


1) 지역 정보

 

 - 기본 정보

 

대한민국 동남부 해안에 있는 광역시. 공식 영문 명칭은 Busan이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2의 수도라고도 불린다. 인구 350만여 명. 한국 제 1무역항으로 해상무역과 물류 산업이 발달하였다. 바다가 있어서 관광 사업도 어느 정도 발달하였다. 대표하는 먹거리들도 많다. 과거에는 시내개념이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 곳에 상권이 발달하였다. 몇 공공기관들이 부산으로 이전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옮겨질 예정이다. 대구처럼 커다란 군을 하나 끼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포함하여 큰 행사들을 유치하고 있으며, 다수의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다. 부산일보를 포함한 자체 언론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부산광역시 위키피디아 참조.


 - 특징

 

절대적으로 스케일이 크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만 다 모아서 정리해도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올 것이다. 그만큼 이미 다뤄지는 소재도, 배경도 많다. 부산에 관한 서적 중 제일 인상 깊었던 책은 유승훈 씨가 쓰신 <부산은 넓다>(2013, 글항아리)라는 책이었. 혹시나 부산 전체가 가진 문화의 과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한국은 관광, 문화의 기반이 역사적 맥락보다는 도시의 자원과 규모에 따르는 편인데, 그런 의미에서 부산은 충분한 문화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가지가 많다는 점이 이미 그 자체로도 문화적 인프라가 어느 정도 조성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훌륭한 인프라에서 성장한 부산의 힙합 신은 역사적으로 조금씩 단절의 시간을 지니고 있다. 한 세대가 끝나고 다음 세대가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전 세대의 사람들과의 긴밀한 연대 같은 것은 찾기 힘들다. 물론 선대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만, 여전히 홍대 이상의 규모로 키워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끝내면서도 이야기하겠지만, 워낙 큰 규모를 보유하고 있기에 생략해도 되겠다 싶은 이야기들은 충분히 생략하였다. 추후 기회가 되면 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것이다.

 





01.jpg

2) 시작하며

 

 - 제이통 [부산]

 

제이통(J-Tong)의 앨범 [부산]은 한국에서 한 명의 아티스트가 자신의 지역을 대표한 앨범 중에서는 최고이지 않나 싶다. 최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딱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쨌든 앨범 단위로 자신의 지역을 이야기하는 제이통은 부산이 담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가 하면 지역에서 오는 자부심을 넘어서 그 곳의 정서를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부산 사람들이 제이통 같지는 않겠지만, 제이통의 앨범은 보여주는측면이 강하다. 묘사와 서사의 비중을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끌어가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부산이라는 하나의 지역을 멋있게 받아들이고, 또 해당 앨범의 이미지를 지역과 연결시켜 구축하게 된다.

 

무엇보다 앨범은 노골적으로 지역명을 제목으로 차용함으로써 직관적인 인상을 주는 동시에 목소리나 가사 방식을 통해 그러한 느낌에 힘을 얹는다. 제이통 개인이 가진 고유의 캐릭터를 지역과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하지만 남부라는 위치, 자존심, 사투리가 진하게 배어 있는 억양은 그러한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부산'을 접하는 힙합 팬들에게는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보니, 지금의 부산 아티스트들에게는 감사와 존경의 대상인 동시에 일종의 넘어야 할 산이 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부산을 이야기할 때 일단 이 앨범은 언급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짧게 이야기해 보았다. (제이통에 관해서는 이 글 외에서 별도로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3) 초기의 크루


 - DMS 크루

 

기록에 따르면(?) DMS 크루는 DJ레기와 정섭 두 사람이 주축이 되어 댄스 팀을 결성한 것이 시초이다. 당시 이 둘은 학생이었고, 시기는 1993년 전후였다. 이후 영입된 근우(GNU)는 자신의 친동생 킵루츠(Keeproots)를 끌어들였고, 이후 배틀을 통해 부산 최고의 댄스 팀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1995년부터 크루는 음악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 힙합 크루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갔다. 당시 크루 일원 중 몇 명이 서울로 상경하였고, 이후 멤버들이 추가되며 힙합 크루로서의 체제를 더욱 다졌다.


DMS 크루는 2000년 'VOODOO 힙합 페스티벌'이 열리며 부산 밖으로도 나름의 인지도를 얻었다. 출신 멤버들 중 널리 알려진 사람으로는 킵루츠, 두사람(윔피(Wimpy), 스노우맨(Snowman), DJ 판돌), DJ IT, JU, 라디(Ra.D) 등이 있다. 킵루츠는 프로듀서로서 활동하고 있고, 두사람은 불한당의 멤버로, 또 DJ 판돌은 부산에서 DJ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턴테이블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DJ IT는 비의 월드투어 백업을 맡는 등의 활동을 유지하고 있으며, 라디는 레이블 대표이자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두사람은 아주 예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부산에서만 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DJ 판돌은 부산 자생 크루였던 바늘소리를 이끌기도 하였다. 두사람은 당시 DMS 주도의 거리 공연 등을 주도하기도 하였고, 끝까지 부산에 남아있었다. 두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따로 싣겠다.



 - 빅 브라더스 패밀리


2000년 전후로 장기영 씨가 운영하던 힙합 클럽 이름이자 당시 그곳에서 공연했던 이들의 그룹 이름. 줄여서 BBF. 장기영 씨는 1995년 대학가요제 부산 대표로 본선에 올랐으며이듬해 이한철(불독맨션, KBS 이한철의 올댓뮤직)과 얼터너티브 밴드 지퍼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다른 이름은 DJ 타마(Tama). 이후 빅 브라더스 패밀리에서 공연하던 이들을 모아 동명의 그룹으로 [서면일번가]라는 앨범을 발표했다당시 이한철과 장기영이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프랙탈(Fractal), 이스트포에이(East4A)와 같은 댄스 뮤직 1세대들도 참여했다이후 장기영 씨는 다수의 가요 앨범에 작곡가로프로듀서로 참여하였다. 2007년에는 타마 앤 베가본드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4) 부산 기반의 크루

 

 - 지기 펠라즈

023.jpg


지기 펠라즈(Jiggy Fellaz)JG(aka 장고)2004년 힙합 클럽을 열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때 디씨트라이브(DCTribe) 회원들이 많은 지지를 보냈고, 이후 이곳에서 많은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가지며 친분을 만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크루의 형태가 만들어졌고, 2007[Xclusive]라는 앨범을 발표하였다. 앨범 참여진으로는 각나그네, 도끼(Dok2), 정기고, 247, 데드피(Dead'P), 언터쳐블(Untouchable), 조 브라운(Joe Brown), 우사이드(Woo-Side), 바스코(Vasco), 사이먼 도미닉(Simon Dominic), 이센스(E-Sens), 뉴 다이너스티(New Dynasty), 베이비나인(Babynine), 더 콰이엇(The Quiett), 딥플로우(Deepflow), MYK 등이 있었다이후 클럽 JG는 문을 닫았지만 멤버 교체를 겪으며 크루는 유지되었다. 멤버들이 저마다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하였고, 2009년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The Black Album]을 발표하였다. 앨범에는 JG, 바스코, 딥플로우, 우사이드, 베이식(Basick), 매니악(Maniac), 마르코(Marco) 등이 참여하였다. 베이식, 매니악 외에도 이노베이터(Innovator), 엘리(Elly) 등도 당시 멤버였다고 한다. 2010년 언터쳐블의 앨범에 실린 “Jiggy Get Down”이라는 곡이 크루 단체곡으로는 가장 마지막으로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참여 멤버는 언터쳐블, 9C, 마르코, 빅 트레이(Big Tray), 딥플로우, 베이비나인, 베이식, 엘리, 조 브라운, 우사이드, 바스코이다.




 - 혼란속의 형제들


033.jpg

혼란 속의 형제들(Illest Konfusion, 이하 IK)은 사이먼 도미닉이 지기 펠라즈에서 나오며 생긴 크루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MTV에서 했던 <Rock’em Hard>라는 프로그램에 단체 출연하기도 하였다(방송은 2010년에 했다). 당시 멤버로는 사이먼 도미닉, 이센스, 제이통, 깔창, 빈지노(Beenzino), 스윙스(Swings), 롸키엘(Rocky L), DG, 재후즈(Jaehoodz)가 있었다. 아무래도 과거의 크루를 이야기하는 것은 민감한 부분이 있다 보니 이 지면에서는 공식적 자료를 통해 알려진 멤버들을 소개한 것이고, 그러다 보니 소개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 벅와일즈

 

043.jpg


지금의 벅와일즈(Buckwilds)는 특정 지역을 대표하기보다는 한국 힙합에서 가장 큰 크루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아마 벅와일즈 멤버들 만으로도 하나의 벅와일즈 페스티벌’ 같은 대형 페스티벌 공연을 꾸릴 수 있지 않을까워낙 많은 아티스트들이 벅와일즈의 일원이지만 이 크루는 부산을 기점으로 한제이통이 중심이 되는 크루이다처음 결성된 것은 2005년으로 알려져 있으며지난해 클럽 싸우스타운(South Town)을 열고 싸우스타운 쇼(South Town Show)를 가지면서 부산 중심의 활동이나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현재 싸우스타운은 문을 닫았다.

 

* 관련 링크: 벅와일즈 트위터






5) 현재 부산 신의 크루


 - 그랜드픽스


053.jpg

그랜드픽스(Grand Pics)는 부산을 기반으로 한 대형 크루 중 하나이다. 크루 구성원 중 프리즈몰릭(PRIZMOLIQ)의 멤버 로벤(Loben), 반블랭크(Ban Blank)와 인터뷰를 했다. 프리즈몰릭을 인터뷰한 이유나 그랜드픽스에 관한 설명들은 인터뷰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프리즈몰릭, 반 블랭크, 로벤의 뜻 :


로벤 - 프리즈몰릭은 프리즘(prism)이라는 단어와 홀릭(holic)이라는 단어를 합쳐서 변형한 건데, 프리즘이라는 것이 한 가지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여러 색깔의 빛이 나오잖아요. 이름 지었을 당시에는 힙합 안에서 최대한 갇히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넣은 거고, 그런 음악들을 만들었을 때 우리만 좋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들었을 때도 좋게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홀릭이라는 단어를 썼죠. 이름 짓는 데 되게 오래 걸렸거든요. 그러다 제일 저희와 잘 맞고, 또 괜찮다고 생각해서 쓰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이름은 큰 뜻은 없는데, 저는 정말 뜻이 없어요. 전에 쓰던 이름에서 바꾸려고 하는데 이 이름이 꿈에서 나왔어요. (웃음) 그래서 별 의미는 없는데 사람들이 발음이나 어감이 저와 어울린다고 해서 쓰고 있어요. 중간에 철자가 바뀌었어요. 처음에 쓰던 철자는 로벤이라는 발음이 아니라고 일레븐(i11evn)이 그러더라고요. (웃음)


반 블랭크(이하 반) – 저는 그냥 한글로 ‘반’이었어요. 반이라는 한자를 보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아요. 그 이미지 자체가 차가운 느낌을 주더라고요. 제 성격이 예전에는 그렇다고 생각해서 (웃음) 반이라고 했는데, 싱글을 준비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반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먼저 낸 거예요. 그때 ‘스케리피 & 반’ 앨범을 준비 중이었는데 스케리피(Scary'P) 형도 이제 이름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해서. 블랭크(blank)라는 건 사실 뜻 없이 멋져서 넣은 거예요. 반을 버리기는 싫더라고요. 그래서 뒤에 이것 저것 붙여봤는데, 이게 표기도 좋고 어감도 좋고. 블랭크가 비어 있다는 거니까 나머지는 음악으로 채운다는 저만의 해석도 있고요. (웃음) 큰 뜻은 없어요.



언제부터 힙합 음악을 들었는지 :


–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접한 건 2004년 엠넷(Mnet) <힙합 더 바이브>에서 데드피 형의 [Undisputed]를 소개하는 것을 보고 검색해서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힙합을 열심히 찾아 들었는데, 그전에도 물론 드렁큰타이거(Drunken Tiger), 씨비매스(CB MASS), 에픽하이(Epik High) 음악을 들었죠.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얼마 안 되었어요. 가사를 쓰고 랩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2009년 정도였던 것 같아요.


로벤 – 저도 약간 비슷한데, 처음 힙합을 들었던 건 중학교 3학년 때인가 씨비매스를 우연찮게 가요인 줄 알고 접했어요. 아크워크가 멋있어서 레코드 점에서 씨디를 샀어요. 처음 들었을 때는 당황스럽더라고요. 내가 알던 음악이 아닌 거예요. 처음에는 한 바퀴 돌리고 안 듣다가 샀으니까 한번 들어 보자고 해서 몇 번 듣다 보니 꽂히는 게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찾아 들었던 것 같아요. 드렁큰타이거처럼 유명한 사람들부터 찾다가 고등학교 때 소울컴퍼니 음악을 친구가 소개시켜주더라고요. 그때부터 하나씩 알아간 것 같아요. 그냥 음악을 듣는 걸 좋아했는데, 가사를 한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2004년 데드피 형의 [Undisputed]에 실린 “날개짓”이라는 곡을 접하면서였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소름이 돋았던 건 처음이었거든요.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가사를 쓰고 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교 올라가면서부터 조금씩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공연을 본 건 :


로벤 – 저는 처음 힙합 공연을 본 게 군대 가기 전 부산대 쪽에서 있던 공연이었어요. 이름은 생각 안 나는데 메인 아티스트가 가리온 분들이었고, 당시 갓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사이먼 도미닉이 있었고. 그 공연이 처음 본 거였어요. 가리온 형님들 무투 공연하고 그러시면서 2집 앨범이 곧 나온다고 하셨는데 (웃음) 그때가 처음이었죠.


– 저는 부산에서 힙합 공연을 하는지도 몰라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었어요. 인터넷 상으로 외국 공연 찾아보고. 저는 가고 싶었는데 몰라서 못 갔어요.



첫 공연 :


– 제일 처음 한 건 군대에서 (웃음) 문선대라고 연대에서 선전 대사를 뽑았는데, 그때 GOP 돌아다니면서 공연하는 거였는데 팔로알토(Paloalto) 님의 “Family”라는 곡을 했어요. 그 곡이 군대와 잘 맞아서 했는데 우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걸 봤어요. 그러면서 군대를 좀 빨았죠. (웃음) 그러고 나서 2008년에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1년 정도 했어요. 그때 정글 라디오가 있었는데 저도 눈팅만 하다가 그해 말 즈음에 정말 해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일본에서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장비를 샀어요. 녹음을 해서 정글 라디오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첫 곡이 정글 라디오를 디스하는 곡이었어요. (웃음) 어떤 아마추어 크루에서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알겠다고 했죠. 2009년 2월에 한국으로 다시 오는 거였는데, 부산에 가자마자 서울에 올라가서 첫 공연을 했어요. 그때 와썹크루(Wassup Crew)라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유명했어요. 소울커넥션(Soul Connection)도 유명했는데 그때 게스트였어요. 첫 공연을 했는데 정말… 전율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공연을 하고 한동안 없다가 2009년 여름이었나 한 번 서울에서 공연하고. 그러고 난 뒤에 그랜드픽스에 들어갔죠. 첫 공연이 홍대 스팟, 두 번째 공연이 예전 벨벳 바나나. 거기서 했죠.


로벤 – 저는 대학교 들어가서 음악을 하고 싶어 동아리를 찾았거든요. 그런데 학교에 힙합 동아리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고, 음악 동아리를 찾다 보니 미디 음악 동아리가 있는 거예요. 자보를 붙여놓은 걸 보니까 기타, 베이스, 보컬, 랩 이렇게 다양하게 뽑더라고요. 들어가 보자고 해서 갔는데, 거기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같이 공연을 했어요. 처음 했던 건 학교 가요제를 나간 게 아닌가 싶고. 힙합 공연을 처음 한 건 그랜드픽스의 전신이었던 페이머스 몬스터즈(The Famous Monsters)라는 크루의 첫 공연 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때 이 친구의 팀이 게스트로 왔고, 그걸 계기로 얘가 저희 크루에 들어오게 된 거고. 당시에는 스케리피 형이랑 저랑 익스에이러(ex8er) 정도 있었고.



그랜드픽스의 결성 :


로벤 - 그랜드픽스로 바뀌기 직전에 반블랭크가 들어오게 되어서 같이 하다가 이름이 바뀌고 팀을 결성하게 되었어요. 2011년에 그랜드픽스가 생겼죠. 멤버 교체가 많았던 건 아닌데, 한두 명 나가고 들어오는 식의 교체는 있었어요. 지금은 스케리피 형, 함께 하이플라이즈(High Flies) 하고 있는 돕플라밍고(DOPLAMINGO), 프리즈몰릭, 일레븐, 익스에이러, DJ 티즈(DJ Tiz) 형, 일립스(ILLIPSE)… 계속 활동하는 친구들은 이 정도인 것 같고.


– 지금 언급된 사람들은 주로 음악을 업으로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고, 전에 있던 친구들은 대부분 요즘 본업에 충실한 경우이죠. 그랜드픽스라는 크루가 거의 인간적으로 모인 친구라서. 새롭게 재정비를 하기는 할 건데, 그 친구들이 음악을 안 한다고 해서 사이가 갈라지는 건 아니고 여전히 가족처럼 지내고 있어요. 티즈 형은 서울 사람이고, 일레븐은 부산 출신이에요. 가족들은 부산에 있는데 서울로 상경한 경우죠.



프리즈몰릭의 결성 :


- 저희가 처음 결성한 건 2010년인데, 처음으로 선보인 건 “Ill Combined”라는 싱글이었어요. 2012년 초였어요. 2010년에는 그냥 팀 이름 없이 둘이 곡 작업하고 공연하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팀 이름을 만들고 싱글을 냈죠.


로벤 - 처음 반블랭크가 저희 크루에 들어올 당시에는 크루에 래퍼가 별로 없었어요. 익스에이러가 군대 갔을 때였고, 일레븐이 유학 갔을 때였나 일본에 있었을 거예요. 래퍼가 거의 많이 없었는데 공연 섭외가 오고, 어떻게 할까 하다가 각자 작업했던 벌스 같은 걸 어울리는 것끼리 묶어서 같이 공연을 하자고 했어요. 그렇게 몇 번 공연을 하다가 서로 얘기를 하게 되고, 잘 맞고, 음악적인 취향도 많이 맞아서 자연스럽게 하는 방향으로 간 것 같아요.


– 동갑이고 하니까. 일단 제일 중요한 게, 팀을 하려면 성격도 중요하지만 음악 색깔이 맞아야 된다고 느껴요. 그게 잘 맞아서 팀을 하기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랜드픽스의 대표는 :


로벤 - 그랜드픽스의 시작부터 이야기하면, 스케리피 형이 만든 크루의 전신이 있었고 거기에 몇 명이 속해 있었는데, 그러다 이름을 바꾸게 된 거예요. 이름을 바꾸고 멤버가 교체하며 그랜드픽스가 된 건데, 제일 중심이 되는 사람이자 큰형은 스케리피 형이고, 외부에서 보거나 다른 사람들이 봐도 스케리피 형의 크루라고 비춰지는데 그게 틀린 말은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스케리피 형이랑 프리즈몰릭 둘이 같이 대표 자리에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음악 외적인 부분을 굉장히 많이 끌어가고 있어서. (스케리피) 형이 많이 맡겼죠. 그러다 보니 책임지고 이끄는 걸 하게 되고.




grandpicshow_3.jpg

공연 기획 :


- 그랜드픽스의 정기 공연인 그랜드픽쇼(Grand Picshow)를 처음 기획할 때 1, 2회는 (말아먹었지) 진짜 작은 공연장에서 했는데 스무 명 정도 왔어요. 그래서 완전 망하고, 한 1년 동안 공연을 안 열었어요. 그때가 2010년? 아, 안 되겠다. 새롭게 해보자고 해서 1년 만에 기획을 한 게 그랜드픽쇼 3인데 지금 사우스타운 공연장, 당시에는 패브릭이었는데 거기가 지기 펠라즈 공연이나 그런 것들을 많이 했던 장소였어요. 우리도 거기서 해보자고 했죠. 대관료가 비쌌어요. 80만 원 정도 했는데 멤버들끼리 10만원씩 걷어서 티켓이 안 팔리더라도 우리끼리 재미있게 해보자고 했죠. 스케리피 형이랑 친분이 있던 베이식(Basick)을 섭외하고, 우리 멤버들을 주축으로 해서 공연을 했죠.


로벤 – 그전에 워낙 작은 공연장에서 했는데도 텅텅 빌 정도로 말아먹다 보니까 그때는 진짜 부담 많이 되었어요. 그 공연장은 저희가 했던 곳보다 훨씬 큰 곳이고 대관비도 비싸고 그랬기 때문에 이건 진짜 장난으로 하면 안 되겠구나. 마음을 굳게 먹고 해야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홍보나 공연 구성 등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회의도 진짜 많이 했고, 멤버들도 학교 같은 데 앞에서 홍보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거든요. 영상도 만들고.


-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는 대박이 났어요. 180명이 왔어요. 그 당시 부산 공연장에 그렇게 오는 경우가 없었거든요. 지기 펠라즈가 부산에서 공연을 안 하고 난 뒤로 한 1, 2년 정도 지난 상태였어요. 아예 공연이 없을 때였어요. 진짜 작은 공연들 말고는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그렇게 왔죠. 그때 우리를 깔보던 클럽 사장님과 (웃음) 몇 사람들이 ‘오 뭐지?’ 하면서 다르게 쳐다봤고, 같이 할 생각 없냐는 이야기도 나왔고. 지금 생각하면 공연 퀄리티는 당연히 허접한데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어요. 베이식 씨가 도움이 많이 되었고.


로벤 – 그전에는 부산에 있는 다른 크루들도 저희 존재를 몰랐거든요. 몰랐거나 알았지만 그냥 밑에 있는 애들 이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봤을 때는 대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러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죠.


– 그 이후로 그랜드픽스 4, 5는 더 대박이 났어요. 4 같은 경우에는 250명 왔는데 부산에서는 솔직히 250명 오는 공연이 거의 없었어요. 와봤자 5, 60명 이랬는데 그때 게스트가 크리스피 크런치(Crispi Crunch)였고요. 6 때 제리케이(Jerry.K) 형이 오셔서 300명이 넘었어요.


로벤 – 그 당시에는 진짜 서울 게스트로만 채운 공연도 그 정도는 안 왔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딴에는 승승장구를 했었죠.


– 1, 2회 할 때는 서울 게스트는 없었고 부산에 있는 다른 크루들을 게스트로 섭외했었죠. 5가 2012년이었을 거에요. 그게 [Lunar To Solar]라는 부틀렉 스페셜이었거든요. 이후로 크루 활동보다는 개인적인 활동을 많이 했어요. 음악을 놓는 친구들도 생기고, 본업에 충실하게 된 친구들도 생기고. 그렇게 되며 다른 공연은 없었어요.



공연을 주로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 :


– 아… 어마어마하죠. 아무래도 기획부터 시작해서 공연 준비, 그리고 홍보, 연습, 그런 것들을 전부 둘이 맡아서 하니까. 그렇게 하시는 분들 많이 있지만 벅차다고 해야 하나? 흥행에 대한 부담도 많이 되고. 그런 압박감이 심하더라고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로벤 – 그랜드픽쇼를 1년에 한 번 꼴로 열었거든요. 그래서 5까지 마지막으로 했는데, 그랜드픽스가 가지는 크루 공연이다 보니까 저희가 열게 되어서, 크루에 멤버들이 있지만 저희가 형 축에 속하는 나이대인 것도 그렇고, 제일 큰형으로 스케리피(Scary P) 형이 있는데 몸이 불편한 것도 해서 직접 행동하는 면에 있어서는 저희가 다 맡아서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음악만 올인하는 친구들도 아니고 자기 일도 있고, 학업도 있고, 집안 문제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공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서로 더딘 부분도 있고. 그런 것들을 조율하면서 힘든 문제도 있었고. 부산 특성상 유명한 뮤지션에 기대서 공연을 하는 게 아니었다 보니까… 게스트야 서울에서 오는 한 팀 정도 있었지만 서울 뮤지션에게 의지하는 공연이 아니다 보니 홍보적인 면에서도 발 벗고 나서서 하는 게 많았어요. 팜플렛을 돌린다거나 포스터를 붙이는 등의 일도 했기 때문에 힘든 부분도 있었죠.



당시 부산의 크루 :


로벤 – 아우라지(AURAGE)가 있었고, 벅와일즈는 부산 크루라고 하기에는 엄청 커져서요. 당시에는 그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우라지와는 공연도 같이 한 적 있어요. 얼라이브(ALIVE)라는 공연을 지금도 계속 하고 있는데, 그 공연을 몇 회 때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처음에는 그랜드픽스가 게스트로 가다가 사이가 가까워지고 부산에서 하는 것도 있다 보니 같이 뭔가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얼라이브를 3, 4번 정도 같이 헀어요.


–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얼라이브 7회 때 저희가 게스트로 갔어요. 그때가 믹스테입 쇼케이스였는데 오프닝으로 갔다가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저희는 그랜드픽쇼를 준비하던 상황이었는데, 각자가 각자대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저희 공연에 사람이 많이 오니까 컨택이 되어서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저희가 11인가 12 때부터 네 번 정도를 같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음악적인 색깔이 안 맞는다고 해야 하나. 추구하는 방향이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이제 각자의 길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따로 하게 되었죠. 얼라이브도 계속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저희도 항상 응원하고 있죠. 멋있는 것 같아요. 부산에서 그렇게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에 대해 :


로벤 - 솔직히 말하면 아우라지와 그랜드픽스가 안 좋은 건 아니고, 멤버가 있잖아요. 멤버들 간의 갈등이나 다툼 이런 게 좀 있었어요.


– 거짓말할 건 아니니까. 사실 사이가 안 좋은 멤버가 있었는데, 그런 것 때문에 서로 감정 상하기 보다는 그냥 좋을 때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로벤 – 그래도 멤버들 중에서는 아직까지 아우라지와 연락하는 멤버도 있고, 사이 나쁜 멤버는 또 사이 나쁜 멤버고 잘 지내는 사람은 잘 지내고 그런 것 같아요.


– 사람이 많이 모이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랜드픽스는 부산 밖으로, 아우라지는 부산 안으로 :


– 아우라지는 이제 얼라이브 뮤직(ALIVE MUSIC)이라는 레이블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어요. 방향성까지는 솔직히 잘 모르는데, 추구하는 바가 다르죠.



부산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끼리의 교류 :


– 서로 잘 알죠. 알아야 하고. 자주는 못 뵈더라도 형님들도 있으시고 하니까 안부 인사 드리고 그 정도인 것 같아요.



부산 안에서 만들어지는 공연 :


– 지금도 보면 부산에 있는 크루들이 있어요. 알게 모르게 진짜 많이 있는데 그런 친구들이 예전에 저희가 하던 것처럼 사비를 모아서 공연을 하더라고요. 저희도 게스트로 불러주시면 가서 도와드리고 하는 편인데, 그 친구들한테 얘기를 했어요. 너희가 부산에서 공연을 하고 싶으면 만들지 않는 이상 할 수 없다고. 부산은 각자 크루들이 예전 저희처럼 공연을 만들고 그러더라고요.



부산의 공연만이 가지는 것 :


– 부산 관객 분들이 조금 더 열정적이기는 해요. 워낙 공연이 없으니까 한 번 공연하면 오셔서 열정을 다 쏟아붓고 가시고. 서울은 워낙 공연이 많으니까. 서울 관객들을 뭐라고 하는 건 아니고 (웃음) 부산 분들이 조금 더 열정적이지 않나.


로벤 – 확실히 서울과 부산이 다른 건 있어요. 공연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부산은 대체적으로 반응이라던가 여러 가지 열정적이기는 해요. 정말 공연에 목말라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지역의 특성인가 싶기도 하지만 반응이 엄청 세요. 그런 차이점은 있는 것 같아요.



부산 신(scene) 형성에 대해 :


–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예전 지기 펠라즈 때보다는 당연히 안 되고, 차라리 그때가 더 형성이 되었던 상태인데 지금은 물론 노력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부산도 수요자가 굉장히 많아요. 왜냐면 유명하신 래퍼 분들이 공연한다고 하면 매진되고 그래요. 근데 부산 뮤지션이 공연한다고 하면 그 정도는 아니에요. 공급자의 탓인 것 같기도 해요. 우리가 아직 안 유명하고, 덜 발전했기 때문에. 물론 얼라이브 뮤직이나 다른 크루들도 노력하고 있지만 더 노력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부산에서 프리즈몰릭 쇼케이스를 하는 것도 솔직히 말하면 굳이 할 필요 없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가 부산 사람이고 부산에서 음악을 시작했기에 부산에서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공연의 흥망을 떠나서 뭔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해보자고 해서. 



신(scene)의 형성과 공연 기획의 관계와 어려움 :


–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아주 강력한 부산 공급자가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진짜 부산을 위해서 해야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어요.


로벤 – 그랜드픽스가 올해는 내실을 다지는 일에 집중을 할텐데, 그게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을 하면 서울에서도 하겠지만 부산에서도 공연을 많이 하고 싶어요. 상황이나 여유가 되면 하고 싶어요. 저희가 잘해야겠죠. 부산 팬들이 있으면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시면 더 빨리 되지 않을까 싶어요. 뮤지션들은 많이 있으니까. 어떻게 잘 하느냐가 중요하고, 팬들이 어떻게 반응을 해서 끈끈하게 뭉쳐지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 저희가 제일 바라는 게 금의환향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웃기지만 저희가 부산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 강해요. 서울 사람이나 다른 지역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저희는 좀 강해서. 부산에서 멋있는 것도 많이 만들고 싶고. 일단 강한 공급자가 되어야겠죠. 어떻게 보면 제 2의 수도인데, 공급자가 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플레이어들이 좀 더 많이 나오고 잘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래야겠죠. 서울 게스트에 의존하는 건 부산 발전이 아니잖아요. 부산 뮤지션들이 공연할 때 사람이 많이 와야 발전하는 건데.




shidae.jpg

앨범 [시대정신] :


로벤 - 주제라거나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다 캐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데, 저희가 랩 자체에 중점을 두고 화려하게 한 것도 아니고 주제에 포커스를 맞췄거든요. 그러다 보니 부각이 안 되고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서 아쉽기는 하죠. 저희가 그런 앨범을 하려고 처음부터 생각했던 건, 어렸을 때부터 힙합 음악을 들어 오면서 매력에 빠졌던 게 그런 것들이 아니었나 싶어서요. 트렌드 자체가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요즘은 또 워낙 스웩(swag)을 말하는 곡들이 많고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까 저희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없는 게 아쉽더라고요. 저희가 좋아하는 걸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메시지를 가사적으로 풀어내려고 했고.


– 요즘 곡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트렌드에 맞춰서 당연히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저희도 나름대로 우리만의 방식을 찾기 위해서 곡 작업도 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그렇지만 시대정신은 저희가 앨범을 준비할 때 20대 중반이었는데, 앨범을 내면서 20대 후반으로 와버렸어요. 그 사이 시간들을 오면서까지 그 나이대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 여자나 남자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넣으려고 했어요. 여자의 입장을 조사해서 쓰기도 했고. 그런 게 많은데 사실은 캐치를 잘 못하더라고요. 어렵게 쓴 건가 생각도 하는데 그런 부분은 아쉬웠어요. 우리가 담으려는 메시지는 이건데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파악을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근데 후회는 없어요. 왜냐면 이게 저희가 좋아하는 거니까요.



[시대정신]의 작업 기간 :


- 2년 좀 넘게 걸린 것 같은데, 저희가 공연 기획을 하다 보니까. 보통 두 달 정도 하잖아요. 기획부터 홍보 등의 일들을 하다 보면 앨범을 작업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또 팀이라는 특성상 한 명이 바쁘면 작업이 안 되니까 계속 늦춰지고, 녹음할 곳도 없어서 빌려 다니다가 녹음실을 직접 만들게 되고, 그런다고 또 반 년 정도 쓰면서 작업을 했어요. 30곡 정도 썼는데 좋은 곡만 넣고 구린 건 추려내자고 해서 지금의 앨범이 나왔죠.


로벤 – 작업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예전에 했던 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 빼고 새로 작업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2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녹음실이 없었던 터라 1년 전에 다른 곳에서 녹음을 했거든요. 음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엎고, 크루원들끼리 돈을 모아서 새로 녹음실을 만들어서 다시 시작했고. 그러다 보면 또 날리는 곡도 있고 그러다 보니 오래 걸렸어요.



서울로 올라온 계기 :


로벤 - 저희가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부산에서 시작했고 활동하면서 부산의 문화를 키우고 싶어서 공연도 많이 열었고 많은 걸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한계도 느껴지고 그러다 보니 서울에 좋은 기회가 있어서 공연을 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왔다 갔다 하는 게 좀 버겁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부산은 공연이 많지 않고, 부산에서 공연을 하려면 보통 직접 열어서 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으면 공연을 많이 할 수 있는 경우는 없더라구요. 부산에서는 저희 생각엔 공연을 제일 많이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부산 안에 있는 행사라든지 클럽 공연 같은 걸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도 공연이 많지 않아서. 저희가 음악을 이제 계속 직업적으로 하기에는 공연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고 해서 서울을 왔다 갔다 하기에는 힘든 부분도 있고. 한 번씩 스픽쇼(SpeakShow)나 이런 것들을 했을 때는 체력적으로 힘이 많이 들더라고요. 잠잘 데도 마땅치 않고. 찜질방이나 모텔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그런 게 힘들어서. 저희가 부산에서 할 때는 본업이 있고, 이제 돈을 벌면서 음악을 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앨범 작업이라든가 이런 진행이 더뎌지는 것도 있고. 서로가 돈을 버는 일이 있다 보니까. 그래서 저희가 이번 앨범을 내면서 완전히 음악만 한번 올인을 해보자고 생각해서 올라오게 된 거예요.


- 본업이라기보다는 대학교 다니면서 취업계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생각해보니까 사실 서로가 잘하는 것도 없고 그냥 좋아하니까 음악 해보자고 해서. 취직은 아니었고 아르바이트 식으로.


로벤 - 학업도 워낙 있었고. 공연이 많이 없는 편이고. 서울은 일단 공연이 되게 많잖아요. 힙합 공연만 해도 매주 있었고, 많을 때는 한 주에도 몇 개씩 있는 편이었는데 부산은 몇 달에 한 번? 그렇게 있었으니까. 저희가 공연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에는 너무 부족해서.



목표, 활동 방향 :


– 일단 올해 저희도 서울을 올라왔고, 하이플라이즈만 해도 열심히 하고 있는 게 많이 보이잖아요. 하이플라이즈나 프리즈몰릭, 일레븐, 익스에이러, DJ 티즈, 이렇게 활동하고 있는데 재정비를 해서 공연도 많이 하고 앨범도 더 내고, 일단 무조건 많이.



부산 아티스트들, 부산이라는 지역에게 받은 영향 :


로벤 –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겠죠 아무래도. 오랜 시간 살았기 때문에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데, 뮤지션한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냐고 여쭤보시면 잘 모르겠어요. 서울 뮤지션들 음악을 많이 듣고 또 공연을 보게 되는 게 현실이니까. 처음 본 공연도 가리온 공연이고. 특별하게 영향을 받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분들께 레슨을 받거나 한 것도 아니니까.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았죠.


– 직접적 경험이라는 게 있는데,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해운대까지 가는 그 길에서도 많은 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피부로 와 닿지 않지만 조금씩이라도 흡수가 된다고 생각해요. 28년 동안, 욕은 아니고 (웃음) 부산에서 살았던 경험들이 절로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부산 자체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해요.


로벤 – 부산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책임감도 있어요. 부산 바닥이 좁아서 서울을 가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부산을 더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힘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 JU 형님과는 파티에서 논 적도 있고, 같이 공연한 적도 있고. 저희 곡 라이브 때 스크래치를 해주신 적도 있고. 두사람 형님들과는 예전 RRR 공연 때 같이 했고, 사우스타운 공연 때 게스트 때도 같은 공연에 선 적 있고요. 굉장히 유쾌하신 형님들입니다.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그렇게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끊어진 연결들 가운데를 이어보려고 노력은 했던 것 같아요. 워낙 그런 흔적들도 많아서 좀 더 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부산만의 것이 있다면 :


로벤 – 투박함이지 않을까 싶어요. 억양에서 시작하는 것 같은데, 표현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투박한 게 좀 특징이라면 특징이지 않을까.


– 저는 처음 드는 생각이, 모든 뮤지션이 그렇게 생각할 지 모르겠는데 저는 한 같아요. 제가 그런 게 있어서. 예전에 익스에이러랑 믹스테입을 둘이 발매한 적이 있어요. 그 믹스테입의 모토가 한이었어요. 한을 가지고 작업을 했고, 지금도 그렇고.


* 관련 링크그랜드픽스 트위터 @GrandPics




- 아우라지/얼라이브 뮤직

 

083.jpg

얼라이브 뮤직은 기표(Keypyo)가 대표, 기스트(Gist)가 영상 스태프로 있으며, 오버플로우(Overflow), 매스티지(Masstige), 크리틱(Critic)이 소속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역시 인터뷰에 포함되어 있다. 인터뷰는 얼라이브 뮤직의 HC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간단하게 대표님 소개부터 :


저는 아우라지 크루의 대표였고, 아우라지는 크루의 개념이다 보니 소속이 지니는 구속력 같은 건 크게 없어요. 지금은 얼라이브 뮤직이라는 힙합 레이블의 대표로 있습니다. 얼라이브 뮤직은 말 그대로 음악 산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대표이고, 주둔지는 여기 스튜디오입니다. 저도 뮤지션으로서 활동했기 때문에 작업은 틈틈이 하고는 있어요. 욕심은 있는데 크게 계획은 없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음악을 들은 건 언제 :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제가 춤을 췄거든요. 춤출 때 맞춰서 나오는 음악 중 하나가 “Wild Wild West”였던 것 같은데, 이게 힙합이라는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때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을 포함하여 조명받는 팝 음악들 위주로 들었고, 이후로 적극적으로 듣게 되었죠. 제가 살았던 곳이 시골이라 음반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기 때문에 구하기 힘들었죠. 그때는 시내라는 개념이 있었거든요. (웃음) 그때는 서면, 남포동 일대였어요. 거기 가면 신나라 레코드가 크게 있었기 때문에 하나씩 구해오고 그랬죠. 그때는 음반 가게에 힙합이라는 장르 분류가 없었어요. 제 기억에는 그래요. 나중에 생겼던 것 같아요.

 

활동은 언제부터 하셨는지 :


2002년부터 했어요. 고등학교 때 알지빗이라는 팀을 만들었어요. 전교에 힙합을 아는 사람이 다섯 명 있었어요. 저랑 팀원 한 명은 투팍(2Pac)을 좋아하고 나머지 세 명은 드렁큰타이거를 좋아했어요.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죠? 당시 시디 플레이어가 비싸서 없었어요. 컴퓨터실에서 투팍 시디를 넣고 들으면서 ~’ 느꼈죠. 끝까지 막 들으면 사람들이 뭐하냐고 와요. 보는데 문신한 흑인이 이러고 있는 거죠. 들어보라고 했는데, 애들이 충격을 먹었어요. ‘, fuck이 몇 번 나오는 거야?’ (웃음)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이게 노래냐고 물어봤어요. ‘, 이게 힙합이라는 건데…’, ‘, 이건 노래도 아니다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 시작했죠. 그렇게 듣다가 대학교를 부산대로 오면서 힙합콘서트 섭외를 받았죠. 여러 가지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제 인생이 이렇게 되었습니다(웃음). 지금도 물론이지만, 그때는 힙합에 대해 정말 무지했어요. 그냥 듣는 대로 들었고, 콘텐츠 접할 기회도 별로 없었고. 제가 처음 들었던 건 윌 스미스(Will Smith)예. ‘이런 게 힙합 음악이라더라’라는 얘기를 들었고, 레코드 가게에 가서 사장님 힙합 앨범 추천해 주세요라고 했죠. 그렇게 우탱 클랜(Wu Tang Clan) 앨범을 들었고요. 그러면서 하나씩 찾아 들었어요. 테이프도 사고, 시디도 하나씩 싸고.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고. 소울 라임 시티(Soul Rhyme City)라는 이름으로 대학가요제도 나가게 되었죠.

 

커뮤니티는 어떤 식으로 활동하셨는지 :


일단은 힙합플레이야를 통해서 하게 되었죠. 저는 듀스(DEUX) 팬이었고 그렇게 접하게 되었는데, 저는 힙합 자체에 깊이 빠져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문화 특유의 성향과 특징들이 좋았어요. 글을 쓰고, 랩으로 얘기를 하고, 상대방과 배틀을 하고 그런 부분들이 있잖아요. 깡패가 음악을 즐긴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멋있는 거예요. 저는 모범생이었는데.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했는데 비트에 맞춰서 그걸 풀어낸다는 것이 좋았어요. 제 친구는 완전 빠져 있었죠. 부산에 '빅 브라더스 패밀리'라고 있었는데 거기 공연은 다 가고, 서울의 마스터플랜(Master Plan) 공연 있으면 보러 가고 그랬어요. 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요. 그 친구가 다 들려줬어요. 이번에 이런 게 나왔고, 이런 게 있다.

 

처음 접했던 공연 :


고등학교 때 구성애의 아우성 힙합 페스티벌이 있었는데, 성에 관한 노래를 만들어 콘테스트를 하는 거였어요. 거기 참가하면서 랩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느꼈고. 그때 직접 참가하면서 본 게 처음이었어요. 이후로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힙합 콘서트를 하면서 또 참가와 동시에 보게 되었죠. 진짜 어설펐던 것 같아요.




09.jpg

아우라지와 얼라이브 뮤직의 관계 :


아우라지가 처음 만들어진 목적은 말 그대로 오프라인 커뮤니티였어요. 동네에서 애들끼리 학교 다니면서 음악을 하다가 대학 오니까 활동할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공연을 만들어 보자고 했던 게 시작인데, 웃긴 게 대구의 M.H.IS라는 팀이 있어요. 그 형님이 경성대에 재학을 하면서 힙합 콘서트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콘서트를 만들어서 저희가 모였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활동을 하면서 형님들이 다 군대를 간 거에요. 저도 군대를 갔고. 제가 제대하고 나니까 그런 신이 없어진 거예요. 기획자가 사라진 거죠. 음악 만드는 친구들은 있었기 때문에 제가 모았죠. 같이 해보자. 근데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게 인기가요 식의 무대를 만드는 건 별로이지 않겠냐고 해서 체계적이고 기획이 있는, 최종 목표로 뮤지컬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는 조직으로서 만들어보자고 해서 아우라지가 시작이 되었어요.


그때부터 아우라지가 시작되었고, 제가 대학가요제에 나갔거든요. 그러면서 뭔가 흐름을 타기 시작했죠. 약간의 대중 코드와 맞는 걸 하면서 5, 10명 있던 공연이 3, 40명까지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고, 그것도 한 2년 지나니까 끝났죠. 말씀 드렸던 것처럼 오프라인 커뮤니티였고, 좀 더 진보적인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고요. 2012년쯤 되어서 하나 둘씩 나이를 먹으니까 사회적인 책임감이 생기잖아요. 그걸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남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저도 이제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제 시간이 엄청 소중하단 말이에요. 머리속에 들어 있는 건 온통 음악과 내가 만들고자 하는 이상향을 계속 추구하고 있는 거예요. 취업을 한 50% 이상의 이유도 그런 거였어요. 돈이 필요하니까. 자본을 구해야 하는데 후원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내가 벌어서 내가 대겠다고 해서 계속 투자를 한 거죠. 스튜디오도 장전동 아지트에 있었는데 그것도 만들고 그랬거든요. 그랬는데 제가 너무 상대적으로 지치는 거예요. 내가 어느 정도의 기대를 하고 투자를 하고 약속을 했으면 그게 지켜지는 모습이 보이고 하루 하루 발전하는 모습을 봐야 하는데 이건 울타리 안에 있다 보니 계속 퇴보되는 거에요. 잘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 하는 게 너무 눈에 보이는 거예요. 여기서는 더 이상 안 된다고 생각해서 얼라이브 뮤직이라는 레이블을 만들겠다고 선언을 했죠. 멤버들 중에서 진짜 제가 생각하는 것과 부합하는 인물들을 추려서 만든 것이 얼라이브 뮤직입니다.

 

아우라지가 처음 생긴 건 언제인지 :


2007년입니다. 저희가 대학가요제 나오고 나서 필요하다 생각하여 만든 거고, 그 당시에는 부산을 주름잡는 친구들이었어요. 두사람 형님들 빼고. 그때는 연결이 없었으니까. 당시 나름대로 유명한 친구들이 모였고. 비트밥과 나름대로 경쟁을 했던 곳인데, 솔직히 관객 30명 두고 하는 공연이 신에 이바지했다거나 문화를 형성했다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냥 그렇게 있었다고만 해야죠.

 

아우라지 멤버들은 훨씬 많았겠네요 :


25? 정도 있었죠. 엄청났죠. 우르르 몰려 다녔어요. 음악을 하든 그렇지 않든 다 같이 모였고 그랬죠.

 

아우라지의 이름으로도 시리즈 공연을 했는데 :


얼라이브 23이 마지막 공연이었어요. 대외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는데, 얼라이브 뮤직이 레이블을 런칭했다고 기사를 낸 적이 없기 때문에 공연은 계속 이어왔고, 그래서 얼라이브라는, 아우라지가 가지고 있던 공연 타이틀을 얼라이브 뮤직이 인수를 한 셈이죠. 그대로 들고 가는 거지만, 그 기준의 경우, 원래는 학교로 따지면 발표회처럼 앨범을 냈든 활동을 했든 그런 여부와 상관 없이 아우라지라는 소속 하에 공연을 참여할 수 있지만, 이제는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는 친구들을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무대를 만들겠다는 걸로 좀 바뀌었어요. 얼라이브 뮤직 소속이 아니지만 아우라지 멤버가 앨범은 내면 저희는 당연히 오케이고 섭외 1순위가 되겠죠. 그 사람이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앨범을 냈으니까. 자기만의 어떤 결과를 인정해 주겠다는 거고, 물론 부산의 다른 친구들도 앨범을 내면 똑같이 하겠다고 변했어요.

 

아우라지에서 얼라이브가 되며 떨어진 다른 멤버들과의 충돌은 :


있었죠. 지금도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게 있냐면 결국은 그런 거예요. 제가 선택할 때 한 명 한 명 면담을 하고 인터뷰를 해서 본인도 원하고, 나도 원하는 사람, 일치하는 사람을 소속으로 데려오겠다고 했어요. 제가 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얼라이브 뮤직에 들어오길) 원했는데, 제 의견으로 인해서 떨어져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죠. 말 그대로 피해자가 된 거죠 어떻게 보면. 그걸 설득하려고 굳이 노력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받아들여달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크리틱에 집중해야 하는데 너한테까지 집중하면 내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 아니냐, 인정해야 한다고 했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수긍하는 분위기였어요. 근데 아쉬워하는 친구들도 있죠. 다투거나 그런 건 없었지만 실망하는 경우가 있었죠. 이런 거 있잖아요. 술 먹으면서 행님도 똑같애!’ 그러는 거. (웃음) 그렇게는 있었죠. 좀 마음을 독하게 먹다 보니까 그런 일들도 있었죠.

 

큰 결정을 하셨는데, 이후 얼라이브 뮤직이 지금까지 활동한 것은 :


일단은 크리틱 앨범이 나왔어요. 이 앨범을 만들기까지는 한 3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존에 있던 곡들도 포함되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 걸린 건데, 지금까지 겪었던 시행착오와 노력들이 집합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아우라지를 기획사로 전환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작년 10월쯤이었거든요. 얼마 안 되었어요. 그때 이후로 첫 앨범이 나온 것이고요. 지금 계획은 4, 6월에 하나씩 더 나가요. 오버플로우(Overflow) 앨범이 4월에 나오고 매스티지(Masstige)6월에 나와요. 그러면서 만들어지는 콘텐츠들, 영상과 이미지와 각종 인터뷰라든지 기타 콘텐츠들을 만들어내는 조직이 되었다는 것이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걸 준비하면서 아무래도 소수가 되다 보니까 이런 게 생겼어요. 여기서 누가 한 명 더 빠지면 안 된다. 예전에는 많으니까 안 와도 되는 거야. 눈에 티도 안 나고, 누군가가 해주겠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누구 하나 빠지면 진짜 큰일 나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써 좀 더 생기는 책임감을 받아들이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서 참 기분이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대표로서 가져야 하는 책임. 돈을 벌어다 줘야 하니까. 계약금을 주는 행위를 했고, 계약서를 썼고, 이걸 내면서 제 나름대로 어느 정도 투자를 했기 때문에 그런 과정에서 약간의 책임감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 같아요. 예전에는 좋은 건 좋은 거다 생각했는데 좋은 건 절대 좋지 않아요. 나쁜 걸 어떻게 좋게 만드느냐에 대한 생각이 생겼어요.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데, 결론적으로 따지고 보면 내가 이 사람을 욕하고 험담하고 속이는 거야. 제가 봤을 때는. 근데 이걸 굉장히 그럴싸하게 동기 부여를 해줘야 하는 거예요. 네가 이걸 만들어서 돈을 버는 과정이 비즈니스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진짜 모습, 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고 얘기를 해줘야 하고, 예전에는 약속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의무잖아요. 내가 시켰으니까 해야 하는 거다. 그걸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을 해주게끔, 동기부여가 되게끔 해주는 과정 자체가 힘든 부분이 있지만 충분히 공유되고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창작 구조가 되어간다는 느낌.

 

얼라이브 뮤직에도 어쩔 수 없이 혼란이 있었을 것 같은데 :


저는 제일 무서운 게, 내가 판단을 잘못해서 애들 미래를 망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커요. 그래서 항상 조심해요. 계속 공부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 만나서 얘기하게 되고. 반대로 대표라는 사람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는 입장인데,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충분한 영업을 못 뛰는 점에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참 좋은 게, 크리틱은 ,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더 잘 할 수 있어요라고 하면서 발로 뛰는 거. 그런 모습 보면서 서로 자극이 되는 부분들도 있고.

 

크리틱의 가능성 :


오늘 인터뷰 자리에는 오지 못했는데, 처음에는 아우라지에 들어오고 싶다고 해서 만났죠. 음악을 들어봤는데 그때는 그냥 그랬어요. 근데 너무 하고 싶다는 눈빛으로 절 보는 거에요. 그래서 GL의 청천한테 니가 오케이하면 나도 오케이하겠다고 했어요. 오케이했고, 같이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죠. 제일 열심히 하는 친구 중에 한 명이에요. 2010, 2011년 정도에 시작했고.

 

본업이 있다 보니 힘든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


첫 번째로는 시간적인 문제가 제일 크고요. 열정이나 하고자 하는 의지 자체는 문제 없어요. 체력적인 부분도 없는데, 어쨌든 하루에 제가 쏟을 수 있는 최대 시간이 6시간이에요. 하루에 4, 5시간 자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하루에 20%는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거고, 40%는 현재를 위해서 열심히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재를 위해서 써야 하는 게 시간적인 문제 때문에 제가 외부 활동을 잘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메일이나 SNS를 통해서 활동하고 서울 쪽도 많은 연락을 취해서 같이 잘 지내고 뭔가를 해보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거죠. 지금 해야 할 음악 모니터링, 곡 만드는 것, 그리고 어떻게 활동해야 할지에 대한 계획 세우기 같은 것만도 시간이 충분히 들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하고 있고. 만약에 크리틱이 잘나가고 소속 뮤지션들이 잘나가서 더 이상 우리가 콘텐츠 생산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안 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면 그 이후는 또 생각해 봐야겠죠. 지금은 그 첫 단계라서요. 시간적인 문제가 제일 크네요. 그 다음이 연애에요. (웃음) 여자 친구랑 지난 주에 헤어졌어요. 근데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이 일보다 사랑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완전 피폐한 거예요.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웃음) 진짜 피폐한 거예요. 여자를 사랑해야 하는데 일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근데 뭔가 하고 있으면 정말 즐거워요. 사실 여자 친구 만나서 같이 노는 게 제일 좋은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어떤 순간에 부딪히면 결국 선택은 일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제일 문제죠.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연결, 교류 :


일단 힙합콘서트라는 게 있을 때는 사이먼도미닉, 바이러스(Virus)와 교류가 있었어요. 그게 사라지고 아우라지가 만드는 얼라이브 같은 경우에는 교류가 없었어요. 클래스가 달랐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기 펠라즈는 완전 슈퍼스타였고, 저희는 그 아래서 발버둥치는 부류의 느낌이 컸어요.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당시 아우라지라고 하면 대학교 동호회라고 했어요. 근데 저희가 부정을 못하겠더라고요. 과연 이 사람들이 음악에 올인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 물어봤을 때는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힘든 부분들이 있었고, 지기 펠라즈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 멋있죠. 제가 추구하는 방향도 달랐거니와 실력 차이나 이미지적인 부분에서 너무 달랐어요. 제이통 같은 경우에는 연락을 하고 지내고, 술제이도 친구니까 알고 지내고.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어요.

 

공연 기획은 언제부터 :


아우라지를 만들면서 하게 된 거죠. 그때부터 또 한 번 인생이 이렇게 된 거죠. (웃음) 제가 기획자적인 성향이 강했던 것 같아요. 일단 집에 가면 시디보다 책이 더 많아요. 그걸 보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쪽으로 의지가 더 있구나. 그래서 기획자 일을 하고 있고, 사실은 1인 다역을 하는 상황이고 희생을 많이 해야 하는 위치거든요. 능력이 뛰어나거나 그런 것보다는 이 신을 사랑하고 희생할 수 있는지 물어봤을 때, 그게 나와 맞아 떨어져서 희생을 많이 했던 것 같고. 거기서 얻고자 하는 건 없었어요. 그냥 진짜 내가 이렇게 해서 정말 주변에 있는 사람들, 나 포함해서 다 같이 재미있어지는 그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 동원 정도 :


2012년 기준으로 보면 평균 120. 무료 관객까지 치면 200명 정도. 2013년에는 마지막 콘서트 한 번 했는데 그때 유료관객이 80, 무료로는 표를 좀 뿌려서 150명 정도 오셨어요.

 

부산 안에서는 어디서 공연을 하는지 :


부산대 앞에 있는 인터플레이라는 공간에서 했고요. 패브릭에서도 잠깐 했고, 이후에 바이닐 언더그라운드로 옮겼어요. 오즈홀이 있는데 우리한테는 너무 큰 거예요. 저희 공연은 부산 아티스트 중심으로 가다 보니까 티켓 몰이가 힘들어요. 거의 투자도 없고, 프로모션은 없고 대관료 쓰는 정도. 관객 몰이가 힘드니까 오즈홀은 갈 수 없는 거죠. 그렇게 되면 서울 뮤지션들 섭외해서 라인업을 다시 꾸려야 하는데, 그건 안 하니까. 서울 뮤지션들로만 공연 꾸리는 건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고, 굳이 제가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다들 비즈니스라고 해서 이익 창출이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드는가가 중요하거든요.

 




부산의 인프라 :


제가 만드는 것들은 로컬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뭔가가 없어서 하지 못한다는 걸 깨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항상 구조적인 부분들을 먼저 생각하지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않게 된 거죠. 그래서 판을 짰고, 그걸 움직이는 게 제 입장이죠. 물론 다른 분들께서 열심히 만들어 주셔서 어느 정도 신이 형성되었지만요. 그래서 아우라지가 아니더라도 부산 출신의 아티스트들은 충분히 도와주고 함께할 의향이 있습니다. 저희 HC 스튜디오도 같이 할 수 있고. 지금 놀고 있잖아요. (웃음) 오셔서 연습하면 돼요. 그래서 판을 키우고 싶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생산자, 유통, 시장 측면에서 소비자가 있으면 치열하게 만들고, 팬의 입장에서 멋지게 포장하고, 멋진 것들을 소비하는 이 세 박자를 이루는 게 꿈이에요. 그게 음악이든 패션이든 뭐든지 간에 그렇게 돌아가게끔 하는 게 꿈이거든요. 그걸 하려면 다 같이 해야지 저 혼자 잘났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공연 외의 포맷 :


저는 노동운동 하는 곳에서도 공연을 몇 번 했어요. 강정까지 간 적도 있고. 인디 페스티벌에 부스로 들어간 적도 있고. 부산 힙합에서 강의 같은 걸 한 적도 있고, 칼럼도 쓴 적 있고, 문화 예술 쪽으로 이것 저것 했어요. 특정한 형태에 매달리는 것은 아니고 큰 골격을 생각하다 보니까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었고, 예전에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많이 움직였어요. 철저히 개인으로서의 활동이었죠. 지금은 레이블이 생기고 대표가 되다 보니까 제 이미지가 또 회사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서 발언도, 공연도 내려놓은 상태죠. 대외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우리 이미지와 맞지 않으면 취소하는 것도 있고요.

 

부산 안에서의 공감대 형성 :


하나의 지방색이라고 볼 수 있죠. 서울 빼고는 다 지방이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부산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맙다는 이야기도 들어봤어요. 부산에서 활동해줘서 고맙다고. 서로가 존경하는 거죠. 들어줘서 고맙고, 해줘서 고맙고. 게스트들이 서울에 오면 부산이 확실히 살아있대요. 그게 뭔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그렇대요. 야구처럼. (웃음) 그런 것들이 다 힘이 되고 좋으니까요.

 

부산 내부를 견고하게 다져가는 것 :


자칫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어요. 그걸 타파해보고자 하는 게 부산 외의 아티스트 분들과 교류를 하는 건데 그런 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저 스스로가 아티스트로서 어떤 정체성이 강해서 내가 이 사람보다 못하다는 박탈감, 위축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부분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기획자로서도 접하지도 않았던 것 같고. 이제 바꿔야죠. 좀 더 교류를 많이 하고, 초대도 하고 그럴 생각입니다. 서울 신도 궁금하기도 하고. 다행히 스웨이디(S'way.D), 지로(Z-Lo)와 친하다 보니까 하이라이트 공연 때도 인사하기도 했고 그랬어요.

 

부산 신(scene)의 형성 :


서울은 매주 공연이 있다고 들었어요. 부산은 그렇지 않거든요. 서울에는 앨범을 제작하는 레이블도 열 개는 될 것 같아요. 부산은 저희 하나밖에 없어요 (현재 2). 활동할 수 있는 순환의 고리가 연결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연결 고리를 이어줄 수 있을 만한 커뮤니티, 오프라인 공간, 뮤지션과의 관계 이런 것들이 허술한 편이에요. 그런 것들을 이어가려고 만든 것이 얼라이브 뮤직 홈페이지였고, 레이블이었고, 조만간 공간도 만들 것 같아요. 얼라이브 뮤직 홈페이지를 처음 만들었던 이유는 콘텐츠를 생산함에 따라 그걸 잘 유통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프로모션이 당연히 따라와야 하는데 미디어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미디어가 되기 위해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미디어의 경우에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독특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깊은 조예가 있기보다는 관심이 있는 친구와 처음에 함께 했어요. 잘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케이스죠. 제작 과정에서 소통도 어려웠고. 그래서 지금은 말 그대로 레이블을 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밴드 공연장에 얹혀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힙합 음악과 전자 음악에 맞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게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고, 추진 방향이고, 계획입니다.

 

부산 밖에서의 피드백 :


부산에서 나가자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음악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이고 그걸 담는 그릇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인데, 이렇게 앨범이 나오면 그걸 알리는 홍보 수단이 부산 관련된 곳이 아니라 페이스북 계정들이나 힙합플레이야와 같은 곳이라는 거죠. 거기서 형성되어 있는 부산의 시선들을 돌리는 거죠. 그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아마 부산 내의 인지도라는 것 자체는 너무 무의미한 것 같고요. 힙합에 있어서 문화적 요소는 서울에 모여 있기 때문에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눈을 얼마나 부산으로 돌려올 수 있느냐가 문제인 거죠. 그게 제 생각입니다.

 

부산에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


거의 안 받은 것 같아요. 많은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았어요. 지기 펠라즈의 방향이나 모습이 저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고, 나름의 관점과 철학이 있는 상황이었던지라 영향을 받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사람보다는 책이나 기타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받은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 :


일단 올해는 앨범 만드는 일에 집중할 것 같고,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공간 산업까지 해서 음악을 만드는 것은 HC 스튜디오에서 하고 유통, 홍보는 지금 추진 중인 매거진과 얼라이브 뮤직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저희 자체적인 것들만 이야기 하면요. 최종적으로는 관객들과 직접 닿을 수 있는 공간까지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그런 것들을 만들어서 하나의 순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그것이 힙합의 영역이든, 문화적 영역이든 관계 없이 음악으로 되어 있는 모든 것들을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외 인터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부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신의 움직임이나 발전하는 부분, 뮤지션 소개들도 하고 싶어요. 많이들 조명 받았으면 좋겠어요. 부산에 좋은 뮤지션들이 많거든요. 스웨이디나 지로 같은 친구들도 있고. 잠시 설명을 드리면저의 관점에서는 아우라지나 그랜드픽스처럼 큰 구조를 가지고 가는 크루가 있다면 스웨이디가 있는 플라잇 투 라이프(Flight 2 Life, F2L)라는 팀도 있는데 성격이 완전 달라요. 아우라지는 문화, 예술적인 느낌을 많이 품고 있고, 그랜드픽스는 힙합 단체인데 스케리피가 굉장히 영향력 있게 하고 있는 상태이고, F2L은 서울을 지향하는 것 같아요. 서울 뮤지션들과 교류를 하고 있고. 안티도트(ANTIDOTE/편집매장) 쪽 분들은 바다 문화, 해양 스포츠와 관련된 문화를 이끌고 있고. 굉장히 독특하게 해나가고 있거든요. 크리틱(Critic)F2L 소속이다 보니까 저희끼리는 활발해요. 또 만나기로 했고. 근데 그랜드픽스와 아우라지는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같이 있었거든요. 10년 차이가 나는 어린 친구들도 조금씩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고. 제일 문제는 교류가 별로 없어요. 저희도 DMS 형님들이나 두사람 형님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 게 문제인 것 같고, 그 부분을 트고 싶고. 그나마 1세대 분들과 친하게 지내는 건, JU 형님이 부산에 계십니다. 그래서 같이 얼굴 보고 그러는 것 빼고는 잘 없어요. JU 님은 말 그대로 DJ만 하고 계세요. 최근에는 'Sound Bombing'이라는 파티를 올모스트 페이머스(Almost Famous)라는 공간에서 계속 열고 계시더라고요.

(* 참고: F2L 인터뷰)

 

프리즈몰릭 분들은 그랜드픽스와 아우라지는 몇 멤버들 빼면 전체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아니라고 했는데 :


대외적으로 전쟁을 선포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관계를 설정하는 것도 웃기지만예를 들면 진짜 안 좋은 관계가 있지만 주위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교류를 하는 거예요그냥 하는 거죠근데 얘랑 대놓고 교류를 해버리면 같은 식구로서 예의가 아닌 거 있잖아요그렇게 이제 약간 등을 돌려가다 보니까 교류가 뜸해지고그러다 보니까 없다 라고 할 정도가 되어 버렸고근데 긴조(Ginzo) 같은 경우에는 부산에서 비트메이커로 활동하는 사람이 적다 보니 스케리피와 계속 같이 작업 하고 그러죠저도 물론 프리즈몰릭과 연락합니다.


부산만의 것이 있다면 :


서울 쪽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약간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순수함이라고 해야 하나?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보석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표현하는 법도 그렇고 만들어가는 것도 굉장히 서툴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재능과 눈빛들은 진짜 멋있어요. 그것들이 어느 순간 어느 기회, 환경과 만났을 때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도 멋진 부분이죠.

 

* 관련 링크: 얼라이브 뮤직 홈페이지




 - 아발란채(AVALANCHE/我發爛彩/AVLX)

 

10.jpg


당장 보여준 것은 없지만 계획된 것은 많다는 인터뷰에서는 약간의 겸손함과 적절한 자신감이 모두 느껴졌다. 서로 다른 색깔이 모여 있지만 공통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는 이 크루는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계속 주목했으면 한다. 멤버는 매그닉(!magnic!), 제이플로우(J Flow), MSG, 그리고 일랍이 있다. 멤버 매그닉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간단한 소개부터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매그닉입니다. 작년에 믹스테입 [T.I.A.B(To Infinity And Beyond)]를 냈었고, 올해에도 여러 가지를 준비 중입니다. 현재 아발란채(AVALANCHE/我發爛彩/AVLX)에 속해있습니다.

 

랩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

 

랩이다라는 자각은 크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무렵부터 여러 가요들에 나오는 랩을 따라 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더 큰 끌림을 느끼게 됐고, 고등학교 다닐 무렵 술제이(Sool-J) 형이 중심이 되어 열렸던 프리스타일 타운 행사나 사이퍼 등에 참여하며 랩의 참 재미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저절로 재미있어서 끌렸다정도가 되겠네요.

 

언제부터, 어떻게 음악들을 접했는지 :

 

본격적으로 힙합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듣게 된 건 고등학교 입학 전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친했던 친구의 추천으로 에미넴(Eminem)“Lose Yourself”를 듣고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그 뒤 그 친구를 따라 보러 갔던 공연이 제 인생을 흔들어놓기 시작하였어요. 부산대학교 앞 인터플레이라는 곳에서 열렸던 '소울메이트'라는 이름의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진이 파워 플라워(Power Flower), 가리온, 대팔(Daepal), 사이먼 도미닉, 롸키엘 등이었어요.

 

활동의 시작 :

 

작년 믹스테입부터가 본격적인 활동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전에는 프리스타일 랩이 재미있어서 사이퍼를 자주 열고 랩을 하며 정말 많이 놀았어요. 마음 맞는 친구들과 길거리공연, 클럽 공연 등도 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아발란채는 어떤 크루인가요? :

 

아발란채는 우리들 스스로의 색을 더 뚜렷하게 하기 위한 모임입니다. 'AVALANCHE'라는 단어 본래의 뜻(눈/산사태)도 가지고 있지만, 그 음을 한자로 옮긴 我發爛彩 네 글자의 뜻도 포함하는데요. '내가 발하는 빛의 색깔'이란 이 뜻 자체가 우리를 대표하는 의미입니다. 묵묵히 우리만의 것을 하고자 하는 친구들의 모임이에요! 그리고 일단은 무엇보다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한 친구들이고요.

 

아발란채의 결성 시기나 당시 상황 :

 

직간접적으로 서로 이미 인연이 닿아있던 친구들입니다. 구체적인 시작을 찾아보자면 2012년이었던 것 같고요. 색깔이 맞다 느껴지고 앞으로의 그림들이 그려져서 원래 친하게 지내던 돌이와 그 무렵 친해졌던 짱유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했어요. 일년 뒤쯤에 제이플로우, MSG가 차례로 들어왔고요.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

 

저는 부산 지역에서 사이퍼를 꾸준히 열었었지만 흥미가 떨어진 지 조금 된 것 같아요. 호스트 MC로도 여러 파티에서 마이크를 잡은 적이 있고 앞으로도 잘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에요. MSG는 프리스타일 랩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이 있고, 제이플로우는 머니메이커스(Money Maker$)의 멤버로 활동해왔습니다. 크루 단위의 작품은 아직은 계획이 없고요. 꾸준히 각자 있는 곳에서 공연을 하고, 음악을 만들고 그렇게 활동하고 있어요. 제 지난 음악을 들어보고 싶으시다면 믹스테입 [T.I.A.B]를 받아 감상해 주세요! 제이플로우는 지난해 믹스테입 [Soul Food], 올해에는 EP [Inspiration]을 발표했습니다. MSG는 예전에 믹스테입 [Bad]를 발표했었고, 올해 첫 싱글 [Lonely Night]을 발표했습니다.

 

크루 자체가 독특한 느낌이 있다는 의견에 대한 생각 :

 

먼저 제이플로우의 이번 EP [Inspiration]의 커버는 아티스트 정휴일 씨가 맡아 작업해 주셨습니다. 제이플로우의 말에 따르면 그 그림이 먼저고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EP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반응들을 보니 국내에는 이런 경우가 많이 없었나 보다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번에 발매된 일랍의 앨범 전반에 깔려 있는 생각들. 극단적인 가사, 극단적인 프로듀싱 작법들, 거기에 저나 MSG의 여러 가지 시도들이 한데 합쳐져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가진 느낌이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나 생각됩니다. 제 개인적으론 이런 반응들이 상당히 감사합니다. 우리들이 적어도 뭔가를 계속 재미있게 하려 했다는 게 느껴졌다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사실 세상 사람들이 거의 다 그렇듯, 우리들 스스로는 큰 자각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응들을 즐기고 있어요.

 

지금까지 부산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느낀 점 :

 

.... 몹시 기묘한 형태의 신이 어쨌든 계속해서 유지되어 간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여러 형들에게 '부산에서 힙합은 절대 안 된다. 다들 형제! 부산! 이런 것만 강조하여 지켜질 것이 지켜지지 않는다. 결국 정기적으로 망한다.' 이런 류의 이야길 자주 들어왔어요. 그래서 부산에서의 힙합은 환상이나 신기루같이 보였어요.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방들도 크게 다를 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관객층의 저연령화, 계속 빠져나가고 새로 들어오는 얇은 층의 관객 문제는 부산도 역시 안고 있는 큰 문제 중 하나인데, 이건 제가 느끼기엔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부정적인 말만 했지만, 저에겐 그래도 희망적으로 느껴집니다. 절반은 부산에서 꾸준히 활동하시는 다른 분들의 덕분이 될 테고, 절반은 우리가 영민하게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죠.

 

부산에서 지켜본 활동이나 공연 등에 대한 감상 :

 

벅와일즈의 싸우스타운에 자주 놀러 갔어요. 열리는 파티, 공연마다 거의 갔는데 얼마 전에 문을 닫으면서 마지막 파티를 했어요. 놀면서도 되게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부산에서 꾸준히 공연을 열고 있는 아우라지의 공연도 매번 놀러 가는데 사람이 매번 100명 이상은 오는 것 같아요. 부산에선 이 정도의 관객이 오기 쉽지 않거든요. 그리고 그랜드픽스의 공연도 할 때마다 보러 갑니다. 이쪽도 역시 사람이 이 정도씩 오는데, 자신들의 고정된 관객층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거의 이제 시작인 우리에겐 부럽게 느껴져요. 그 외에도 아마추어 크루들도 공연을 자주 엽니다. 부산에 힙합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분명 더 많이 있을 텐데 좀 더 나와서 함께 즐겨주셨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리고 경성대 올모스트 페이머스(Almost Famous)라는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여러 파티들은 부산에선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예요. 특히 매주 목요일 열리는 'Body and Soul'이라는 파티가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음악이 진짜 죽여줘요. 또 이번에 2회째를 맞이하는 'Voodoo In Garage'라는 파티는 진짜 최고인 것 같아요. 부산에서 본 파티 중에 제일 제대로인 데다 최고였어요.

 

스스로가, 혹은 크루가 부산 힙합에서 받은 영향이 있는지 :

 

저는 우리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유의 반골, 외골수 기질이 이런 데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영향을 받아 '남들과는 반대로' 정신을 낳았어요. 결국 아주 큰 틀 안에서는 저희도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틀을 깨고 싶어하는 게 우리인 것 같아요. 오히려 우리는 부산보단 한국 자체를 대표하고 싶은 것이 꿈이에요. 또 덧붙이자면 그냥 지금의 부산보단 새로운 부산을 대표하고 싶고요. 이게 '부산 힙합'이 준 또 다른 영향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 :

 

일단 얼마 전 일랍의 데뷔 앨범 [일랍]이 발매됐습니다! 많이 사랑해주시고요! 멤버들 모두가 각자의 프로젝트에 매진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계획은 구체적으론 모르겠고, 저는 스무스잼(SmoothJam)이라는 친구와 프로젝트 앨범을 계획하고 있어요. 아니면 싱글이 먼저 나올 수도 있고요. 또 짧게는 내년까지 정기 공연을 열 계획입니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 경성대 앞 클럽 리얼라이즈에서 열릴 계획이고요. 이번 달인 3 22일에 첫 번째 공연으로 일랍의 쇼케이스가 열릴 계획입니다. 많이들 놀러 와주세요! 그리고 아발란채의 움직임도 계속해서 주시해주세요. 분명 길이길이 기억되게 될 거예요.


* 관련 링크: 아발란채 페이스북


 


 크랙브레인

 

11.jpg


인터뷰에서 딜비(D1.B2)는 'Crack Brain'을 검색하면 '미치광이'라는 뜻이 나오며, 그 자체가 크루의 모든 면을 설명한다고 말했다. 크루는 딜비 외에도 키즈밋(Kizmit), 키모(KIMO), 라팔로(Lapallo), 페노투엘에스(Pheno2LS), 나민(Nah-mean), 솔키(Solkey), 멜로마니아(Melomania), PL, 돌코, 덕배, 나민, 비수, 색기, 이주희, 김주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간단하게 본인 및 본인 소속 소개 :


안녕하세요. 크랙브레인(Crack Brain) 소속 막내 열 아홉 살 딜비입니다. (웃음)

 

랩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

 

중학교 친구 제이스타일(J-Style)이 저희 집에 놀러 와서 술제이 님이 진행하시는 'MIC SWAGGER' 허클베리피 영상을 보여줘서 그때 멋있다고 느껴져서 시작한 거 같아요.

 

언제부터, 어떤 경로를 통해 음악들을 접했는지 :

 

친구가 제공하는 음악들을 듣고, 또 힙합플레이야를 통해 여러 아티스트를 알고 음악을 접했습니다.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 건 2012년 테러픽 플로우(Terrific Flow)라는 크루를 결성하고 해체하면서 첫 공연을 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크랙브레인이 결성된 계기 :

 

처음에는 단체를 만들어 음악을 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시작하여 몇 멤버들이 크루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멤버들을 구성하기 위해 오디션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멤버들로 구성되기 전 많은 사람들이 영입되었고, 안타까운 헤어짐을 겪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현재 구성원들이 나이가 어린 이유는 아마 모든 멤버들이 고등학생일 때 결성되었고, 추가로 들어온 사람들은 저희들이 같이 음악 하는 친구들을 소개받아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는 오디션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저희 지인 중 정말 같이 하고 싶은 분에게 제안을 하는 식이죠. 말이 길었네요. 마지막으로 저희 크루는 진짜 음악이란 것 빼고도 늘 함께 하고 싶은 가족 같아요. 이제는 음악을 위해 만난 단체인가? 할 정도로 가족같이 가까운 존재들이죠. 오글거리지만 꼭 말하고자 한다면 피가 아닌 꿈을 나눈 가족이랄까요?

 

지금까지 크루 단위로, 혹은 개인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

 

현재는 크랙브레인의 막내로 활동하고 있고, 사운드클라우드에 곡을 올리면 SNS를 통해 알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원허닛(1HUNNIT) 크루의 비트 메이커인 휴즈베이비(HUGEBABY) 님과 “ICE COFFEE”를 싱글로 내서 많은 분들이 들을 수 있도록 모든 음원 사이트에 유통을 마쳤습니다.

 

부산 내에서 활동하는 것에 따른 제약이나 아쉬움, 혹은 자부심이나 장점 :

 

아마도 제약이라 생각하는 부분은 직접적인 교류, 즉, 많은 아티스트들과 만남이라든지? 그런 부분이 약간의 제약이라면 제약이랄까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모르지만 저희는 제약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아마도 부산 사이퍼의 상황이 다 말해준다고 생각하네요. 사이퍼가 많은 아티스트들과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큰 문화잖아요? 서울에는 그런 컨택이 가능한 문화가 왕성한 반면, 부산은 그런 부분이 적다고 생각이 든 적이 꽤 있지요. 제약보다는 '아쉬운 부분'이네요! 그 부분이 가장 아쉬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자부심 혹은 장점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공통되는 부분일 수 있습니다. '부산'이라는 단어만으로 뭔가 모두 하나가 되는 느낌이 자부심이라고 할까요? 그런 자부심이 음악적인 프라이드로 묻어 나오는 거 같아요.

 

활동하면서 느낀 점들 :

 

공연도 하고 곡들도 올리고 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끼는데요. 모든 멤버들이 어떻게 이렇게 모였는지 생각하면 매번 신기함을 느껴요. 게다가 모든 멤버들이 다 느낌들이 똑같을 정도로 비슷해요. 음악적으로 비슷하다기보단 인간적으로 랄까요? 이렇게 같이 즐기고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늘 신기하게 느껴지죠.

 

부산에서 지켜본 활동이나 공연 등에 대한 감상 :

 

사이퍼를 진행하고 광안리나 부산 지역 안에서 계절에 한해 가끔 버스킹을 진행하고 있어요! 정규 공연 'CRACK THE MUZIK'도 참가하고 있고요. 제가 부산에서 본 공연은 싸우스타운쇼, 아우라지 땡큐 콘서트 등을 봤네요 공연을 보면서 느낀 점은 능청스럽고 재치 있는 멘트나 퍼포먼스, 제스처, 음악성 등 여러 가지 배울 점이 참 많다고 느꼈어요! . 저게 프로구나. 이러면서요(웃음)

 

스스로가, 혹은 크루가 부산 힙합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부산 힙합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저희도 활동을 하면서 아우라지, 그랜드픽스 분들이 부산 아티스트로서 선뜻 도움을 주셔서 더 멋진 공연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 번 리스펙과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노력도 많지만 대표적으로 제이통 님을 빼놓을 수 없죠. 덕분에 부산 힙합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얻을 수 있지 않았나 라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음악들을 통해 '우리도 부산에서 이런 음악들을 하고 있다'고 보여드리고 싶네요.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더 나은 환경에서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항상 부산 힙합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저희도 그 에너지를 받아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현재 부산 출신으로서 부산 프라이드를 가지고 활동해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노력에 보답하는 방법은 열심히 하는 거겠죠.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

 

늘 해오던 대로 저희만의 방식으로 뒤쳐지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거죠. 저희의 소식은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서 접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 관련 링크: 크랙 브레인 페이스북






6) 그 외 음악적 기반


 봄비노 레코드

 

12.jpg


봄비노 레코드가 오프라인 숍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인 본 뷔노(Von Bueno, 혹은 말불(Malbool))가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봄비노 레코드는 덥, 루츠 레게, 스카 등 레게 음악과 베이스 뮤직, 댄스 뮤직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반들을 취급하고 있다. 외에도 베이스먼트(BASSment)라는 파티이자 모임을 꾸려 나가고 있으며, 이들은 레게 사운드시스템에 기반한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 일본의 DJ들과도 교류를 왕성하게 하고 있으며, 외에도 로얄 플래쉬 POA 사운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이 사운드 시스템은 비욘드 개러지(Beyond Garage, '8)-공연장/클럽/바' 참고)에서 느낄 수 있다. 자세한 것은 링크를 참조하자.

 

* 관련 링크 : 봄비노레코드 홈페이지, 베이스먼트 페이스북

 



- JU


ju-.jpg

가리온이 처음 탄생할 때 마스터플랜과 가리온에 있었던 DJ. 다른 이름은 최선생 재유(Che先生 JU). 가리온과 결별한 뒤 부산으로 내려와 올모스트 페이머스라는 클럽의 레지던트 DJ로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Sound Bombin’', 'Golden Days' 등의 파티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며 유행을 벗어난 독창적인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부산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는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 현재 가장 멋진 로컬 DJ 중 한 명이다. 지역 내에서 DJ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으니, 믿고 찾아가서 듣자.

 



 - OJ 사운드

ojsound.jpg


과거 비트밥의 명맥을 잇고 있는 신생 공연/문화 단체이다. 예전 비트밥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부산 내에서 공연을 기획하고 열었던 곳이다. OJ 사운드(OJ Sound)는 창작 공연을 이어 나가며 부산을 중심으로 좀 더 많은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다. 이들의 목표는 로컬 신의 뮤지션들을 발굴하고 양성하며, 좋은 공연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최근 사상 인디스테이션에서 새학기라는 공연을 열었다.

 

* 관련 링크: OJ Sound 페이스북






7) 사이퍼


 - 부대 똥다리

 

13_2.jpg


부산 사이퍼를 대표하는 장소이며, 부산대 앞 전철역 아래 온천천 벽을 이르는 말이다. 정비 전 냄새가 심해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곳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환경이 개선된 지금도 여전히 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똥다리가 부산 사이퍼의 중심지가 된 유래에 관해서는 아발란채의 매그닉에게 들을 수 있었다.

 

처음 사이퍼에 참여했던 건 2006년 초 즈음이었어요. 그 당시 프리스타일 대회에서 우승하셨던 술제이 형의 주도로 조금씩 사이퍼와 관련된 움직임이 생기던 때였어요. 장소는 부산대 지하철 역 바로 밑. 일명 '똥다리'라고 부르는 장소였고, 거기서 정기적인 모임이 열렸습니다. 정기적으로 1, 2년 참가하다 보니 제가 나중엔 모임을 열게 됐어요. 당시의 멤버들은 지금 각자의 삶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고요. 부산에서 랩 했던 사람들이라면 다 한 번씩은 들렀었다 생각해도 될 거예요. 지금 기억나는 친구 중 한 명은 그랜드픽스 크루의 익스에이러라는 친구가 있네요! 저랑 동갑인 친구인데 프리스타일 랩하면서 친해졌던 친구예요.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요. 지금 사이퍼는 크랙브레인이라는 크루에 속해 있는 친구들이 거의 주도해서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에요. 작년에 그래도 한두 번 놀러 갔었던 기억이 나네요. 장소는 여전히 똥다리였어요. 06년 당시 술제이 형이 일종의 랜드마크, 상징적 장소로 부대 똥다리가 좋겠다고 이야기 하셨었고, 그 이후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거기서 매주 사이퍼가 열렸어요. , 그리고 ;프리스타일 스웨거;라는 단체가 또 있는데 시작은 저를 포함한 몇 명의 MC와 부산의 비보이들이었어요. 비보이와 MC가 함께 놀고 교류할 수 있는 사이퍼가 목표였고, 지금도 꾸준히 모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배틀을 몇 번 열기도 했는데 MC들의 참여가 저조해서 규모가 점점 줄어 현재는 거의 댄서들 위주로 행사나 사이퍼가 진행이 되는 것 같아 아쉬워요."


 

그래서 다음은 현재 사이퍼를 이어나가고 있는 크랙브레인 크루의 멤버 중 한 명인 딜비의 이야기이다.

 

처음 시작은 제이스타일 친구와 함께 프리스타일 타운 싸이월드 클럽에서 마이크 스웨거를 찾아 보던 중 부산에서 마이크 스웨거를 연다는 걸 보고 사이퍼인 줄 모르고 둘이서 보러 갔었죠. (웃음) 그런데 으스스한 분위기에 덩치 큰 형님들이 프리스타일 랩을 하는걸 보고 멋있는데 난 못하겠네라고 생각하다가 꾸준히 가다 보니 형들과도 친해지고, 또 한 형이 한번 이끌어보지 않겠냐고 제의하셔서 앰프도 사서 개조하고 이렇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이퍼는 오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건 말건 진행하지만 요즘은 겨울이고…(당시 2) 또 형들도 크게 흥미도 느끼지 못한다고 하셔서 저 혼자 할 때도 있고, 친구와 둘이 할 때가 많아졌네요. 또 사람이 안 오니 쉴 때도 많고요. 윗잔다리를 방문했었는데 8명이 사이퍼를 하더라고요. 그때는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프리스타일을 주로 하다 보니 스스로가 못한다고 생각해서 안 오는 경우도 많고, 부산에선 저를 포함해 덩치가 다 큰 형들이 오다 보니 멀리서 보다 갔다고 하던 분들도 많으시더라고요. 또 새로운 분들이 오셔도 한두 번 오거나 말고 그러거든요. SNS에서 사이퍼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네요, 허허. 공연이 있는 공연장 앞에서 진행하면, 예를 들어 허클베리피 님이나 루이(Louie), 테이크원(TakeOne) 님 등이 같이 오셔서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우리끼리 웃고 즐기고 하네요. (웃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주셨으면 해요. 무서운 사람도 아니고 다 같이 즐기고 이끌어 나가야 할 문화니까요.




- 장전동 아지트


14_2.jpg

크랙브레인 멤버들은 사이퍼를 열 때 아지트라는 장소를 쓰기도 한다. 아지트는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에 위치하는, 청년 문화를 주도해 온 독립문화공간이다. 부산 프리스타일 타운에서 가끔씩 여기서 사이퍼를 열어 놀러 가게 되었던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건물 전체가 그래피티로 꾸며져 있어 분위기 있다. 이곳은 연습 장소로 쓰이기도 하는데, 몇 사람들은 가끔 색다른 공간에서 연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아지트로 가서 연습하고 놀기도 한다. 외에도 아지트에선 많은 문화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말 그대로 다용도 문화 공간이다. 위치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1 74-36번지. 장전역 3번 출구와 1번 출구 사이 길이 하나 있는데, 그 안으로 의심하지 말고 직진을 하다 보면 아파트 단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직진하면 아지트 간판이 반길 것이다. 그 외에도 광안리 만남의 광장, 부산역 광장이나 해운대에서도 아주 가끔 사이퍼가 열리기도 한다.

 





8) 장소들

 

 - 스트리트 숍

 

▶ 발란사(Balansa)


15.jpg

발란사(Balansa)는 2008년에 열린 공간이고, 이후 발란사 로프트(Balansa Loft)라는 다른 공간이 잠시 생겼지만 지금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디렉터이자 숍키퍼인 김지훈 대표님은 물건을 파는 일 외에도 레코드 데이를 여는 등 여러 가지 문화 행사를 시도해왔다. 이곳 역시 하나의 문화를 담아낸 공간인 셈이다. 짧게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발란사는 2008년부터 시작했고요. 발란사 뜻은 원래는 Balance라는 뜻인데 균형, 저울 이런 뜻이지만 한글로 하면 얼룩 반(斑) 자에 어우러질 란()을 써서(斑亂社)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뜻. 여러 색깔이 모여 빛을 낸다는 뜻이에요.


다양한 것들을 다루고 있는데, 첫 번째로 제가 좋아하는 걸 다루는데요. 레코드도 있고, 향도 있고, 음악 좋아해서 음반도 있고. 발란사 로프트는 이제 거의 개인 사무실처럼 쓰고 있어요. 360과도 많은 일들을 했지만 저는 DJ는 아니고(웃음), 멤버는 아니지만 다 친하게 지내고 그렇습니다. 부산 안에서의 파티나 이런 것들은 함께 하고 있고요. DJ 진무(Jinmoo)와 노멀 컨디션(Normal Condition)이라는 것도 열고 있는데, 비정기적이죠.


예전부터 이런 일을 하고 있었는데, (* 예전에 부산 카시나에서 일하셨다) 본격적으로 한 건 2008년부터고, 그전부터 이런 일을 좋아하고 계속 하고 있었으니까요. 우리 외에도 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고, 어린 친구들도 많이 해주고 하면 좋을 텐데 아쉬운 것도 많고 그런 게 있기는 하지만 열심히 하니까, 계속 해야 이제 좋은 거니까 저희도 계속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찾아주면 좋죠. 하는 것도 꾸준히 해야 하고. 그게 도움이 되니까. 겨울에도 이렇게 취재를 와주면 좋은데 대부분 여름에만 찾아오거든요. 그래도 제이통도 있고 다들 열심히 해줘서 좋습니다. 지금은 숍까지는 아니고, 안티도트랑은 또 다른데 올해는 아마 숍에 좀 더 집중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찾는 분들은 많이들 찾아주시니까요.

 

주소는 남구 대연3 60-6번지. 경성대/부경대역 3번 출구와 5번 출구 사이 큰 도로로 좀 들어오다가 국대떡볶이 맞은편에 휴대전화 가게 둘 사이 골목이 있다. 그 길로 쭉 들어오다 보면 나온다.


* 관련 링크: Balansa 홈페이지

 



▶ 고사우스(Go South)

 

16_2.jpg

고사우스(Go South)는 중구 대청동2가 30-13에 위치한 편집매장이다. 내가 갔을 당시 고사우스는 안티도트(Anti Dote)의 공사 때문에 약간 두 매장의 결합 형태가 되어 있었고, 사람도 많아 분주해 보였다. 참고로 안티도트는 고사우스의 대표가 2007년 문을 연 또 다른 부산의 편집매장이며, 고사우스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여 함께 운영되던 곳이다. 옆에는 스웰(Swell)이라는 카페도 함께 있고, 지하에는 미용실도 있다. 처음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이곳을 찾아 오는 사람들도 많다. 분명한 것은 이 곳에 오면 그 어떤 숍과는 다른 분위기와 매력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고유의 색이 확실한 매장이다. 그만큼 단순히 물건을 파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다음은 대표님과의 인터뷰이다.

 

고사우스는 토탈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편집매장인데, 기존의 서울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 파는 브랜드들이 많기는 하지만, 고사우스라는 네이밍 자체가 남쪽으로 가다라는 뜻이잖아요. 부산만의 독특한 컨셉으로 기존의 제품들을 고객들한테 전달하는 편집매장이에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커피숍이나 미용실도 있고, 여러 가지 것들을 한데 복합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부산에 사는 젊은 친구들이 지향할 수 있는, 우리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그런 공간이라고 보시면 돼요.


옆에는 안티도트가 있었는데 저희가 공사도 좀 있고 그래서 잠시 이쪽으로 옮겨 같이 하고 있는 중이에요. 저쪽 공사가 끝나고 다시 갈지 안 갈지는 고민 중인데, 사실 지금 같은 골목길 안에 두 가지 숍이 있다 보니까두 곳을 다른 콘셉트로 시작했지만 디렉터들이 보는 눈이 비슷하다 보니 안티도트고 그렇고 고사우스도 그렇고 색깔이 점점 같아지고 있어서 굳이 두 개로 나눌 필요가 없더라고요. 여기서 같이 진행을 할까 고민 중이에요.


안티도트는 2007년부터 시작되었고요. 부산을 베이스로 시작되었고, 고사우스는 2년이 다 되어가요. 숍이나 이런 것들을 운영하는 부분 외에도 행사를 계속 만들고 있는데, 부산 로컬 신에는 여러 아티스트들도 있고 활동하는 친구들이 되게 많아요. 부산에서 활동만 열심히 해도 되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수요자들의 욕구들이 많이 없다 보니까 서울로 다 떠나잖아요. 그런 게 저희가 볼 때 안타까운 현실이라서. 서울과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는 자연환경이나 여러 가지 특징적인 부분들이 다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도 다르게 가는 게 옳다고 봐요. 한국 자체는 너무 획일화되고 유행도 똑같이 흘러가서 이런 부분들이 되게 안타깝거든요. 부산은 부산대로의 스타일이 있어야 하고 서울은 서울대로의 스타일이 있어야, 그게 서로 같이 공존해야 선진국이고 멋진 나라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서울에서 뭐가 유행한다 이러면 전국으로 몇 개월이 지나서 같이 유행을 하잖아요. 저희가 그런 것들을 지켜볼 때 문화적으로 굉장히 성숙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미국 같은 경우에도 뉴욕의 스타일과 LA의 스타일은 다르잖아요. 그런 것들을 볼 때, 작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서울과 부산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아무래도 지금은 두 곳을 합쳐서 그런 부분도 있지만 다양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스케이트보드도 있고 서핑 관련 장비도 있습니다. 저희가 의류만 판매하던 숍을 뛰어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의류만 파는 숍들은 되게 많잖아요. 스트리트 의류만 파는 곳도 많고. 저희는 특정 타깃을 잡고 있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한국에 있을까 하는 의문을 많이 가지거든요. 서울에도 사실 그런 공간이 많이 없고. 그래서 부산은 부산 나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스케이트보드, 서핑보드 이런 것들도 판매하면서 옷도 팔고 액세서리도 파는 그런 공간을 만들게 된 거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서 완성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안티도트는 홍대에 매장이 있었지만 철수한 상태예요. 왜냐면 서울로 진출을 하면서 충분히 그곳에 있는 친구들한테 안티도트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지기는 했는데, 저희가 생각할 때는 너무 시기상조였다는 느낌이 많이 들거든요. 왜냐면 부산에 대한 색깔을 확실하게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 시장이 크기 때문에 진출했다는 느낌도 사실 있고, 뭔가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있기는 했지만 확실하게 가다듬지 못하고 올라간 상태였어요. 거기 있으면서 저희가 나중에 지켜보니까 점점 서울의 어떤 스타일이나 트렌드들을 쫓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건 아니다 싶어서 3년 만에 정리하고 다시 부산에 더 집중하게 된 거죠.


이렇게 꾸려나가기까지는 많은 멤버들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데, 저는 20대 초반, 2000년도부터 14년 정도 되었는데 계속 서핑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원래 서핑을 계속 탔던 사람이고 다들 어릴 때부터 바닷가에서 크고 자랐던 사람들인데, 이 멤버들이 그런 서울에서 가질 수 없는 감성들이 사실 있잖아요. 부산만의 감성들도 있고. 그런 것들을 부산에서 안티도트를 통해 표현하는 거죠. 스태프들은 거의 다 부산 친구들이고, 이런 걸 다 좋아하는 친구들이에요. 스케이트보드 타는 친구들도 있고, 서핑 타는 친구들도 있고, 음악 하는 친구들도 있고. 다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공통된 감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안티도트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는 팀워크가 제일 중요한데, 잘 맞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농담처럼 부산포니아라는 말을 썼거든요. 어떻게 보면 캘리포니아의 감성을 좀 더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2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부산이 가진 도시의 네임 밸류 자체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우리 어린 친구들이나 또래 친구들한테 좀 더 재미있게, 빨리 다가갈 수 있게 붙인 것이 캘리포니아와 부산의 합성어인 거죠. 그런 단어를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어요. 그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기존의 부산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탈피하는 새로운 부산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중인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부산이라는 이미지. 그래서 아마 재미있게 계속 쓰일 것 같아요.


서울에 대한 디스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강하고 바다는 비교할 수 없죠. 강이 있는 서울의 감성과는 틀린 것이 분명히 있고, 부산만의 멋이자 경쟁력을 풀어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 관련 링크: 고사우스 홈페이지




▶ 기타 편집매장


por_bre.jpg

외에도 고사우스 근처에는 포트빌(Portville)과 빈티지아이(Vintageye)라는 숍이 있으니 꼭 가보는 것이 좋다. 마찬가지로 편집매장이며, 단순히 의류만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물건들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부산에는 브라운브레스(Brown Breath) 테트라 스토어/센텀 스토어, 카시나(Kasina) 광복점이 있다카시나의 경우 지금은 대표적 멀티숍이 되었지만, 1997년 부산대학교 앞에서 시작한 것이 첫 출발이었던 만큼 부산과 연이 깊다. 끝으로 부산에는 빈티지 골목이 유명하다고 하니 찾아가보는 것도 좋다.


* 관련 링크: 포트빌 페이스북




- 음반 가게


먹통 레코드


19_2.jpg

흔히 있는 일반 음반 판매점은 제외하고 LP 판매 매장 위주로 소개를 하고자 한다. 부산 역시 대형 서점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작은 규모 음반 매장들 다수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중 우선 가장 (나름대로) 유명한 먹통 레코드를 소개한다. 2층은 CD와 테이프, 3층은 LP를 다루고 있다. 다루고 있는 양 자체가 많아서 가볼 만하다. 위치는 중구 창선동2 12-5. 자갈치역 7번 출구로 나와서 국제시장 방향 큰길로 들어오다가 롯데안경콘텍트가 있는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간다. 이후 세명약국과 커피빈 사이로 들어오면 찾을 수 있다.


* 관련 링크: 먹통레코드 홈페이지




▶ 기타 LP 숍


lpshop.jpg

좌: LP 사운드 전용국 대표 / 우: 조희제의 LP 이야기 조희제 대표 (사진 출처: 경남매일, 부산일보)


먹통 레코드 외에도 부산에는 LP 사운드라는 곳과 조희제의 LP 이야기라는 곳이 있다. LP 사운드 주소는 금정구 부곡동 23-18번지이며, 금정구청 근처에 있다. 주로 클래식 LP들을 다루며 한국 LP들도 있다고 한다. 홈페이지는 여기. 조희제의 LP이야기의 주소는 동래구 온천1 442-11이며, 명륜역 근처 부산전자공고 가는 길 유락삼거리 인근에 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무료로 음악 감상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고 한다. 각각 지역 언론에서 다룬 기사들이 있으니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링크 참조)


* 관련 링크: 부산일보 'LP 사운드' 기사, 경남매일 '조희제의 LP 이야기' 기사




- 공연장/클럽/


▶ 올모스트 페이머스(Almost Famous)



almostfamous.jpg


부산의 클럽이다. 주소는 남구 대연3 55-2. 힙합, 하우스, 댄스 뮤직, 베이스 뮤직 등 다양한 음악들이 등장하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개연성 없는 것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파티들은 대부분 확실한 콘셉트와 맥락,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22일 열렸던 딥 하우스, 테크노 파티인 'Tanzabend' 파티에서는 관련 다큐멘터리 시청 후 음악 플레이가 열리는가 하면, 앞서 말했던 힙합 중심의 'Sound Bombin’', 'BASSment'와 같은 파티도 열린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으니, 꾸준히 체크하셔서 다들 가서 즐기면 좋을 것 같다. 


* 관련 링크: 올모스트 페이머스 페이스북 페이지

 



▶ 비욘드 개러지(Beyond Garage)



beyondgarage.jpg

(사진 출처: Beyond Garage 공식 홈페이지)

비욘드 개러지는 부산항에 위치한 대교 창고를 보수하여 부산 지역의 문화 행사와 각종 서브컬처에 대한 지원을 가능하게 한 대안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Voodoo In Garage' 파티를 비롯하여 'United Minds' 파티, '캐나다구스 팝업스토어', 'VLUF x Unionway Fest', 'Royal Flush Sound System Launching' 등의 이벤트가 열렸다. 비욘드 개러지를 기획하고 열게 된 고사우스 대표님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내려왔을 때 부산에 있는 친구들은 나름대로의 멋이 있구나 라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런 것들을 옷으로 보여주는 것도 한계가 있고 여러 가지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고민을 하던 와중에 친구들이 와서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고 공연장 비욘드 개러지를 오픈한 거죠. (중략)


아무래도 저희 숍에 오는 친구들이 개성도 강하고 문화에 대한 욕구가 되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부산이 문화 불모지라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힙합이나 록 공연, 스케이트보드나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만들었죠. 저희가 그런 공간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와중에 부산항의 오래된 창고를 발견하면서 충동적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주소는 중구 중앙동5 22. 중앙역 2번 출구로 나와 대교로 쪽으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데, 그냥 봐서는 모를 것이다. (링크)




▶ 기타 공연장/클럽/바


20_2.jpg

일단 이런 식으로 묶어놓은 이유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이런저런 공연장들을 찾아봤으나 (싸우스 타운 이후) 힙합 음악만을 위한 공간은 없었기 때문에 크게 부각할 만한 곳이 없었다우선 여러 공연장들 이름을 언급하자면 경성대 근처 바이닐 언더그라운드(The Vinyl Underground), 사상 인디스테이션과 같은 곳이 있다외에도 제이스퀘어(J SQUARE)인터플레이(Inter Play)무몽크(MOO MONK) 등 부산대 앞에 위치한 곳들에서도 공연이 열릴 때가 있다가끔 해운대 빌리진(Billie Jean)에서 열리는 공연도 보았다큰 규모의 공연장으로는 벡스코(Bexco)나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이 있고그 다음 홍대 규모의 공연장으로는 서면 오즈홀(Oz Hall)이 있다외에도 밴드 스카웨이커스(SKA WAKERs)의 연습실 겸 공연장으로 쓰이는 공간 루츠라는 곳이 있다스카레게 아티스트들 외에도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한다커다란 책장이 인상적이다주소는 금정구 장전3 418-33. 링크.


힙합 라운지 바로는 경성대 근처에 게토(Ghetto)라는 곳이 있고서면에 클럽 그리드(Grid)라는 곳이 있는데여기 힙합 라운지가 있다고 한다직접 가보지는 못했으니 장담하기는 힘들다 외에도 올모스트 페이머스와 같은 건물에 LP 카페가 하나 있다여기 쓰여진 곳들을 다 들렀지만 (내부를 본 곳도 있고그냥 바깥만 멀뚱히 쳐다보다 온 곳도 있다공연장은 참 많은데 힙합 공연장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물론 인디 밴드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그래도 아쉽다는 표현을 써놓아야 할 것 같았다. 많은 공간을 언급만 한 채로 넘어갔는데, 실제 힙합 공연에서 쓰이는 공간들이 워낙 여러 곳이기도 한 데다가 '공연장'을 보고 공연을 가는 경우가 굉장히 드문 편이라 우선은 이 정도로 줄인다.






voodoofans.jpg


9) 팬들의 이야기


부산 팬들 역시 대구 팬들 만큼이나 애정이나 충성도가 강한 편이었다. 어린 연령층의 팬들은 얼라이브 뮤직이나 그랜드픽스를 좋아하고, 처음부터 이들을 통해 힙합을 접한 경우도 많았다. 특히 프리즈몰릭과 크리틱에 몰표를 보냈다. 비욘드 개러지의 존재를 많이 얘기해줬고, 사이퍼에 대한 언급도 많았다. 공연장 중에는 인디스테이션이 가장 많이 나왔다. 외에도 안티도트, 고사우스, 발란사는 빠지지 않고 지역 문화에 있어서 대표적인 장소로 등장했다. 지금은 없어진 쉐이커(The Shaker) 역시 많이들 이야기해주셨다외에도 내용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모라동 시나몬 클럽이라는 곳에서 자발적으로 공연을 열고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더불어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은 지금의 부산 힙합은 주춤하다는 이야기였다. 거리상 가까워서 그런지 대구와 비교하는 팬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많이 죽었다는 식의 표현들을 자주 듣게 되었다. 부산 자체 공연의 힘이 약해진 것 같다는 점, 자주 보던 친구들이 점점 오는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점도 공통적인 이야기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애정이 있었고, 또 갓 활동하기 시작하는 친구들에 대한 관심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팬들의 반응도 신의 흐름에 따라 약해지고 있다는 의견에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만큼 걱정해주는 마음이나 긍정적 방향을 생각하려는 것 자체가 멋있게 느껴졌다.






10) 끝내며


아무래도 분량 자체가 많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한 나름대로 조금이라도 더 알차고 확실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보일 것이고, 만약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셨으면 한다. 아무리 침체기와 같은 단어들을 쓴다 해도 부산은 부산이다. 오늘날까지 부산에 힙합이 있게 해준 수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표한다. 끝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글, 사진 | Bluc

이미지 | Fromblume

편집 | soulitude


신고
댓글 14
  • 3.18 16:48
    잘읽었습니다!!!!!!!!!!!!!!!!!!
  • 3.18 17:02
    귀한 정보 감사합니다 +_+
    덕분에 국힙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고 있어요
  • 3.18 17:18
    와 진짜 고생하시는 게 글만 봐도 느껴지네요
  • 3.18 17:22
    잘읽었습니다. Busan Bro로써!
    고생많이 하셧습니다. 부산 경대 씬도 화이팅,
  • 3.18 17:39
    부산주민으로서 응원합니다 모든 분들
  • 3.18 19:14
    SWAG 멋집니다
    재유형님은 가끔 돌아오시면 어떨까
    생각하지만서도,
    디제잉이 좋으시다면 어쩔수 없죠
  • 3.18 19:16
    판돌님의
    더 스쿨이랑 델리 턴테이블도 생각나지만,
    힙합보다는 그냥 까페니깐ㅋ
  • 3.18 19:37
    고사우스 가시는 분들껜 맞은편의 정성식당 추천드립니다.
    젊은 분들이 운영하는 곳인데 입소문이 날 정도로 맛이있다더군요.
    김치찜, 두루치기, 김치전골 등이 주메뉴입니다.
  • 3.18 19:56
    제이통이 벅와일즈 데리고 싸타쇼 하면서
    서울과 거리가 가까워진 반면
    군소 크루나 레이블들이 설 무대는 좀 줄어들지 않았나 싶어요.

    그건 그렇고 나름 반응 있었던 듀오 G. L은
    아우라지에서 나왔나 보군요.
    소식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저는 ex8er가 정말 포텐이 높다고 보는데
    군대도 갔다왔고 파바박 활동 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썼던 리뷰 하나 남기며..
    http://hiphopplaya.com/review/17465
  • 3.18 22:06
    부산사람이라 꼼꼼히 읽었네요
    부산힙합이 앞으로 더욱 흥하길 바랍니다!
  • 3.20 14:02
    이거 진짜 좋은기획이네요
  • 3.20 18:36
    부산힙합 흥해라~
  • 3.21 18:53
    부산 스탠덥!! 잘읽엇어요~
  • 6.21 02:23
    쩌네요 진짜 ㄷㄷ

댓글 달기